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18화 (21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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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斬魔)

천하에 미친 자들은 많다.

여기서 말하는 미친 자들에는 남녀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이상한 자들이 수두룩한데, 어찌 남녀를 따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범한 남자에게 반하는 자는 미친 년이 틀림없다.

‘따먹었는데 제발 결혼해달라고? 세상에 그런 여자가 어디있어.’

아무리 강호 무림의 사파가 약육강식, 그러니까 강자를 더욱 우대하고 자신보다 강한 자를 존중하는 섭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여인으로서 의사도 묻지 않고 범해졌는데 반할 이유는 하등 없는 것이다.

‘도대체 왜 나한테 매달리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유를 찾아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게 당신의 아이를 낳게 해주세요!”

“당신의 아이를 제가 보살피게 해주십시오!!”

곤륜의 운룡대팔식에 천마신공을 섞어 전속력으로 땅을 박차고 남하하고 있음에도 나를 쫓아오는 두 여자의 진의를 파악해야했다.

내게 자신의 존재를 족쇄처럼 채우려는 두 노마녀(老魔女)가 내게 마음을 품은 이유에 대해, 나는 짐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씨발, 내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가?"

채음보양으로 음기가 다소 쌓여 남성스럽다기보다는 미형에 가까운 외형은 지금까지 여인들에게 나쁜 소리는 듣지 못했다.

얼굴에 반했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역체변용술로 얼굴을 원형에서 살짝 비틀었다. 나이를 조금 더 먹은 내 30대 초반의 얼굴과 체형으로 나는 내 정체를 숨겼다.

"아니면 내 방중술이 워낙 뛰어나서 그런가?"

나는 문득 팽유월의 경우가 떠올랐다. 추대광이라는 거구에 강간으로 범해졌음에도 워낙 절륜하여 남근 덕분에 사랑을 품게 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내가 그래도 팽유월을 사랑하는 척이라도 했고, 지금은 사랑이고 나발이고 주먹을 쓰고 발길질을 하며 제압한 다음 범했다.

“아니면 내가 너무 무공이 강해서?”

내가 강하다기보다는 내가 내공으로 끌어다 쓰는 존재들이 강한 셈이지만, 둘은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

“아니면 마교인들이라서?”

마교인들의 사고방식은 상식에서 조금 어긋나있다. 마검비와 뢰마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엇나가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마교인들은 일반 상식의 틀에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자기를 범한 색마 모가지를 따도 모자랄 판에 목에 올가미를 씌우고 안방 차지하려고 하다니. 으으, 무섭도다.“

사락.

충분히 거리를 벌린 나는 숲속에 잠시 몸을 숨겼다. 뢰마와 마검비에게서 뽑아낸 내공을 진정시키려면 다소 휴식이 필요했다.

‘유인한 대로 왔군, 어디 엿들어 보기나 하자.’

척.

두 여인은 공터에 착지하여 주변을 훝었다. 가운데가 뻥 뚤린 나무 안쪽에 숨어 그림자와 동화된 나는 두 여인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뢰마 님. 왜 돌아오셨습니까?"

마검비는 뢰마에게 존대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나이로 세탁을 하자면 마검비가 뢰마에게 하대하는 게 맞으나, 둘밖에 없는 자리에서 하대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뢰마는 '뢰마는 갓 성인이 된 후계자' 설정에 맞게 공손히 대답했다.

"...하아, 뭘 말씀하는 거세요?"

"금마(金魔)."

뢰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모르는 말이 나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정황을 살펴보면 나를 지칭하는 말인 듯 했다.

무마(武魔)도 색마(色魔)도 검마(劍魔)도 아닌 금마라니, 이 얼마나 광오하고 훌륭한 별호란 말인가?

'내가 아닐 수도 있으니 설레발은 치지 말자.'

"무마, 색마, 검담. 모두 제각기 다른 사람이 아니라, 모두 한 명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중원을 돌아다니는 거란 걸. 그리고 그가 바로 초마교인이라는 걸."

'걸렸네?'

나는 내 정체가 드러난 것에 자책했다.

초마교인-그러니까 '검담'으로서 천마신공을 현경의 극의에 이를 정도로 다룬 나라는 존재에 대해, 둘은 그 자가 소공녀를 따르는 무마이자 색마라는 걸 알아채고 말았다.

'귀찮아지겠는데?'

딱히 살인멸구를 해야한다거나 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두 여자가 왜 내게 들러붙으려 하는지 감이 잡혔다.

먼저 마검비, 왕소현.

"예. 사천의 검담이 색마이고, 소공녀의 색마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진정한 힘도 확인했고요. 저는 그에게 패배했습니다. 강호에 떵떵거리며 큰 소리 친 것처럼, 그분은 제 몸을 범하셨습니다."

마검비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내 주먹질에 다소 검이 휘었지만, 마검비는 휘어진 부분 위에 검강을 씌웠다.

"검으로 패배하여 범해진 순간부터, 저는 이미 그분의 여자인 겁니다...!"

'나이 찬 여자가 시집가고 싶어서 미쳐있는데, 자신의 검을 상대로 매일매일 상대해줄 수 있는 남자 만나서 눈 돌아갔다 이거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 대상이 내가 된 것에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괜히 검으로 이겼나 싶을 정도로 울화가 치밀었다.

"저와 뜻이 비슷하군요...!"

뢰마는 마검비의 손을 붙잡았다.

"황보세가 습격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황보세가의 일곱 자매를 모두 범하고 도망간 탈혼붕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색마 님이십니다!"

'저 년 다 아네?'

알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로 알고 있을 줄이야.

"저는 그곳에서 제가 섬겨야 할 분이 누구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마교를 이끌어나갈 후계자는...!"

쿠궁, 구구궁!

마른 하늘에 벼락이 번쩍였다. 나는 괜히 나무 안에서 바짝 몸을 엎드렸다.

"대공자 님보다, 소공녀께서 낳을 무마 님의 아드님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요!!"

'아니 저 년이?'

올바른 생각에 나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리고 뢰마의 속내를 나는 바로 알아챘다.

'대공자가 낳은 자식 유모가 되어 생을 마감하려고 했는데, 시아 쪽이 더 빨리 아이 낳을 것 같아서 우리 쪽으로 갈아탄다 이건가?'

이시아가 어줍잖은 남자의 아이를 낳는다고 한다면 뢰마는 끝까지 대공자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시아가 임신하기를 바라는 남자가 누구인가!

비천색마!

'세상 어느 색마보다도 강하고, 교활하고, 똑똑하고, 천하에 가장 밤일을 잘하는 자지.'

다방면으로 우수한 나와 이시아의 지성과 미모가 합쳐지는 것만으로도 다음 대 천마는 십만 마인과 함께 천하를 호령할 것이다. 이시아의 친모 대신 길러준 뢰마는 '천마의 유모'로서 살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염마와 빙마는 시녀로 들인다고 해도 뢰마를 유모로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딸 낳으면 바로 죽일 년이야.'

뢰마는 천마가 '남자'여야 한다는 것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시아가 낳을 아이가 남아가 아니라 여아라고 한다면, 뢰마는 여아를 알게 모르게 학대할 것이다. 태어나기 전에 남아인지 여아인지 확인한다면, 여아일 경우 뢰마는 자신의 진천뢰신공의 힘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없애버릴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미래의 뢰마와 지금의 뢰마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실제로 그녀는 이시아를 키우는데 딱히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다.

‘대공자라는 적자가 있었으니, 나이가 많이 차이나는 소공녀를 견제할 이유는 없었지.’

이시아는 대공자 주지라는 존재 덕분에 뢰마의 보살핌을 문제 없이 받았지만, 만약 이시아가 대공자보다 더 빨리 태어났다면 이시아는 지금쯤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나이만 냅다 처먹어서 생각이 구시대에 머물러 있어.'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더라. 나를 죽이려고 드는 건 내가 대처할 수 있지만, 내 자식을 죽일 지도 모르는 자를 순수하게 내 편으로 들일 수는 없다.

마검비, 뢰마.

나에 대한 무거운 관심을 보이는 둘이 내게 있어서 득이 되냐 하면 전혀 아니다. 세상에 여자는 많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우선 내 뒤를 쫓는 둘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아요, 그러면 우리 의기투합하죠.”

“좋습니다. 비천이나 지린이 아닌 같은 뜻을 가진 동지입니다.”

“원혼검마(原婚劍魔)!”

“봉사뢰마(奉仕雷魔)!

나는 서로 자신의 별호를 새로 짓는 두 여인의 의지에 오한이 들었다. 뭔가 상당히 그럴 듯 해보이는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혼인을 원하거나 섬기기를 바란다는 이름이었다.

‘일단 비천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하나.’

비천여검마나 비천여뢰마가 아닌 걸 일차적으로 다행으로 생각해야한다. 나는 당장은 내 적이 되지 않을 둘을 상대하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이시아한테 물어봐야지.’

마교의 일은 마교의 책임자에게 묻는 것이 당연지사.

이시아가 내 여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검비와 뢰마를 품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이시아에게 둘을 맡길 것이다. 결코 내가 귀찮거나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다시 혈교주의 말을 떠올렸다.

- 부품 갈아치운 새 것 같은 물건이랑, 그냥 갓 나온 따끈따끈한 새제품이랑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가 낫지. 똑같이 예쁜 여자면 반로환동한 여자보다 몸과 정신이 한 살이라도 어린 여자가 갑(甲)이란다.

사공희, 이시아, 독고연, 팽유월.

넷을 다 합쳐도 마검비와 뢰마를 합한 것보다 젊다. 나는 순수하게 젊음을 구가하는 이들과 풋풋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

“지금은 비록 두 명 뿐이지만, 앞으로 동지는 늘어날 겁니다.”

“예, 백도 무림에도 찾아보도록 하죠. 색마에게 겁간당한 걸 책임지라고 할, 여인들을 모아 색마를 찾는 겁니다. 그래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추색여단(追色女團)은 어떻습니까?”

“좋은 이름이에요. 뢰마 님, 만약 당신께서 괜찮다면, 제가 추색여단을 이끌도록 하겠어요.”

단체까지 만들어 나를 쫓으려들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여자들이란 말인가.

‘그래도 너희는 안 돼.’

한 번 맛을 보는 것 정도라면 모를까, 내게 지아비로서 책임을 물으려는 여자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색붕(色朋)이 될 수는 있어도, 남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가볍게 즐기고 가볍게 헤어지는 원만한 관계.

‘류서시가 그런 면에서 딱 좋은데.’

상대를 구속할 생각없이 서로 즐길 때 즐기는 것이 얼마나 좋단 말인가. 나는 옆에 놓인 길쭉한 나뭇가지를 집어들었다.

‘그러니까 일단 저것들 패고 보자.’

둘다 화경급 무인이니까 적당히 때려도 크게 상처는 없을 것이다.

사락.

나는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심각한 얼굴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나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상공!”

“주공!”

“너희들은 내 남근을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나라는 존재를 원하는 것이냐?”

내 질문에 둘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차라리 남근을 원한다고 하면 내 마음이라도 편한데, 저들은 몸과 함께 마음까지 바치려고 들었다.

“내 마지막 제안이다. 나는 너희와 잠자리를 즐기는 색도(色道)의 벗이 될 수는 있어도, 너희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어째서죠?!”

“늙었으니까!!”

스승과 혈교주는 말했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여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 바로 ‘나이 먹었다’는 발언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나는 둘을 쳐내기 위해 여인에게 해서는 안 될 금기를 범했다. 두 여인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천마신공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린 것들이 좋으십니까?! 기껏해야 일류, 좋아봐야 절정인 년들을!”

“당연한 거 아니냐? 너희도 내가 나이가 두 갑자 이상 돌아간 노인네면 싫어할 거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

“제가 섬기는데 부족함이 없는 분입니다!”

“으어, 진짜 돌아버리겠네.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나한테 진절머리가 나서 떠나거나 해야하는 거 아니냐?”

괜히 성도에 결혼에 미친 마인 둘을 데리고 갈 바에는 여기서 깔끔하게 처리하고 가는 게 낫다.

“좋다, 거래다. 나를 무공으로 이기면 내 여자가 되는 걸 허락해주지.”

“!!”

두 마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나는 괜한 말을 했나 싶었지만, 내가 지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구천현녀만 아니면,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않으니까.

‘마검비나 나나 똑같군.’

자신보다 강한 이성을 찾아 함께하고 싶다. 다른 것이 있다면 마검비는 나를 섬기고 싶어하지만, 나는 내가 힘으로 구천현녀를 꺾고 범하고 싶었다.

결국, 마인을 상대로 가장 쉽고 강력한 설득은 '무공'이다.

“무공! 나이! 신분! 신체! 색공! 그 모든 조건을 이기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압도적인 힘이다!!”

나보다 두 배 세 배는 많은 여자들에게 따먹히고 아이를 낳게 할 수는 없기에, 나는 둘에게서 뽑아낸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이 ‘나’를 쓰러뜨릴 수 있다면, 순순히 내 좆을 내어주마!”

“설마...이 기운은!!”

“아아, 역시 당신이야말로 초마교인...!!”

고오오오---

내 주변에서 금빛의 기류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천마신공을 근간으로 하는 내공심법.

그리고 사용하는 무공은 하나.

‘부인, 나를 지켜주시오.’

참마도(斬魔刀).

"와라! 내 여자가 되고 싶거든, 나를 이기고 범해라!!"

나는 내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부인의 힘으로 저 마인들을 물리칠 것이다.

[작품후기]

유부남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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