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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색마-251화 (25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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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백봉 유설라

빙마 유설라.

그녀는 실제로는 북해빙궁의 주인이며 비천여빙마이나,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로는 어디까지나 아미파의 여고수에 불과하다.

사르르.

설원과도 같은 백발을 나부끼는 그녀의 검에 산적들은 추풍낙엽처럼 바스라졌다. 손속에 가감이 없는 그녀의 검에 산적들은 몸이 얼어붙거나 목이 날아가는 등 빠르게 죽어나갔다.

“어, 어째서 빙백봉이!!”

“조심해! 북해빙공 놈들이랑 다를 게 없다고!!”

“아아악! 내 손이! 손이 얼었어!!”

산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유설라의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검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산적들의 검에는 서리가 내려앉았다.

누군가 한 명 정도는 당연히 북해빙궁과 관련된 것을 의심할 법도 하지만-

“큭, 역시 빙색마인의 저주!”

“검기에 빙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말이 사실이로구나!”

빙색마인에게 당한 것이 그녀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빙색마인의 빙백신장에 당해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그녀는 검기를 일으킴에 항상 한기가 서렸다.

“검을 쓸 때마다 빙기가 나온다고 하더니, 역시 빙색마인의 저주가 남아있는 것이로구나!”

“흐흐, 빙색마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닥쳐라!”

유설라는 날카롭게 벼려진 검을 휘둘러 산적들을 베었다. 피분수가 몰아치고 있음에도 유설라에게는 핏방울 하나 튀지 않는 것이, 그녀의 검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조심해! 아미의 검이다!”

‘빙백신검인데.’

“크윽, 생긴 건 어디 색목인처럼 생겨놓고는!!”

‘진짜 북방계 색목인인데.’

천마신공을 일으키지 않으면 원래의 벽안이 반짝일 뿐이다.

“나는, 아미파의 빙백봉 유설라다!!”

거의 색목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머리칼과 눈동자 색이지만, 얼굴형은 또 나름 중원인들과 북방인들의 혼혈처럼 생겨 큰 의심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가 중원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수단도 있었다.

“하앗! 소청검법(小淸劍法)의 힘을 똑똑히 보아라!”

그래서 그녀는 내공은 빙백신공을 은근슬쩍 사용하면서, 무공은 아미파의 무공을 사용했다. 검기(劍氣)는 빙백신공이지만, 검기(劍技)는 아미파의 형을 담고 있었다.

당연히 속을 수밖에. 내가 보기에도 아미파의 여고수가 확실했다.

‘검술은 제법 실력이 늘었는데?’

다양한 무공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녀의 아미파 무공은 아미파의 절기인 난피풍파검(亂披風劍法)이었다.

대공자가 가르쳐준 무공은 완전히 버린 채, 아미파의 제자들이 배우는 무공을 익힌 그녀는 난피풍파검 만으로도 절정 고수에 준하는 실력을 보였다.

“역시, 아미파의 빙백봉!!”

“크아아악!!”

당연히 산적들은 하나둘 모가지가 날아갔다. 산적들은 어리석게도 유설라를 도모해보려고 도끼를 강하게 휘둘렀으나, 유설라의 검에 싸늘한 시체가 될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삼류무사 백이 아무리 날뛴다 한들, 절정 고수의 기세는 넘볼 수 없는 법!

서걱, 서걱.

청백의 도복을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유설라의 움직임은 화려했다. 그 모습이 마치 백습광아를 연상케하여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마 백습광아의 실체를 보고나면, 유설라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리라.

‘지금은 일단 산적들에게 집중하자.’

북해빙궁주와 빙궁의 난간에서 야외 채음보양을 하려면 어쨌든 이 난관을 돌파해야한다. 나는 유설라와 합을 맞춰, 반대편에서 열심히 날뛰었다.

“희아연월검, 제 2초! 반월참(半月斬)!”

그냥 수평베기다. 어깨너머로 넘긴 검을 전방을 향해 내달리며, 앞으로 강하게 휘두를 뿐이다.

대신 여기에는 하북팽가의 묘리가 담겨있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넘기는 호쾌함을 담아, 나는 전방을 향해 반달을 그리듯 땅과 수평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뎅겅.

산적의 목이 하늘로 날며 피분수가 치솟았다. 놈의 피는 주변으로 휘날렸고, 나는 검풍을 일으켜 내 몸에 핏방울이 닿지 않게 만들었다.

“크윽...!”

나를 노려보던 산적 하나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다른 산적들과 달리 잘 벼려진 철검을 움켜쥔 그는 눈 아래에 짙은 마기가 느껴졌다.

‘산적들만 계속 죽이게 되네.’

산적들의 틈바구니에는 분명히 마교의 졸개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유설라의 무위에 눈치만 보며 슬금슬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지들도 목숨 아까우면 도망가야지.’

나도 마교 졸개들을 건드리지 않았고, 유설라도 마교인들을 눈치채고 건드리지 않았다. 놈들은 산적들을 벌써 십 수명이나 베어넘긴 우리를 비웃고 있었다.

‘은근슬쩍 산적들을 칼받이로 내세우면 누가 모를 줄 알고? 알고 당해주는 거다, 멍청이들아.’

우리는 산적들을 베었다.

정확히는 둘 다 마교인들이 유도하는 대로 산적들만 주구장창 베었다. 나도 유설라도 마교인들을 일부러 찾아 죽일 이유는 없었다.

‘당장은 산적들 죽이는 게 더 급해.’

마교 놈들은 작전이 실패하면 알아서 도망갈 놈들이다. 그에 반해 산적들은 까무러치기로 우리를 베고 제갈세가의 여자들을 데려가려고 하고 있다.

“크헤헤! 빙백봉! 듣던대로 빨통 한 번 오지게 크구나! 이 몸이 맛을 봐야겠다!”

“죽어.”

서걱.

일부 산적들은 유설라의 등장에 더 흥분하여 난리법석을 부렸다. 결국 우리는 산적들을 죄다 죽여야만 했고, 그래서 실제로 우리에게 제압당하는 산적들은 넘쳐났지만 마교 졸개는 한 둘이 있을까 말까였다.

‘자기네 대장 눈치도 못 챙기고 깝치다가 죽는 놈들이 누구든 있기 마련.’

“죽어라, 이 놈!”

바로 눈앞의 산적차림의 마인처럼. 그는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나는 검을 비스듬히 세워 그의 검을 흘렸다.

‘질투하는 구나. 내 강함을.’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마아아아아---!!”

‘폭혈.’

놈은 잠력을 폭발시켜 나를 죽이려 들었다. 핏발 선 눈동자 아래에는 진한 질투심과 분노가 서려있었다.

‘빡칠만 해.’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추마귀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나는 그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잘생기고 정의로운데 무공까지 출중해서 여자들이 흠모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교 졸개 따위가 느껴볼 수 없는 시선이지.’

그 마음은 내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여차하면 살려줄 생각도 있었다.

‘근데 나한테 그걸 드러내고 짜증 부리면 죽어야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짐승같은 자를 가만 둘 수 있겠는가. 나는 검을 어깨 위로 올리며 검끝을 놈에게 겨눴다.

“견희아(犬熙牙)!!”

푸욱.

비스듬히 휘어가는 듯한 찌르기에 산적의 심장에 칼이 찔렸다. 사냥개가 사냥감을 물어뜯듯 날카롭게 빛난 찌르기에 산적들은 하나둘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산적들 중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유설라를 향해. 유설라의 사각에서 검을 찌르려는 모습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선택을 내렸다.

“설라!!”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한걸음에 달렸다. 유설라는 내가 자신을 부르자 급히 몸을 돌렸다.

“크하하하! 죽어라, 빙백봉!!”

그녀는 순간 머뭇거렸다. 산적은 이미 자신에게 칼을 찌르려고 치켜들었고,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추궁했다.

[뭘 하려고 그러세요?]

유설라는 눈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잠시 내 몸에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는 자하신공의 기운을 느낌만 살려냈다.

‘검선, 그대의 힘을 빌리겠소.’

“하압!”

나는 검을 전방으로 던졌다. 그리고 검을 따라가듯 몸을 날렸다.

푸-욱!

산적의 어깨에 칼침이 박혔다. 수 장을 넘게 검을 던지는 자세 그대로 날아온 나는 손잡이를 잡고 산적을 뒤에서부터 베었으며, 관성에 의해 앞으로 넘어지며 유설라의 허리를 붙잡아당겼다.

와락!

유설라는 내게 꽉 달라붙으며 안겼다. 나도 유설라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유설라를 보호하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더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항복하라!”

나는 유설라를 안고 산적들과 마교 졸개들에게 칼을 겨누며 호통을 쳤다.

“이 놈들! 순순히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마!”

누가 누구를 상대로 협박하는지, 아마 산적들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아직 산적들은 최소 200명이 넘게 남아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산적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고작 둘 뿐.

분명 우리가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 말은 산적들을 향해 한 말이 아니다.

‘졸개들이면 임무는 실패했으니까 깝치지 말고 그냥 튀어!’

나는 마교 졸개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알아서 도망치라고. 더이상 뭉그적거리며 시간을 지체하고 괜한 욕심을 부리면 재미없을 것이라고.

그래야, 내가 배후를 캐낼 수 있지 않겠는가?

“크, 흐하하!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오냐! 오늘 내가 너희들을 산 채로 잡아다가 산채에서 마음껏 범하리라! 특히 너! 너는 내가 특별히 내 침대에다가 묶어놓고 범해주마!”

덩치 큰 산적이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나는 처음에는 손가락에 살이 쪄서 유설라를 가리키는 줄 알았으나, 곧 손가락이 정확히 나를 가리키는 걸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예쁘장하게 생겼으니, 치마 입혀놓으면 볼만하겠어!”

“뭐...라고...?”

“남색이다! 크하하!”

산적의 광포한 웃음에 나는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주인님, 죽일까요?”

옆에 있던 유설라는 나를 향해 누구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받쳐들고 일으켜 세운 뒤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대신 그대가 내 뒤를 지켜주시오.”

“...알겠습니다, 천 소협. 그런데...이제 더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유설라는 내 옷깃을 잡으며 뒤로 당겼다. 그러자 뒤에서 검은 그림자 수십이 날아와 착지했다.

“세가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거칠고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중년의 거한은 손을 이리저리 풀며 자세를 잡았고, 근처에 가득한 갈색 무복의 무사들 또한 주먹을 움켜쥐며 방어진을 형성했다.

“나, 벽력신권 황보염이 용서치 않겠다!!”

뜨끔.

산적들은 기겁을 하며 하나 둘 물러나기 시작했고, 나는 아는 사람의 등장에 괜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주변에 혹시나 그녀가 있을까 싶어 재빨리 살폈지만, 다행이 ‘일행’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분들은...?”

“무림맹의 무사분들입니다, 천 소협.”

유설라는 뒤를 가리켰다. 제갈세가의 여인들의 근처에 잘생긴 청년들이 하나 둘 원진을 짜며 그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안심하십시오, 저희는 무림맹의 무사들입니다.”

검은 무복의 청년은 자신의 가슴팍에 새겨진 무(武)자 인장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제갈세가의 여인들은 청년과 무사들의 정체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저는 추색살에서 산동 일대를 맡게 된 자, 풍운문의 강아성이라고 합니다.”

“강아성...설마!”

“예, 부끄럽게도 구룡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멎쩍게 웃는 청년의 이름도 낯이 익다. 지금은 구룡의 한 명으로서-

“강호에서는 저를 ‘삭룡(削龍)’이라고 부릅니다.”

삭룡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자. 산동성 출신으로 훗날 혈교의 산동 진출을 한 번 혼자서 막아낸 쾌검의 고수이며, 혈겁난세에서 당당히 천하삼십대 고수로 이름을 널리 떨치던 검사.

지금은 고작 일류 수준으로 보이지만, 훗날 화경에 이를 정도로 대성하게 될 자다. 혈강시로서 직접 상대하여 피를 흡수해봤기에, 나는 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저 자가 산동을 맡게 될 줄이야.’

나는 검기를 해제하고 천천히 검을 아래로 내렸다. 유설라 또한 기를 가다듬으며 내게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천 소협. 지금부터 이곳은 저희...추색살이 맡겠습니다.”

하남 무림맹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었어야 할 빙마 유설라가 이곳에 있는 이유.

“저희 추색살이라 함은...?”

“제가 추색살의 단원이며, 이들이 모두 추색살이니까요.”

바로 그녀가 추색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빙색마인에게 가장 깊은 은원을 가진 당사자로서, 추색살에 들어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저 분은-”

“산동 제왕의 힘을 똑똑히 보아라!! 맹호-천지파열!!”

벽력신권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의 주먹에 깃든 강기는 땅을 때리자마자 지축을 흔들며 땅을 울렸다.

‘어우야.’

내가 황보세가의 비무장을 파괴시켰던 그 무공을, 그는 어느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새롭게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 위력은-

콰과과광--------!!

200명이 넘는 산적들이 자세가 무너져 갈라진 땅의 틈으로 발이 빠지거나 충격파에 휘말려, 산적이고 마교 졸개고 할 것 없이 모두 각혈하며 쓰러졌다. 일부 멀찍이 도망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수가 열이 되지 않았다.

"...혹시 저 분도 추색살이오?"

나는 유설라에게 물었고, 유설라는 빙긋 웃기만 하며 혀를 내밀었다.

스륵.

그녀는 남들 모르게, 내 바지 앞섶에 불(不)자를 손가락으로 그리며 눈을 찡긋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벽력신권 황보염이 '고문'으로 이끄는 추색살 산동부대의 도움으로 산적들을 모조리 무찌를 수 있었다.

[작품후기]

흑후루빙백봉

반로환동에 따른 여러 요소의 복각 여부는 조만간 알게 되실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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