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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
간밤을 떠들썩하게 만든 황보세가 습격 사건은 미수로 끝나고 말았다.
황보세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먼저 무인들을 제압하느라 황보세가의 무인들과 가주인 황보염이 중상을 입었다.
- 색마들 중에는 섭혼향에 중독되어 조종되는 이들 또한 있었소!
황보세가 무인들은 아무도 죽이지 않고 습격자들을 제압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황보세가의 용맹함과 무식할 정도로 선한 성정에 마음이 울컥했다.
- 세가를 강간하려고 든 놈들을 살려? 다 죽였어야지!
일부 과격한 자들도 있었으나, 이에 황보세가의 답은 한결 같았다.
- 이미 무림인으로서 그들은 죽었소. 나머지는 국법의 지엄한 심판을 받게 할 뿐.
팔대세가의 여식들을 범하기 위해 연회장을 찾은 무인이 어디 더이상 밖에 나갈 수 있겠는가?
정체를 완전히 숨기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어딜 가더라도 '황보세가를 습격한 색마'라는 이름으로 평생 욕을 먹을 것이다.
또한 감옥에서 평생을 썩을 것이다.
관무불가침이라고는 하지만, 무림인들이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피해를 끼친 경우에는 관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황보세가와 물밑에서 이야기를 마친 산동성주는 당당히 관병들을 내세웠다.
- 체포하라!!
수 백에 이르는 황보세가 습격 사건의 용의자들이 구속된 가운데, 황보세가는 관아와 협조하여 습격자들의 뒤를 캐내는 데 성공했다. 수백 명의 용으지 중 가장 의심스러운 이들과 '깊은 이야기'를 통해 습격단의 실체를 알아냈다.
비색단이라는 색적(色敵) 무리를 만들어 혼란을 야기한 자.
- 방을 붙여 소주지라는 자를 추포하라! 붙잡는 자에게는 포상금을 내리겠다!
- 소주지는 황보세가의 창고를 털어 막대한 금은보화를 훔쳐갔소. 놈을 붙잡는 자에게는 황보세가에서 큰 사례와 함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오.
스스로를 소주지라는 이름을 붙인 그는 색마들을 동원하여 혼란을 일으킨 다음, 황보세가의 창고를 털었다.
그렇게 황보세가 습격 사건은 주모자 소주지만 자취를 감춘 채 일단락 되었다.
그들이 범하고자 노린 황보세가의 일곱 자매들은 모두 무사했고, 오히려 그들을 조롱하듯 탈혼붕권의 방에서 안전하고 무사하게 밤을 넘겼다고 전해졌다.
비록 재물의 손해는 있었으나, 황보세가는 무사히 모든 것을 지켜냈다.
그리고 아침.
단 한 명.
황보세가에서 모습을 감춘 이가 있었다.
* * *
"그게 무슨 말이야! 사라지다니! 커헉!"
황보염은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각혈과 함께 몸에 두른 하얀 붕대에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진정하십시오, 가주님."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소, 총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황보염은 주먹으로 명치를 두드리며 한탄했다.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질러놓고, 어찌 도망갈 수 있어!!"
"흐흑, 흐흐흑...!!"
여섯 자매들은 눈물만 계속 흘릴 뿐이었다. 특히 장녀는 짙은 화장이 번질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
황보혜지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저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으나, 그 설움에 황보세가의 가솔들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
"탈혼붕권, 이 개같은 자식...!"
황보염은 진심으로 분개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보이지 않았던 그는 황보세가 어디를 찾아봐도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자신감을 내비치더니...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단지 편지 한 통만을 남긴 채, 탈혼붕권은 도망쳤다.
일곱 자매와 광란의 밤을 보내고, 도저히 견디지 못해 도망을 가버린 것이다!
"이...이 개...."
- 색풍이 두렵소.
황보염은 눈앞에 놓인 편지를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 만약 편지를 찢어버릴 수만 있다면 당장 찢어버렸고, 태워버릴 수만 있다면 금방 태워버렸을 것이다.
- 죄송합니다, 가주님. 저는 싸우다 죽고 싶지, 여인의 아래에 깔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혜지가 무섭습니다.
"혜지야, 네가 참지 그랬느냐!!"
"......죄송합니다."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남자가 여자가 무서워서 도망을 갔을까! 초절정 고수가 여인네가주는 절정을 이기지 못해서 야반도주를 해...? 그것도 여자와의 밤일이 무서워서! 아아, 딸아. 도대체 너는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그저, 아이 만들기를 했을 뿐입니다."
"아아...."
황보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설마 자신의 딸이 그런 방면으로 초절정 고수조차 이기는 초고수(?)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솔들의 말에 의하면 침대의 하얀 보가 붉게 물들었다고 했다.
즉, 이번이 첫 경험이었다. 장녀를 제외한 모든 자매들이 첫 경험이었고, 황보혜지는 첫 경험에 남자를 도망가게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재능인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웃픈 상황에 황보세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
황보염은 분노를 삼키며 편지를 뒤집었다.
[맹호패왕권(猛虎覇王拳).]
편지의 뒷장에는 탈혼붕권의 무공이 구결 하나 남김없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거친 산군의 기세가 느껴지는 간결하고 거침없는 글귀에 황보염은 구결 한 번만 읽고도 맹호패왕권의 요체를 이해할 정도였다.
조금만 더 성장한다면, 진정한 천하제일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기호지세로서, 황보세가는 호랑이가 하늘을 달리는 날개가 되어줄 수 있었다.
"이런 대단한 무공을 익혔으면서 어찌 그런 선택을...!"
단지, 산군은 동굴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일곱 아내가 무서워 꼬리를 말고 도망가버렸다. 날개가 자신의 몸을 옥죄여 죽이기 전에,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쳐버렸다.
밤일을 못했는가?
그건 아니다.
탈혼붕권은 일곱 자매들을 모두 절정으로 기절시켰을 정도로 잘했다. 한 명 한 명 상대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서넛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일곱 명의 안에 사정하고 지쳐 쓰러지게 만들었다.
한 명당 한 번이라고 해도 일곱 번이다. 설마 남자가 어디 한 번만 사정했겠는가!
다소 부끄러운 말이지만, 한 명당 최소 세 번은 사정한 듯한 양이었다.
"이런 남자가...어찌!"
황보염 본인도 남성으로서는 한 수 접어줘야겠다 싶을 정도로, 그는 뛰어난 남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님, 그 사람을 너무 힘들게 했어요."
"죄송해요, 아버지. 저희가 춘약에 중독되는 바람에...."
"저희가 그 분을 떠나게 만든 거예요...훌쩍."
심지어 자신을 버리고 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황보세가의 일곱 자매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도망간 남자의 편을 들었다.
환상적이었다. 그게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끄응...!!"
심지어 춘약에 중독되어 폐인이 될 뻔한 여인들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모든 음식, 심지어 물에까지 들어간 미약은 여인들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했고, 미약을 분석한 의원의 분석에 황보염은 기겁하고 말았다.
- 성욕을 해갈하지 못했다면, 평생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 되었을 것.
"끄으으으으응!!"
황보염은 고뇌에 머리가 아파왔다. 어찌보면 탈혼붕권은 딸들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여인으로서의 생명을 잇게 해준, 제 한 몸 바쳐 자신의 정력, 아니 전력을 희생한 사내였다.
"죄송해요, 아버님...."
단지, 호랑이는 암사슴에게 깔려 굴욕을 당했다. 사냥감에게 역으로 사냥을 당한 굴욕에, 암사슴에게 살해당할 뻔했다는 위협에 그만 도망치고 만 것이다.
"탈혼붕권 무명.... 결코 용서치 않겠다."
황보염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수미천왕신공에는 어느새 맹호의 기상이 깃든 것처럼 전신에서 기세가 사납게 일었다.
"내, 놈을 반드시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놈을 잡아서...."
황보염은 편지의 마지막 구결을 살폈다.
- 혜지를 이기기 위해, 더욱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당장 놈의 멱살을 붙잡고 두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이 집안에 다시 데려올 것이다!!"
* * *
"......."
황보세가의 소동이 잠시 잦아든 사이, 황보혜지는 가문 무사들의 호위를 받아 절벽을 찾았다.
"아가씨, 이곳은...."
"떨어지려는 거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황보혜지는 여차하면 자신을 향해 뛰어드려는 무사들을 진정시키며, 절벽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
그 날.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그 야심한 밤.
장녀의 처녀를 앗아가는 거로도 모자라 차녀의 처녀까지 노리고 임신시키려고 생각하던 위지주라는 자를 황보염이 직접 뒤쫓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위지주는 황보염에게 명치를 한 대 얻어맞았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자취를 감췄다.
사실상 위지주는 황보세가의 흑역사였다.
"당신이 거짓말을 한 걸까요, 아니면 그가 거짓말을 한 걸까요."
황보혜지는 배를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이미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굳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달콤한 말만 속삭이며 거짓을 속인 자.
달콤쌉싸름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진실을 말한 자.
"황보세가는...거짓말을 싫어한답니다."
거짓은 황보세가에 있어서 중죄였다. 호협스러운 기질은 황보세가에 있어 거짓을 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누가 진실을 말한 건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10개월.
10개월만 기다려보면 된다. 아니, 10개월도 필요없다.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신체의 신호는 빠르면 다음 달-아니면 다다음달이라도 알 수 있으니까.
생리가 오지 않는다.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속이 더부룩해지기 시작한다.
황보혜지는 완벽한 '지식'을 갖추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은 자를 선택할 것이다.
- 안에 싼다고 아이가 생기는 게 아니라니까.
"......."
하지만 한편으로는 차라리 그 말이 거짓이기를 바랐다. 거짓말인 척, 그냥 안에 사정하고 자신을 임신시킨 게 맞기를 바랐다.
호북, 진가장.
"이미 저는...거짓말을...."
황보혜지는 황보염에게 거짓을 말했다. 누구보다도 거짓말을 싫어하는 황보세가의 여인이 가족에게 거짓을 말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를 위해.
그리고 인생에 있어 두 번째로 마음에 품은 남자를 위해.
첫번째 남자는 자신에게 거짓만 말하고 떠났다.
두번째 남자는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고 떠났다.
둘다 똑같은 색마였지만, 둘다 똑같이 자신의 정체를 숨겼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색마인 걸 숨기지 않았다.
설령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겠죠?"
알고 있으니까 자신의 정체를 넌지시 던졌을 것이다. 그는 황보혜지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며, 황보혜지가 단 하나의 선택만을 내릴 것이라 확신하며 황보세가를 떠났다.
"고마워요."
황보세가를 위해 자존심을 굽혀줘서.
그는 일곱 자매들을 먹고 도망쳤다는 식으로, 색마로서는 자랑스럽게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황보세가에 대한 배려아닌 배려로, 자신이 견디지 못해 도망간 것으로 정체를 숨겼다.
황보세가가 발전하고 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승의 무공까지 남기고 떠났으며, '자신에게'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까지하고 떠났다.
- 제가 희생양이 되겠어요.
그리고 다른 여섯 자매들이 설령 다른 남자와 혼약을 맺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 ...탈혼붕권, 아니 탈혼색마에게 범한 건 저뿐인 거예요.
최소한 탈혼붕권은 대외적으로 황보혜지를 취하고 떠난 도망자니까.
- 언니, 그리고 동생들이 원한다면 다른 남자와 혼인을 맺도록 하죠. 지금까지 저만 그와 함께 지내기도 했고...저희만 입을 닫으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여섯 자매와 혼약을 맺을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것에 무척이나 실망하겠지만, 그 정도 불만은 황보세가의 권세로 억누르면 된다.
"저를...하루아침에 이혼녀로 만들어주셔서."
엄밀히 따지자면 아직 식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황보혜지는 탈혼붕권과 사실혼을 맺은 것처럼 널리 알려졌으며, 황보혜지를 향한 혼담은 뚝 끊어질 것이다.
"만약...제 뱃속에 그 분의 아이가 있다고 한들."
황보혜지는 몸을 일으켜, 절벽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저는 당신을 이 곳에서 떠나보내겠어요. 잘 가요."
황보혜지는 품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안에는 황보혜지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한 가락지가 담겨있었다.
사락.
황보혜지는 가락지를 상자 째 절벽 아래로 집어던졌다. 몸을 돌린 그녀의 눈은 울듯 말듯 눈물이 글썽거렸다.
"...연이는 첫사랑이 이루어지던데."
황보혜지는 눈물을 삼켰다. 눈물은 황보세가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며, 가만히 앉아서 질 수는 없다.
"......조금만 기다려요."
과연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인지.
"...비무에서 질 지언정, 사랑 싸움에서도 지고 싶진 않으니까…!"
[작품후기]
와!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