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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접검담
마검비의 지시에 따라, 검각의 무인들은 범해진 여인을 안고 북으로 달렸다.
마검비가 시간을 버는 사이 도망쳐야했다. 그리고 여기서 마검비를 따르는 여인들, 색마 주살단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당장 돌아가서 마검비 님을 도와야 합니다!"
"안 돼. 마검비께서는 이 여인을 데리고 도망치라고 명령하셨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서 마검비를 도와 함게 싸워야한다고 주장하는 모용란, 그리고 마검비의 명령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검각의 제자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마검비 님은 당신들의 스승님이잖습니까! 스승이 위험에 처했으면 제자가 도와야죠!"
"스승께서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어찌 스승의 명을 거역할 수 있단 말이야?"
"만약 마검비께서 색마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럴 일은 전혀 없으니 말도 꺼내지 마라, 이 년!"
둘 사이의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져갔다. 다른 이들도 저마다 생각이 달라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커헉!"
수풀에 눕혀진 여인은 검붉은 피를 토했다. 검각의 제자들은 여인의 상태를 급히 살피며 다급히 의견을 주고받았다.
"서안으로 가야해, 사매. 거기서 약을 구해서 치료를 해야해."
"역시 그래야겠지...?"
"여기서 서안까지 간다고?"
모용란은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희들, 정말 이대로 가려는 건가...?"
"이 년이 각주께서 오냐오냐 해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사매, 진정해!"
검각의 제자들은 쓰러진 여인-뢰마를 향해 눈빛을 주고받으며 무언으로 대화를 나눴다.
뢰마. 십만마인의 대모가 겁간을 당했다. 마검비는 뢰마를 범한 이를 상대로 '시간'을 벌겠다고 했다.
즉,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현재의 십마'인 뢰마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은퇴한 원로 검마가 범해지는 건 마교의 위신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현재의 십마 중 한 명-그것도 천마의 유모가 겁간을 당한 건 정말 의미가 컸다.
검각의 제자들에게는 뢰마를 돌볼, 그러니까 색마로부터 멀리 도망치게 할 의무가 있었다.
"...큰 상처는 없어보이지 않나. 그렇다면 마검비 님을 도와 색마를 도모하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구나...!"
그리고 겁간당한 여인이 평범한 여인인 줄로만 아는 모용란은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했다. 마검비의 지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었지만, 그녀를 막을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방영희도 모용란을 거들고 나섰다. 색마 주살단에 참여한 두 백도 여인은 마검비를 돕기를 맹렬히 원했다.
"...그럼 너희는 각주님을 거들러 가라."
검각의 제자들은 뢰마를 부축하며 남쪽을 가리켰다.
"기, 기다리거라...요...."
각혈하던 여인-뢰마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두 여인을 불러세웠다.
"그자에게, 하아, 범해진 건, 쿨럭, 제 업보입니다.... 더이상의 희생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뢰마는 비틀거리며 몸을 바로세웠다. 진창을 구르고 옷이 걸레짝이 되었지만, 뢰마는 이들 중 가장 강한 무공의 보유자였다.
"도와줘서 고마우나...여기를 모두 떠나세요. 색마에게서 도망치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저희는-"
찌릿!
뢰마의 몸이 사라지기 무섭게, 백도의 두 여인은 기절하듯 쓰러졌다. 뢰마는 둘을 검각의 제자들에게 넘기며 힘겹게 웃었다.
"...백도의 여인들은 참 정의감이 깊군요."
"뢰마 님, 저희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둘을 데리고 서안으로 도망치세요. 저는 제 일을 마무리하고...오겠습니다."
"뢰마 님?!"
뢰마는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아직...해야할 일을 하지 못했어요."
뢰마는 옷을 추스르며 남쪽으로 달렸다. 검각의 제자들이 뢰마를 쫓기에는 그녀는 너무 빨랐다.
기절한 동안, 뢰마는 이미 모든 것을 파악했다.
비천염마. 소공녀 이시아. 검담. 무마. 그리고 천하에 둘도 없을 강한 남자. 여자를 상대로 성욕을 숨기지 않는 음탕한 눈빛. 맹렬히 돌아가는 머리로 그녀는 검담이 누구인지 깨닫고 말았다.
"아아, 무마 님...!"
저릿.
뢰마는 황홀한 눈으로, 무언가에 홀린 눈빛으로 숲을 달리고 또 달렸다.
"당신이, 그 분이셨군요...!"
주룩.
뢰마의 허벅지 아래로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 * *
나는 마교에 미염신공을 보냈다. 본래는 신창이 가진 운룡반월창과 연계되는 내공심법이지만, 내 마음대로 그걸 마교에 보냈다.
천마는 분명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다졌을 것이다. 나이 먹고 늙어가는 자들에게 머리칼 다스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없으며, 미염신공은 천마신공의 부작용을 억제해 줄 좋은 내공심법이다.
하지만 간혹 천마신공을 익혀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머리 숱이 빠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작용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곳 부터 서서히 빠지는 셈이다.
즉, 인체에 있는 다른 털부터 빠지게 된다. 내 눈앞에 있는 마검비가 딱 그 모양이었다.
- 털은 취향 차이지. 근데 털 없는 게 왜 예쁜지 알아?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털을 성교를 위해 밀어버렸다는 얘기거든. 지아비를 향한 갸륵한 마음이 얼마나 예뻐?
'혈교주, 당신이 옳소.'
혈교주는 말했다. 음모라는 건 '여기에 내 소중이가 있소'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자란 것이며, 성적인 냄새가 짙게 나는 걸 바탕으로 이성을 유혹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신체발달과 생리적인 현상이고, 남녀상열지사에서 음모가 없다는 것은 단 하나의 의미밖에 없다.
- 남자한테 거기도 예뻐보이려고 털 밀어버리는 거 밖에 더 있어?
그래서 혈교주는 말했다. 남자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여인의 순수한 의도를 두고, 그녀는 검은 흔적이 모두 사라진 하얀 보물과도 같다고 하여 백보(白寶)라고 불렀다.
"이, 이 놈...!"
마검비는 자신의 백보를 보였다는 것에 얼굴이 수치심으로 시뻘게졌다. 그 반응이 숫처녀를 보는 것 같아, 안 그래도 백보를 본 내 음심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냥 적당히 상대해주고 원래 범하던 것부터 취하려고 했는데 안되겠군. 이것만은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는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양물을 꺼냈다. 단단하게 발기한 양물에 시선이 고정된 마검비는 두려움과 공포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비겁한 색마가...."
"왜? 너한테 이기면 대준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이겨놓고 무슨 개소리냐!"
"허, 왜? 내가 그럼 너를 상대로 수 백 수 천 합 나누면서 검을 휘두를 줄 알았나?"
마검비의 눈빛은 억울함으로 물들어있었다. 검에 미친 여자답게, 그녀는 검의 고수인 검담을 상대로 검을 부딪히며 비무를 펼치고 싶어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검사가 아니다."
나는 검을 통해 도를 추구한다거나 진리를 찾는 구도자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파천신검의 사상에 가까우며, 스승의 가르침과 혈교주의 말에 나는 큰 영향을 받았다.
검이란, 상대를 죽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검이란, 인간이 상하관계를 나누고자 할 때 쓰는 무기의 하나일 뿐이다.
검이란, 상대를 협박하는 데 쓸 도구 중 날이 잘 드는 날붙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하나 있었다.
만병지왕(萬兵之王).
검에는 다른 무기와는 다른 '멋'이 있다. 나는 검선과의 비무를 통해 검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달리할 수 있게 되었다. 검을 쓰는 자들에게는 나름의 멋이 존재하고, 나 또한 검을 통해 멋을 부리는 걸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그런 건 멋부리는 놈들끼리 만나서 하라고 하고.'
나는 검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범하는데 쓰련다. 수많은 검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사과를 전할 뿐.
"미안하구나. 너를 범하는데 검을 사용해서. 사과의 의미로 내 애검(愛劍)을 선보이도록 하마."
나는 마검비가 도망치지 못하게 골반을 붙잡았다. 그녀는 등으로 바닥을 기며 내게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나는 마검비가 도망치는 것과 함께 앞으로 무릎을 기어갔다.
"그, 그만...! 그만둬!"
"인간은 미지의 공포에 가장 두려움을 느끼지."
툭툭. 나는 마검비의 치골에 양물을 두드리듯 올렸다.
"아아아아악!!"
마검비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질렀다. 진짜로 범해진다는 것에 그녀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 듯 했다.
"걱정마라. 아프지 않아. 왜 그래? 너 처녀냐?"
"이...!"
나는 알면서 일부러 물었다. 그리고 마검비가 더는 도망가지 못하게 골반을 강하게 붙잡았다. 마검비는 바닥을 손으로 강하게 짚으며, 나를 향해 흙더미를 뿌렸다.
흙먼지가 내 얼굴을 뒤덮었다. 나는 눈꺼풀을 닫고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고, 마검비는 그 사이 손으로 내 손목을 때리고 할퀴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소용없다. 네 검에도 잘리지 않던 양물이다. 검을 잃은 네가 내 몸에 상처를 입힐 리가 없지."
"시, 싫어...!"
나는 천천히 마검비의 꽃잎을 양물로 훑었다. 천마신공의 부작용 덕분에 형태와 색이 훤히 드러난 그녀의 백보는 연분홍빛보다도 하얀, 꽃잎의 끝만 붉은 기가 감도는 흰 연꽃과도 같았다.
"아프지 않다. 걱정마.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예쁜 여자들 상대로는 험하게 안 해."
나는 상체를 숙여 마검비와 시선을 가까이했다.
"아니면...색마답게 거칠게 해주랴? 마인답게 진짜로 범하듯 따먹어주랴?"
"지금 범하는 거잖아!"
"허허, 본인이 한 말을 번복하는 것이냐? 누구든 너를 이기는 자는 널 범할 수 있게 해준다며? 그럼 이건 화간이지. 너는 네 몸을 상품으로 걸었고, 나는 네 몸을 우승상품으로 얻은 승자가 아니더냐."
그러니까 이건 합의된 성교다. 결코 내가 마검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면 이렇게 하지. 나는 너를 범하겠다. 너는 나를 검으로 한 번 이겨보거라."
"도대체 무슨-"
"환영귀접(幻影鬼接)."
나는 마검비의 머리에 손을 짚어, 그녀의 정신을 꿈속으로 보내버렸다.
* * *
"...어?"
왕소현은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있던 대나무 숲은 사라지고, 자신을 범하려던 검담도 사라졌다.
"이건 설마...?"
"환마의 술법이죠. 환영귀접."
어린 소년의 목소리에 왕소현은 손을 허리에 놓았다. 그리고 색마에게 망가져버린 검이 고스란히 잡히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이건 도대체...?"
"그렇게 검으로 싸우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초대했어요."
딱. 소년은 손가락을 튕겼다. 왕소현은 소년의 위아래를 훑으며, 그가 자신을 범하려는 색마와 무척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네 놈 혹시...?"
"당신의 생각대로. 다만 지금의 저는 검을 사용하기에 최적화 된 상태인 것일 뿐입니다."
소년은 왕소현과 키가 비슷했다. 다소 여성스럽기까지 한 소년의 모습에 왕소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네가...그 색마의 어린 시절이란 말이더냐?"
"누구나 다 어렸을 때는 귀여웠죠.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의가 바르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나를 희롱하다니, 건방지구나!"
"희롱한 거 아닌데."
스르륵.
대나무 숲에서 검 한 자루가 날아와 소년의 손에 머물렀다. 소년은 한 자루 검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누구보다도 반듯한 기수식을 취했다.
"......!! 어떻게?!"
"역시 마검비. 보자마자 검법을 아는 군요."
"화산의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劒)!!"
"뿐만 아니라."
소년의 몸에서 보라색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왕소현은 검을 움켜쥔 손이 기분좋게 떨리는 것에 침을 꿀꺽 삼켰다.
"자하신공까지!"
"검을 논하고 싶다? 그럼 이곳에서 저를 이겨보세요. 이 속에 있는 수많은 검법으로 상대해드릴게."
소년은 자신의 머리를 검지로 톡톡 건드렸다.
"심검비무(心劍比武)."
철컹!
소년이 빠르게 검을 앞으로 찔렀다. 한 순간에 피어오르는 수 십 송이 매화꽃에 왕소현은 본능적으로 초식을 이용해 검을 튕겨냈다.
"...아아!"
매화검수 둘을 상대해봤기에 그녀는 검으로 느꼈다. 상대의 칠절매화검은 초절정 수준에 이르러있으면서 화경, 아니 현경 고수의 검리(劍理)를 어렵게나마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시작은 화산부터. 그 다음은 종남, 그 다음은 점창."
한 명의 육체에서 수없이 터져나오는 다른 검법에, 왕소현은 전율했다.
"절정 이하는 싹다 빼버리고, 초절정부터 화경 고수까지. 어때요, 누님. 우리 검으로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요?"
왕소현은 소년의 활짝 웃는 미소에, 그만 현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작품후기]
색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