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06화 (206/568)

--------------------

사천당가 습격 소동

잠시 뒤, 인근 객잔을 하나 통째로 빌린 우리는 표행에 합류한 젊은 남녀인 척 연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혼표식구궁진의 안에서 정식으로 사천배후성주라는 자의 인사를 받았다.

"만나뵙게되어 영광입니다, 공주님. 저는 사천배후성의 주인, 청창살이라고 합니다."

청창살.

본명은 아니다.

각 지역의 마교 분타 총책임자들은 모두 하나의 세력에 대한 은원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 세력 만큼은 꼭 멸망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잡기 위해 이름 뒤에 살(殺)을 붙인다.

"청성에 점창?"

"그렇습니다. 그곳의 말코 도사 놈들이 제 친형을 죽였지요. 그런데 혹시 어떤 분이신지...."

"색마!"

나는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나를 지칭하는 여러 이름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빙색마인'이지."

나는 빙백신공과 천마신공을 동시에 일으켰다. 내 모습이 순식간에 빙색마인의 전형으로 변하자, 청창살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존경하는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림맹의 심장에 침투하여 독고연을 납치한 용맹함, 진정으로 존경합니다."

"별 일 아니었소."

내가 정체를 밝힘으로써 얻는 이점 하나.

무림맹주와 맞서싸워 살아남은 미친 놈이 이시아의 편이라는 걸 과시하여 사천배후성주가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점 둘.

내가 이시아와 단 둘이서 다닌다는 것을 주지시켜, 내가 이시아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다.

"역시 소공녀 님이십니다. 이렇게 강한 분이 소공녀 님을 위해 일한다니."

그리고 이점 셋.

사천배후성주가 이시아의 편은 아니지만, 당장 눈앞에서 내게 설설 기어야 하기 때문에 말이라도 이시아의 편을 드는 척 하게 만들 수 있다.

"별 일 아닙니다."

이시아는 이지적이고 냉철한 소공녀의 모습으로 마인들을 대했다. 천가장에서는 천마신화정으로 냄비를 태우던 그녀는 사라지고, 완벽초인이나 마찬가지인 철의 여인이 내 옆에 있었다.

"보고하세요. 이 표행은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안에 든 물건은 또 무엇이고? 왜 사천배후성주가 직접 이동하는 거죠?"

속사포같은 질문의 연속에 청창살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모처럼 빙백신공을 보인 만큼, 손에 한기를 뿌리며 그를 협박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얼려버리겠다.

"저희는 섬서, 서안으로 가는 길입니다. 안에 든 물건은 일반 표행에서 쓰는 물건들과 술이며, 제가 직접 가는 이유는 마검비 님께 이 술을 진상하여 사천으로 모셔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마검비를? 어째서?"

"돈이 되니, 크흠. ...마검비께서 존재하시는 것 만으로 경제적으로 큰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창살 왈.

마검비가 섬서에서 색마들을 제압함에따라 녹림의 무리들도 섬서에서 많이 사라졌다고 하더라.

치안이 안정되니 사람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표행도 활발해지니 섬서성 전체가 크게 이득을 보고 있다고 하더라.

"마검비 님 덕분에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곳은 단연 섬서성 관아이나, 종남파 또한 의외로 크게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화산파도 마찬가지고요."

"정파 무인들이 왜?"

"색마들을 제거한다는 약조만 하면, 마검비는 검각주로서 정파 무인들을 비무로 상대해주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는 선주희, 매화검수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시아 또한 나와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의 전전대 검마가 아니라, 사실상 검각주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마침 마검비께서 약조한 날도 끝으로 다가오니, 그분을 사천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요즘 사천 일대에 색마들이 준동하기 시작했거든요."

"혹시 아미파의 장문인이 폐관수련에 들어갔기 때문입니까?"

"역시 소공녀 님이십니다. 멸색사태가 장기간 폐관수련에 들어가자, 사천 일대에 색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미파 장문인, 멸색사태 한 명이 폐관수련에 들어갔다? 그것 때문에 색마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비천?"

이시아는 뭔가 걸리는 듯 했고, 나는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줄 물꼬를 텄다.

"혹시 마교 십마 중 누군가가 이곳에 있나?"

"......."

청창살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목숨이 위협받더라도 대답하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걱정마세요. 대공자가 당신에 해코지를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사천에 염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죠? 그녀는 지금 지린염마가 아니라 비천염마입니다."

"...제가 진정으로 믿어도 되겠습니까?"

"물론. 이 남자를 걸고."

왜 나를 거나 싶었지만, 나는 이어지는 이시아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가 제 전부입니다. 저를 전적으로 믿으세요."

이시아는 청창살에게 신뢰를 명령했다. 청창살은 한참을 나와 이시아를 번갈아보다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포권을 취했다.

"사천배후성주 청창살, 옛 곽신환이 소공녀 님께 충성을 바칩니다."

"곽신환이 옛 이름이오?"

"지금은 청창살이 저의 이름입니다."

이래도 될까, 마교는. 도대체 그에게 무슨 과거가 있었길래 이름을 저런 식으로 바꿨을까 나는 궁금했지만, 남자라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마검비 님을 사천으로 모시고 사천의 상황에 중재를 요청하러 가고자 합니다. 마검비 님만이 사천의 혼란을...막을 수 있지 않을까하여."

"중재?"

"예. 지금 사천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청창살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뢰마께서 검담을 초빙하여, 당문세가를 멸문시키려고 중입니다. ...염마께서 은거 중이신 사천당문을."

"검담?"

내가 왜 거기서 나와.

* * *

사천.

당가에는 숨겨진 미녀가 있다.

오랫동안 두문불출하는 여인은 당가의 지극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방계는 커녕 직계의 사람들도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미녀라고 칭송받고 있다.

당서희를 보고 싶은 자, 화골산우진을 뚫어야 할 지어니. 당서희는 스스로 화골산우진의 안으로 들어가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 드디어 사천당가에 독녀봉이 등장하는구나!

사람들은 그녀가 차기 육봉에 오를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당서희를 상대로 사천 일대에 모르는 자가 없는 창녀였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다음 날이 되면 독에 중독된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당서희는 아미파의 정조, 정자사태와 더불어 사천의 여성 무인들의 희망처럼 떠올랐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벌써 초절정의 고수가 되었다고 하더라. 사천당문 가주조차 당서희에게는 한 수 접어줘야 한다고 하더라.

소문은 무성하게 사천 전체로 퍼져나갔다.

두문불출하며 일 년이 넘는 기간동안 수련만 거듭하는 여인이 과연 어디까지 강해졌을까.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끝나질 않는 가운데, 사천에 기이한 움직임이 발생했다.

- 색마들이여, 모두 이곳에 모여라.

사천 일대에 쉬쉬하고 있던 색마들은 모종의 편지를 받게 되었고, 그들은 편지를 보낸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 나는 검담이다.

검담은 사천의 색마들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 * *

사천당문에 은원을 가진 중년 무인, 단삼은 폐허가 된 제갈량의 사당을 지나 협곡 아래로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예비 색마들이 모여있었다. 단삼은 복면이나 갓으로 정체를 가린 이들을 훑으며 그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모두 일류 고수다!'

절정 고수인 단삼에 비교할 만큼 강하지 않지만, 그들은 사천 일대에서 제법 유명한 강자들이었다.

심지어 운남에서 올라온 이들도 보였다.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던 검담이라는 자가 왜 이런 강자들을 불러모았는지, 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저벅, 저벅.

요염한 발걸음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우야."

그녀는 다소, 아니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노출이 심한 의복을 입은 채 나타났다. 하얀 비단옷은 미려한 몸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무릎까지 닿는 치마는 다리를 조이듯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심지어 소매없이 겨드랑이까지 드러낸 여인은 홍등가 홍기보다 더 야했다.

달에서 내려온 선녀가 지상의 색에 물들어 타락한 것만 같은 음란한 복장에 남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반가워요. 저는 검담 님의 대리, 뢰연(雷戀)이라고 해요."

파지직. 여인의 손에 쥔 부채에서 전격이 튀었다. 단삼은 순간적으로 여인이 풍긴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검을 움켜쥘 뻔 했다.

초절정.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천당문을 습격하기 위함이에요."

"당문을 습격한다고? 제정신인가?"

"예. 다들 사천당문에 은원을 가지고 있잖아요? 가만히 앉아서 저주만 퍼부으면 어디 당문이 망하기라도 하나요? 직접 힘으로 복수해야죠."

뢰연의 목소리에 남자들을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검담께서는 사천당문을 습격하기 위해 칼을 갈아오셨답니다. 당신의 안녕을 해치고 보물을 훔쳐간 당가를 벌하기 위해, 그분께서는 당가를 지켜보셨죠. 그리고 결정하셨어요."

서걱!

뢰연의 손짓 한 번에 사천당문이라고 적어놓은 현판이 수십 갈래로 쪼개졌다. 현판은 번개를 맞은 것처럼 검게 그을렸다.

"하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하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검담 혼자서 무엇이 불가능하단 말인가?"

"몰살!"

뢰연의 말에 무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당가의 모든 이들을 죽여버릴 거예요. 그 과정에서 뭐...당서희? 당가의 미인들을 범하는 건 자유에요. 간살하는 거죠. 당가 가주든 아니면 다른 누구든 마음껏 능욕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뢰연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당가의 핏줄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 그게 중요하죠."

"죽이기 전에 범하는 것 정도는 눈감아주겠다?"

"네. 괜히 당서희 예쁘다고 자기가 납치해가는 그런 병신만 없으면 얼마든지 범해도 좋아요. 당서희가 아니고 다른 여아들도 마찬가지고요."

뢰연의 말에 무사들은 전부 비릿하게 웃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검담'이 돕는다고 한다. 당장 눈앞의 여인만 하더라도 초절정 고수인 만큼,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한꺼번에 당가를 덮치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다.

"계획은 습격 당일에 알려드릴게요. 만약에 배신하겠다고 미리 알리면 그 자부터 죽이겠지만, 알려도 돼요. 그럴수록...당가의 무사들은 당가에 모여서 하나하나 쫓을 필요가 없을테니."

뢰연의 살기어린 목소리에 무사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삼은 순식간에 100여명에 이르는 무인들이 다른 곳도 아닌 당가를 습격하기로 했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확실히 당가는 원한을 살 일이 많은 자들이었다.

단삼만 하더라도 당가에서 관리 소홀로 분실한 독사에 의해 사형을 잃었다.

"빠질 사람은 알아서 빠져요. 대신 당가를 상대로 살겁을 일으키는데 괜히 중간에 낄 생각 말고. 알겠죠? 그런 얌체같은 새끼는...내가 죽여줄테니."

뢰연의 겁박에 단삼은 손발이 벌벌 떨렸다. 진득한 살기를 지닌 여인은 분명한 초절정 고수 이상이었다.

할 수 있다.

사천당문에 복수할 수 있다!

"맡겨만 주시오. 본인은 최선을 다하겠소."

검담의 소집 하에, 사천당문을 습격하려는 세력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 * *

"바보같은 사람들."

뢰연, 아니 뢰마는 자신의 힘과 검담이라는 이름을 믿고 떠난 남자들을 비웃었다.

검담? 사칭이다. 뢰마는 일부러 사천 일대 최강자의 이름을 빌어 호가호위했다.

검담은 당가에 대한 은원을 가지고 있었다. 세가 하나를 멸망시키는 은원이냐고 묻는다면 뢰마 본인도 모른다.

어차피 검담은 존재하지도 않고, 뢰마 본인도 나서서 싸우지 않을테니.

"대공자께서 흔쾌히 수용해주셔서 다행이지."

뢰마는 염마를 끌어내기 위해, 황보세가 습격 사건 당시 무마의 계획을 적절히 인용했다. 뼈대를 그대로 가져와 사천 상황에 맞게 살을 덧붙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조금 더 체계적이고 조금 더 지독한, '염마 당서희'가 어떻게 나올지 확인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흐흥, 어디 한 번 느긋하게 기다려볼까?"

"안 될 말이지, 미친 년."

저벅, 저벅.

피곤에 절은 얼굴의 중년 여인이 곰방대를 피우며 뢰마와 마주섰다. 그녀는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복장으로, 옷에는 거미줄과도 같은 무늬가 가득했다.

"은퇴해서 뒷방 늙은 이가 되어도 모자랄 년이 어딜 사천당문을 넘봐?"

"호호, 건방지네.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지껄여?"

뢰마는 부채를 펼치며 입을 가렸다.

"반로환동도 못하고 늙어가는 년이."

"이런 썅...!"

중년 여인은 뢰마를 향해 번개처럼 장침을 날렸다. 뢰마는 그녀를 비웃으며 부채를 살랑거렸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넌 나한테 안 돼.""

뢰마는 품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들었다. 작게 밀봉된 구슬은 황보세가 습격 당시 색마들에게 배포되었던 미사용 섭혼향이었다.

"너도 같이 사천당문을 망가뜨리자, 전대 독마."

파지지직!

강력한 전격이 협곡을 가득 채웠다.

[작품후기]

??? : 오홍홍 퍼가용~~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