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21화 (22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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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으로

두 마인으로부터 도망친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당가에 돌아와야했다.

담을 넘는 몸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이 사태를 이시아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먼저 뢰마.

야인삼마 중 한 명인 자로, 염마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이시아는 그녀를 크게 반길 것이다.

뢰마가 소공녀가 아닌 대공자의 편을 든 이유는 순전히 대공자가 천마신교의 대를 이을 적자이며 남자이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의 적통이 가장 재능이 뛰어나며, 천마의 손주까지 돌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여자다.

우월한 씨를 가진 가문의 유모로서, 그녀는 뢰마이자 마뇌(魔腦)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뽐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나의 남성성을 증명해버리고 말았다.

대공자보다도 우월한, 나라는 마인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증명해버리고 말았다.

만약 내가 이시아의 편이 아니라 순수하게 마교도로서 존재했다면, 그녀는 내게 충성을 바치며 천마신교의 역성혁명을 주장했을 것이다.

- 주군이시여! 부디 소공녀 님과 아드님을 낳아주소서! 제가 당신의 자식을 돌보는 영광을!!

이리하여, 뢰마는 내가 허락만 하면 내 편이 될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검비.

'솔직히 지금 검마라고 현역으로 뛰어도 이상하지 않을 여자긴 해.'

전대 검마에게 검마의 자리를 물려준 배경은 거의 '은퇴'에 가까웠다. 이시아에게 들은 바로는 마교의 여러 남자들 중 검에 재능을 보인 복수귀에게 검각의 검을 가르쳐줬다고 하더라.

왕소현이 검마의 자리를 내려놓고 마검비가 됨으로써, 비어버린 검마의 자리에 왕소현의 제자가 이름을 이어받았다.

실력은 스승에 미치지 못했으나, 복수에 대한 의지와 야성미는 검마의 자리를 이어받기에 충분했다나 뭐라나.

하지만 그 검마는 호북에서 죽었다.

그리고 현재 십마는 구마(九魔)가 되었고, 한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다.

천마가 일부러 자리를 비워두지 않는 이상, 검마의 빈 자리는 응당 마교 최강의 검사가 이어받아야한다.

나는 이미 색마이며 무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마검비가 검마가 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은퇴한 자가 후계자의 소실로 인해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앞에 나서는 건 무림에서 비일비재하다.

"...둘 다 이시아에게 날개를 달아줄 여자들이다."

뢰마에게는 마교의 역사가 존재한다.

더군다나 야인삼마 중 한 명을 직접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만큼, 이미 염마와 빙마를 잃어 사지 중 두 개가 잘린 대공자의 사지를 하나 더 떼어내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마검비에게는 검각이 존재한다.

화경에 이르러버린 중년 미부. 나와의 광적인 성혼 의지만 없다면, 나는 멸색사태 류서시를 대하듯 그녀와 얼마든지 색벗이 될 의지가 있었다.

"결혼하기에는 둘 다 나이가 너무 많아."

뢰마는 말할 가치도 없다.

마검비는 모든 좋은 조건을 다 갖추었으나, 지금의 육체 나이가 아이를 낳기에는 노산(老産)이라 아이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

백 번 양보해줘도 뢰마는 진가장의 시녀까지는 봐줄 수 있다.

그리고 마검비는 반로환동을 하고 비무에 대한 광적인 집착만 제거한다면 하자가 하등 없는 여자다.

'미래에서 취하던 여자들이랑 비슷해서 그게 좋지.'

짝!

"미친 놈이구나. 정신 차려라."

나는 나 스스로 점차 단서를 붙이는 것에, 자신의 뺨을 때려 정신을 가다듬었다. 하마터면 뢰마와 마검비를 진가장에라도 들일 뻔 했다.

"안 돼. 정신차려라, 색마야. 영계만 따먹기로 한 그 날의 다짐을 잊었느냐.

"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내 앞에는 어느새 월녀복을 입은 이시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평소보다 더 빠른 걸음이었다.

"......설마?"

"후훗."

이시아는 적안은 반짝이며 웃었다. 천마신공을 일으키는 그녀의 눈동자는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뭔가 계기가 조금은 필요한 것 같은데, 내공은 일단 간신히 '도달'했나봐."

"진심으로 축하하오, 시아."

"뭘. 손으로 짚기는 커녕 손가락만 걸쳐본 수준인데."

"그것조차 도달하지 못해서 평생을 좌절하는 자가 장강에 사는 물고기보다 많을 것이오."

나는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녀가 사천으로 오며 한 거라고는 천마경치구경과 천마주색잡기밖에 없었으나, 애초에 깨달음은 아주 사소한 요소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래? 그 사람들한테 조금 미안하네. 이렇게 어이없게 나는 윗공기를 마시게 되어서."

"사람마다 다 다른 법이지."

그녀에게는 천가장에서 나와 바깥 바람을 쐬는 것 자체가 계기가 되었다.

...남자에게 범해진 것을 계기로 한계를 돌파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설적이고 건전한 깨달음이었다.

"시아."

"왜?"

"뢰마와 마검비를 범했는데, 둘이 나보고 결혼하자고 달려들어서 도망쳤소."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속으로는 왜 그걸 전부 다 이야기하냐고 화가 들끓기도 했지만, 순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시아를 두고 차마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자세히 말해볼래?"

이시아는 고운 눈썹을 찌푸리며 내게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진실을 밝혔다.

"흠, 그러니까...."

이시아는 내게 바짝 다가와, 내 두 손을 붙잡았다.

"내 남자가 너무 잘나서 두 마인이 반해버렸다 그 말이야?"

"그렇게 한 줄로 간략하게 줄여버리니까 조금 부끄러운데."

"틀린 말이 아니잖아? 무공이든 지략이든 남근이든, 마검비와 뢰마가 너한테 반해서 지금 너랑 혼인하고 싶다고 달려드는 거잖아. 뢰마 쪽은 조금 다르기야 하지만."

이시아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흠...마검비와 뢰마라...."

"야인삼마 중 한 명이기도 하며, 검각의 주인이오. 그들이 소공녀의 편을 든다면 분명 그대의 힘이 될테지."

"싫어."

"...응?"

나는 이시아의 말을 순간 잘못들었나 싶었다.

"싫다고. 마검비도 뢰마도 딱히 부하로 들이고 싶지 않은 걸?"

"...의외군. 마교 내에서 전력으로 따지면 마검비와 검각이 1할은 될텐데?"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 얘기해줄게. 하나, 그들은 내가 아니라 네게 충성하는 거잖아. 염마나 빙마랑은 달라. 둘, 내가 만들어갈 마교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갈 마교야. 아무리 능력자라고 한들 이전 시대의 사람들을 데리고 혹사시키고 싶지는 않아."

이시아는 새로운 마교를 만들고 싶어했다.

기존의 체계를 타파하고 이시아라는 천마 아래 마교의 체질을 바꾸고 싶어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전대 검마와 뢰마와 같은, 이전의 천마를 섬겨온 원로들은 우선순위가 낮은 셈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있어. 사실 다른 거 다 차치하고, 이게 제일 크단 말이지."

"무엇이오?"

"네가 별로 원하지 않은 것 같아서?"

"......."

이시아는 내게 안겨 나를 올려다봤다.

"내 남자가 원하지 않는 여자는 나도 받아들일 생각 없어."

"선후관계가 틀리오. 나는 그대가 원한다면 받아들일 생각이란 말이지."

"그건 내가 너보고 두 마인이랑 살을 섞으라고 강요하는 셈이 되잖아? 안 돼. 그런 이유라면 받아들일 수 없어."

이시아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만약에 네가 마검비든 뢰마든 이 여자는 반드시 옆에 둔 다음 두고두고 범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 때는 내 시녀로 들일게. 마검비랑 뢰마, 지금 옆에 두고 범하고 싶어?"

"...그렇게까지는. 방금 전에 범하고 오기도 했지만, 가볍게 즐기기에는 너무 무거운 여자들이었지."

몸이 아니라 마음이.

"색마가 하늘을 날아가는데 발목에 족쇄를 채우려는 자들을 품을 수는 없지."

"그래, 그래야 비천색마지."

나는 이시아와 맞잡은 손을 깍지꼈다.

"그들을 범할 시간이면 다른 젊고 예쁘고 강한 여인들을 찾아서 채음보양하고 말지. 이미 둘의 내공은 먹을만큼 먹었소. 굳이 위험부담을 질 필요가 없지."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할 일은 간단해."

이시아는 해가 반짝이는 산 아래를 가리켰다.

"마검비랑 뢰마가 쫓아온다고? 그럼 빨리 사천을 도망가야겠네."

"둘의 추적을 피하자?"

"물론. 사랑의 도피지."

이시아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내게 눈을 찡긋였다.

"마검비는 몰라도 뢰마를 피해서 도망가려면 제법 빨리 가야할 거야. 위치상...호북으로 바로 돌아가는 건 어렵지. 어떻게 할래?"

"......돌아가야지."

두 여인은 북쪽에서 내려올테니, 우리는 북이 아닌 남으로 내려가야한다.

"운남을 거쳐, 광서, 호남, ...그리고 호북."

"좋은 생각이야. 그러면 떠나기 전에...."

콰득.

이시아는 내 양물을 움켜쥐었다. 떠나야 할 때에 양물을 움켜쥐며 잡아당기는 행동에 나는 괜히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가 인도하는 곳을 보자마자 나는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지워버렸다.

"새, 색마 님...?"

마치 혼례를 치르는 것과도 같은 다소곳한 옷차림의 당서희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의식을 잃고 기절한 또다른 중년 미부가 누워있었다.

"허. 뭐지?"

"전대 독마. 당가의 출가외인이래. 유부녀."

"촌수로 치면 제 고모님이긴 한데…."

훌러덩.

나는 바지를 내렸다. 뢰마와 마검비가 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두고 떠날 수 있으랴!

"만약에 둘이 오면...제가 막아볼게요. 둘보다 제가 더 강하니까."

"당서희."

나는 당서희를 끌어당겨,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앞으로 비천염마로 더욱 자기정화에 힘을 쓰거라."

"......."

당서희는 한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한 손으로는 독마의 치마를 들어올렸다.

"시아, 내가 그대를 정말 좋아하는 거 알고 있소?"

"당연하지. 내가 그런 거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해주는 거잖아."

이시아는 당서희의 맞은 편에 앉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독마의 내공을 모두다 끌어다 그대에게 주리다."

나는 독마의 안에 양물을 밀어넣으며, 이시아의 손에 입술을 맞췄다.

* * *

까악, 까악.

거대한 검은 독수리가 하늘에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었다. 독수리가, '까악'거리며.

"...여기다! 여기서 분명 사고가 일어났다!!"

무인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사고 현장을 살폈다. 산처럼 큰 짐승이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간 듯한 흔적에 무인들은 좀처럼 현장에 발을 디디지 못했다.

"이건 도대체...?"

"젠장, 요즘 사천에 이상한 현상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

까악.

독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날아갔다. '정찰'을 확인한 독수리는 절벽 위에 학처럼 우아한 자세로 내려앉았다.

사르르.

검은 안개가 독수리의 몸에서 흘러나오며, 독수리는 흑발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수마(獸魔).

짐승으로 변신이 가능한 도술을 익힌 십마 중 한 명으로, 그녀의 변신술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뢰마와 마찬가지로 지린삼마 중 한 명인 그녀는 높은 절벽 위에서 숲이 뒤집어진 상처를 내려다봤다.

"...보이십니까, 천마시여."

"아아. 보인다."

마치 자문자답을 하듯, 수마는 혼자서 말하고 혼자서 답했다. 그러나 답을 하는 목소리는 수마의 여린 목소리가 아닌, 굵고 진중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초마교인이 도법을 펼친 흔적입니다. 뢰마와 마검비에게는 상처조차 입히지 않고, 그들이 추격하지 못하도록 무력시위를 펼쳤습니다.

"대단하군. 역시 내 사위가 될 남자다워."

수마는 천마의 말에 쓰게 웃었다. 이미 후계자 싸움은 유명무실해졌다.

대공자 주지는 눈뜨고 천마 자리를 소공녀에게 넘겨주게 생겼다. 다른 어떤 변수도 없이, 그저 색마가 '비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러나 아직 조금 아쉽군. '여물려면' 한참 멀었어."

"...아직도 더 성장할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정신과 혼은 이미 극에 이르렀다. 육체가 시간의 흐름 덕분에 따르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정말로...기대가 되는군. 나와 자웅을 겨룰 때가."

"......저기, 이건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천마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수마는 지금이 '때'라는 것을 직감하고 질문했다.

"정말로 저 자가 천마 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흐흐, 못 이기면 안 되지."

수마는 마치 천마처럼, 적안을 반짝이며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나를 이겨야, 저 곤륜에 있는 현녀(玄女)를 이길 수 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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