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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장의 일상
혈교주는 말했다.
요리하는 여자는 정말 예쁘다고.
- 앞치마 두르고 머리를 말총처럼 묶은 다음에 보이는 뒷덜미...쓰읍.
나는 혈교주의 말에 지극히 공감했다. 그냥 머리칼을 두는 게 아니라, 말총처럼 하나로 가지런히 묶어 뒤로 넘겼을 때 보이는 뒷덜미는 뭔가를 자극하는 매력이 있었다.
다만 그 매력을 압도하는 화재현장이 있다면 매력은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뭘 튀겼지?"
"......."
사공희와 독고연은 마당 한 가운데 놓아둔 솥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다. 장작 위에 올려진 넓은 철판 냄비에는 무언가가 지글지글 끓다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왔다.
"그...만두를 튀겨보면 어떨까 해서."
"다른 것도 같이 넣어봤는데...헷."
사공희와 이시아는 우리와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나는 빙백신장을 주변에 뿌려 화기를 억제한 뒤, 냄비를 식혀 끓는 기름을 진정시켰다.
"만두피가 터졌네요. 안에서 소랑 같이...언니, 수분 제거는요?"
독고연은 금방 현장의 감식을 끝냈다. 까맣게 타버린 만두피였던 것 사이로 흘러나온 만두소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스라졌다.
"수분...? 만두피 넣기 전에 한 번 닦았는데?"
"두부랑 간고기에 물기."
"...아."
두 여인은 침묵했다. 나는 부엌으로 곧장 들어가 부엌의 상태를 확인했다.
"...만두 소가 아니라 죽인데요?"
소라고 빚어둔 것들은 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우리는 부엌의 참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연, 그래도 다행이오. 부엌을 다시 만들지 않아도 되어서."
부엌에 설거지 거리는 넘쳐났지만, 적어도 부엌을 무너뜨리고 다시 만들거나 할 일은 없게 되었다. 나는 둘이 벌려놓은 요리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지난 번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남은 거 수습해서 한 번 구워보도록 하지."
우리는 기름을 체에 걸러 한 번 정리한 뒤, 남은 만두피와 소를 이용하여 적당히 수습해 만두를 튀겼다.
"만두를 튀길 생각을 하다니, 장하구나."
"상공...."
사공희는 칭찬을 받은 것에 눈시울을 붉혔다. 삶기를 숙달한 그녀는 '튀김'이 음식을 물에 퐁당 담그는 것처럼, 기름에 퐁당 담그는 것과 똑같다는 걸 깨닫고 감히 튀김을 시도했다.
'노력하는 자를 어찌 욕할 수 있으리."
부엌에서 냄비를 가져와 넓은 마당에서 한 것에 나는 차마 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나는 요리에 손도 안 건드렸다?"
이시아는 뜨끔했는지 변명을 시작했다.
"장작만 팼고, 불을 지폈고, 만두 반죽만 쳐댔어!"
"......."
절단, 방화, 그리고 폭력을 일삼는 마교인답게, 그녀는 제법 좋은 보조 도우미가 되었다. 나와 독고연이 옆에서 둘을 가르친 덕분에, 드디어 이들은 만두를 튀기는 '시도'까지 하는데 성공했다.
"가가, 저 나중에 아이 생기면 요리 하나는 정말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다."
둘은 요리에 있어서 엄청난 성장을 보였다. 아직 사공희는 삶기에 더불어 튀기기 말고는 더 배우지 못했지만, 우리는 놀랍게도 이시아의 새로운 요리 재능을 발견했다.
"시아, 이거 손질해주겠소?"
"응? 잉어네?"
이시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싱글벙글 웃으며 칼을 들었다.
"잘 봐봐, 이게 바로 천마쾌도라는 거야!"
이시아는 칼을 빙글빙글 돌리며 잉어의 뼈와 살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르고 토막내고 패고 치대고 하는 걸 잘했다. 나는 그게 사람이 아니라 그래도 되는 식자재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상공, 잉어도 지난 번처럼 날로 먹나요?"
"아니. 이번에는 지져먹자."
"왜? 술이랑 같이 먹으면 되잖아."
사공희와 이시아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아무리 그래도 생선을 날로 먹는 건 조금...."
"지난 번에 사천식 장으로 같이 먹으니까 제법 괜찮던데? 백주랑 날것이랑 같이 먹으니까...크으, 생각만 해도 상쾌할 것 같아."
사공희는 물고기를 회쳐먹는 것에 거부감을 내비쳤고, 이시아는 술을 곁들여 먹을 생각에 군침을 삼켰다.
"오늘 저녁은 술 없다."
"...내가 혹시 뭐 잘못했어?"
내 금주령에 이시아는 금방 울상이 되었다.
"만두 터뜨린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아니. 진정해. 그게 아니라, 술이 없다고."
나는 우리의 짐보따리를 가리켰다. 유감스럽게도 멀리 나갔다 왔으나 술은 없었다.
"뭐야. 왜 술이 없어? 중원에 널린 게 술인데. 걔들 혹시 이제 장사 접는데?"
"섬서에서 호북으로 오는 길에 표국이 습격을 받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네가 찾던 술은 없다."
"...끙, 그럼 또 동네 탁주 마셔야 하나?"
이시아는 자신이 찾는 명주가 없는 것에 입맛을 다셨다. 애주가이며 미식가답게, 그녀는 한 병에 은자 최소 한 상자는 써야하는 술이 아니면 좀처럼 입에 대지 않으려했다.
"안되겠다. 오늘 술그릇이라도 좀 좋은 거 써야지. 흐흥."
이시아는 노골적으로 나를 바라보며 잉어손질을 마쳤다. 나는 말끔하게 발라진 살코기를 손질해 전유어를 지졌다.
"이제 금방이군."
저녁은 함께. 준비도 함께. 우리는 넷이서 저녁 상을 만들어 한 자리에 앉았다. 정사각형의 넓은 식탁 위에 정갈한 칠첩반상이 마련되었다.
달그락, 달그락.
석양과 함께 우리는 저녁을 먹고 한 자리에 모였다. 사공희가 깎아 온 과일을 삼키며, 나는 셋의 경지를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사공희, 이시아.
둘은 이제 완전한 절정 고수가 되었다. 한 발걸음만 앞으로 더 내딛으면 초절정 고수의 반열에 오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독고연.
그녀는 산동에 다녀온 뒤 개인 수련에 더욱 힘을 쓰며 초절정 중반에 이르렀다. 이제 호북 일대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곳에서도 독고연을 이길 자는 없었다.
후기지수 중 최강은 커녕, 여느 문파 장문인과 비교해도 이미 견주기가 미안할 정도로 독고연은 강해졌다.
그리고 나.
"......."
세 명의 여인으로부터 매일매일 일정량의 채음을 통해 내공을 모았다. 흡수하지 못하거나 넘치는 과한 내공은 셋에게 나눠 채양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현재 내 내공의 양은 어느덧 3갑자에 이르렀다. 회귀한 지 십 수년은 훌쩍 넘었는데, 이제서야 3갑자에 이르른 것이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도 정순한 3갑자를 쌓았으니까 만족한다.'
태극신공, 천마신공, 그리고 독고신공.
독고 세가의 신공이라 이름이 정말 독고세가스럽지만, 본래 이름은 따로 존재한다.
'정확한 이름이...구 뭐시기였는데.'
독고세가의 개파시조가 구대 문파의 비무행을 다니며 아홉 문파의 내공심법을 파헤쳐, 그걸 하나의 내공심법으로 정립했다던가 뭐라나.
아무튼 태극신공과 천마신공에 견줄만한 내공심법 덕분에, 독고연은 막대한 내공을 쌓았고 나도 독고연을 통해 내공을 엄청 쌓았다.
그리고 이 3갑자는 내가 '채음보양'으로 얻은 내공이다.
즉, 내가 근원으로서 사용하는 내공은 따로 존재하며 이 내공의 양도 어느덧 2갑자에 이르렀다.
보통 내공의 경지만 따졌을 때 5갑자를 훌쩍 넘어가면 화경이라고 쳐주던데, 나는 드디어 큰 소모 없이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장기전도 가능해.'
하루, 아니 사흘 이상 전력을 주고받는 생사결도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현경급 무공을 사용하기 위해 아주 잠깐 사용하거나 1갑자 안에서 최대한 아껴써야 했는데, 이제는 원없이 펑펑 써도 티가 나지 않을만큼 강해졌다.
즉, 단적으로 말해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셈이었다.
내가 익히고 있는 무공의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그걸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난 셈.
단기 결전으로 가정하면, 한 시진 안에 5갑자의 내공을 모두 쏟아낼 경우 현경 중반 이상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
이전에는 무림맹주나 천마를 상대로 초단기 생사결을 노려야 했다면, 이제는 한 시진 내에서 합을 주고받으며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여러모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군.'
내가 성장하는만큼, 새삼 세 여인이 대견스러웠다.
젊은 나이에 이 정도의 무공 실력을 쌓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건만, 이들은 내 채양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견희, 시아, 연."
셋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여인들은 내게 고개를 돌렸다.
"항상 고맙소."
나는 셋을 동시에 끌어안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오."
"저희가 잘 부탁드리죠."
"흐흥, 말로만?"
"가가, 저희 후식도 다 먹었는데...."
셋은 은근한 눈빛으로 내게 신호를 보냈고,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공 수련도 해야지."
일곱 명을 상대로도 거뜬히 이겨낸 나다.
"아 참. 아까 먹은 잉어, 태양화리(太陽火鯉)인 거 알고 있소?"
불끈, 불끈.
나는 태양화리의 양기를 모두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흡수하지 못해 자연으로 흩어지려는 잉여내공을 아랫도리에 불어넣었다.
평소보다도 더 뜨겁게 달아오른 양물에 세 여인의 몸도 금방 달아올랐다.
"오늘 셋 다 잘 생각 마시오."
잠잘 새도 없이, 밤 새도록 내공을 불어넣을 것이다.
강해지기 위해서.
* * *
늦은 밤.
전신에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은 인적이 드문 산길을 넘어가고 있었다. 붉은 갓에 한복과는 다른, 몸에 착 달라붙고 다리 양 옆이 훤하게 트인 특이한 복색의 여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크하하!"
붉은 여인이 말하기 무섭게, 산적들이 뛰쳐나와 여인을 포위했다.
"크으, 꼴리는 년이로다!"
"아주 덮쳐달라고 엉덩이 살랑살랑 흔드는 게 일품이야!"
"다리를 그렇게 내놓는 건 역시 치녀라고 알아달라는 거지? 크으, 이 몸이 안아주도록 하마!"
남자들은 여인의 복색을 보며 색욕을 숨기지 않았다. 여인은 세상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게.... 나보다 약한 남자를 안을 생각은 없어요."
"크하하! 발랑까진 년이 말하는 것 하나 일품이구나! 어디 말만큼 몸도 대단한가 한 번 볼까?!"
남자들은 무기를 들고 여인을 덮쳤다. 한 명의 여인을 남자 여럿이서 덮치는데 남자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강호에 색마가 너무 많아."
여인은 남자들을 둘러보며 갓을 슬쩍 들쳤다. 남자들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무슨...?!"
"귀신?!"
여인의 머리칼은 피처럼 붉었다. 눈동자마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검은색'이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검정이 피의 색과 바뀐 것처럼, 삿갓 아래의 여인은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긴 붉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지금 물러나면 뇌사로 봐드릴게요."
"뇌사?"
"...하여튼 강호인들이란."
여인은 몇 번이고 혀를 차고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반신불구로 만들어드리죠."
"크흐흐, 그렇다면 우리는 네 년을 자지밖에 모르는 여자로 만들어주마!"
색마들은 다시금 여인을 향해 달렸다. 붉은 머리의 귀신이든 말든, 일단 여인은 이 근방에서 보기 힘든-아니 천하에 보기 힘든 미녀였다.
"......."
여인이 다리를 슬쩍 옆으로 벌리며 허벅지로 손을 뻗으려던 순간.
서걱, 서걱!
색마들의 목이 단칼에 베였다. 사방에 몰아치는 피분수에 여인은 가볍게 진각을 밟았고, 바람이 휘몰아치며 여인에게 뿜어지는 핏방울을 모조리 튕겨냈다.
"괜찮습니까."
어두운 나무 사이에서 검을 든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찰랑거리는 흑발 여인은 적발 여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녀였으나, 그녀의 손에 들린 검에는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사정없이 죽이시네요. 마인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정파인이지만, 색마 만큼은 피로써 다스릴 뿐입니다."
적발 여인은 쓰게 웃었다. 주변의 아찔한 혈향은 그녀의 옷에 스며드는 것처럼 사이한 기운을 퍼뜨렸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동생."
"동생...?"
"아.... 아닌가요? 전 저보다 연하인 줄 알았는데...?"
"...풋."
흑발 여인은 더할 나위없이 밝게 웃었다.
"본인의 나이가 올해로 불혹을 넘었답니다."
"네? ...어머, 세상에. 언니 진짜 저보다 연하인 줄 알았어요!"
적발 여인은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관리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언니?"
"언...니?"
흑발 여인은 다소 거리감 없는 호칭에 그저 웃기만 했다.
"...훗, 그래. 앞으로 언니라고 부르거라."
"네, 언니! 아...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류...미아라고 한단다. 류미아."
"류미아...예쁜 이름이네요! 저는...."
적발의 여인은 한 손을 가슴에 올리며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김...금소예라고 한답니다."
[작품후기]
네
맞아요
그 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