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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솔직한 심정으로, 황보혜지는 비천색마라는 자가 썩 싫지는 않았다.
색마인 걸 알고 나서도 마찬가지.
비천-다음에 이야기 할 숱한 색마들과 비교하여 다른 호칭으로 부르자면-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음에도 독고연을 우선 신경썼다.
독고연도 비천이 원하는 방향으로 신경쓰며 서로가 서로 한 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서로 당연하다는 듯 입을 맞추고, 당연하다는 듯 연정을 나누는 모습에 황보혜지는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운명은 잔혹하여 더이상 되돌릴 수 없어 자신은 더는 저런 사랑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둘이 보이는 모습에 황보혜지는 조금은 감동했다.
그래서 비천이라는 자가 설령 색마라고 해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일곱 자매를 취하고 버릴 기회가 있었으면서, 황보혜지 한 명만 취하는 걸로 다른 여섯 자매를 건드리지 않았다.
색마가 겁탈하지 않는 것에 고마워해야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는 했으나, 무림맹주의 눈앞에서 독고연을 납치해가는 실력자가 순순히 황보혜지의 말을 들었다.
무공도 강하고, 얼굴은 다소 미형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합격점이고, 심성은 속에 발정나기는 했지만 야수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독고연에 대한 마음은 색마에게 찾아볼 수 없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황보혜지는 비천의 종잡을 수 없는 정체에 놀랐다. 한 꺼풀 벗기면 또다른 존재가 나타나는 것처럼, 그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황보혜지를 놀라게 했다.
"...그리하여, 이런 계획에 따라 우리는 황보 칠자매를 겁탈할 것이오."
잔인하고 체계적이며 지독한 모략가.
비천은 소주지라는 이름으로 황보세가를 전복시킬 계획을 만들어냈고, 그냥 듣기에도 계획은 완벽에 가까웠다.
"설마 무투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딸들을 겁간하기 위한 색마로 돌아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소?"
모르고 당하면 사실상 끝장이나 마찬가지인 계획에 황보혜지는 손발이 덜덜 떨렸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황보염에게 모든 음모를 밝히고 싶을 지경이었다.
"정말로...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내게는 비밀병기가 있소이다. 믿고 맡기시오."
기나긴 비천의 계획 설명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성공할 확률은 7할. 어떻소?"
"......."
절반은 7할이라는 성공 가능성에 반색하고, 나머지 절반은 3할이라는 실패 가능성에 인상을 찌푸렸다.
"형장, 듣자하니 제법 머리 깨나 쓰셨구려. 그런데 계획에는 실패 요인이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실패할 확률이 3할이나 되는 건 어째서요?"
"거사까지 시간이 남았는데, 그 동안 계획을 냅다 황보염에게 알릴 배신자가 있기 때문이오."
황보혜지는 속으로 뜨끔했다. 그럴 생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괜히 자신을 향해 말한 것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 참가하지 않을 자들은 지금 돌아가시오. 마지막 경고요. 황보 칠자매를 황보염이 보는 앞에서 함께 돌려먹지 않을 거라면, 당장 이 자리에서 꺼지시오."
황보혜지는 순간 분노하여 뒤에서 주먹을 날릴 뻔 했다. 마음의 준비 이상으로 더한 비윤리적인 말에 그녀는 주먹이 울었다.
하지만 옆에서 자신의 손을 꼭 붙잡는 여인의 살기에 주먹에 힘을 풀었다. 아쉽게도 자신보다 강한 친우는 비천-색마의 편이었다.
"흥. 나는 돌아가겠다! 설마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몇몇 남자들이 몸을 돌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이 하나 둘 불안감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괜찮은 거요? 저들이 괜히 밖에 나가서 말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지금부터 불안한 3할을 제거해야지. ...음, 이 정도면 되겠군."
비천은 절 터에 모인 이들을 향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우리 동료가 된 기념으로 먼저 사람들 좀 담구고 시작합시다."
"담군다니, 누구를?"
"당연히 작전의 불안요소를 제거해야하지 않겠소?"
비천은 절 터를 떠난 이들을 가리켰다.
"잡아다가 여기 묻읍시다."
비천의 계획에 황보혜지는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우리와 함께 하지 않겠다면, 우리가 황보세가를 따먹는 걸 보지도 듣지도 못해야 되지 않겠소?"
그는 누가봐도 색마이며, 악인이었다.
* * *
천하 무림인 중 머리가 뛰어난 사람으로 나는 다섯 명을 꼽는다. 그 중 나는 이미 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파천신검 독고연.
미래천마 이시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꼽아보자면, 나는 세 명을 그들의 위에 올려둘 것이다.
무림맹의 군사이자 현재 와백봉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제갈세가의 여인, 제갈선.
이시아의 친오빠이자 마교의 악질적인 모든 계획을 관장하는 대공자, 주지.
그리고 그들보다 단연코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진 존재, 혈교주.
무림에서 한 집단의 계획과 계략을 짜고 실행함에 있어 이 다섯을 따라오는 자는 누구도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중 단연코 으뜸인 혈교주의 옆에서 머리 굴리는 방법을 배웠다.
- 인간을 하나로 묶는 방법은 공통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혈교주의 말에 따라, 계획을 들어놓고 색마행에 동참하지 않은 겁쟁이들을 땅에 묻었다.
"사, 살려주시오! 말하지 않겠소!!"
"점혈해달라고? 알겠다."
절 터에는 십 수 개의 머리가 죽순처럼 돋아나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너희들은 우리 비색단과 함께 할 수 없다."
"퉤. 겁쟁이 놈들."
"크흐흐, 우리가 황보 년들 따먹는 동안 너희는 여기서 땅에다 좆질이나 해라."
그들을 붙잡은 색마들은 발로 머리를 밟거나 침을 뱉는 등, 마음껏 모욕을 줬다. 역시 황보세가를 윤간하자는 계획에 동참한 악인들 다웠다.
'혈교주랑 주지가 이런 쪽으로는 놈들 잘 다루지.'
나는 악인들을 어떻게 다루는 지에 대해 도가 튼 사람이다.
"이보시오, 소주지. 이 놈들 그냥 죽이면 안 되나?"
"안 되오. 괜히 죽이면 귀찮은 일이 벌어지니. 살인멸구가 항상 좋은 방법은 아니지."
"후환을 남겨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데."
"내가 언제 안 죽인다고 했나? 지금 당장 죽이지는 않을 것이오."
내 말에 색마들은 만족한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거사를 치르고 좆맛에 헤실거리는 황보 년들을 데려와 얼굴을 보여준 다음, 그 다음에 죽여도 늦지 않지."
"하하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나는 겁쟁이들을 능욕하자 제안했고, 색마들은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들을 훑었다.
33명.
그 중에 약 6명 정도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따라오고 있으며, 나머지 24명은 진심으로 황보세가의 여식들을 범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3명.
그들은 감히 나를 향해 건방지고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뒤의 여인들을 눈으로 흘기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크흐흐, 그런데 소주지. 그대만 좋은 거 먹고 그럴 건가?"
"우리 황보 년들을 나눠먹을 거 아니오? 그럼 지금부터라도 좋은 건 나눠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본좌의 도움을 얻고 싶거든 뒤에 있는 여자들을 둘 다 내어놓거라, 하하!!"
"건방진 놈들. 연."
"부르셨습니까?"
"저 놈들에게 너희가 직접 징벌을 내리거라."
내가 말하기 무섭게, 두 여인은 앞으로 뛰쳐나갔다.
사락.
독고연의 검이 두 번 움직이자 두 명의 남자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황보혜지의 간결한 장법에 남자 한 명은 안면을 얻어맞고 쓰러졌다.
툭, 투둑.
검에 베인 두 남자의 바지 아래로 무언가 덩어리가 피와 함께 떨어졌다. 독고연의 검에는 피조차 묻지 않았고, 색마들은 하나같이 긴장하며 내공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내가 탈혼붕권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게 이해가 가나?"
초절정 고수와 절정 고수의 압도적인 힘에 남자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부분 일류 수준의 고수이기에, 독고연과 황보혜지가 자신 이상의 강자라는 걸 확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럼 거사일까지 조용히 지내시오. 연, 혜, 가자."
"자,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나만 물어보겠소!"
"또 뭐지?"
"황보염이 설령 날뛰어도 이길 수 있다는 비밀 병기가 대체 무엇이오?"
"...훗."
나는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내 손에는 구슬이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끼워져 있었다.
"섭혼향이오. 효과는 보시다시피...."
스르륵. 나는 섭혼향이 든 구슬 하나를 터뜨렸다. 내 앞, 땅에 박혀있던 남자는 섭혼향을 맡고 곧장 눈이 몽롱해졌다.
풀썩. 그는 순식간에 잠들었다. 색마들은 남자를 보며 두려움에 빠졌고, 나는 남자의 털을 발로 들어올리며 물었다.
"네 본심을 말해봐라."
"으아아, 씨발 탈혼붕권 조지고 황보혜지 존나게 따먹고 싶다아아아!!"
"보이는 바와 같이, 수면향인 동시에 강한 자백제이며...마음껏 조종할 수 있지."
섭혼향의 효과는 완벽했다.
"우리는 이걸 연회장에서 터뜨릴 것이오."
* * *
"...이게 대체 뭐야?"
뢰마는 서찰에 적힌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는 바닥에 박힌 사람들을 보고 경악했다.
"씨발, 나도 할게! 누구보다 잘 따먹을 수 있다고!!"
남자들은 하나같이 악다구니를 쓰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땅에 몸이 박힌 채 목만 내민 그들은 내공을 쓰더라도 나올 수 없어보였다.
"점혈당했어."
뢰마는 땅에 박힌 무인들의 상태를 보고 기겁했다. 누가 이리도 많은 이류, 일류 고수들을 땅에 묻은 걸까?
"젠장, 망할 소주지 새끼, 죽여버릴 거야!!"
도대체 누가 주지를 사칭한단 말인가. 뢰마는 남자들이 지껄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몇 가지 정보를 파악해냈다.
하나, 소주지라는 자는 두 명의 여인을 데리고 나타났다는 것.
하나, 미약하지만 섭혼향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 땅에 박힌 남자들을 상대로 섭혼향을 쓴 게 틀림없다.
그리고 하나, 그의 계획은 명백한 틈이 있다는 것.
'황보세가에서 알고 대처하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도 뢰마는 색마들이 말하는 황보세가 윤간 계획의 실체를 파악했다.
"...흐응."
뢰마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내공을 일으켰다. 아직 제대로 쉬지는 못했지만, 소주지 사칭범과 여인 둘이 남기고 간 흔적을 쫓기에는 충분한 체력이 남아있다.
그 자에게 찾아가서 직접 묻고 싶었다.
혹시 이런 멋진 계획에 뢰마의 제안을 아주 약간, 조금이라도 첨가하는 건 어떻냐고 묻고 싶었다.
"아니지, 아니야. 굳이 물어 볼 필요도 없지."
사건의 중심이 되는 곳에서 비밀리에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감히 대공자를 사칭하는 무뢰배의 계획을 혼돈에 빠뜨릴 것이다.
"진실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어디 손 좀 써둘까? 후후."
사락.
뢰마는 옷을 갈아입고 밤거리를 달렸다. 일부러 노출도를 높인 그녀는 어두운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을 찾았다.
"흐흐, 우리랑 놀러왔, 커헉!"
"너희 두목한테 볼 일이 있어서 왔다. 어서 안내해."
뢰마는 자신을 덮치려던 남자 하나를 전격으로 구워버린 뒤,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싱긋 웃었다.
"혹시 춘약 남는거 좀 많니?"
* * *
운명의 날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황보혜지와 단 둘이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도착한 곳은 당연히 독고연이 머무는 객실. 내공을 쌓던 그녀는 우리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반겼다.
"드디어 내일이 결행일이네요."
"그래. 동시에 우리가 떠나는 날이기도 하지."
황보혜지를 범하는 즉시 독고연과 함께 우리는 제남을 떠날 것이다. 남은 건 황보혜지의 몫이며, 이제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조금 이해는 안 되지만.'
그녀는 내게 자신의 몸을 허락했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고 한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자신의 몸을 허락하면서까지 계획에 능동적으로 동참한다?
'이상한데?'
내 머리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른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서 일곱번도 더 박히겠다는 게 더 중요했나?'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정조를 포기하면서 세가를 지키려는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뭔가 조금만 더 생각하면 실마리가 보일 것 같은데.'
황보혜지가 몸을 허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으로서 가장 그럴 듯한 가정은-
"가가. 혜지가 보고 싶다는데요?"
"뭘? 내 무공? 그거 어제도 형을 보여줬는데?"
"아니요, 저희 내공수련이요."
"...운기조식?"
"아이 참."
독고연은 나를 침대로 잡아끌었다. 이미 침대 옆에는 황보혜지가 의자에 정좌한 채 앉아있었다.
"그, 성교는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아픈 건지 안 아픈 건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허. 연아, 너는 괜찮느냐?"
"혜지한테 보이는 거요? 네. 괜찮아요."
천가장에서의 4개월 동안 그녀는 많이 변했다. 그녀는 다른 여인의 앞에서 자신의 몸을 보여주는 것에 강한 거부감은 없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황보혜지는 괜찮은 모양이다.
"아. 가가, 하기 전에."
독고연은 얼굴을 붉히며, 황보혜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깨끗이 해놨어도, 혜지 앞이니까 오늘은 뒤로 하면 안 돼요. 아셨죠?"
"흐흐. 알겠다. 그런데 연아. 모처럼이고 하니...."
나는 상의'만' 벗으며, 막 옷을 같이 벗으려는 독고연의 손을 붙잡았다.
"오늘은 입고 하자꾸나."
바야흐로, 모의겁탈.
"첫 경험이라 생각하고, 네가 느낀 그대로 보여줘야 한단다. 알겠지?"
나는 황보혜지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이렇게 범하겠노라 선언하기 위해 독고연과 시연을 보였다.
남녀 사이의 상열지사가, 결코 고통이라고는 없는 육체적 정신적 쾌감을 공유하는 것임을 증명하며.
그리고.
"......."
황보혜지는 우리의 정사가 끝날 때까지, 한 순간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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