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30화 (23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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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파 습격 사건

“내 배에 여자는 안 태우는데.”

바다에서 배를 모는 중년 사내, 흑삼은 눈앞의 두 남녀를 훑으며 그들의 부탁을 거절했다.

“예? 어째서입니까?”

서생 차림의 청년은 몹시 난감한 얼굴로 품에 손을 넣었다. 짤랑거리는 돈소리가 흑삼이 침을 삼키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돈에 양심을 팔 수 없었다.

둘은 부부인 듯 했다. 남자의 등에 짊어진 봇짐은 이사를 하는 것마냥 한가득이었고, 여인도 손에 작은 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여인의 배는 볼록했다.

“그대들이 가자고 하는 곳이 벽라도가 맞소?”

“예. 은공께서는 벽라도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아니되오. 벽라도로 가는 배에 여자를 태울 수 없소.”

“그러니까 그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값은 충분히 치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청년은 몹시 답답해했다. 답답한 건 흑삼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배에 여자를 태우지 못하는 건 그들이 가야할 곳이 벽라도라는 점이 문제였다.

벽라도에 여자가 들어가봐야 좋은 꼴을 보지 못할테니.

“여보, 그만해요.”

여인은 청년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청년을 말렸다. 미형의 여인이 배가 부른 것을 보아, 청년과 여인이 제법 열심히 노력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들었다.

그래서 흑삼은 여인을 태울 수 없었다. 여인의 정조를 위해서라도,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는 벽라도로 가는 배에 여인을 태울 수 없었다.

“여인을 태우면 배에 부정타거든. 그래서 안 돼.”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자를 태우면 배가 풍랑에 좌초되기 십상이고, 어딘가 금방 망가져.”

“그런 건 미신입니다!”

“미신? 불만있으면 딴 사람 배 찾아보시오. 나는 안 돼. 절대로.”

흑삼은 미신을 운운하며 강짜를 부렸다. 청년은 억울한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허어…. 어찌 이런 일이.”

“걱정마세요.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면서 연통을 해보도록 해요. 우정대 대협께서 어떻게 해주실 거예요.”

“잠깐. 우정대?”

흑삼은 두 젊은 부부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괜히 긴장했다.

“두 분은 어찌 그 이름을 아시오?”

“아...실은.”

청년은 손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

그들은 안휘에서 살고 있던 약재상 부부인데, 산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도망치던 와중에 한 남자를 만났다더라. 그는 이미 습격을 당해 생사가 오락가락하던 중이었고, 마침 청년에게는 좋은 약재가 있었다.

“우정대 대협을 치료한 저희는 그 분께 구명지은을 입었습니다. 산적으로부터 저리를 지켜주시어….”

상처를 치료받아 목숨을 건진 남자는 산적들을 도륙한 뒤 우정대라는 이름을 밝혔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거든 벽라도를 찾아 우정대를 찾으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정대 대협을 찾아왔습니다. 가사를 전부 정리하고 내려왔습니다.”

“혹시 우정대 대협을 아십니까?”

“허허, 알다마다.”

흑삼은 우쭐하며 으스대기 시작했다.

“내 사형이오.”

“네? 사형...이요?"

"그렇소. 우정대 사형은 우리 협곡문(俠谷門)의 사람이지. 본명은 아니고, 우리끼리 부르는 이름일세. 나는...그래. 내 별호는 고독상(孤獨上)이라고 하는 자요."

"무림인께서 어찌 이런 뱃일을...."

두 부부의 표정은 가히 좋지 않아졌다. 그들의 불안감에 흑삼은 쓰게 웃으며 배를 가리켰다.

"무림인도 먹고 살아야지. 타시오. 내 벽라도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리다. 우리 협곡문은 은혜를 잊지 않소."

"감사합니다, 대협."

흑삼은 사람좋은 미소로 노를 저었다.

* * *

해남파!

과거에는 구파일방의 하나로 남해 일대를 호령하던 문파는 10여년 전 모종의 이유로 무림맹에서 나오게 된다.

중원 무림은 여전히 해남파의 귀환을 원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해남파는 무림맹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백도 무림이 모든 방문을 거절했다.

비어버린 구파일방의 자리를 두고 형산파 등 여러 문파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도전하였고, 해남파는 완전히 구파일방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해남파의 세력은 셋으로 나뉘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둘로 갈라졌다가, 하나의 세력이 다시 둘로 갈라졌다.

먼저 혈교에 가담한 혈해남파.

장문인 자리를 차지한 화경의 고수 혈규령을 중심으로 혈교의 무공을 받아들이고 혈교주에 충성을 다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수는 많지 않으나 혈교의 무공 덕분에 대부분의 무사들이 일류 고수일 정도로 질적으로 우수하다.

특히 절정 고수의 수가 많고, 혈해남파의 장문인 혈규령은 화경의 고수로 강력한 검술을 자랑했다.

그녀에게 별호는 없다.

해남파의 평범한 제자였던 그녀는 혈교주의 눈에 들어 비약적인 무공 상승을 보였다. 원래부터 재능이 하기도 했지만, 혈교주의 은혜에 보답해야한다는 일념이 그녀를 화경의 고수로 만들었다.

그래서 혈해남파는 해남파를 완전히 점거했다.

혈교에 반대하는 무리를 모조리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무리들은 각각 금사도와 벽라도라는 두 곳의 섬에 들어가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원로가 많고 나이든 이들이 많이 피신한 금사도.

젊은 제자들과 거친 성정의 이들이 많이 피신한 벽라도.

이 둘은 둘다 혈교로부터 해남파를 되찾기 위해 해적이 되었으나, 둘은 여기서 그만 길이 갈리고 말았다.

금사도의 해남파, 해남금사파는 섬과 섬을 다니며 살아남기 위해 배에 올랐다.

하지만 벽라도의 해남파, 해남벽라파는 진정한 의미의 해적이 되었다.

여기에는 해남파라는 문파의 특징이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해남파는 해남에 있는 문파들을 아우르는 총 연합체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다.

좌수검을 중심으로 한 해남삼십육검을 사용하는 무사들이 해남파의 본류이자 주류인 동시에, 사파의 성향을 지닌 다양한 무사들이 해남파라는 이름에 함께 발을 담구고 있었다.

해남파의 본파는 금사도로 떠났다.

그러나 기존의 해남파에서 주류가 아니었던 이들은 벽라도로 향했다. 그래서 현재 세 개로 나뉜 해남파의 성격을 각각 구분하자면,

해남금사파는 정파.

해남벽라파는 사파.

그리고 혈해남파는 그냥 혈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중 해남금사파와 해남벽라파를 습격하여, 후방을 교란하는 역할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선택을 내려야했다.

금사파와 벽라파, 어디를 습격해야 할 것인가?

답은 정해져있다. 이미 나는 그 답을 위한 질문을 혈규령에게 했다.

“어느 쪽의 섬이 더 여자가 많소?”

기준은, 채음보양.

우리는 여자 무인들이 더 많다고 하는 벽라도에 입섬했다.

* * *

빠악.

우리는 벽라도에 도착하자마자 흑삼의 뒷통수를 쳤다. 놈은 우리의 기습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배에 고개를 처박고 고꾸라졌다.

"역시 전달받은대로. 벽라도의 사람이라고 소개를 받아야 입섬할 수 있네."

"나만 섬에 들이려고 한 건 섬에서 노예로 삼으려고 한 게 틀림없군."

그냥 벽라도에 오려고 하는 자는 노예가 될 것이다. 흑삼은 그나마 양심이 있다고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배려했기에, 나만 어떻게 해보려고 한 것이다.

"죽이지 않는 거로 봐주는 건 어때?"

"적당히 다리만 분질러서 며칠 걷지 못하게 만들지."

나는 가볍게 흑삼의 다리를 뒤틀었다. 내가 하지 않았으면 아마 흑삼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해남벽라.

이곳은 해남금사파와 달리, 완벽한 사파의 영역이다. 녹림과 하등 다를 게 없는 해적의 무리가 모여있는 곳이다.

한 마디로, 이곳은 해적섬이다.

"혈규령의 말을 기억하시오? 해남벽라도의 만행을."

"인신매매는 기본이다?"

"그렇소. 관에서조차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고 있으니, 이제 이 놈들은 무림인이 아니라 그냥 해적놈들이지."

관에서 어떻게 해적들을 방치할 수 있냐 싶지만, 이들이 해적질을 일삼는 자들은 중원의 사람들이 아니다.

안남을 비롯하여 이곳 해남보다 더 남쪽의 사람들을 잡아다가 인신매매를 한다. 중원인이 아니니 해남성에서도 딱히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다.

- 해남성주는 공식적으로는 누구의 편도 아니에요. 다만 혈교주께서 그의 딸을 구해준 일이 있어, 해남성주는 그것 때문에 누구의 편도 아닌 중립이 되기로 했어요.

혈규령의 말에 따르면, 해남성주는 관무불가침을 적극 주장한다고 하더라.

혈교가 잔혹한 일을 저지르면 곧장 개입할 것이며, 해남금사파가 전쟁을 일으키면 예의주시할 것이며, 해남벽라파가 관에 피해를 입히면 해군을 동원할 것이다.

본래라면 혈교를 사이비라는 명목으로 다스려야 할 해남성주는 해남파의 상황을 '내분'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곳 벽라도에 대한 행정을 포기했고, 이곳 벽라도는 철저히 무림의 논리에 입각하여 움직이게 되어있다.

"즉, 이 해적놈들을 상대로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지르든 관아에서도 뭐라고 하지 못할테지."

"후후, 그러면 아주 날뛰어봐야겠네?"

우리가 이곳 벽라도를 먼저 고른 이유는 여자가 많다는 것도 중요했지만, 상대적으로 더 약한 놈들이 많다는 것이 주요했다.

기껏해야 절정.

즉, 내가 아니라 이시아 선에서 정리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시아. 그럼 환복합시다."

"좋아. 잠깐만 기다려봐."

툭.

이시아는 자신의 배를 아래로 쓱 밀었다. 그러자 안에 넣어둔 흑의가 빠져나왔다.

월녀복은 혈규령에게 맡겨두었고, 이번에 우리가 입을 옷은 살수들이나 입을 진짜 흑의였다. 눈 부분만 밖으로 꺼내 우리의 모든 것을 가리는 복장이었다.

스륵.

우리는 작은 항구 인근에 있는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잽싸게 환복을 한 뒤, 우리가 입고 온 옷은 중려신화정으로 태워버렸다.

"시아. 이곳에 있는 사람의 수가 대략 2천명 정도가 된다 하더군."

"그래? 생각보다 많이 살고 있네."

"그리고 그 중 1500명이 노예라고 하지. 500명의 무림인이 이곳에서 착취를 하는 것이오."

"......흐응, 그러라고 배운 무공이 아닐텐데."

이시아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검은 가죽장갑은 당장이라도 피를 볼 것처럼 기세가 흉흉했다.

"그러니 갑시다. 내가 아까 했던 말 기억하시오?"

"물론이지. 어...그러니까...."

혈교주는 말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하라?"

"그렇소."

우리는 이 섬의 남자를 모두 때려잡고, 여자들을 채음할 것이다.

* * *

쿵!

벽라도의 노예, 염삼은 자신을 향해 내려찍히는 채찍에 피를 토했다.

"...커헉."

"일어서! 지금 뭐하자는 거야!"

채찍을 휘두르는 여인은 가학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빛부터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의지까지, 염삼을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었다.

"...외지인 주제에."

하지만 염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는 오기 때문일까? 염삼은 악을 쓰며 소리질렀다.

"너희가 우리 섬을 멋대로 빼앗았잖아!"

"흥, 이 놈 말하는 거 봐라?"

퍼억.

염삼은 배를 얻어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림인의 진심이 담긴 정권에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이 그를 엄습했고, 염삼은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누가 들으면 우리가 멋대로 섬에 들어와서 빼앗은 줄 알겠어."

"이, 개같은 패배자들이...."

"너 오늘 진짜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그래...죽여라!"

염삼은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여인은 자신의 발치에 닿은 피에 표정이 굳었다.

"오늘 진짜 날 잡아야겠네. 다들 주목! 감히 우리 해남파에 도전하는 건방진 놈의 말로를 똑똑히 보도록 해!"

여인은 염삼의 몸을 점혈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십자로 된 형틀을 중앙에 가져왔다.

"오늘 매질로 사람이 죽는 거, 보여줄테니까! 약한 놈들은 그냥 강자에게 순순히 따르면 되는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빠----악.

갑자기 어둠속에서 나타난 흑의인이 여인의 뒷통수를 후렸다. 염삼은 갑자기 나타는 흑의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너, 나보다 약하네요. 그럼 순순히 따라야죠?"

퍽, 퍽퍽.

흑의인은 여인을 순식간에 점혈시켰다. 시야가 몽롱해졌던 여인은 순식간에 자신이 형틀에 묶인 것을 눈치채고 비명을 질렀다.

"아악! 습-"

여인은 목까지 점혈을 당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흑의인은 염삼을 비롯한 다른 노예들을 훑었다.

"...지금부터 좋은 구경하게 될 건데, 다들 조용히 있을 수 있죠?"

또다른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지 안에 손을 집어넣고 무언가를 꺼낸 다음, 형틀에 구속된 여인의 하반신 앞에 '물건'을 들이밀었다.

"...어?"

설마. 염삼은 눈앞의 광경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우욱---!!

남자 흑의인은 여인의 바지를 찢어버린 뒤, 양물을 냅다 찔러버렸다.

[작품후기]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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