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90화 (19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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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젠장, 젠장...!"

황보세가 무투대회에 참가했다가 떨어진 중년인, 소중이권(素重二拳) 금삼은 객실에 홀로 들어와 연거푸 술을 들이마시며 분노를 풀었다.

"젠장, 망할 놈의 탈혼붕권...!"

금삼은 탈혼붕권에게 직접 당한 건 아니다. 탈혼붕권이 현천백가의 적자를 상대로 강력한 권격을 쓸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을 뿐이다.

꼴사납게도 충격파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와장창 박살이 났다.

하지만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탈혼붕권은 한 명이고, 설령 자신이 노리던 황보혜지를 품는다고 해도 다른 여섯 명이 남아있으니까.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염의 미친 소리만 아니었으면 그는 술을 퍼마실 일도 없었다.

- 내 딸들을 모두 가지게!

"씨발!"

금삼은 빈 술 병을 바닥에 내팽겨쳤다. 황보염의 미친 짓은 상상을 초월했고, 많은 무인들이 황보세가에 절로 불만을 품게 만들었다.

-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되어야 해!

황보세가 일곱 공주의 지아비는 탈혼붕권이 아니라 소중이권이 되어야 한다.

다른 모든 무사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한 명이서 일곱 명의 여인을 지킨다? 아무리 한 명이 천하제일권에 가까운 남자라고 한들, 한 명이 다수를 이길 수는 없는 법.

"크으...콱 뒤져버려랴."

금삼은 저주를 퍼부으며 창가로 향했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려고 창문을 연 순간, 암기가 날아와 그를 공격했다.

"흡!"

금삼은 주먹을 아래로 뻗어 암기를 튕겨냈다. 손등의 살갗이 찢어질 정도였고, 금삼은 급히 주변을 살폈다.

'없다!'

암기를 날린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급히 벽에 몸을 숨긴 금삼은 암기의 정체에 허탈감을 느꼈다.

'나뭇가지?'

손가락처럼 길쭉한 나뭇가지에는 종이가 하나 묶여있었다. 살기는 더 느껴지지 않았고, 금삼은 매듭묶인 종이를 풀어냈다.

- 황보세가에 복수하고 싶지 않은가?

"......!!"

금삼은 술기운이 모두 달아났다. 행여나 누가 볼까봐 노심초사하며,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편지를 읽어내렸다.

- 우리를 기만한 황보세가, 여자들을 독식한 탈혼붕권에게 복수하자.

"미, 미친."

- 만약 그대가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란다면 오라. 윤간이다.

금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적힌 시간은 당장 오늘 새벽이엇고, 장소는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지금...황보 세가의 여식들을 윤간하겠다는 건가?"

이것은 초대장이다.

정말로 탈혼붕권이 모든 여인들을 지킬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동시에, 황보염의 잘못된 선택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기 위한 정의로운 용사들을 모집하는 격문이었다.

"천하제일권을 두고 그게...가능한가?"

금삼은 손톱을 깨물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한들, 천하제일권과 탈혼붕권이 동시에 지키고 있는 황보세가를 도모할 수 있단 말인가?

팔대세가 중 하나인데?

그러나 그는 이미 전해들은 바가 있었다.

'소주지'라고 하는 자가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이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굳건히 다잡게 만들었다.

- 한 번 바지를 내렸으면 싸기 전에 올릴 수 없는 법.

"...크, 크하하! 이 미친 변태새끼!"

금삼은 광소하며 외투를 걸쳤다. 복면과 갓으로 변장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나도 황보 년들 안에 한 번 싸보자! 씨발,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갓 아래 금삼의 눈에는 색기와 광기로 물들어있었다.

* * *

저벅, 저벅.

뢰마는 제남의 객잔에 들어가 바로 객실 침대에 몸을 눕혔다.

“......피곤해.”

안휘에서 바다를 거쳐, 바다에서 다시 하북으로 간다음, 다시 제남으로 돌아왔다.

중간 중간 대공자 주지를 위해서 몇 가지 일을 하느라 천환단을 챙긴 두 남녀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했고, 뢰마는 그 덕분에 그들이 지나간 흔적만 뒤쫓으며 시간을 허비했다.

아무리 경신법의 고수라고 해도 이 정도로 활동을 한 건 의아하다. 뢰마는 상대가 경신법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과 동등한 존재임을 확신했다.

‘천마신공까지 쓰면 내가 이겨.’

뢰마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감았다. 제남에서는 크게 움직이지 않는 듯 하니, 하룻밤 정도는 쉬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웅성웅성.

바로 옆 방에서 두 남자가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뢰마는 귀를 막기도 귀찮아 그냥 무시하고 잠들려고 했다.

“...정말 안 가도 되는 건가?”

“괜히 갔다가 난리가 나면 어쩌려고.”

“하지만 이제 날짜도 얼마 안 남았잖아. 고작 이틀...아니지. 사실상 하루 아니야?”

“그래서 너는 황보세가 딸년들 따먹는 거 포기할 거냐?”

뢰마는 남자들의 추잡한 말에 입꼬리가 비틀렸다. 별 시덥잖은 이야기였고, 역겨운 강간모의였다.

뢰마는 깊게 잠들려고 했다.

“...주지라는 놈, 정말 믿어도 돼?”

그 이름만 아니었다면. 뢰마는 번개처럼 몸을 일으켜 창문을 뛰쳐나가, 바로 옆 방을 습격했다.

“누구, 커헉?!”

남자들은 뢰마의 발길질에 얻어맞고 모두 한순간에 기절했다.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건드린 뢰마는 남자들이 모아둔 서찰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

“......이게 대공자 님의 계략이라고?"

자신이 모르는 계략이다. 뢰마는 편지의 내용에 표정관리를 할 수 없었다.

"황보세가를 윤간한다...왜?"

뢰마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서찰에 적힌 시간과 장소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직접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뢰마는 서찰과 함께 사라졌다.

* * *

내 개인적인 색마행이 무조건 성공해야하는 것과 달리, 주변에 모인 수많은 색마들은 모조리 실패야해한다.

그냥 실패하는 것을 떠나서, 철저히 패가망신해야 한다. 남근이 잘리는 건 기본이고, 다른 여자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어디 감옥에 가두어야 한다.

“자기는 여자를 범하면서 남들은 범하지 못하게 하다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나 이기적인 놈 맞소.”

순순히 인정해버리자 황보혜지는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려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혜지, 왜 자꾸 밑단을 잡고 있어요?”

독고연은 능글맞은 웃음으로 황보혜지의 허벅지 아래를 쿡쿡 찔렀다. 상대적으로 키가 더 큰 황보혜지는 독고연과 같은 길이의 옷에도 불구하고 더 노출 면적이 심했다.

뒤쪽은 엉덩이만 살짝 가리는 정도로 잘 보이더라. 나는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혈교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당신의 유지는 이것만 이어나가겠소.’

천하를 피로 물들여 무림을 파멸시키겠다는 위험한 사상은 버리고, 혈교주의 <호색론>에서 좋은 문화만 찾아 널리 알릴 것이다.

유교 사상에 공자가 있다면, 호색에 있어서는 혈교주가 있다. 나는 중원 무림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혈교주만큼 호색을 깨우친 자는 보지 못했다.

혈교의 주인이 아니었다면, 그는 ‘색현(色賢)’이라고 불렸을 지도 모른다.

“빨리 빨리 오시오. 다음 색마를 찾으러 가야하니.”

나와 독고연은 빠르게 어둠을 밟고 다니며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제법 깊은 어둠이 깔린 늦은 밤이었으나, 인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흐으으…!!”

황보혜지는 아래에서 누가 볼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붕을 밟아 몸을 숙이면 자연히 무릎이 굽혀지는데, 그러면 치마 밑단이 올라가며 은밀한 곳이 드러나게 된다.

“정말, 정말 안 보이는 거 맞죠?”

“그렇소. 이 어둠에 볼 수 있으면 그게 용이지 사람이오?”

용안!

나는 황보혜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한 명 남았소. 편지를 주시오.”

“여기요.”

황보혜지는 나뭇가지에 서찰을 묶어 내게 건넸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비도왕의 기술을 활용하여, 손목을 가볍게 꺾는 것으로 마지막 서찰을 던졌다.

“흐아암, 날씨 좋-”

푸--욱!

나뭇가지는 창문을 열고 나온 남자의 목을 스치며 벽에 꽂혔다. 나는 혈선녀처럼 입힌 두 여인과 지붕에 엎드렸다.

“뭐야…!”

놈은 화들짝 놀라 서찰을 살폈다. 황보혜지는 남자가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저 남자 설마 백…?”

“현천 백가의 적자지.”

“가가, 설마 저자도 올까요?”

“글쎄. 일단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셈으로 던져봤단다. 우리는 이제 약속 장소로 가자꾸나.”

떡밥은 던졌고, 우리는 서찰에 적힌 약속장소로 몸을 날렸다. 미리 제남을 둘러보며 살펴본 장소 중에는 관과 무림 양쪽에서 감시가 옅은 절이 하나 있었다.

“가가, 사람들이 몰려있어요.”

주지승이 존재하지 않아 폐허가 된 절에는 이미 많은 예비색마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지, 몇 명 같소?”

“...열일곱?”

황보혜지는 절에 모인 예비색마들을 향해 진심으로 혐오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진짜로 오다니….”

그들은 모두 우리의 선동에 의해 황보세가를 습격하기 위해 모인 ‘진짜 색마’들이었다. 황보 칠공주를 윤간하자는 거짓 제안에 낚여, 계획이나 들어보자고 모인 진짜배기들이다.

나는 칠랑쟁패에 참가한 이들 중 특히 눈에 음심이 가득한 놈들 중에서도 특히 악질인 자들을 골라 도발했다.

황보세가라는 이름에 두려움을 느낀 자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진짜 위협은 황보세가에 들이닥쳐 황보칠공주를 윤간하자는 제안에 모인 이 쓰레기들이다.

-누구나 음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기에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나랏님도 속으로 욕하는 게 사람이거늘, 상상으로 나랏님 범하는 것도 못하나?

혈교주는 말했다.

-근데 그걸 실천할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하면, 그건 상상만으로 끝내야 할 문제지. 실행범은 조져야지.

상상은 자유.

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황보칠공주를 윤간하자는 나의 허황된 제안을 진짜로 실행하려는 저 자들은 책임을 질 것이다. 최소한 무공은 폐하게 될 것이며, 최대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슬슬 시간이 되어가니, 우리 제일 중요한 걸 하도록 하지.”

“뭔데요?”

“정체 숨기기.”

나는 두 여인에게 추가로 가져온 흑의를 입혔다. 치마 밑단까지 닿는 긴 장화를 신기고, 어깨 위에 검은 장포를 두르게 하고, 그 다음에는 면사포로 머리와 얼굴을 가리게 만들었다.

“가가,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가가 옷 정말 예쁘게 만드시는 것 같아요.”

“이 정도 쯤이야.”

혈교에서 내 앞에서 궁둥이를 흔드는 혈녀만 12명하고도 몇 명이나 봤는데, 설마 혈녀들의 정식 제복을 내가 모르겠는가.

“이거...저기 신비문파의 주술사들이 입는 것 같네요.”

황보혜지는 순식간에 노출면적이 줄어든 자신의 의복을 보며 신기해했다.

“...예쁘긴 하네요.”

비록 앞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맨 허벅지가 드러나긴 했지만, 아까처럼 사지를 훤히 드러낸 의복보다는 훨씬 움직임이 편해보였다.

웅성웅성.

절의 마당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저들 모두 황보세가를 습격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고, 하나같이 최소 이류 이상이었다.

“연, 혜지. 둘은 가만히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되오. 말은 내가 전부 할테니. 혹시 내가 거친 말을 하더라도 이해해주시오.”

“저들을 속여서 다 잡아들이기 위함이잖아요. 괜찮아요, 가가.”

“...잊지마세요. 저들을 사로잡는 건 황보세가임을.”

“물론이지.”

색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위해, 그리고 황보세가에 실적을 넘겨주기 위해 나는 ‘소주지’가 되기로 했다.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혹시나 서로를 지칭할 때를 대비한 가명을 만들도록 하지.”

나는 땅에 가볍게 글을 썼다. 둘은 내가 쓰는 간단한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월비연.

월비혜.

“천씨가 아니네요?”

“갑자기 뜬금없는 월?”

“그냥 이게 제일 어울릴 것 같아서.”

혈교는 혈녀들을 월녀로 만들기를 바랐다. 나는 한 때 혈교의 중심이었던 자들로서, 혈교가 만들어낼 혈세를 막기로 마음먹었다.

월녀강림.

“하늘에 걸린 달만큼 아름답고, 그에 견줄만한 여인이라는 의미지.”

지상에 이미 아름다운 월녀들이 존재하는데, 굳이 수 십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천계의 여신을 지상에 강림시킬 이유가 있겠는가?

“연. 천상의 선녀가 그대를 보고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할 만큼 아름답구려.”

“가가, 저 방금 마음이 살짝 젖은 것 같아요.”

“웁….”

이미 내 옆에 여신이 있거늘. 황보혜지의 표정이 썩든 말든, 나는 독고연의 면사포를 잠시 들어올려 입술을 맞췄다.

“어머, 가가. 혜지가 보잖아요.”

“보면 어떤가. 부부끼리 사랑을 나누는 건데.”

“...이보세요. 지금 당신 일단은 나랑 밤놀이 나온 거로 세가를 빠져나온 건데요?”

황보혜지는 툴툴거리며 앞을 가리켰다. 절 터에 모인 예비색마들의 아우성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흠흠.”

나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뒤, 나 또한 흑의와 가면으로 변장을 마쳤다.

첫 마디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역시 그게 좋겠다.

“...그럼 갑시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절 지붕 위에 올라섰다. 서로 싸우고 흩어지기 일보직전이던 색마들은 나와 두 여인의 등장에 표정이 굳었다.

“모두 모였군.”

나는 황보염이 했던 것처럼, 그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화두를 던졌다.

“반갑소. 나는 ‘소주지’. 황보세가를 윤간하기 위해 그대들을 이곳에 부른 장본인이오.”

[작품후기]

나날이 늘어나는 사기전과

다음 일러 전까지 9월은 구천현녀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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