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23화 (22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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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의 노래

“.......”

회색 삿갓을 쓴 중년인은 나무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누워있었다. 파도가 치는 백사장에서 햇빛을 만끽하며, 그는 알몸으로 아래에 허벅지까지 오는 바지만 입은 채 햇볕을 쬐고 있었다.

움찔.

그의 옆, 모래에 꽂혀있던 대나무가 움찔거렸다. 중년인은 바로 몸을 일으켜 대나무를 움켜쥐었다.

“옳지.”

중년인은 살포시 대나무의 손잡이 부분을 움켜쥐었다. 대나무 끝에는 투명한 실이 달려있었다.

“물었구나....”

중년인은 천천히 대나무를 당겼다 놓았다. 일 각이 넘는 시간 동안 대나무를 당기고 놓기를 반복했고, 대나무의 움직임은 어느새 파랑과 물아일체가 되었다.

그리고 실이 팽팽하게 당겨진 순간.

“흐으읍!!”

중년인은 대나무를 뒤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파아아악----!!

거대한 물결과 함께 수면에서 무언가가 튀어올랐다. 표면이 매끈하고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어린아이만한 크기의 팔초어(八梢魚)가 튀어나왔다.

푸슈우웃!!

백사장을 나뒹군 팔초어는 중년인을 향해 검은 체액을 뿜어냈다. 중년인은 삿갓으로 먹물을 튕겨낸 뒤, 작은 소도로 손가락을 긋고 팔초어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푸슉.

중년인의 손에서 튕겨진 선혈이 팔초어의 몸을 관통했다. 비침보다도 작은 핏방울에 꿰뚫린 팔초어는 잠시 경련하다가 축 늘어졌다.

“월척이로구나.”

중년인은 실실거리며 팔초어를 들고 백사장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평상 위에 팔초어를 올렸다. 그리고 몇 번이고 물을 뿌려 모래를 털어낸 뒤, 소도를 움켜쥐었다.

푹--!

팔초어의 머리를 찌른 중년인은 익숙한 손길로 팔초어를 손질했다. 그리고 안에서 튀어나온, 아이의 머리통과 비슷한 크기의 영롱한 물건을 들어올렸다.

“오.”

팔초어의 내단이었다. 크기부터 영물을 방불케했고, 팔초어의 내단은 태양화리나 인면지주의 내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 팔초어의 내단을-

“쓰벌, 먹지도 못하는 거.”

휘릭.

중년인은 바다를 향해 집어던졌다. 뒤로 가볍게 던졌음에도 수평선에 이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멀리 날아갔고, 곧 근처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게 되었다.

“흐흐흐.”

중년인은 내단을 빼낸 팔초어의 다리를 큼지막하게 잘랐다. 그의 손에는 핏빛으로 물든 검강이 잘 벼려져 있었다.

“그래도 내단 가지고 있던 놈이라 살은 튼실하네.”

퍽, 퍽퍽!

검강으로 팔초어의 다리를 토막낸 뒤, 그는 곧장 이것 저것 섞인 가루에 살점을 묻혔다. 그리고 옆에 기름을 담은 솥 아래에 불을 붙인 뒤, 팔초어의 살점을 안에 담궜다.

지글지글지글.

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팔초어가 튀겨지기 시작했다. 중년인은 평상에 술잔 두 개와 술병을 꺼낸 뒤,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산다는 게 다 이런 거지. 흐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중년인은 튀김을 건져냈다. 그리고 피처럼 붉은 걸쭉한 장을 꺼내, 기름을 털어낸 팔초어 다리 튀김을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어흑.”

뜨거운 김에 중년인은 허-허-거리며 김을 식혔다. 그러면서도 입에서 뱉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아그작거리며 한 입 크게 삼켰다.

“.......으어, 좋다.”

중년인은 잔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주인 없는 잔에 한 번 부딪힌 뒤, 수평선 너머 붉게 빛나는 태양을 향해 들어올렸다.

“행복했던 지난 날을 위하여, 기분 좋은 오늘 하루를 위하여. 그리고....”

중년인은 한 입에 술을 털어넣었다.

“......찬란한 내일을 위하여. 건배.”

* * *

운남.

중원 역사에서 운남에 시야가 돌아간 적은 거의 없다.

애초에 운남의 위, 사천 지방도 한 나라의 경우를 제외하면 중원 역사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산세가 험하고 중원인들이 지내기에 너무나도 습한 기후 덕분에, 일부 중원인들은 운남에서 사는 이들을 ‘미개’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운남이 그나마 중원 역사에서 잠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다면, 오래 전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할 때가 아니었을까?

그만큼 운남 지방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곳이다.

그리고 잊혀진 만큼, 이걸 이용해 운남에 숨어드는 자들도 수두룩하다.

빠---악!

이시아는 나무 뒤에서 달려드는 괴한을 향해 턱에 장저를 찔렀다. 턱뼈를 부숴버리는 천마신장은 다소 과격했지만, 괴한의 복장을 보면 누구나 죽이려들 것이다.

“크, 커헉...!”

사슴의 머리를 뒤집어 쓴 괴한은 원시 밀림에서 아래쪽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 제법 건장한 피부에는 기이한 문신으로 가득했고, 이시아는 습격자의 명치에 주먹을 꽂는 것으로 습격자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으으, 진짜 싫다.”

이시아는 습격자의 명치를 때린 주먹을 털어냈다. 그녀의 손에는 이상한 기름 같은 것이 묻어있었고, 나는 중려신화정을 가볍게 튕겨 기름을 태웠다.

으아아악!!

우리 근처에서 돌아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습격자들은 이시아의 손에 붙은 불꽃을 보고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주변은 온통 나무가 가득한 숲이며, 그들은 맨 피부에 기름을 발라 신체를 보호했다. 당연히 불이 붙기 쉽고, 괜히 한 번 잘못 불이 붙으면 시신도 수습하지 못할 것이다.

“괜히 이쪽으로 내려왔나?”

“살면서 한 번 쯤은 와볼만한 곳이지. 그래도 내 덕분에 더울 일은 없지 않소?”

“그래. 이 옷이랑 빙백신공 아니었으면 지금쯤 쪄죽었을 거야.”

이시아는 월녀복의 외투를 아예 벗어버렸다. 팔다리를 훤히 드러내고 있어 중원의 늙은 이들이 보면 ‘상스럽다’고 표현할 법도 했지만, 그들도 이곳에 오면 긴 도포부터 벗을 것이다.

“여기 너무 더워!!”

운남은 더운 지방이다. 그냥 더운 것도 아니고 습한 지방이다. 나는 그녀의 머리에 열이 오르기 전에 빙백신공을 두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중원인들이 이곳에 쉬이 오지 못하는 이유가 다 그거지.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거든.”

“진짜 여기 숨어버리면 못 찼겠는데. 이런데 사람이 사는 게 말이나 돼?”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가야한다면, 대자연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그래도 우리는 무림인이라 내공의 힘 덕분에 체온을 적절히 유지할 수 있지 않소?”

“그렇긴 해도 기본적으로 너무 덥고 습하잖아. 정말 이런 곳에 그 사람이 있는 거야?”

“물론.”

모처럼 운남까지 내려온 김에, 그를 찾아볼 것이다.

“애초에 남쪽에 광마가 있다고 한건 이시아 그대가 아니오?”

“이런 곳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하하, 기껏해야 해남 정도로 생각하셨나?”

“그래도 거기는 해남파도 있잖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들었단 말이야!”

“여기도 사람 사는...흐흐, 농담이오.”

나는 이시아가 더 화를 내기 전에 말을 참았다.

이시아는 알고 있을까? 이곳 밀림(密林)을 지나면 중원 대륙만큼, 아니 그보다 넓은 바다가 나오고, 그곳에도 중원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나도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혈교주가 말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밀림만 빠져나가면 사람 사는 도시가 나올 것이오. 그곳도 조금 더울테지만, 그래도 중원 여느 중소도시만큼은 될 것이오.”

“......안남(安南)?”

“그렇지. 과거 당 대에 안남도호부라는 곳이 설치되었던 곳. 그곳에...광마가 있을 것이오.”

아마도.

“내가 너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광마는 해남에 살고 있다고 들었단 말이야. 해남파를 뒤에서 지배한다고 들었는데, 아니야?”

“맞소. 해남파를 몰락시켜 구파일방에 공동파가 들어가게 되었고, 사실상 해남파는 지금 백도에 발만 걸쳐놓은 마교의 세력이지.”

실제로는 마교가 아니라 혈교지만.

“혹시 광마를 직접 본 적이 있소?”

“...아니. 아버지께서 현역 시절에 한 번 싸웠던 자를 직접 지명하셨다고 하셨어. 그래서 마교 사람들은 광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그렇지. 스스로 광마라고 칭하는 자들은 수두룩하지만, 그들 모두 천마가 직접 지정한 광마가 아니오.”

천마는 숱한 광마 사칭범들을 내버려두었다. 혹시나 광마가 그 소리를 듣고 분개하여 천산까지 달려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는 마교의 숱한 광인들의 광기를 무시했다.

“광마(狂魔)가 왜 광마인 줄 아시오?”

“주화입마 때문에 미쳐버린 거 아니야?”

“그건 아니오. 광마의 언행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오.”

중원 무림이 감당할 수 없는 자. 중원의 상식과 사상이 받아들일 수 없는 자. 그리고 결국 스스로 중원을 떠나버린 자.

“황제도 노예도 똑같은 사람이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萬民平等).”

내 말에 이시아는 사색이 되었다. 누군가 내 말을 듣고 관아에 밀고한다면, 바로 역적모의로 잡아가 참수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었다.

“미친 소리 같지?”

“...설마?”

“그렇소. 광마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라고 하더군.”

나도 한 번 걸쳐서 들은 거지만.

“갑시다. 광마를 한 번 만나보러.”

“...나 괜히 광마 딸 얘기 꺼낸게 아닐까 몰라.”

“후후, 걱정마시오. 결코 싸우려는 게 아니니.”

나는 광마와 싸울 생각이 없다.

“광마의 딸을 보고 판단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광마의 딸을 범할 생각이 없소.”

“......너, 미쳤어?”

결국 내가 미친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 * *

캬아아악!!

바다 속.

해안가 근처에 살던 해어(海魚)들은 인근을 지배하던 포식자의 죽음에 환호했다. 하루에 수십이 넘는 생물을 잡아먹으며 덩치를 키웠던 영물은 내단을 삼키자마자 물밖으로 딸려나갔다.

여덟 개의 다리로 자신들을 붙잡아 죽이던 자가 갑자기 물밖으로 뛰쳐나갔다. 해어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 축제도 잠시.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해어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 피식자가 내단을 버렸다!

코를 찌르는 진한 피냄새와 양기는 놓칠 수 없었다. 서로 몸이 부딪혀 비늘이 망가지고 부레가 다른 놈들에게 깨물리더라도, 내단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콰득!

사람의 손보다 작은 물고기 하나가 내단을 집어삼켰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해어들은 급히 도주하기 시작했다.

키이이익!!

내단을 집어삼킨 물고기는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며 해어들의 몸을 꿰뚫었다. 화살처럼 쏘아진 괴어의 입은 가시창처럼 날카로워지기 시작했고, 주변 생물을 집어삼킬 때마다 급속도로 몸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진화하는 해어의 모습은 분명 괴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해어는 주변에 남은 모든 것들을 집어삼킨 뒤, 물밖을 주시했다.

인영이 느껴진다. 아무런 힘이 없어보이는 자가 밖에 있다. 해어는 연안을 빙빙 둘러, 힘차게 해안가를 향해 튀어올랐다.

“헐?”

인간은 무방비했다. 웃옷도 없었고, 해어를 보며 눈만 멀뚱멀둥 쳐다볼 뿐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해어는 본능적으로 인간의 급소를, 심장을 노렸다.

그리고-

“어딜 감히.”

서걱.

무언가 붉은 궤적과 함께, 해어는 시야가 두동강이 났다.

* * *

백사장에 괴어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적발의 여인은 괴어의 내장이 흘러내리는 속에 하얀 손을 집어넣으며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첨벙, 첨벙.

여인은 아무렇지 않게 내단을 바닷물에 씻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오색빛의 내단은 바닷물에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크기가 줄어들어있었다.

“내단 함부로 버리지 마십시오, 교주.”

여인은 중년인을 향해 내단을 들이밀었다. 일종의 시위였으나, 중년인은 웃으며 술만 들이켰다.

“저 교주 아닙니다. 어딜 사람을 사이비로 몰고가십니까?”

“장난치지 마십시오.”

“장난 아닌데. 쩝.”

중년인은 혀를 차며 튀김을 질겅질겅 씹었다. 여인은 핏빛 검강에 해체되고 있는 팔초어의 사체를 보며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또 이상한 걸 드십니까?”

“이상한 거라니.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좀 사람이 먹는 걸 드십시오.”

“어허? 이리오너라. 와서 한 입 먹어보거라.”

“윽...!”

중년인은 자신이 먹던 젓가락으로 튀김을 집어들었다. 여인은 인상을 팍 찡그렸으나-

“교주 명령이다.”

“교주 아니시라면서요.”

“어허.”

자기 좋을대로 명령을 내리는 중년인의 엄명에 여인은 하는 수 없이 입을 벌렸다.

“.......”

“맛있지?”

우물우물. 여인은 복잡한 얼굴로 튀김을 씹어삼켰다.

“영물도 생물이야. 특히 큰 놈들은 먹을 살점도 많아서 좋지.”

“가장 중요한 내단은 버리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걸 바다에 던져놔야 또 다른 생물이 살 뒤룩뒤룩 찌워서 돌아올 거 아냐. 새끼 물고기들 놓아주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자비가 아니다. 바다에서 더 살을 찌운 다음, 더 맛있어진 상태로 돌아오라는 의미다.”

“하아, 그런 소리를 자꾸 하시니까 미친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쉬쉬하는 거 아닙니까.”

“흐하하, 내가 언덕 위에 하얀 집 짓고 살고 있지!”

여인은 눈을 감아버렸다. 다른 건 다 좋으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내뱉는 걸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해남파 장문인께서는 무슨 일로 이 촌부를 찾으셨는가? 멀리 해남에서 여기까지 오고 말이야.”

“마교 소공녀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

중년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

“아니요. ...그 자, 팽가에 뿌리를 내리려던 저희의 손길을 잘라낸 자. 교주께서 예의주시하시라던 그 자 말입니다.”

“......호오.”

중년인은 흥미깊은 눈으로 잔을 들어올렸다.

“월녀 후보를 죄다 강간한 자가 어찌 혈교에 직접 올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대충 감은 오는구나. 규령아.”

“예, 교주.”

“아랫것들에게 알려라. 괜히 수작 부리지 말고, 혹시 붙잡힌다면 여기로 바로 데려오라고. ...흠, 일단 너부터 호칭을 바꿔야겠구나.”

중년인은 빈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너는 나를 광마(狂魔)라고 불러라.”

“예, 교주. ......광마 님.”

“.......”

[작품후기]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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