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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가도래
천하제일인을 논한다면, 백날동안 밤을 지새울 것이다.
하지만 천하제일인 후보 셋을 논한다면, 열날동안 밤을 지새울 것이다.
이게 단순히 천하제일의 검사나 천하제일의 권사를 논하는 거라면 이야기는 쉽겠으나, 그 분야에 따라 한 세월이 지나도 결론을 내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리고 수많은 천하제일 중에서도 강호에서 일 년이 지나도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던 난제가 하나 있었다.
"천하제일젖은 누구인가?"
이것은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혈강시로서 혈교주의 곁을 지키며 들은 이야기다.
"천하제일의 미녀는 나, 혈소예."
혈교주는 당당히 자신을 중원 최고의 미녀라고 선포했다.
여기서 중원이라 함은 무림을 일컫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하늘과 땅 가운데 인간들이 사는 세상 전체를 의미했다.
그런 의미에서, 혈소예는 스스로를 세계 최고 미녀라고 자부했다. 실제로도 그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혈소예의 알몸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고, 혈소예도 내 앞에서 속옷 차림은 예사고 알몸으로 있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 혈소예도 감히 인정하는 여인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 셋."
혈교주는 세 명의 용모파기를 두고 울분을 토했다. 셋은 전부 백도의 인물이었다. 셋 모두 중단전이 남들보다 몇 배는 컸다.
"먼저 곤륜파의 장문인!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감히 나에 견줄만큼 미녀라고 하더라."
혈교주는 곤륜파의 장문인을 자신과 동격으로 여겼다. 천하제일미녀로 유명하던 그녀를 상대로, 혈소예는 수많은 비교우위를 정했을 때 하나에서 밀렸다.
중단전.
"곤륜파 장문인은 내가 인정한다. 내 패배야."
천하제일젖은 곤륜파 장문인의 차지였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건 인정해야겠네. 응, 당신 가슴이 최고야. 이 혈소예가 인정하는 역사제일젖."
그러나 이미 사망하여 존재하지 않는 곤륜파 장문인을 어찌 천하제일로 논할 수 있을까! 우리는 천하제일을 논할 때 죽은 자를 함께 논하지 않는다.
그래서 혈소예는 이미 하늘나라로 올라간 곤륜파 장문인을 천하제일이 아닌 역사제일젖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그럼 현재 살아있는 자들을 논해야하는데."
혈소예는 두 명의 용모파기가 적힌, 그리고 옆에서 그대로 모사해놓은 듯한 그림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태극검후 사공희. 참마도 팽유월."
그녀는 피를 튕겨 내공을 일으켰다. 붉은 피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핏방울은 넓게 부풀어 인간의 흉상이 되었다.
"어우야. 막상막하네."
사공희와 팽유월, 두 여인의 흉상은 우열을 논할 수 없을 만큼 비등비등했다.
"둘다 참젖이고, 형태도 예쁘고, 꼭지 크기랑 형태도...."
혈소예는 두 가슴을 비교할수록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우울한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두 여인의 아래에 내려놓았다.
"...쳇, 가슴은 내가 3등인가."
혈소예는 혈강시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누가 더 예뻐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죽은 자가 대답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혈소예는 그저 나라는 시체에게 자문자답하며 해답을 찾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 정신은 살아있기에, 그녀에게 내 생각을 그대로 답했다.
"......내 여자의 가슴? 그것 참 현명한 대답이네요."
혈소예는 싱긋 웃으며 두 흉상을 주물럭거렸다. 두 개의 흉부는 물방울 터지듯 안개가 되어 흩어졌고, 혈소예는 두 가슴을 터뜨린 자신의 가슴을 아래에서 받쳐들며 웃었다.
"그럼 이 가슴이 천하제일젖이 되려면, 어느쪽부터 범하러 가면 좋을까요? 왼쪽 가슴? 오른쪽 가슴?"
...무당파와 하북팽가, 둘 중 어디를 습격하러 갈 지에 대한 결정은 천하제일젖이 누구인가를 두고 결정되었다.
그게, 미래의 일이었다.
그리고 혈소예가 구천현녀에게 살해당하기 전까지, 내가 구천현녀에게 살해당하기 전까지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역사제일젖에 곤륜파 장문인이 있으며,
천하제일젖을 두고 사공희와 팽유월이 서로 자웅을 겨루며,
그 아래에 혈소예가 있다더라.
그게 내가 아는 미래였다.
그리고, 이제 무당파에서 두 여인이 자웅을 겨룰 때가 되었느니.
누구의 젖이 더 예쁜가?!
드디어, 직접 만져서 비교할 날이 오고야말았다.
젠장.
* * *
나는 사공희의 제안에 따라, 아붕으로서 무당파에 입성하기로 마음먹었다.
피할 수는 없다. 그녀가 이곳에 오기로 한 이상, 나는 팽유월이 왜 굳이 이곳에 와야 했는지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팽가의 손님들과 만나는 자리에 당당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만나서 반갑소, 태극화! 본인은 하북 팽가의 가주, 팽도황이오.”
“악참도 선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는 팽가의 두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에 앉았다. 사공희가 앞에 앉고, 나는 그 제자라는 명목으로 옆에 앉았다.
“.......”
팽도황도, 팽유월도 둘 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팽유월이야 아붕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팽도황이 나를 알아챌 리가-
[유월이가 이리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남자가 천하에 둘이 있겠는가?]
젠장. 팽도황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혔다. 역체변용술은 알고 있어도 아붕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를텐데, 그걸 팽유월의 시선과 분위기로 내 정체를 파악해냈다.
[걱정마시게. 그대를 난처하게 만들 일은 없을 것이야. 유월의 연심을 거두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잠깐의 모면을 위해 팽유월에게 나를 경멸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인간의 사랑이란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태극화에 이어 아붕 소협까지. 현타 도사, 무당의 장래는 참으로 밝구려.”
“여러모로 등선하신 선배님들께서 많은 안배를 해주셨지요."
사정후는 팽도황과 맞은 편에 앉아있었으나 좌불안석이었다. 그는 명백히 사공희와 나, 그리고 팽유월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탁자 아래 허벅지를 움켜쥔 그의 손짓에서 나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 설마 애 딸린 유부녀까지 건드리는 건 아니겠지? 설마 무당파의 본거지에서 사고를 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천하제일도를 뚫고 애까지 옆에 있는데 남편을 잃은 미망인을 건드리는 건 아니겠지???
...그런 눈빛을, 내게 경고와 함께 보내고 있었다. 제발 지금만큼은 자중하라는 의미의 눈빛이었다.
“자장, 자장.”
팽유월은 자신의 품에 월아를 안고 우리의 대화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월아가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도 조용히 자고 있는 덕분에, 우리는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참으로 특이한 아이로군요. 제 사제의 아이는 밤에도 칭얼대어 몇 날 밤을 지새우게 하던데.”
“하하, 월아가 조금 배려심이 깊습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아이는 아니지요.”
“후훗....”
팽유월은 나지막하게 웃기만 했다. 일부러 고개를 들지 않고 월아에게 집중하면서 무언가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렇다.
팽유월은 지금 사공희에게 은근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사공희는 가지지 못한 나의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모습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 사공희는-
“와...."
사공희는 팽유월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팽유월의 품에 안긴 월아를 부러운 눈치로 쳐다볼 뿐이었다.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과도 같은 월아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월아에 대해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부럽...네요."
사랑을 받는 아이를 보고 있어서 그런 걸까? 사공희는 월아를 보며 부러움을 참지 못했다.
“.......”
다만 사공희는 월아가 내 자식이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 아는 순간 사랑스러움과 부러움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투기를 부리는 건 예사가 될 것이며....
- 팽유월의 딸이 월아니까, 제게는 희아를 주세요!
...사공희는 즉시 다음 생리가 오지 않을 때까지 나를 착정하리라. 나는 팽도황, 팽유월, 사정후, 사공희 네 사람의 제각기 다른 시선 속에서 불편한 자리를 참지 못했다.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된다면 팽유월이 품에서 곤히 잠든 월아, 나의 딸.
‘진짜 많이 컸네.’
요 며칠 보러가지 못한 사이에 정말 많이 성장했다. 자식에 대해 예쁘다고 하는 건 으레 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월아는 팽유월을 닮아서 그런지 성장한 미래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예뻤다.
'커가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해 미안하구나.'
나중에 자라서 천가장에서 맞이하거나 최소 그에 준하는 순간이 된다면, 지금까지 주지 못한 사랑을 몇 배로 주리라.
‘그래도 여기서 아빠찾지 말아다오.’
역설적으로 내가 지금 가장 걱정하는 건 팽유월도 팽도황도 아니다. 바로 월아다. 사랑스럽기 그지 없지만, 월아가 가진 파괴력은 벽력탄보다 더 강하다.
- 아, 빠-!
월아가 나를 상대로 아빠라고 안기는 순간, 변명할 여지도 없이 나는 과거를 난도질당하게 되어있다.
'팽유월의 아이가 내게 아빠라고 불렀다. 이게 단서가 되면 바로 추소표국에 관한 실마리를 전부 풀어버리겠지.'
천하에서 가장 머리 잘 쓰기로 소문난 미래천마와 파천신검이 있는데, 설마 월아의 부친이 추소광이 아니라 추대광이었다는 진실에 도달하지 못할까? 절대 아니다.
- 그러니까 가가가 추소광을 죽이고 역체변용술로 팽유월을 품고 임신시키고 떠났다 이거죠?
- 흐응. 밖에는 딴살림 차려놓고 우리도 임신시켜달라고 할까봐 숨기고 있었네? 우리 색마님의 사랑은 공평해야 하니까, 우리도 애 낳아야겠지? 그렇지?
‘어쩌면 지금도 눈치챘을 지도. 아니야. 월아가 내 자식인 건 모를 거야.’
...그래도 내가 팽유월을 건드렸다는 정도는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팽유월의 자식이 내 자식이라는 것 까지는 모를 것이다.
‘미치겠네.’
변수가 너무 많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도와주시오.]
나는 전음으로 구원을 요청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사공 소저. 괜찮다면 이 팽 모가 태극혜검과 한 번 칼을 맞대어봐도 되겠소?”
“예?”
까마득히 강한 선배가 후배에게 먼저 비무를 요청한다.
좋게 생각해도 후배에게 가르침을 준다기 보다는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자신의 강함을 뽐내고 싶어하는 모습이 강했으나, 팽도황은 내 도움 요청에 시원하게 응했다.
“내가 죽기 직전의 병에 걸렸을 때 든 생각이 있소. 천하의 여러 무공을 직접 마주하지 않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마침 무당파에 태극혜검이 돌아와 그 세가 나날이 발전해나가니, 어찌 내가 비무를 요청하지 않을 수 있겠소?”
자신의 체면을 깎으면서까지 나를 도우려한다. 나는 그를 위해 다음에 좋은 영약을 보내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가주님께서는….”
“무공의 수위는 우리 신경쓰지 맙시다. 그저 태극혜검을 견식할 수 있게 해주시오.”
“...그럼 이 후배가 선배님께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팽도황의 요청에 사공희는 가슴 만큼 넓은 배려심으로 팽도황의 면을 세웠다. 팽도황은 싱긋 웃으며-나를 향해-자리에서 일어났다.
"현타 도사, 심판을 봐주게."
"물론입니다. 선배님. 악참도의 오호단문도를 견문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리한 요구가 가능한 이유는 하나.
팽도황이 천하제일도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팽도황 또한 상당히 강한 무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반로환동을 거치며 그의 오호단문도는 더욱 강력해졌다.
"팽가의 새로운 시작을 제 눈으로 보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타 도사도 무림인은 무림인이었다. 특히 현기 도사와 같은 길을 걸을 뻔 했다는 요소 때문인지, 현타 도사는 팽도황의 부활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면 아붕은-"
"제가 돌보도록 할게요."
빠르다. 팽유월의 선수에 사공희는 입조차 열지 못했다.
"저도 옆에서 아버님의 무공을 구경하고 싶지만, 찬바람을 쐬었다가 괜히 어떻게 될까봐 걱정이 되네요.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아붕 소협께 도움을 요청하겠어요."
"......."
팽가와 무당파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생겼다. 팽가는 아붕을 팽유월의 곁에 두기를 원하고, 무당파는 아붕을 함께 밖으로 데려가기를 원한다.
"허허. 그렇지. 태극화의 제자라고 했소? 우리 유월이를 잘 부탁하오."
"가주, 그…."
"장로님."
사공희는 사정후를 막아세우며, 나에 대한 신뢰가 담긴 눈빛을 보냈다.
"아붕, 팽유월 님을 잘 모셔야 합니다."
"제자, 스승의 말씀을 성실히 따르겠습니다."
사공희는 긴가민가하면서 나를 팽유월에게 맡겼다. 하필이면 팽가에서 호위무사들에게 저잣거리에 나가 휴식을 즐길 시간을 줬기에, 따로 팽유월의 옆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제자님. ...믿어도 되죠?"
"예, 물론입니다."
사공희는 나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현타 도사와 팽도황과 함께 비무장으로 떠났다.
그리하여, 응접실에는 팽유월과 나, 그리고 월아만 남게되었다. 나는 무슨 말부터 할까 고민이 깊었다.
"......월아야."
팽유월은 월아를 보채듯 깨우며, 월아의 시선을 내게 닿게 안아들었다.
"알아보겠니?"
"......."
나를 한참동안 쳐다보던 월아는 인상을 잠시 찌푸리다가.
"아, 빠?"
"......."
이 모습을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팽유월에 대한 불만은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다.
"죄송해요. 실은...."
팽유월은 난처한 미소로 월아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나를 향해 손을 휘젓는 월아를 안아들었다.
"요 며칠, 계속 아빠를 찾느라 목놓아 울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월아는 나를 신기한 것 바라보듯 손으로 내 볼을 잡아뜯었다. 그리고 찰흙을 빚듯 주물럭거리다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상공."
팽유월은 나를 보며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저랑 처음 만났을 때, 그 때랑 똑같은 모습이시네요."
"...그래, 안휘에서 만났을 때."
간이 침상에 앉은 팽유월은 내게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나는 내 배 위에 월아를 안고 팽유월의 허벅지에 머리를 뉘였다.
"후훗, 아가."
팽유월은 가슴을 아래로 누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맘마 먹을 시간이에요...?"
"......."
[작품후기]
아들 하나 더 키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