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29화 (22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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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파 습격 사건

오랜만에 혈강시처럼 행동하여, 우리는 금사해남파의 추격을 피해 본 섬에 도착했다.

섬이라고 말은 하지만 여느 현에 준할 정도로 넓은 크기였다. 그리고 우리는 제법 편하게-아니 실은 조금 과도한 환대를 받으며 해남파에 입성했다.

“저희는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마교 소공녀 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혈! 세! 혈! 세!””

우리는 혈교 무사-전직 해남파 제자들이 직접 들어올린 꽃가마를 타고 해남파에 들어갔다. 무려 여덟 명이 아래에서 직접 들어올린 가마는 여느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이 와도 이 정도 사치는 누리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절정 고수를 가마꾼으로 쓰는 게 어디있어요?”

이시아는 파격의 연속에 처음 도시를 보는 아이처럼 연신 놀랐다.

“절정 고수이기에 가마가 흔들리지 않고 손님을 모실 수 있지요.”

만약 내가 혈교의 사람이었다면 내가 바로 답을했겠지만, 눈앞에는 다행히 혈교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마교 소공녀와 은인께서 방문하시는데, 절정 고수 여덟이 가마꾼이 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귀인을 모시는 데.”

“...흠흠.”

이시아는 우리를 띄워주는 혈규령의 말에 순순히 꽃가마를 받아들였다. 실제로 우리는 공중에 떠서 가는 것처럼 편안했다.

“이 가마는 그 분을 모시기 위한 의전용 가마입니다. 교주께서 당신과 당신의 아내를 자신에 준할 정도로 극진히 모시라고 하셨으니, 여러분은 교주님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실 겁니다.”

“...비천, 당신 도대체 뭘 한 거예요?”

“광마가 내게 이런 대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개고생?”

혈교주는 내게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그의 호의와 배려를 만끽했으나, 이시아는 마교보다도 더한 극진한 대접에 조금 어색해했다.

“혈교...정말 무서운 곳입니다.”

“저희는 그저 은혜를 갚고자 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혈교에 몸을 담군 사람은 저 혼자 뿐이고, 여기 제자들은 그 분께서 베푸신 은혜를 갚고자 할 뿐이지요.”

혈규령은 명백히 선을 그었다.

“본 문의 제자들은 해남을 지킬 것입니다. 천하를 혈겁에 물들이거나 하는데 편승하지 않을 겁니다. 그 분의 곁에서 직접 돕는 건 저 하나 뿐입니다.”

“정마대전에 준하는 난세가 오더라도 해남파의 무사들은 참가하지 않을 것이다?”

“예. 개인 단위의 참가일 뿐이지요. 그 때는 저도 해남파의 장문인이 아니라, 그 분을 신봉하는 한 명의 여인일 뿐이랍니다.”

혈교가 득세하여 천하를 도모하려고 해도 해남파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혈규령 개인은 이미 성을 ‘혈’로 바꾼 것처럼, 혈선녀라는 개인으로서 소임을 다할 것이다.

“전직 해남파 장문인이 혈교에 투신했다고 하면 다들 해남파가 혈교의 세력이라고 의심할텐데요?”

“의심해도 상관없습니다. 해남파의 무사들이 직접 대륙에 상륙하여 중원을 도모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며, 굳이 해남파의 무사들까지 나설 필요는 없지요.”

혈규령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그 분 한 사람만 있어도 중원 모두가 혈교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 분은 천하제일이니까요.”

“.......”

이시아는 뭔가 할 말이 많아보였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이시아 본인도 광마와 1장 안의 거리까지 만나 술잔을 부딪힌 만큼, 광마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무림맹주, 천마, 곤륜파 장문인, 혈교주. 혈규령 그대는 이 중 가장 강한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연히 혈교주이십니다.”

혈규령은 광마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누가 더 강하냐고 묻는 건 의미가 없었다.

“이시아, 그대 생각은 어떠하시오.”

“...지금은 천마지. 당연히.”

이시아와 혈규령의 눈에 불이 붙었다. 둘 다 확신에 가득찬 눈빛으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온몸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달라질 거야.”

“호오? 그 말은 무슨 의미십니까?”

“내 남자가 천하제일인이 될 거고, 나는 천하제일의 여인으로 천하제일인의 반려가 될 거라 이 말씀.”

이시아는 고개를 들어올리며 당당히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리는 천하제일부부가 될 거예요. 내가 천마가 될 거고, 이 남자가 천하제일색마가 될 겁니다.”

“.......”

이시아의 기습에 혈규령은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다소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말에도 불구하고 이시아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당했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건 미염신공으로 간신히 가린 정수리밖에 없다. 그녀는 가만히 평상에 누워 천마과육시식을 할 때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장문인.”

나는 포권을 취했다.

“지금은 나도 내 아내도 그들에 비해 약하지만, 연배로 따지면 우리는 아직 후기지수에 준하는 정도의 나이요. 둘 다 다음 용봉지회에 참가할 나이대라 이 말이지.”

“.......”

혈규령은 사색이 되었다. 우리가 생각보다 상당히 어리다는 것과 연배에 걸맞지 않은 성취에 깜짝 놀란 것이다.

“강산이 한 번 바뀌면 천하 오대고수의 반열도 바뀔 것이오. 내 아래의 순위가 싹다 내 아내들로 가득 채워질 거거든.”

“아내‘들’이라는 건 넘어갈게요. 아래를 다 채울 거라는 말은 당신이 천하제일이라는 건가요?”

“물론. 천마도, 무림맹주도, 광마도, 심지어 곤륜의 장문인마저도. 내가 목숨을 걸고 전력을 사용한다면 막지 못할 것이외다.”

어디까지나 목숨을 내던진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지만,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내가 현 단계에서 천하제일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그대도 명심하시오. 만약 그대가 내 아내를 이용해 혈교의 야망을 달성하려고 한다면, 내 그대를 범할 것이오. 설령 그대가 혈교주의 여인이라고 할지라도.”

내 선전포고에 가마는 뚝 멈췄다. 아래에서 당장이라도 칼을 찌를 것만 같은 살기가 진득하게 올라왔다.

“나를, 자극하지 마시오.”

나는 가만히 잠재워놓았던 내공을 끌어올렸다. 나의 시야가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혈규령과 가마꾼 고수들이 점점 긴장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두근, 두근.

그들의 맥박이 점점 거칠어지는게 느껴졌다. 나는 내기를 해제한 다음, 땀에 젖었지만 내 손을 놓지않은 이시아의 손등을 당겨 입을 맞췄다.

“걱정하지마시오, 시아. 나는 그대의 비천색마이니.”

“......재수없어.”

혈규령은 궁시렁거리며 손뼉을 쳤다. 다시 가마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서로 건설적인 관계를 맺도록 하죠. 당신은 그 분의 방침과 다르게 교인들 중 일부가 폭주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듯 한데...걱정마세요. 혈교에서 교주님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믿도록 하지.”

“...그리고 하나 더. 저는 그 분의 여인이 아닙니다.”

혈규령의 자조 섞인 말에 나와 이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오?”

“제가 그 분을 일방적으로 연심으로 모실 뿐, 그 분은 제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저를 받아주신 적이 없습니다.”

“......?”

“그 분의 마음속에 이미 제가 들어갈 자리는 없으니까요.”

혈규령은 울 것만 같은 처량한 눈빛으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분의 속에는 이미 한 사람으로 가득차서, 저 따위가 감히 발을 디딜 틈도 없답니다.”

어째서.

왜 내가 이시아의 눈초리를 강하게 받아야 하는 걸까.

‘역시 혈교.’

말 한 마디로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집단이란 말인가!

* * *

“보름달인가.”

광마는 빈 술 잔 하나를 집어들어 달을 반쯤 가렸다. 기울어진 술잔에 의해 아래부터 가리자, 달은 웃는 듯한 모습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곳은 편하시오?”

광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술병에 든 술을 확인했다. 단 한 잔 남을 정도의 양이 남자, 그는 자신의 잔에 마지막 술을 채웠다.

“소예가 중원으로 떠났소. 제 운명의 짝을 찾으러 간 게지.”

광마는 피식 웃었다.

“평생을 외장형 남근으로 삼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생과 미래까지 얽히려고 하오. 이건 나를 닮은 건지, 그대를 닮은 건지 모르겠구려.”

휘이잉.

차가운 밤바람이 광마의 얼굴을 스쳤다.

“미래를 보았소. 내가 실패하여 미쳐버리고, 세상을 내 손으로 직접 피로 물들이는 미래를. 그대의 염원을 내가 직접 저지른 끝에, 나를 잃고 미쳐 날뛰더이다. 천마 그 놈, 머리카락만 하늘에 닿은 줄 알았더니 진짜로 천기를 읽는 듯 하더구려. 나보고 괜히 광마라고 이름을 붙인 게 아니더군. 흐흐.”

광마는 홀로 자문자답하며 웃고 웃었다. 미친 사람처럼 실소하며 술만 홀짝였다.

“하지만 어찌 내가 포기할 수 있겠소.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오? 내 모든 것을 가져가놓고, 내게는 소예만 남겨주고 덜컥 떠나버리다니.”

광마는 술잔을 하늘을 향해 올렸다.

“만약 그 자를 내게 보낸 것이 당신의 안배라고 한들, 이제 그대를 포기하라는 신호라고 한들….”

야심한 밤.

“한 번만. 단 한 번만 그대를 다시 만나고 싶소이다.”

그가 술을 부을 때마다 한 번도 비워지지 않은 술잔에는 달이 가득 차있기만 했다.

* * *

우리는 불쌍한 여자, 아니 혈규령의 안내에 따라 해남파에서 휴식을 취했다.

단 한 시진!

아아, 비천! 더, 더 세게!

사랑하오, 시아! 그아아앗!

멀리 바다가 보이는 경관을 보며 혈규령에게 다 들리게 끔 우리의 사랑을 과시한 뒤, 눈이 한층 퀭해진 혈규령의 앞에 나섰다.

“금사도와 벽라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시오.”

우리는 한층 더 매끈해진 피부와 안정화된 내공으로 혈규령의 앞에 섰다. 이시아는 내 정기를 받아 몸에 양기가 돌았고, 나 또한 이시아의 음기를 받아 몸의 열을 식혀 내기가 안정화되었다.

“.......”

혈규령은 한참동안 우리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문파에서는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말라니. 비천, 당신은 뭔지 아십니까?”

“과도한 애정행각을 삼가하라는 문구는 어디를 가도 존재하는 법이지.”

“과도...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객실에서 그렇게 대놓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혈규령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 당신도 광마한테 가서 한 번 해달라고 하시든가요. 아, 저런….”

이시아는 나와 팔짱을 끼며 우월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네요.”

“......마교 소공녀만 아니면 비무로 죽이는 건데.”

혈규령은 입맛을 다시며 칼을 갈았다. 하지만 내가 바로 옆에서 내 여인을 지키고 있는 만큼, 그녀는 감히 우리를 어떻게 해 볼 생각을 못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녀를 돕기 위해 온 해결사로, 광마가 직접 해남파에 파견한 도우미 아닌가!

“농담이오. 그대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인이니, 언젠가 꼭 성공하는 날이 올 것이오.”

어느 정도로 매력적이냐 하면, 내가 한 번 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그녀의 불쌍한 상황에 차마 그녀를 범할 수 없었다.

‘나중에 혈교주 가버리면 몰라.’

평생동안 짝사랑을 하던 남자가 죽고 난 뒤,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위안의 음양합일.

그 때가 되면 혈규령이 아닌 천규령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혈교주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냥 생각만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혹시 모르지. 혈교주가 월녀 강림을 포기하고 현실을 선택할 지도.’

월녀가 아닌 눈앞의 혈녀를 선택하는 미래를 위해, 나는 혈규령을 기억에만 담아두고 떠날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광마가 그대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게 도와주겠소. 우리의 방식대로.”

“해남파의 잔당을 전부 쓸어버리면 광마도 해남에 들어와서 살 지도 모르는 거 아니겠어요?”

“병을 주고 약을 주는 건 무슨 심보입니까?”

혈규령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우리의 앞에 해남의 지도를 펼쳤다.

“금사도는 이곳, 벽라도는 이곳에 있습니다.”

“지도에 섬이 없는데?”

“그러니 은거지로 적절하지요.”

지도에 없는 섬. 해적질을 하기에 정말 좋은 여건이었다.

"이걸 받으시지요."

혈규령은 우리에게 단환이 든 상자 하나를 내어놓았다. 나와 이시아는 너무나도 큰 가치를 가진 물건에 깜짝 놀랐다.

"이것은...?"

"남해 영물, 별주부의 내단입니다. 이걸 먹으면 최소 30년 공력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이 귀한 것을...."

이시아는 상자를 받으며 볼을 부풀렸다.

"먹고 했으면 내공 보충하고 갔을텐데."

"그러게나 말이오. 흠, 모처럼 단환을 주셨으니 내공을 더 채우고 가는 건 어떻소?"

"그럴까? 장문인, 저희 객실 한 시진만 더 쓸게요."

"......해남파가 연인들 머물다 가는 객잔입니까?"

그저, 바다가 보이는 객실의 난간을 붙잡고 허리를 꺾는 이시아의 뒤를 품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작품후기]

3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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