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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색마-228화 (22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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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파 습격 사건

혈비룡포에 의한 견제는 가히 상식을 벗어나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새삼 혈교가 중원 무림을 지배한 배경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비상식.

기존의 틀을 깨는 공격.

상대가 예상을 하고 대처하려고 해도 그걸 무시해버리는 기이한 공격.

"잘 보시오, 시아. 지난 역사의 모든 정마대전이 그러하듯, 대부분 무림인들의 전투는 기껏해야 비무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오."

아무리 난전이라고 해도 흑백 무림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힘을 초식으로 활용하며 상대를 제압하기 일쑤다.

"그래서 지금 해적들은 우리와 직접 칼을 맞대기 위해 배를 붙이려고 하고 있지. 하지만 보시다시피, 혈교는...."

그리고 혈교는 기존의 상식을 타파하는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무림인들을 '사용'했다.

"우오오오!!"

검집에 검을 찔러넣으며, 안에 흘린 피가 찌르는 힘에 의해 검집 밖으로 쏘아진다. 피는 검기처럼 어우러져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바다를 가로지른 검기는 화살이 되었다.

"무림인들을 일반병사 수준으로 사용하는 게 혈교의 방식이오."

틀을 깨고, 상대의 상식을 무너뜨려 기습을 한다.

'정확히는 혈교주가 체제를 그렇게 바꿨지만.'

혈교주의 방식이 그랬다. 혈교주에게 무림인들은 '조금 튼실한 힘있는 병사들'에 불과했고, 하나의 검법을 갖춘 문파는 제식을 갖춘 군대 집단으로 여겼다.

"우오오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광경도 참 뭐라고 말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배의 좌우현에 서서 검집과도 같은 곳에 검을 수도 없이 찌르는 혈교의 무사들은 전부 근간이 해남파의 검사들이었다.

왼손으로 내지른 검의 끝에는 자신의 피로 한 때 동료였던 이들을 죽이려고 살검을 찌르는 것이다.

'10년 정도 치고박고 했으면 과거에 인연이 있었어도 지금은 원수나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선후배였을 지 모르는 금사도의 해남파 무인들에게 검기를 뿌렸다. 그냥 출수하는 것이 아니라, 검기를 화살처럼 쏘며 날렸다.

"어찌보면 뢰마보다 지독하고 효율적으로 싸우는 이들이오."

"...이 사람들 상대하려고 했다가는 그냥 전쟁을 치뤄야겠는데?"

"그렇지."

그래서 독고연은 독고구검을 버리고 파천신검의 길을 선택했다. 상대인 혈교가 틀을 먼저 깨버리니, 백도 무림의 하늘을 부숴버리고 함께 진창에서 구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가령, 경신법이 뛰어난 이들이 야밤에 몰래 방화를 저지르고 다닌다거나.

가령, 독공에 뛰어난 이들이 식수원에 독을 뿌린다거나.

가령, 진법을 구축하고 기다리고 있는 백도의 무사들을 상대로 혈비룡포같은 방식으로 원거리에서 포격을 일삼는다거나.

"상대하기 몹시 껄끄러운 자들이지. 그러나 적응하면 익숙해지오. 보시오, 저들도 지금 금방 대처하지않소?"

금사도의 해남파는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 않았다. 배를 향해 날아오는 핏빛 검기를 향해 검막을 펼치고 검을 휘두르며 검기를 튕겨냈다.

"저들도 이제 상대하느라 도가 튼 거지."

눈 먼 검기에 의해 배의 전면부에 박혀 깎여나가는 것 까지는 대처할 수 없었으나, 가만히 검기를 얻어맞기만 하면 언젠가는 침몰되지 않을까 싶었다.

"슬슬 오는군."

쏴아아---

배들은 천천히 우리를 향해 뱃머리를 틀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배는 앞을 가로막는 해적 무리를 빙 둘러 돌아가야 했기에, 방향을 조금만 꺾으면 되는 저들을 상대로 금방 따라잡히게 되었다.

"어느정도 거리가 가까워지면 분명 남화노검이 달려들겠지. 내 말이 틀렸소?"

"맞아요. 배와 배 사이에 공간만 적당하면, 배를 박차고 뛰어오를 자예요."

혈규령은 질린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를 가장 빠르게 뒤쫓는 배의 앞에는 벌써부터 자리에서 뛰려고 안달이 난 노인네가 하나 있었다.

"저기서 여기까지 뛰려고 하면 곤란해지겠군."

나는 미리 준비한 갓을 눌러쓰며 기를 끌어올렸다. 그가 행여나 적당한 거리가 되었다 싶은 순간, 바로 배를 박차고 뛰어나가 놈을 요격할 것이다.

나야 허공답보와 수상비를 이용해 다시 배로 뛰어오르면 그만이지만, 놈이 그걸 할 수 없다면 바다에 처박혀 고꾸라지게 되어있다.

"내가 대처하면 되겠소?"

"아니오. 저 자는 제가 처리할 겁니다. 제 어머니를 죽인 자예요. 그러니 제 복수를 빼앗아가지 말아주세요."

혈규령은 단호히 선을 그었다. 친지가 살해당한 은원이 있다면 우리도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대처하지 않으면 금방 여기서 싸우게 될텐데?"

다만 주변은 망망대해였고, 육지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져 여기서 좌초되면 헤엄을 쳐야만 했다. 나야 이시아를 안고 허공답보로 도망가버리면 되지만, 그러면 광마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게 분명했다.

"그럼 어찌하겠소?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없는데."

"...혹시나 남화노검이 미쳐 날뛰면, 그 때 한 번 요격해주세요. 우리는 저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습니다."

혈규령은 자신만만하게 미소지었다.

"모두, 포격을 중지! 이제 전속력으로 해남으로 귀환한다! 각자 위치로!"

"혈세!"

"혈혈세!"

검기를 뿌리던 무사들이 검을 내려놓고 모두 아래로 내려갔다. 혈규령은 내게 눈짓을 보냈고, 나는 이시아를 데리고 아래로 따라갔다.

둥, 둥둥, 둥둥.

"전력으로 노를 젓는다! 알겠나!"

"""예, 대사형!"""

아래에는 근육이 우락부락한 청년이 검 두 개를 검집째로 들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잠시 살피고는 시원한 미소로 소리를 질렀다.

"마교의 손님들께 혈교의 힘을 보여주자! 모두 노, 들어!!"

"""노, 들어!!"""

무사들은 배에 달린 노를 움켜쥐었다. 남녀가 혼재되어 각자의 위치를 잡고, 그들은 근육질 청년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에 혈, 둘에 세! 간다----!"

"""혈! 세! 혈! 세!"""

그곳은, 광기와 열기가 뒤섞인 혼돈의 도가니였다.

"혈! 혈! 세!"

"""혈! 혈! 세!"""

검집으로 북을 두드리며 박을 맞추는 청년, 그리고 그의 신호와 뱃노래에 맞춰 노를 젓는 무사들은 검기를 쏘는 궁병에서 숙달된 뱃사공이 되어 노를 저었다.

"......이게 뭐야?"

이시아는 넋이 나가버렸다.

아아, 광기.

혈강시인 나조차도 질리게 만들었던 이 광기여.

나는 왠지 모를 그리움과 익숙함이 들었다. 괜히 코가 간지러워 손등으로 코를 슥 눌렀다.

"역시 이래야 혈교지."

"""혈! 세! 혈! 세!"""

...놀랍게도, 우리가 탄 배는 이전보다 세 배는 더 빠르게 바다를 가로질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장문인!! 놈들이 도망칩니다!!"

"큭, 젠장!"

남화노검은 바다 아래에서 붉은 기운을 뿌리며 빨라지는 배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 망할 놈들...! 무인으로서 자존심이 있지, 어찌 절정 고수라는 놈들이 검을 내팽겨치고 노를 저을 수 있단 말인가!"

남화노검은 금방 기이할 정도로 빨라진 배의 정체를 파악해냈다.

혈비룡포가 멈춘 즉시, 적은 노를 잡고 젓기 시작한 것이다. 내공으로 체력을 강화하며 젓는 노질에 배는 아주 빠르게 선회하며 금사해남파의 배들을 빗겨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배를 돌려! 선회하여 놈들의 앞길을 막는다!!"

"예!"

무사들은 급히 배를 돌리기 시작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듯, 그들은 10년 넘게 배를 운용하며 어느덧 그럴싸한 뱃사람이 되었다.

"큭...! 안 됩니다, 장문인! 적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다만 혈교의 광기를 쫓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상식을 벗어난 속도는 바다 위에서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듯한 속도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날아가겠다! 조금만 더 거리를 좁혀봐!"

그리고 그 순간.

구구구구---!!

혈교의 배는, 상식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남화노검은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나 눈을 껌뻑였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검을 그만 놓칠 뻔 했다.

"사...람...?"

첨벙첨벙첨벙!!

거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배의 뒤.

강력한 물줄기 아래, 붉은 무언가가 물살과 함께 배를 '밀고' 있었다.

* * *

혈강시는 병기다.

혈교주가 혈교주의 딸, 혈소예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생체병기다. 모든 무공을 피에 저장하여 총망라하는 것도 의도가 있지만, 혈강시의 지상과제는 혈소예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혈교주가 죽은 뒤, 혈소예가 혈교주의 자리를 물려받으며 혈강시는 혈소예의 수호무사가 되었다.

하지만 마냥 혈소예의 곁을 지키지는 않았다.

- 호부 아래 견자 없다.

혈교주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혈소예는 혈교주보다 더 지독하게 기존의 틀을 파괴했다. 광마가 전략과 전술로서 무림인들의 피를 말리게 만들었다면, 혈소예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틀을 부숴버렸다.

- 압도적인 힘!

상식을 파괴한다.

자연의 섭리를 무너뜨린다.

중원 무림이 '사술'이라고 주장할 것들을 적극활용한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내공과 무공의 힘으로 해결한다.

혈강시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구천현녀를 이기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였다. 그야말로 기적을 일으키는 신기(神技)의 보유자였다.

그러므로, 나 또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우오오오!!"

나는 뒤에서 배를 '밀었다'.

선체가 상하지 않게 손바닥을 펼치고 내공마저 넓게 펼친 다음, 바다를 발로 차며 배를 앞으로 밀었다.

웅성웅성.

갑자기 빨라진 배의 속도에 안에서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이시아와 혈규령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해적들의 추격을 떨쳐낼 수 없다. 그러므로 노를 젓고 있는 혈교의 무사들과 합을 맞춰야 했다.

"혈!"

나는 앞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의 사자후가 안에 닿아 내 뜻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음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세!"

그 순간, 내가 바다를 차는 속도에 맞게 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러 바다를 차고 달리는 발걸음을 크게 크게 내딛어, 노를 젓고 당길 틈을 맞췄다.

혈! 세! 혈! 세!

내가 처음 운을 띄우자, 안에서 다시 구령이 들렸다. 북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우렁찬 함성에 이번에는 내가 그 속도를 맞춰 발을 굴렀다.

구구구구구!!

고래가 헤엄을 치는 모습은 다소 느려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노를 저어 나아가는 배보다는 훨씬 더 빠르다.

혈! 세! 혈! 세!

우리는 거대한 고래였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고래로서, 나는 고래의 추진력이 되어 내공을 마구잡이로 뿜어냈다.

내공을 아껴야 한다?

그럴 이유는 전혀 없다.

"돌아가는 즉시, 우리를 다른 섬으로 데려가주시오!"

내공을 채울 곳은 지금 무주공산이니까. 나는 천마신공까지 일으키며, 노를 젓는 박자에 맞춰 정확히 여덟 걸음씩 바다를 내달렸다.

"천마대팔식!!"

쏴아아----!!

파도를 가르는 우렁찬 뱃소리와 함께, 우리는 해적들의 습격을 피해 해남파의 본거지로 몸을 피했다.

* * *

"저런 게 가능하다니."

남화노검은 허탈한 심정으로 검을 검집에 넣었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괴물의 행적에 남화노검은 오한과 함께 기시감이 들었다.

그 날.

해남파를 습격한 괴물을 상대로 당당히 맞서던 그 남자.

괴물과 인간의 싸움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괴물과 인간의 탈을 쓴 또다른 괴물의 싸움이었다.

"천하에 어찌 저런 괴물이 또 있단 말인가."

자신도 현경에 이르러 제법 강해졌다고 생각했으나, 천하에 괴물은 수도 없이 많았다.

"장문인, 괜찮으십니까?"

"...아아, 괜찮다."

남화노검은 멍하니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굳은 살이 몇 번이고 터져 뒤틀린 손은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남은 흔적이었다.

괴물을 도모하기 위해 강자가 되려 했으나, 어디서 또다른 괴물이 튀어나와 훼방을 놓았다.

"이 놈들...."

남화노검은 주먹을 움켜쥐며 울분을 토해냈다.

"반드시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이다! 해남파가 진정으로 백도 무림으로 돌아가는 순간, 네놈들의 목을 잘라 효시하여 천하의 정의가 바로 섰음을 널리 알릴 것이다!"

남화노검은 수평선 너머 멀리 사라지는 배를 향해, 그리고 배를 뒤에서 밀어 도망치는 괴물을 향해 소리쳤다.

"네놈들은 무림인들이 아니다!"

분노에 찬 그의 포효는 바다 널리 퍼져나갔다.

"내 귀신이 되어서라도 네놈들에게 반드시 정의를 알려줄 것이댜----!!"

남화노검의 사자후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하염없이 잔잔했다.

[작품후기]

혈교특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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