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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아연월검(熙牙燃月劍)
한창 산동에서 난리가 일어나는 무렵.
호북의 무당산 어귀,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산 어귀의 작은 집은 한창 칼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서걱, 서걱, 서걱.
네 자루의 검이 벌처럼 날아다녔다. 허상의 존재를 향해 찌르는 네 개의 검은 누군가와 비무를 벌이듯 빠르게 움직였다.
"하아, 하아."
검의 주인, 사공희는 고개를 떨구며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했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언니, 천천히 해요."
독고연은 손수건을 가져와 사공희의 땀을 닦았다. 사공희는 땀에 절은 앞머리를 옆으로 쓸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저만...뒤쳐질 수는 없어요."
"하지만 언니, 벌써 반나절이 지났어요. 가가께서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상공께서 정한 선까지 내공을 쓰면 돼요."
"그게 지금이잖아요."
독고연의 말에 사공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질투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독고연은 사공희의 몸 상태를 단번에 파악해냈다.
"바로 알아차리시네요."
"...아, 언니.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에요."
"알아요, 저도. 그냥...혼자서 뒤쳐지는 게 너무 그래서."
사공희는 네 개의 검을 정렬하듯 검집에 집어넣었다.
"씻고 오시면 딱 맞게 시간 될 것 같아요. 먼저 상 차리고 있을게요."
"네.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사공희는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손으로 펄럭이며 욕실로 향했다. 천가장은 나날이 건물의 형태가 바뀌고 있었고,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욕실이었다.
한증탕(汗蒸湯).
욕실 안은 뜨거운 증기로 가득 차있었다. 나무로 된 넓은 욕탕 안에는 사람 여덟은 들어가고도 남을 넓은 욕조가 있었다.
사공희가 직접 태극혜검으로 깎은 대리석을 쌓아 만든 욕조 안에는 뜨거운 물이 보글보글 끓어넘치고 있었다. 피로를 풀기에 너무나도 좋은 온도에 사공희는 '규칙'대로 옷을 전부 벗어 바구니에 넣었다.
첨벙.
사공희는 발끝부터 천천히 욕조에 담갔다. 그리고 온수에 몸을 담그며 땋았던 머리를 가지런히 풀고, 뒷머리에 하나로 묶었다.
"하아...."
반나절 가까이 어검술을 휘두르느라 피로가 많이 쌓였다. 직접 검을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어검술은 네 배로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했다.
만약 사공희가 직접 검을 휘두르고 다녔다면, 흉부가 아파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두둥실.
사공희는 수면 위로 떠오른 두 개의 덩어리에 괜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래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가 어찌나 강한지, 사공희의 가슴도 떠받치듯 들어올렸다.
"무공을 이런 식으로 쓰시다니...풋."
욕조 아래에는 철로 된 관이 하나 흘렀다. 뱀처럼 구불구불 거리는 관은 화기(火氣)가 굽이치며 무한히 돌아가고 있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신의 불꽃, 중려신화정은 목욕탕의 물을 데우는 장작 대신 사용되고 있었다. 그의 말로는 염제 신농의 무공이라고 하던데, 이게 이런 곳에 사용되어서 정말 괜찮을 걸까.
"......하아."
라고 하기에는 물의 온도가 너무 따뜻했다. 너무 뜨겁지도 않으면서 전신을 달구는 듯한 감각에 사공희는 물속에 점점 몸이 잠겼다.
염제는 천하 만민들을 위해 많은 걸 베푼 만큼, 그도 자신의 불꽃이 명맥이 끊기지 않고 이렇게 사용되는 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리라.
라고, 그는 말했다. 사공희는 대리석에 머리를 뉘이며 앞에 가득한 김을 후 불었다.
"...어머."
"훗."
수증기 속에서 적안이 반짝였다. 욕조의 맞은 편에는 이시아가 이미 선객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역시 초절정에 올라서 그런 걸까요?"
"그래? 아닐 걸? 자리를 잡을 때 정확히 내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잖아."
"...네?"
"몸은 본능적으로 느꼈다는 거지."
사공희와 이시아는 욕조를 중심으로 정확히 대칭으로 앉아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위치가 절묘했다.
"너무 심란해하지마. 사람마다 성장 속도는 차이가 있고, 무공이라는 게 한 번 막히면 때로는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위로하는 거 맞죠?"
"당연하지. 넌 그런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야. 세상 누가 무공 배운지 이 년 남짓한 시간 만에 초절정의 문을 두드리겠어?"
"......."
이시아 나름의 위로에도 사공희는 멎쩍게 웃기만 했다. 주변에서는 이제 초절정에 들어왔다고 말은 하지만, 그녀는 무엇이 초절정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육체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는데 자각을 하지 못하는 거야.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초절정이 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러면 다행인데요...."
사공희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걱정돼? 바깥일 하러 나간 서방님이 다른 여자 또 들일까봐 걱정돼서 그래?"
"그건 전혀 걱정이 안 되는데요...."
"그래? 나는 지금 불안해 미칠 것 같은데."
사공희는 이시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요? 상공이 색마 짓을 하는 건 딱히 불안하지 않은 거 아니었어요?"
"색마 짓을 하더라도 내 눈 안에서 하면 거를 수 있잖아. 우리 남자지만 워낙 잘났어야지. 너는 그런 생각 안 들어? 혹시...."
이시아는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여자가 나타나면 어쩌지?"
이시아는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마치 주인에게 사랑을 빼앗기는 걸 두려워하는 고양이같은 모습에 사공희는 이시아를 향해 손을 뻗어 볼을 쓰다듬었다.
"시아,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사공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시아를 진정시켰다.
"상공은 그런 여자가 있어도 차별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에 그런 여자가 있었으면, 저희를 품기 전에 이미 먼저 그녀를 품으셨겠죠."
"그렇겠지...?"
"그리고 말이에요, 시아는 천하를 저보다 더 많이 둘러봤잖아요? 천하에 저희보다 상공이 사랑스러워 할 여자가 어디 있던가요?"
"...풋."
이시아는 고개를 치켜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
"네. ...물론 한 두 명 정도는 걱정되는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요."
사공희는 물 위에 손가락을 그었다. 그녀의 기다란 손가락을 따라 찰랑거리는 물 위에 천가장의 조감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상공이 만드는 지금 이 천가장의 구조를 생각해봐요. 남아있는 방의 위치가 어디 남았는지."
"...네 개?"
"그래요. 이제 여기서 더 늘어나봐야, 최소한 네 명밖에 없다는 거죠. 예전부터 상공께서는 삼처사첩이라고 말하셨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저희가 이미 삼처를 꽉 붙잡고 있으면 돼요."
"......왠지 그것도 이미 망한 것 같지만."
이시아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툴툴댔다.
"팽유월.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쨌어?"
"......."
사공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시아는 팽유월 님이 천가장에 들어올 후보라고 생각하시나요?"
"응. 증거도 있는 걸."
"증거요?"
"그래.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이시아의 눈에는 확신이 엿보였다.
"남해에서는 해적의 눈앞에서 아내랑 딸을 동시에 범하던 색마였단 말이지? 과부라고 해도 미망인에 너랑 거의 비슷한 가슴을 가진 여자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이겠어?"
"...잘 모르겠네요."
"알면서 일부러 대답 안 하기는. 너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잖아. 이미 건드렸으니까 이번에 호북 왔을 때 안 건드린 거."
"악참도 선배님이 신경쓰여서 그런 건 아니고요?"
"너 은근히 지금 팽유월 감싸준다? 왜 그래, 너 혹시 뭐 감 잡은 거 있어?"
"그냥...."
사공희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서로 알몸으로 마주보고 있어서 그런 걸까, 사공희는 속내를 간신히 털어놓았다.
"...팽유월 님의 따님이, 혹시 상공의 아이가 아닐까 해서요."
"뭐? 후, 설마 그러겠어? 이미 연이랑 나랑 교차검증 끝났어. 걔가 우리 남편 자식이면, 너랑 만나기도 전에 팽유월이랑 관계를 맺었단 말이잖아."
"그치만...."
사공희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상공이 팽유월 님을 바라보는 눈빛은 여색을 즐기는 눈빛이 아니었는 걸요. 팽유월 님과 비무를 하면서 느꼈어요. 아, 상공의 걱정어린 눈빛은 나만을 향하는 게 아니구나."
"......그럼 확정이네. 그치, 연?"
"네. 맞아요."
욕실의 문이 열리며, 독고연은 나무 바구니 하나를 들고 욕탕 안으로 들어왔다. 옷을 벗어 가지런히 넣어둔 그녀는 알몸으로 욕조에 들어와 바구니를 펼쳤다. 안에는 한 입에 먹기 편하게 빚은 작은 소롱포가 담겨있었다.
"여기서 이런 거 먹어도 돼?"
"괜찮아요. 중려신화정이 이물질 다 태워버리니까 배수구 막힐 염려도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가가는 여기서 저희 먹잖아요. 공평한 거죠."
"...얘 말하는 것 좀 봐. 나는 여기서 안했는데?"
"저도요."
"...훗."
독고연은 어깨만 으쓱였다.
"시아 언니 말에 첨언하자면, 그거예요. 가가께서 이번에 외유를 나가서 팽유월 님을 취하지 않는다면, 십할 확률로 이미 건드리신 거예요. ...아이가 가가의 아이라는 건 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 그렇게 예쁜 여자를 안 건드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악참도가 무서워서 건드리지 않았다? 심장 근처에 칼침 맞는 한이 있더라도 무림맹주한테서 금지옥엽 납치해간 색마가? 절대 안 그러지."
"......그렇긴, 하죠."
사공희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행위에 이시아와 독고연은 눈이 살짝 가라앉았다.
"저는 어쩌면 오만했던 걸지도 몰라요. 상공께서 가슴으로는 저만을 선택하지 않을까하고. 하지만...역시 천하는 넓네요."
"단순히 가슴만 큰 여자라면 또 있을 수 있지만...."
"맵시에 무공까지 갖춘 여인은 드물죠."
셋은 호북에 왔었던 팽유월의 모습을 상기했다. 둘은 멀리서 몰래 지켜보기만했고,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 건 사공희가 유일했었다.
그러나 월아라는 아이를 데리고 호북 일대를 돌아다니던 팽유월의 모습은 셋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로, 질 수 없어요."
사공희는 가슴을 꽉 움켜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상공과 상공의 아이에게 수유하기 위해서라도...저는…!!"
두 여인은 사공희의 강렬한 의지 앞에 넋을 잃었다.
* * *
청랑채, 궤멸.
주랑채, 황랑채, 그리고 감람채의 세 채주는 잔혹하게 죽은 청랑채의 동료들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젠장, 누가 감히 이런 짓을!"
그들은 몹시 분노하고 있었다. 청랑채의 도적들이 죽어서?
아니다.
"제갈 세가의 여자들은? 시체들 사이에 없지?!"
"그렇소! 아무도 없소이다! 밖으로 나간 발자국은 분명 그들의 것이오!"
세 채주는 제갈세가의 여인들이 도망쳤다는 것에 분노했다. 누군가 청랑채를 습격하여 도적들을 몰살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람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도망쳤다.
"젠장, 이 일이 바깥으로 알려지면...."
"계약은 파기하는 셈이 되겠지."
세 채주는 뒤에서 들려온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전신을 흑의로 뒤덮은 남자는 검은 깃털달린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나타났다.
"황산 칠채와의 계약은 분명 제갈 세가 여인들을 인질로 잡고 구조대를 몰살시키는 것이었지. 맞소?"
"그, 그랬소."
"그것만 성공하면 그대들의 신분은 새롭게 바뀌어 제 2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며, 막대한 성공 보수도 얻을 수 있었지. 인질로 계속 잡고 있었다면."
세 채주는 억울했다. 몰살당한 건 청랑채인데 왜 자신들이 흑의인에게 비난당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황산 칠랑은 계속 계약을 연장하겠는가, 아니면 여기서 계약을 파기하겠는가?"
"기, 기다리시오. 다른 채주들은-"
"다 죽었더군. 여기있는 셋이 전부요."
"......."
셋은 침을 꿀꺽 삼키며 서로를 쳐다봤다. 사실상 황산 칠랑은 자신들밖에 남지 않았고, 그들은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한 가지 알려주겠소? 우리는 제갈 세가를 습격했소. 그리고 현재 남자들은 인질로 여전히 붙잡고 있지. 그렇다면 반절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소?"
"아니. 차라리 남자들이 도망쳤다면 모를까, 여자들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인질이었소."
흑의인은 의외로 순순히 답했다.
"그들을 인질로 삼아, '그녀'를 불러낼 생각이었거든."
"그녀라고 함은...?"
"와백봉 제갈선. 제갈세가의 여인들을 인질로 삼아 와백봉을 불러내려고 했건만...아무래도 그대들은 안 되겠어."
사락.
흑의인은 흑우선을 옆으로 놓았다. 그러자 사방에서 검은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나타나 산적들을 포위했다.
"황산 칠랑 중 한 명과 계약을 이어나가겠소. 셋 중 누가 우리와 손을 잡겠소?"
"......!!"
세 남자는 서로 급히 떨어졌다. 흑의인은 갓 아래에서 입꼬리를 비틀었다.
"일각 안에 해결합시다. 도망친 여자들 추격하려면, 빨리 달려가야하거든."
"우, 우와아악!!"
세 명의 채주는 서로를 향해 칼을 꽂았다.
[작품후기]
욕탕에서 뭐 먹지 마시오
라고 하기에는 이미 색마가 선녀를 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