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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으로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자, 성도를 뒤덮은 어둠이 사라졌다.
사천당가를 습격한 색마들은 모두 당가의 무사들에 의해 제압되어 관졸에 의해 감옥에 이송되었다.
“으으, 살려줘…!”
“차라리 감옥에 보내줘!”
“응기익.”
습격자들은 하나같이 당가에 의해 독에 중독되거나 차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가 되었다.
물론 사천성주의 부탁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당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속으로는 진탕을 만들 독이 최소한 수 백 개 있었다.
그렇게 당가를 덮친 무사들은 모조리 정리되었다. 당가를 향해 복수를 꿈꾸던 이들은 모조리 추포되었고, 당가에 새로운 아침해가 밝았다.
“고생하셨소, 가주.”
“형님이야말로.”
당사림과 당오독은 서로의 고군분투를 칭찬하며 술잔을 나눴다.
낮부터 무슨 술을 기울이냐고 한 소리를 할 법도 하지만, 그래도 승리 후의 짜릿함과 함께 넘기는 화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당가를 범하려고 드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당가를 넘보지 못했지요.”
“그래. 흐흐, 싹다 죽여버릴 수도 있었는데 조금 아쉽긴 하군.”
“피의 복수 대신 다른 쪽으로 복수를 했으니 걱정마십시오.”
당오독은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그들은 종종 하혈하게 될 것입니다.”
“하혈? 그게 무슨 말이냐. 아녀자도 아닌데.”
“습격자들을 관아에 넘기기 직전, 서희가 개발한 독약을 전부 먹였습니다. 그들은 전부 독에 중독당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독이란 말이더냐? 나도 모르는 독이라니. 관졸들의 눈을 피해 중독시킬만한 독이 어디있단 말이냐?”
당사림은 진심으로 놀랐다. 자신의 눈을 피해, 그리고 관병들의 눈을 피해 수많은 이들에게 피의 복수를 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내장이 굳습니다. 오랜 기간 변을 보지 못하고 쌓이게 되죠. 그게 어느 순간이 되면 한꺼번에 터져나오게 되는데, 문이 찢어지면서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감옥에서 제대로 치료도 할 수 없게 되겠죠.”
“...그러니까 변비로 고생하다 똥고 터져서, 나중에는 뒷구녕에 똥독이 올라서 죽는다 그 말이냐?”
“형님.”
당오독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켰다. 다소 거친 언행은 당사림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발언이었다.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어느정도 말을 정제할 필요는 분명히 있었다.
“서희도 참 대단하군. 그런 독을 만들어내다니 말이야. 어떻게 약을 만들었다고 하더냐?”
“...그냥 단약에다가 자신의 피를 조금 섞었다고 하더군요. 선녀의 피를 먹었으니 사람이 등선하게 되는데, 그 첫 현상이 변을 보지 않도록 몸이 바뀌는 거라나 뭐라나.”
“농담이지?”
“농담일 겁니다. 아마도. 직접 물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두 남자는 화골산우진의 입구에 도착했다. 마침 진의 앞에는 당서희가 가만히 서있었다.
“...음?”
그녀의 옷차림은 상당히 흐트러져있었다. 전체적으로 피부는 상기되어있었고, 이상하리만치 옷을 꽁꽁 싸메고 있었다.
“오, 오셨습니까. 가주님, 그리고 백부님.”
억누르던 색기가 흘러넘치듯, 당서희의 목소리는 요염하게 떨렸다.
“서, 서희야? 혹시…?”
“...새벽에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하여, 다시 병이 도진듯 합니다.”
당서희는 정수리까지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두 무릎을 붙이며 오들오들 떠는 모습에 두 남자는 슬쩍 거리를 벌렸다.
“크흠, 미안하구나. 네 활약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자 온 것인데….”
“당가의, 흐읏, 일원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고개를 간신히 들어올린 당서희는 풀린 얼굴로 무언가를 참고 있었다. 마치 뒤에서 남자가 아래를 범하는 것을 참는 듯한 모습에 두 남자는 불편함과 함께 안쓰러움을 느꼈다.
“부작용을 감내하면서까지 당가를 위해 이렇게 힘을 써주다니…!”
“너무나도 고맙구나, 서희야.”
강한 힘을 사용할수록 부작용은 더 늘어난다. 하지만 당서희는 중려신화정의 힘을 사용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당가를 지키는 또다른 만천화우의 등장에 당가의 무사들은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암기술, 독공, 그리고 불을 다루는 선술까지.
“서희야. 네가 불편하겠지만, 이제는 말해다오. 단순히 불을 다루는 사술이라고 하기에는, 네가 보여준 힘이 너무나도 강했단다.”
“.......”
당서희는 고개를 풀썩 떨구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어.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너를 두고, 요괴가 사람으로 둔갑한 게 아니냐는 낭설까지 돌고 있단다.”
“서희야. 우리는 가족이잖니. 대답해주지 않겠느냐?”
“......축융.”
당서희의 말에 두 남자는 귀를 쫑긋 세웠다.
“......어, 그러니까...칠종칠금의 주인공. 그 자의 아내를 아시나요?”
“남만?”
“축융?”
“네. ...이 힘은 운남에서 찾았어요. ...이정 오라버니가 남겨주신 비밀지도에서.”
“!!!”
두 남자는 눈을 부릅 떴다. 예상은 하고 있었고,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직접 당서희에게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이정아.”
당사림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당가를 떠나서도 너는 여전히 당가를 위해…!”
“.......”
당가 남자들은 눈에서 눈물을 흘렸고, 당서희는 치마 아래 허벅지 사이로 하얗고 끈적한 무언가를 흘러내렸다.
“그, 가주님. 백부님….”
당서희는 입술을 깨물며 울 것처럼 답했다.
“저...이제 들어가도 될까요…?”
당서희는 허벅지를 비비며, 고간에서 물씬 풍겨오는 밤꽃냄새를 억제하느라 위아래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 * *
<그 시각, 서안.>
검각의 여인들은 한 자리에 모여 고민에 빠졌다.
뢰마에 의해 기절한 백도의 두 여인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가! 한 명은 백도라기보다는 사파였지만, 마교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이상 전부 백도였다.
모용란.
방영희.
마검비를 구하러 가자고 격렬히 주장했던 둘은 뢰마가 아니었으면 마검비의 명령을 어겼을 것이다.
사실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되는 위치였지만, 그래도 검각의 제자들은 마검비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둘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죽이는 건 좀 그런가?”
검각의 제자들은 모두 여인들이기는 하지만, 성향이 모두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기존에 백도에 있을 때부터 왕소현을 따르는 여인들도 있었고, 검각이 마교로 넘어오면서 마교 마인들의 여식들이 검각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검각주님의 명령을 어기려고 했던 여자들이에요. 봐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기다려봐. 그래도 색마한테 붙잡히는 게 싫어서 도망친 애들이잖아. 죽이는 건 조금 심하지 않아?”
“그럼 여자 구실을 못하게 여자로서 죽여버리든가.”
“사람이 말로 설득할 생각을 해야지, 왜 검부터 들이밀 생각을 해? 일단 깨어나면 진정시키고 물어보자. 그때도 정신 못차리면 저질러도 늦지 않아.”
그래서 간혹 의견 충돌이 잦게 일어나기도 했다. 마검비가 중간에서 잘 중재를 해주지 않았다면, 검각은 두 패로 나뉘어 내전을 일으켰을 지도 모른다.
“끄응, 여기는…?”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방영희였다. 그녀는 역체변용술을 풀고 지내는 바람에 본 모습을 모두에게 보였다.
“야, 방녀. 네 친구 좀 깨워봐.”
“......아까부터 깨어있었어.”
모용란의 말에 검각의 제자들은 흠칫 놀랐다. 칼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의 모용란은 어느새 밧줄을 잘라 구속을 풀었다.
“네년…!”
“상대의 정체는 몰라도, 상대의 무공 수위가 어느 수준인지는 알아야지.”
모용란은 본격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주변에 진득하게 퍼져나가는 내공에 검각의 제자들은 하나 둘 입술을 깨물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스승님과 싸울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강호에 나오면 실력의 3할은 숨겨야지. 기본 중의 기본 아니야? 방,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흥. 금방 일어날 생각이었어.”
우둑, 우두둑.
방영희는 줄을 손아귀 힘으로 잡아당겨 끊어버렸다. 검각의 제자들은 척보기에도 절정 중반,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두 백도 고수의 힘에 인상을 찡그렸다.
“우리를...기만했어!”
“기만이라기보다는 검각주께서 너희들을 시험하신 거지. 우리의 경지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해보라는.”
“적당히 맞춰주니까 자기들이 더 강한 줄 알고 죽이네 마네 떠들다니…. 어이가 없군!!”
쾅! 방영희는 두 주먹을 맞부딪혔다.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구나! 스승이 위험에 빠졌는데 지시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냐!”
“그러게. 아무리 마교에 들어갔다고 해도, 스승의 위험을 모른체 할 수는 없는 법인 걸. 내가 검각의 제자는 아니지만, 내가 제자였다면 그 분을 구하러 갔을 거야.”
“아니다, 모.”
문 밖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제자들은 모두 반색했고, 백도의 두 여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백도의 정석이며, 진리지. 하지만 이번 만큼은 아니야.”
“......!! 마검비 님, 설마…?!”
마검비의 머리는 한껏 헝클어져있었다. 피부에는 붉은 남자의 손길이 짙게 남아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도 원래 입고 있던 옷도 아니었다.
“그래, 당했다.”
“!!”
두 여인 뿐만 아니라, 안에 있던 검각의 제자들마저 놀랐다.
천하에 누가 마검비를 겁간한단 말인가!!
“검담에게 당했다. ...후, 후후. 운이 좋다고 해야할 지, 나쁘다고 해야할 지.”
마검비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분명 범해졌음에도 그녀는 오히려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죽이지는 않더구나. 그리고 복수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복수를 하라고 하더구나. ...다음에 또 와서 덤벼도 똑같은 일이 생길 거라면서.”
모용란은 고개를 갸웃거렷다.
“그래. 얼마든지 도전하라고 하더구나. 후후, 도전비로 몸을 한 번 강간당하다니….”
왠지 모르게 저 말은 진실이 아닌 듯 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강자에게 도전했다가 능욕당한 여인을 상대로 진위를 파악하기에는 너무 무례한 질문이었다.
“검각의 제자들은 들으라. 나 왕소현은 이대로 검각에 들어갈 수 없다. 복수를 위해, 나는 지금부터 따로 움직일 것이다.”
“각주님?!"
"이건 내 개인적인 복수다. 어찌 여인이 남자에게 범해지고 눈물로 베개만 적시겠느냐?"
"선배님!"
모용란은 포권을 취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부디 제가 거들게 해주십시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뜻이 갸륵하나, 너희가 괜히 나섰-"
마검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단장의 고통을 토해내듯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했다가, 괜히 너희까지 변을 당할 수 있다. 각오는 되어있느냐!"
""예!!""
"......."
마검비는 쓰게 웃으며, 두 여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다. 그럼 너희도 이제 추색여단이다."
색마를 도모하자는 대의 아래, 추색여단은 점차 세력을 넓혀나가고 있었다.
***
“염마에 뢰마에 검마에 독마까지. 역시 소천마 따라서 움직이면 가만히 자다가도 먹을 게 생기는군."
"좋지? 그러니까 더 칭찬해."
"천하에서 가장 예쁜 여인이 마음씨도 곱다니."
"그것만?"
"그런 여자가 내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좋소."
나는 이시아를 번쩍 들어올려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이시아는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나를 향해 볼을 부풀렸다.
"네가 내 거거든? 둘이 있을 때는 좀 내 거 해주면 덧나?"
"둘이 있을 때? 이미 내가 그대의 것인데 어찌 조건을 달 수 있겠소?"
"말하는 것 하고는. 흥, 됐어. 그러면서 가는 동안 예쁜 여자 보이면 따먹어도 되냐고 물어볼 거면서."
"그건 당연하지. 내가 그 여자에게 몸과 마음을 내어주는 것도 아니고, 내공만 빨고 떠나는 건데."
나는 이시아와 옥신각신하며 길을 걸었다. 뢰마와 마검비의 추격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우리는 사천당가를 빠져나와 여행길에 올랐다.
당초에는 장안을 빙 둘러가는 여행길이었다. 하지만 마검비와 뢰마를 피하자는 이유로 우리는 남하를 선택했다.
"산 구경은 원없이 하겠군."
"그러게. ...근데 슬슬 덥지 않아?"
이시아는 월녀복의 외투를 벗었다. 민소매가 훤히 드러났고, 나는 그녀를 향해 빙백신공을 뿌리며 열을 식혔다.
"천마신공을 익힌 여인들은 참으로 그게 좋더군."
"뭐가?"
"여기에도 부작용이 나타나는 거."
"힉?!"
이시아는 내 갑작스러운 지공에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녀의 매끈한 겨드랑이를 간질였다.
"누가 그러더군. 여자는 아름다움을 위해선 머리카락과 눈썹만 남아도 되는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옛 성현?"
성적으로 현자이니 맞는 말이다.
"으휴, 그래서 염마 안에 그렇게 찐하게 넣어주셨어요? 걔는 아예 모근까지 다 태워버리고?"
"마음씨가 이미 숫처녀가 되어가는 여인을 내가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소?"
전대 독마를 붙잡아 내게 범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과거의 자신을 떨쳐내고 나와의 새로운 삶을 위해 인내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가.
"앞으로 더 중려신화정을 사용해줘야겠더군."
"그래, 그래. 염마 덕분에 마인을 무려 넷이나 먹었지."
"넷? 염마를 제외하고 검마, 뢰마, 독마. 한 사람이 비는데?"
"천마!"
이시아의 말에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천마를 범하다니. 어떤 놈인지 몰라도 참 간큰 놈이군."
"간만 클까? 그것도 크지. 그런 의미에서, 모처럼 운남에서 남쪽으로 가는 만큼 한 명 더 범하는 건 어때?"
"한 명 더? 운남에 마인이 또 있소? 금시초문이오만."
"광마."
나는 이시아의 말에 표정을 관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최대한 평정을 유지했다.
"광마는...남자가 아니오?"
"그렇지. 근데 그 사람, 딸이 그렇게 미인이라던데?"
"......."
나는 좀처럼 쉽게 대답을 내릴 수 없었다.
광마.
그 자의 딸이 얼마나 예쁜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있다.
"흐응. 반응이 영 시큰둥한데. 설마 미녀를 색마가 마다하지는 않겠지?"
"일단."
나는 단서를 달았다.
"......일단, 직접 얼굴 보고 판단하리다."
"소문을 믿지 못하는 구나?"
"본인 입으로 직접 떠드는 뜬소문일 지도 모르는 거 아니오."
자칭, 딸 스스로 중원 최고의 미녀라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지도 모르는 게 아닌가.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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