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46화 (24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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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아연월검(熙牙燃月劍)

질컥, 질컥.

제갈유는 귀에 들려오는 미약한 물소리에 의식을 서서히 되찾았다.

'나는...분명....'

제갈소소를 비롯한 제갈세가 방계의 여식들과 가솔들은 호북에서 안휘를 거쳐 산동의 분가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제갈세가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인원을 분산하고자 했고, 방계의 여인들이 일부 본가에서 분가로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다가올 겁난에서 제갈 세가의 본가가 습격당할 수 있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 그러면 가는 길에 황산을 구경하고 가는 건 어때요?

안일함은 화를 자초했다.

색마들을 피해 피난을 가는 것이라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사람이 무려 50명이나 되는 대규모 여행길이 된 것에 위험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제갈세가의 호위무사들을 고용하고, 호북에서 이름난 낭인과 표사들을 호위로 초청해 대규모 이사 행렬을 꾸렸다.

일류 고수만 무려 다섯 명이나 있던 행렬이었지만, 황산의 객잔에서 취식을 했다가 그만 독에 당해버리고 말았다.

'감히 제갈 세가를.'

제갈유는 울컥한 마음이 차올랐다. 독에 중독당하고 점혈이 되어 끌려온 곳은 황산에 자리잡은 일곱 산적 무리의 연합 중 하나인 청랑채였다.

'알고 덮쳤어.'

놈들은 제갈세가의 사람들인 걸 알고 일을 벌였다. 제갈 세가의 여인들은 살려서 납치해 동굴에 가뒀다.

남자들?

동굴에는 제갈 세가의 호위무사도 고용한 낭인도 표사도 없었다. 동굴 안에는 오로지 옷이 찢겨진 여자들밖에 없었다. 그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는 지는 불보듯 뻔했다.

'차라리 같이 죽었으면.'

제갈유는 울컥한 마음에 다시금 눈물이 흘렀다. 남자들과 함께 같이 살해당했더라면, 도적들에게 능욕당하고 겁간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제갈유에게 남은 운명은 셋 중 하나다.

남자들에게 간살당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남자들에게 윤간당한 다음 혀가 잘리고 노예로 팔려나가는 것이 차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청랑채의 주인 두열랑이라는 자에 의해 원치않는 아이를 가지고 평생을 산적의 부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그녀로서는 최악이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제갈유는 도망친 제갈소소를 떠올렸다. 보통은 어미가 딸을 탈출시키는 경우가 대다수이나, 제갈유는 누가 탈출해야 더 '효율적'인지 제갈소소를 설득했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남녀할 것 없이 머리가 비상하고 이지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냉철한 머리로 상대적으로 경신법이 훨씬 뛰어난 제갈소소가 탈출하여 구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성으로 판단한 예상과 달리, 직접 마주하게 된 현실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저는 도적에게 겁간당하고 죽을 운명인가 봅니다.'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난다면, 날카로운 날붙이 하나를 찾아 스스로 자진하리라. 제갈유는 그만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찔컥, 찔컥.

아래에서 자신의 몸을 찌르는 양물은 도적답지 않았다. 제법 오랫동안 생각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아파서 고통스러워 생각이 멈추지도 않았다.

"아, 아흐."

오히려 몸 안에서 무언가가 몽글몽글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전신이 붕 뜨는 것만 같았고, 제갈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

음식 냄새, 술 냄새 아래에 미약하게나마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다. 처녀를 잃었을 때 보면 하혈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나 그걸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혈향이 너무나도 짙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나는 혈향이다. 제갈유는 전신이 굳었다.

"...으음."

처음 듣는 사내의 목소리에 제갈유는 소름이 돋았다. 눈을 뜨지 않아도 서서히 회복되는 몸의 감각 덕분에 자신과 사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지 금방 깨달았다.

제갈유는 지푸라기에 반듯하게 누워있고, 사내는 제갈유의 두 다리를 벌리고 양물을 밀어넣고 있었다. 너무나 따스하고 상냥하여, 마치 제갈유를 걱정하는 듯 안에 넣은 양물은-

"!!"

부르르.

자각을 하고 나니, 미칠듯이 컸다. 몸 안이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도적들이 불에 달군 방망이를 쑤셔넣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컸다.

"내기를...다스리시오."

청년은 제갈유의 하복부 위에 손을 올렸다. 남자의 거친 손길은 매끈한 하복부에 닿아 단전 위를 어루만졌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제갈유는 마치 약손과도 같은 따스함에 숨이 막혔다.

"아, 아흐, 흐윽...!"

아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 해도 신음밖에 흘러나오지 않았다. 제갈유는 이성을 되찾았으나,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육체의 제어권이 없었다.

"햐악, 흐윽, 허어억...!"

제갈유는 자신이 쾌락에 물든 짐승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흔히들 춘약이 치사량에 가깝게 투약된 상태였고, 제갈유는 울고싶어졌다.

"옳지...느끼시오. 마음껏 나를 이용해 쾌락을 해갈하시오."

청년은 마치 오욕에 물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구도자처럼 허리를 움직였다. 흉악한 양물이 뱃속을 긁으며 들어올 때마다, 제갈유는 칼에 찔리는 것 마냥 전신이 짜릿하게 떨렸다.

"아하아악!"

덥썩. 제갈유는 자신도 모르게 청년의 허리를 다리로 휘감았다. 기껏 되찾은 이성은 쾌락에 물든 짐승과 점점 동화되기 시작했고, 제갈유는 스스로 남자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이건 춘약 때문이야.'

결코 남자가 자신의 성욕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춘약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그걸 해결하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을 내린 것이다.

"더, 더 세게...."

미약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쾌락을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며, 더 큰 쾌락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빠른 해독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그녀는 판단했다.

"...실례하겠소."

청년은 제갈유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힘차게, 허리를 앞으로 찔렀다.

"!!!"

제갈유의 등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아래에서 차오르는 감각에 시야는 하얗게 물들고, 전신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감각이 혼재되기 시작했다.

퍽퍽퍽퍽!

그리고 제갈유의 몸안에 있는 독을 빼내기라도 하려는 건지, 청년은 거칠게 제갈유의 안에 양물을 찔러넣었다. 행동과 마음은 상냥하지만 육체는 흉악하기 그지 없는 봉술의 연격에 제갈유는 달뜬 숨을 터뜨렸다.

"아, 아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조, 좋아요...!!"

최소한 자신의 처음을 이 남자와 할 수 있어서. 한낱 도적 따위에게 붙잡혀 일방적으로 범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하러 온 정의로운 자가 자신을 위해 애써주는 성교(性交)를 할 수 있어서.

"아, 아항, 하아앙!!"

푸슈우우웃.

제갈유는 비명과 함께 조수를 터뜨렸다. 간신히 되찾은 의식은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미약 덕분에 몸은 쾌락에 중독되어 있었고, 쾌감이 터질 때마다 그녀의 의식은 깎여나갔다.

뷰르르릇.

그저, 뱃속에 들어오는 뜨거운 감각을 만끽하며 제갈유는 의식을 잃었다.

"유야...!!"

의식을 잃기 전, 걱정어린 누군가의 목소리에 제갈유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역시,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음을.

* * *

푹, 퍼억.

제갈소소는 산적들의 검을 이용해 땅에 널브러진 산적들의 양물에 칼을 박아넣었다.

"읍, 으읍!!"

사지가 점혈되고 입에 재갈이 묶인 산적들은 자신이 쓰던 낡은 검에 양물이 잘려나갔다. 쌍방울까지 함께 잘려버렸다.

"퉷."

비릿한 피가 산적들의 아래를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고, 제갈소소는 직접 거세해버린 산적을 향해 침을 뱉고 주변을 살폈다.

"아아악!! 아악!!"

제갈 세가의 여인 한 명은 비명을 지르며 단검을 죽은 시체에 푹푹 쑤셔박고 있었다. 어떤 여인은 벽에 달라붙어 울기만 할 뿐이었다.

방계의 여식들과 곁을 지키는 여종들 모두 도적들에게 당했다. 이들은 제갈 세가의 여인들을 범하기 위해 여인들을 습격했고, 이제 여인들에게 역으로 당해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청랑채는 궤멸했다.

그리고 청랑채 궤멸에 큰 공헌을 한, 제갈 세가의 방계 여인들을 구한 청년은 고요히 잠든 여인의 위에 자신의 외투를 덮어 나신을 가렸다.

"......선배님."

"괜찮습니다, 소협. 그대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니에요."

제갈소소는 청년, 천무명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아무리 춘약에 중독되어 있다고 한들, 원치 않는 성교를 강요하게 되어 제가 미안할 따름이에요."

"아닙니다. 저는 따님을...."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제 딸은 저 간악한 색마에게 고통만 느끼며 괴로워했을 거예요."

제갈소소는 깊게 잠든 제갈유에게 다가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했다. 땀에 절은 머리칼 아래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온해보였다.

"소협께서 상냥하게 제 딸을 품어준 덕분에, 이 아이는 고통 없이 춘약 중독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소협."

"...아닙니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천무명은 복잡한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절정 이상의 고수는 동굴에 아직 남아있는 미약한 악의를 읽어냈고, 제갈소소도 악의를 분명히 읽었다.

"......."

조무래기 산적 두 셋에게 윤간을 당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제갈유를 향해 복잡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산적 두목 두열랑이 만약 자신을 선택했다면. 아주 천천히 음미하듯 희롱하는 바람에, 천무명이 도착할 시간까지 몸은 이곳저곳 만져졌어도 최소한 남근에 범해지지 않았더라면.

제갈유만 아니었으면, 자신은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정신 차리거라!!"

제갈소소의 호통이 동굴에 메아리쳤다.

"이미 이 동굴에 잡혀온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이다! 누가 구원을 받았고, 누가 피해를 받았는가 구분하지 말아다오. 우리는 모두 녹림의 색마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이니."

"하지만...이모님은-"

"나 또한, 도적들에 의해 강간당했다!"

제갈소소의 말에 모든 여인들은 표정이 굳었다. 제갈소소는 간신히 여며놓은 치마 앞섶을 펼쳐 자신의 고간을 보였다.

"웁...!"

그곳은 동굴 안의 여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어올라 있었다. 심지어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허벅지 근처에는 하얀 무언가가 흘러내리다 말라붙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는 산동의 분가에 구원을 요청하러 갔다. 하지만 도적들에게 추적을 당해 그만 당하고 말았지. ...소협께서 나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아...."

제갈소소는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빨리 오려고 노력했다. 원래는 산동까지 가야했어. 그런데...천 소협을 만나 지금이라도 이렇게 구할 수 있었단다. ...이것이 천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흐, 흐흑...!!"

여인들은 모두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따지고 보면, 제갈유도 결국 남자에게 범해졌다. 처녀를 잃은 건 마찬가지였다. 죄가 있다면 자신들을 납치한 녹림의 무리다.

"......본인은 말주변이 없소. 하지만, 이것 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소."

쿵.

천무명은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수직에 가깝게 숙였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죽는 날까지 무덤에 가지고 가겠소. 그리고 여러분을 구한 자로서, 끝까지 책임을 지겠소."

천무명은 바닥에 꽂아넣었던 검을 뽑았다. 그는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산동, 제갈 세가의 분가까지 내가 호위하겠소. ...그러니 마음을 다잡고 탈출합시다. 이곳을 떠나 제갈 세가로 돌아간다음...."

천무명의 검에 푸른 검기가 맺혔다.

"제갈 세가, 아니 온 무림이 나서서 이 황산에 숨어있는 도적들을 모조리 추살하도록 합시다."

탓.

천무명은 동굴 밖으로 달려나갔다. 제갈소소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소협...."

"어, 머니...?"

"유아야!!"

제갈소소는 다시 의식을 되찾은 제갈유를 향해 달려갔다. 제갈소소의 말 덕분인지, 여종 둘은 옷을 정돈하여 제갈유를 부축하고 있었다.

"저 분은...?"

"...천 소협이라고 한단다."

제갈소소는 확신에 가득찬 미소로 제갈유의 볼을 쓰다듬었다.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주신 분이지...!"

* * *

"딸보다 어떻게 엄마가 더 맛있지? 아니다. 내가 요즘 중년미부에 맛들린 건가?"

"네, 네놈! 도대체 뭐냐?!"

청년, 천무명은 비릿하게 웃으며 검을 들었다.

"지나가던 색마."

뎅겅.

[작품후기]

상상도 못한 정체 ㄴㅇ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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