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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가도래
나는 지금까지 팽유월의 전력을 본 적이 없다.
술에 취한 추소광이 팽유월과 닮은 기녀를 품겠다고 난리를 피울 때 도를 든 걸 본 적은 있어도, 그 뒤로 진심으로 도를 휘두르는 걸 볼 일은 특별히 없었다.
나는 팽유월의 경지를 눈으로 훑는 것 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참마도라는 좋은 비교 대상이 있었기에, 나는 팽유월의 힘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처럼 처음 구경한 팽유월의 전력에 나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강하고, 빠르다. 사공희가 태극혜검으로 펼치는 네 개의 이기어검을 일격에 무너뜨리며 길을 열어젖힌다.
“하아아압!!”
단순한 중검이나 쾌검과 다른 점이 있다면, 팽유월의 도는 무겁다. 가슴의 무게가 도의 무게와 비례하는 것도 아닌데, 팽유월은 자신의 몸집보다 더 길고 거대한 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사공희를 향해 진격해나갔다.
카앙, 카앙 카앙!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무거운 일격에 어검술이 순간 풀릴 정도로 참격은 강렬했다. 자신의 팔뚝만큼 긴 손잡이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몸 전체를 빙글 돌리며 휘두르는 도술은 그야말로 패도(覇刀)였다.
“으음...정말 강하군...!”
현타 도사는 팽유월의 일격 하나하나에 주먹을 불끈쥐며 감탄했다. 팽유월의 도는 초절정 고수조차 끓어오르게 만드는 강인함과 열기를 지니고 있었다.
콰과광!!
땅에 움푹 참격의 흔적을 남기며 휘두르는 대도의 폭풍 앞에 하늘을 날아드는 네 검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용봉지회에 나왔다면...정말 크게 이름을 떨쳤을 것 같습니다. 가주님.”
마치 신화 속 거인을 상대하는 네 명의 검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현타 도사는 팽유월의 실력을 인정했다.
“태극화도 역시 백도제일화답군.”
하지만 사정후의 칭찬에도 팽도황은 그저 쓰게 웃기만 했다.
카가강!!
대도가 땅과 함께 흙먼지를 일으킬 때마다 검은 튕겨나갔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떻게든 팽유월의 돌격을 막아세우려는 검기는 태풍을 맞이한 버드나무처럼 흔들렸다.
“태극화와 괜히 비무를 한 건가? 그 사이에 팽가의 도를 상대하는 법을 깨우쳤구려. ...정말 무공의 천재가 아닌가!”
하지만 버드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지언정, 꺾이지는 않는다. 네 개의 검은 팽유월의 참격을 하나하나 흘려내며 튕겨나갔으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다음 참격에 정확히 맞대응했다.
“하아압!”
팽유월은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허공에서 몸을 빙글 돌리며, 대도를 한 바퀴 크게 휘둘렀다.
콰---앙!
대도가 비무장을 때렸다. 강렬한 진동과 함께 흙먼지가 비산하며 어검들을 덮쳤다.
“!!”
몸을 크게 움직이며 공격한 것이 무색하게 공격은 사공희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팽유월의 참격은 바닥을 때리며 수많은 파편을 만들어냈고, 순간적으로 어검들이 움직이기 어려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하앗-!”
팽유월은 자신이 일으킨 흙먼지를 뚫고 앞으로 달렸다. 흙먼지에서 어검 셋이 급히 날아와 팽유월의 뒤를 쫓았다.
먼지의 너머에는 무방비 상태의 사공희가 가만히 서있었다. 팽유월은 사공희를 향해 크게 발을 디디며 대도를 휘두르려고 했다.
카---앙!
하지만 언제 돌아온 건지, 사공희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잡혀있었다. 묵빛으로 반짝이는 검은 팽유월의 대도와 부딪혀도 이 하나 빠지지 않고 검을 막아냈다.
“크윽...!”
사공희는 팽유월의 참격을 받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팽유월도 뒤에서 날아오는 검을 피하느라 도를 회수하며 몸을 빙글 돌렸다.
“이 정도로!”
사공희는 한 손에 또다른 검을 움켜쥐었다. 어검술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검은 마치 사공희를 수호하는 용과 봉황이 적을 쫓듯 움직이며 팽유월을 덮쳤다.
카앙, 카앙!
팽유월은 사공희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도를 휘두를 때마다 사공희는 검을 하나로 모아 막아냈고, 팽유월은 태극혜검의 방어를 뚫어내기 위해 더 강한 힘을 모아 대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팽유월이 사공희를 중심으로 한 바퀴를 다 돌아간 시점.
“일도(一刀).”
팽유월은 원으로 돌던 원심력을 이용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단봉(斷峰)!”
산을 위아래로 둘로 가를 듯한 일격이었다. 전신을 내던지듯 도를 휘둘러, 마치 사공희의 몸을 일도양단 할 것만 같은 기세였다.
이대로 일격이 닿는 다면 팽유월의 승리. 하지만 사공희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태극매화(太極梅花).”
사공희는 손에 쥔 쌍검을 수직으로 놓았다. 그리고 허공에 튕겨나간 두 검이 꽃처럼 흩날리며 아래로 나부꼈다.
“산(散)!”
손에 쥔 쌍검에 어검이 맞닿았다. 네 개의 검은 정(井) 자를 그리듯 겹쳐졌고, 팽유월의 도가 닿는 곳을 정확히 받아냈다.
카-----앙!!
도기와 검기가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부딪혔다. 사방에 흙먼지가 일고, 두 여인은 가만히 서서 서로를 노려봤다.
“.......”
“.......”
팽유월의 도는 사보검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사공희도 팽유월의 강대한 힘 앞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나야만 했다.
“강하시네요, 사공 소저.”
서로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팽유월은 먼저 사공희에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질 수 없답니다. 어머니로서, 그분의 여인으로서.”
“.......”
사공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당신은....”
“언젠가.”
팽유월은 한쪽 눈을 가볍게 찡긋였다.
“용봉지회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때는 달라져있을 거예요.”
팽유월은 대도를 회수하며 뒤로 물러났다.
“다음에는, 반드시 뚫어보겠어요.”
“...네, 저도 다음에는.”
사공희는 그녀 답지 않게, 강한 어조로 당당히 입을 열었다.
“결코, 밀리지 않을 거예요.”
"네. ...우리, 그런데 제법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서로에게 없는 걸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검과 도를 맞대며, 둘은 서로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비밀은, 지킬게요."
"......."
사공희의 말에 팽유월은 표정이 굳었다. 흠칫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외야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사공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정실인지는, 그곳에서 정하도록하죠."
"......용봉지회."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로 손을 내밀며 악수를 나눴다.
"편하게 쉬다가세요, 팽유월 님."
"잘 부탁드립니다, 사공희 님."
꽈아악.
두 여인은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비무를 끝냈다.
* * *
약 사흘간의 휴가 이후.
드디어 팽가는 하북으로 떠나기로 했다. 나는 아붕으로서 그들을 맞이한 다음, 원래의 모습으로서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누구냐.”
팽도황은 나를 알면서도 내게 정해진 말을 내뱉었다. 나는 삿갓을 들어올리며 나를 바라보는 내 아내와 딸에게 당당히 말했다.
“아빠.”
“빠아-”
“월아야, 여긴 안 돼.”
월아는 흙길을 아장아장 기어서 내게 오려고 했고, 나는 한 걸음에 거리를 좁혀 월아를 안아들었다.
“유월, 잠깐 가주님과 이야기를 하게 해줄 수 있소?”
“어머, 제가 아니고요?”
팽유월은 팽도황에게 투기를 부렸다. 내가 자신이 아닌 팽도황을 찾는 것에 불만스러워했고, 팽도황은 헛기침을 하며 무안해했다.
“그대와는 하북에서 회포를 풉시다. 내 도착하는 시기에 맞춰 하북으로 올라가리다.”
“그럼...알겠어요. 월아야, 아버지랑 할아버지가 잠깐 이야기 나누신다고 하셔. 우리 잠깐 꽃 따러 갈까?”
“꼬옻?”
팽유월은 월아를 안고 잠시 자리를 피했다. 나는 그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정식으로 다시 허리를 숙였다.
“유월이를 딸로 맞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주님.”
“아니, 왜 갑자기 존대?”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제 장인어른이 될 분인데, 제가 어찌 예의없게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팽유월과 월아를 지켜줄 남자라면, 나는 얼마든지 존대를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 부르던 대로 부르기를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래주시게.”
“...예?”
예상 외의 답변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팽도황과 내가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만큼, 유교 사상에 입각하여 응당 존대를 하는 쪽이 더 예의에 바르지 않겠는가?
“자네가 나를 상대로 극진히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게. 보이는 모습이 어디 그리 나이차가 많이 나게 보이는가?”
“...허.”
그러나 아무리 장유유서라고 한들, 적어도 대외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젊어보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는 이길 수 없었다.
“팽 형이라고 부르시게. 자네도 괜히 입에 기름칠하지 말고, 원래대로 말 해.”
“...그럼 앞으로 그렇게 부르겠소, 팽 형.”
“흐흐흐, 이거 참. 젊은 친구에게 형 소리 듣는게 기분 나쁠 줄 알았는데, 반로환동하고 나니까 딱 맞게 보이는 구만.”
강호에 나가면 실력의 3할은 숨기라고 했다. 하지만 팽도황은 나이를 뭉텅 숨겨 정체를 숨겼다.
“글쎄 말이야, 방계 아이들이 나를 보고 ‘네 놈은 누구냐!’고 할 때 참으로 짜릿하더군. 내가 골골거리고 있을 때는 뒷방 늙은이만도 못한 취급을 하던 자들이, 내가 이 모습으로 가니 얼굴 붉히면서 추파를 던지더군. 껄껄껄!”
“그것이오, 팽 형. 내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 이유가.”
“...그대도 정체를 숨겼다가 드러내는 게 취미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따로 있소이다.”
나는 팽유월을 맞이하기 위한 천무명의 강호행을 알렸다. 팽도황은 나의 계획을 듣고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결국에는 그냥 그대가 다 따먹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닌가?”
“부정하지는 않겠소. 허나 다를 것이오.”
나는 당당했다.
“색마들을 격살하여 그들에게서 여인을 구출하는 것은 천무명이라는 협객이 될 것이고, 죽은 색마들을 대신하여 몰래 여인을 범하는 자는 비천색마일 뿐이지.”
범해지는 여인이 어찌 내 양물의 형태와 핏줄을 기억하고 내가 나인지 알겠는가? 팽유월 같은 경우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천행에서 나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소. 그건 남해를 다녀오면서 확고해졌지.”
“무엇인가?”
“과일이라는게 괜히 제철 과일이 맛있는 게 아니라는 걸.”
“...푸하하하!!”
역시 남자다. 팽도황은 내 말을 듣고 바로 이해하고 말았다.
“이 친구, 젊은 아가씨들만 노리는 줄 알았더니! 허허, 이러다 나와 연적이 되는 게 아닐까 몰라? 어쩐지 유월이를 다른 곳으로 보낸다싶더니!”
“유월이도 알고 있소. 단지 월아에게 들려주기 거북한 이야기라서 그렇소.”
“......그건 그렇군. 그래서 내게 묻고 싶은 것이 뭔가?”
“맛집.”
나는 팽도황에게 물었다.
“동년배 중에, 혹시 음식 솜씨가 뛰어난 여인이 혹시 있소?”
“...많고 많은 여인 중에, 역시 중년미부만큼 좋은 여인이 없지. 허나! 나는 백도에 몸을 담고 있는 몸. 여인을 범하려는 색마에게는 협조할 수 없네.”
팽도황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곧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죽거렸다.
“하지만 금수만도 못한 자를 몇몇 알고 있다네. 그들 중에는 마음을 다잡고 개과천선하려는 자도 있지만, 과거의 악행이 어디 사라지는 건 아니지.”
“말이 통해서 다행이오.”
“일단은 하북에 여인들을 고문하고 피를 보던 자가-”
“팽신혜는 최소한 수 십 년을 반성하고 속죄해야 할 것이오. 그녀를 범하라고 하는 건 나보고 유월이랑 같이 팽신혜를 데려가라는 거 아닌가?”
“......뭐, 은인에게 딸을 내어주는 건 강호에서 예삿일 아닌가.”
팽도황이 나를 좋게 봐주는 건 기쁘지만, 그렇다고 팽신혜까지 들이는 건 부담스럽다.
“신혜가 20년 동안 정조를 지켜 중년미부가 된다면, 그 때는 데려갈 것인가? 이미 그대가 점 찍어놓고 갔으니, 신혜 혼삿길은 이제 그대 뿐이야.”
팽도황읜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나는 그대가 팽가의 사위가 되는 길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네.”
“...미안하지만 팽유월은 천가장 가주의 처가 될 것이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난 뒤의 일은…. 그 때가서 생각 좀 해봅시다.”
중년미부.
나는 마검비를 보았다.
나는 뢰마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해남에서 혈규령을 보았다.
“중년미부라는 자들이 말이오…. 대부분은 처녀가 아니라 남이 이미 건드린 자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역천. 순리를 뒤집는다.
“...반대로 얘기하면, 이미 강호의 다른 이가 맛본 소문난 맛집이라는 것 아니겠소?”
“그래서 이번에는 중년미부만 건드리시겠다?”
“그건 아니오. 나는 깨달았소이다.”
나는 하늘과 땅, 전체를 가리켰다.
“여자란, 나이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설령 중년미부라고 한들...내가 반로환동 시켜버리면 그만 아니겠소!"
진, 색마각성.
"흠...그렇군. 마침 생각나는 곳이 하나 있지."
팽도황은 동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롱포의 기원을 알고 계시오?"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작품후기]
마검비를 통해 중년미부의 맛을 알아버린
색마는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