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음모
황보세가를 도모하기로 한 색마들은 한 자리에 모여 회의에 들어갔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거요?"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해야지. 지금 다른 놈들도 동참했다잖아. 그 놈들에게 빼앗기고 싶어?"
"그건 아니지만...."
예비 색마들끼리도 의견이 갈렸으나, 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먹지 못하면 남들도 먹지 못한다.
내가 먹어야 한다.
하다못해 같이 나눠 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맛은 봐야한다.
"주지라는 놈의 계획을 들었잖아. 축제가 벌어지는 사이에 서로 다른 조끼리 나눠서 가지면 돼."
"황보염이 정말 술에 취할까?"
"내가 알고 있소. 그 자, 여색은 전혀 밝히지 않아도 주색은 제법 즐긴다고 하더군."
소주지의 음모에 예비색마들은 하나 둘 계획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하나, 세가 가주 황보염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게 만든다.
둘, 탈혼붕권은 소주지가 처리한다.
셋, '눈속임 조'와 '버림패 조'가 안에서 날뛰는 사이 '취식 조'가 칠공주를 몰래 취한다.
세 가지 큰 틀에서 착착 맞아 떨어지는 일련의 계획은 언제부터 준비했는가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계획은 새어나가는 법이지만, 계획을 알게 된 예비색마들은 하나같이 입을 꾹 닫았다.
자신이 황보칠공주 중 한 사람이라도 더 취하여, 진정한 색마가 되기 위하여.
'별점을 메기는 건...나다...!'
예비색마들은 소주지의 음모에 동참했다.
* * *
"...라는 계획이에요."
"......."
황보혜지는 독고연의 말에 눈을 감았다. 독고연은 우물쭈물하며 자신의 눈치를 보기만 할 뿐, 황보혜지에게 선택을 강요하거나 독촉하지 않았다.
"연."
"네."
"탈혼붕권이라고 하신 분이 빙색마인이고, 연의 부탁으로 저를 겁탈하기 위해 무투대회에 참가했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런데 왜 제 허락을 구하는 거죠?"
황보혜지의 물음에 독고연은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제가 혜지의 사랑이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제 사랑이라고 하면?"
"혜지가 제게 응원해준 것처럼, 원하는 정인과 사랑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황보혜지는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독고연은 명백히 오해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를 마음에 품었는 지 정확히 밝힌 적이 없기에, 독고연은 자신이 가문의 명령에 따라 지아비를 섬겨야 한다는 비운의 여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그래서 세간에 제가 겁탈당했다고 널리 알리겠다? 저보고 사랑을 찾아서 떠나라고?"
"...네."
그래서 이런 말도 안되는 계획을 짜온 것이다.
"만약 제가 겁탈당한 것처럼 세상을 속인다면, 확실히 이 무투대회도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겠네요. 무투대회의 참가자가 색마였던 셈이니까."
신랑 후보로 가문에 당당히 두 발로 들어온 이가 여인의 처녀만 취하고 사라진다?
앞으로 영원히 무투대회는 끝이다. 황보혜지에게 앞으로 집적대는 남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되겠지만, 황보세가 성장의 기반인 무투대회도 사라지게 된다.
"그, 그건 여러 계획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어, 색에 미친 남자들을 동원해서 세가를 습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고, 아니면 혜지가 실제로 범해지지는 않았지만 범해진 척 꾸며서 알리는 방법도 있어요! 다른 신랑 후보 중에 아무나 색마인 척 하고 덮치게 한 다음 가가가 구하는 작전도 있었는데, 이건 가가께서 다 떨어뜨리는 바람에 폐기되었구요. 그 외에도...."
"...도대체 여자 하나 겁탈하는데 무슨 계획이 이렇게 많아요?"
"이게 다 혜지를 위해서라고요!"
황보혜지는 자신을 위해 '겁탈당하는 것을 전제로 짠' 수많은 계획에 기가 막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저를 도와주고 싶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면서."
"혜지가 말했잖아요. 마음에 품은 이와 사랑을 하는 삶이야말로 여인의 진정한 행복이라고. 저는 그 길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독고연은 색마에게 납치당해서, 아이까지 임신한 여자로 세간에 인식되고 있죠."
"......솔직히 말해서."
황보혜지는 차로 바싹 마른 목을 축였다.
"연이 그런 선택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어요. 새장 안의 새는 스스로 새장을 탈출해서 날아가는 법을 모르니까."
"마음씨 착한 색마께서 저를 직접 새장 안에서 꺼내주셨답니다."
"마음씨 착한? ...푸흡."
색마와 착하다라는 말이 공존할 수 있는가. 독고연은 아무래도 제대로 눈에 콩깍지가 씌인 모양이다.
'착하긴 한 건가.'
독고연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황보혜지는 탈혼붕권과 첫 날 밤을 당장이라도 치르지 않을까 마음의 준비는 마친 상태였다.
100명을 이기고 비무장을 붕괴시킨 초고수!
같은 무인으로서 동경심이 생기는 동시에, 황보혜지는 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열렬히 자신을 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남자라면 '그'도 이해해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앞날에 축하한다면서 손뼉을 쳐줄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간병을 하다보니, 썩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방에 들어간 순간, 황보혜지는 그가 자신을 덮쳐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독고연의 남자더라.
하지만 알고보니 독고연을 납치한 색마더라.
하지만 알고보니 황보혜지의 몸을 취하고 도망갈 생각만 가득하더라.
황보혜지는 괘씸함과 불쾌감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허탈감과 황당한 감정이 더 컸다.
불쾌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황보혜지는 처량하게 눈치를 보는 독고연의 모습에 분노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잘못이 있다면 그 순진한 독고연을 색으로 물들인 남자와 그 계기를 말 몇 마디로 만들어버린 여자일 것이다. 적어도 황보혜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연. 만약에 말이에요. 제가 탈혼붕권과 잠자리에 들기를 바란다고 한다면, 그건 허락하실 건가요?"
"으, 으읏...."
독고연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가가께서 바라시고...혜지도 괜찮다고 한다면...."
"만약 제가, 진심으로, 탈혼붕권 님을 지아비로 맞이하겠다면요?"
"네?"
"연이 사랑하는 남자잖아요. 썩 나쁘지 않은, 오히려 괜찮던데요? 솔직히 남편으로-"
"......."
독고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순간, 황보혜지는 하남 무림맹 비무장에서 마주했던 독고연이 떠올랐다.
"혜지......."
초절정 고수의 기세는 명백한 살기였다. 황보혜지는 이봉결정전 당시 그녀가 많이 봐줬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후우, 후."
살면서 초절정 고수가 자신을 향해 진심으로 살기를 내뿜는 걸 언제 또 느껴보겠는가. 황보혜지는 점차 몸이 굳어갔다.
"......미안해요."
독고연은 기세를 풀며 고개를 숙였다. 죽음의 긴장이 날아간 황보혜지는 코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안그래도 적이 많은데 혜지까지 연적이 된다고 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예? 적이 많아요?"
"네. 가가는 매력적인 분이니까요. 물론 제가 당장 부인의 자리에 어울린다고 하지만, 저보다 같은 격의 존재만 벌써 두 명이라고 해야하나...."
"누구요?"
"......."
독고연은 침묵했다. 차마 거기까지는 입을 열지 못하는 듯 보였으나, 황보혜지는 섭섭하다거나 그런 감정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에휴, 알았어요. 연도 연 나름대로 고생이 많네요."
오히려 알면 다칠 것 같은 분위기에 일부러 캐묻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색마에게 얼마나 아내가 많냐는 것을 떠나, 색마부부의 제안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이므로.
"연, 그러면 잠깐 정리를 해볼게요. 하나, 황보혜지는 대외적으로 무조건 겁탈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하고 안 하고는 황보혜지가 선택한다."
"네. ...이건 가가께서도 인정하셨어요. 어디까지나 제 부탁 때문에 산동으로 오신 거니까요."
"그럼 당신이 저를 범해달라고 요청만 안 했으면 저는 색마에게 노려지지도 않았겠네요?"
"으, 으으...."
독고연이 죽을 상을 짓자, 황보혜지는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농담이에요. 연이 저를 신경써줘서 그런 생각을 한 거잖아요? 많이...엉뚱하기는 하지만."
말은 엉뚱이라고 해도 실상은 비상식적이고 엽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보혜지가 독고연에게 상식과 윤리를 운운하며 지적하지 않는 이유는, 눈앞의 소녀가 비상식의 색마부인이 된 계기를 자신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설마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스스로를 자책하던 황보혜지는 독고연을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그건 생각을 해보도록 할 게요. 그럼 두 번째. 색마들을 동원해서 황보세가를 치겠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그건 내가 설명해도 되겠소?"
창틀.
문제의 당사자가 소리소문없이 나타났다.
"색마가 황보세가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면 어떤 생각이 들겠소?"
"무조건 막아야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언제 범해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전긍긍하게 되겠죠."
"그렇소.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색마들로부터 일단 표적에서 벗어나는 효과가 있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황보혜지는 독고연만 아니었으면 상스러운 말로 그에게 욕지기를 내뱉었을 것이다. 탈혼붕권, 아니 색마는 손가락을 하나 둘 펴며 무언가를 헤아렸다.
"내가 모용란에게 예고장을 보낸 지도 벌써 넉달 하고도 이제 다섯 달에 가까워지는군. 그동안 모용란이 강간당했다고 들은 적 있소?"
"없...죠?"
"사실 요동에는 가지도 않았소. 언젠가 가겠다고 얘기는 했지, 그게 1년 뒤가 될 지 10년 뒤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
황보혜지는 숨길 수 없을만큼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 혜지 양. 우리 여기서 생각을 해봅시다. 만약 색마가 황보칠공주 모두에게 겁탈하겠다고 예고장을 날린다면? 모여서 개수작을 부리던 색마들은 정보가 새어나가 황보세가의 함정에 오히려 격퇴를 당하고, 산동에 평화가 찾아오는 거지."
"황보칠공주는 범해지고요?"
"황보혜지만. 대외적으로. 실제로는 뭐...."
색마는 능글맞게 웃으며 독고연에게 시선을 보냈다. 황보혜지는 그 눈빛을 유심히 읽으며, 색마의 제안을 일부 거절했다.
"황보칠공주 전체에게 예고장을 보내는 건 안 돼요. 그러면 우리 언니랑 동생들 혼삿길 막혀요. 저 좋으라고 자매들 전체에 피해를 입힐 수는 없어요."
황보혜지는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택권은 제게 있다고 했죠? 그러면 제 뜻을 존중해주시죠."
황보혜지의 당돌한 말에 색마는 싱긋 웃었다.
"내가 왜? 말을 듣지 않으면 지금 당장 그대를 범하여 내 명령에 따르게 할 수도 있소. 그대를 존중할 이유가 뭐지?"
"그래야 제가 순순히 협조할테니까요."
황보혜지는 마찬가지로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당신도 이 말을 듣고 나면 제 말을 듣게 될 걸요?"
"한 번 말해보시오."
"저, 지금은 생리 중이에요."
흠칫.
독고연의 찻잔에 든 차를 마시려던 색마의 손이 굳었다. 황보혜지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나지막하게 웃었다.
"지금 저를 범하시면 10할 당신의 아이를 임신할 거예요. 설령 1할이라도...아이를 가진다면 당신은 그걸 감당하실 수 있나요? 저나 황보세가가 아니라...."
황보혜지는 독고연을 가리켰다.
"아이는 연이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혜지가...나보다 가가의 아이를 먼저...?"
그녀는 창백한 표정으로 금방 울 것 처럼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여인의 눈물을요."
"끄응...."
색마는 독고연을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독고연은 진심으로 억울한 눈빛으로 황보혜지를 쏘아봤다.
"너무해요, 혜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연이 아니라 다른 여자가 이랬으면 뺨을 때려버렸어요. 천하 어디 친구를 생각한다면서 색마에게 강간당하라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
독고연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음. 그건 인정한다. 그리고 알겠다. 그대의 뜻을 존중하지."
색마는 쓰게 웃었다.
"더이상 얘기하면 연이 울겠군.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시오. 최대한 존중해드리리다."
"좋아요. 그러면 결론을 내리죠."
황보혜지는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겁탈 당하는 건 저 한 명으로 끝내는 거예요. 알겠죠?"
"혜지...!!"
"연, 당신은 잘 들어요. 저니까 당신의 이런 미친 계획을 받아준 거예요. 다른 여자들이었으면 진짜 그 날로 절연이었으니까."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독고연은 황보혜지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황보혜지는 색마가 했던 것처럼 그녀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순진한 애 색으로 꼬셔서 이상한 판단 내리게 하지 말라고요."
색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혜지는 독고연을 진정시키며 책상 위에 화선지를 펼쳤다.
"그러면 어디 그 계획, 한 번 들어나보죠."
"좋소."
주모자, 독고연.
가해자, 비천색마.
그리고 피해자, 황보혜지.
절대 모일 수 없는 구성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황보혜지 겁탈> 계획이 구체적으로 완성되기 시작했다.
"혜지. 마지막은 그대의 선택이오. 어찌하시겠소?"
"할거면 확실하게 하죠. ...그 때면 생리 끝나니까."
그것은 바로 황보혜지가 여섯 자매가 보는 앞에서 "실제로" 겁탈당하는 것이다.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 저를 범하고 제 안에 사정하신다음...바로 제남을 떠나주세요."
황보혜지는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당신에게 일곱번이라도 더 범해질테니, 제 자매들만큼은 혼인한, 혹은 사랑하는 정인에게 처음을 줄 수 있게 해주세요."
[작품후기]
희생!
독자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계획이란 건 시작과 동시에 쓰레기가 되는 법입니다.
칠첩반상은 안전합니다!!
덧) 생리 관련해서 댓글이 많네요
일부러 저렇게 적은 겁니다
여러분은 그 의문을 계속 품고 계시면 됩니다
댓글은 감사하지만 수정할 내용이 아니라 수정 안 합니다
작가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오홍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