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85화 (18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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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음모

혼자서 100명의 남자를 쓰러뜨렸다.

개중에는 절정 고수도 있었고, 전부 일류 고수들도 가득했다.

즉, 나는 화려하게 저질러버린 것이다.

‘망할 놈이 아내 운운하는 바람에.’

황보 세가의 여식이라고 해도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인데, 아내를 바꿔서 취하자?

‘잘했다, 내 안의 산군.’

나는 자신의 힘을 드러낸 것에 후회하지 않았다. 이걸로 다소 내게 이목이 끌린다고 해도, 백보준의 썩어빠진 생각을 날려버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어딜 내 여자를 넘본단 말인가?

어딜 내 여자를 자신의 여자와 바꾸려고 한단 말인가?

결코 용서할 수 없었고, 나도 모르게 공력을 사용하고 말았다.

황보염은 그게 내가 잠력을 끌어내서 일격을 가한 것으로 착각했지만, 마지막 공격에서 긴장이 풀린 나머지 코피가 흘러나왔을 뿐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오랜 피로의 누적에 따라 피로에 지쳤을 뿐이다.

‘그래도 황보혜지는 착했다.’

나는 기절하듯 황보혜지의 품을 만끽했다. 독고연이 괜히 벗이라고 칭하는 게 아니다 싶을 정도로, 황보혜지는 쓰러진 나를 몸으로 부축했다.

나에게 있어 황보혜지는 은인이다.

전생의 인연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독고연이 색마에게 납치당하는 연기를 하면서 나를 선택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한 여인이다.

독고연의 등을 떠밀어 준 여인이었고, 그래서 내가 독고연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산동까지 왔다.

그녀를 색마로서 범하기 위해서.

즉, 지상과제는 황보혜지 단 한 명이다.

‘일곱 명은 상정하지 않았어!’

내가 삼처 사첩, 또는 일곱명의 처를 들이겠다고는 했지만, 하나의 세가에서 일곱 자매를 아내로 들이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황보염은 제정신인가? 어딜 딸을 남자 한 명에게 모두 시집을 보낸단 말인가.

‘천하제일권의 싹수가 보이면 그럴 법도 하지.’

나는 동경에 비친 내 모습을 살폈다. 다부진 체격과 훤칠한 외모는 황보염이 좋아할만한 인상의 야성미 넘치는 사내였다.

황보세가에서는 이 얼굴이 먹히는 걸까?

나는 황보염의 사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여인들은 과연 어떨까.’

황보혜지의 다른 자매들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생각을 마친 나는 그들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밖을 나서려고 했으나, 문 밖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침대에 다시 앉았다.

“실례합니다.”

황보혜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죽을 들고 들어온 그녀는 내 옆까지 다가와 걸터앉았다.

“드시겠어요, 아니면 먹여드릴까요?”

“.......”

이렇게 묻는다면 당연히 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호, 호오.”

황보혜지는 자신의 입김으로 죽을 식히며 내 입에 숟가락을 조심히 뻗었다. 나는 가볍게 죽을 훔치며 한 입 받아먹었다.

“입에 맞으십니까?”

“환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죽이로군.”

“다행이군요.”

황보혜지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내게 계속 죽을 직접 먹여줬다. 나는 죽을 받아먹으며 그녀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활발.

방영희가 야성미가 넘치는 여인이라면, 황보혜지는 태양같은 활기가 넘치는 여인이었다. 가슴도 적당하고 몸도 시원시원하게 잘 빠져, 성교를 나눌 때 다양한 체위가 가능할 것 같았다.

“......흠.”

황보혜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을 따라 고개를 내렸다.

뿌우우우.

죽을 받아먹고 기운을 차린 아기색마가 이불을 들추며 솟아있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으나 숨기지 않았다.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소.”

“...3단계 시험은 원래 일곱 신랑 후보가 1등부터 7등까지 서열을 정하는 비무였으나, 이미 1등이 정해졌으니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잠깐 기다리시오.”

나는 황보혜지의 말을 잘랐다.

“황보 가주께서는 그 말을 진심으로 하신 것이오?”

“그 말이라고 하시면?”

“나에게 일곱 딸을 모두 내어주겠다는 말.”

황보혜지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그럴 리 없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님께서는 대협이 정말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뭐...라고….”

“제게 앞으로 네가 평생을 모실 분이니, 지금부터 네가 직접 모시라고 하시더군요.”

황보혜지는 죽그릇을 책상위에 두고 내게 절을 올렸다.

“황보세가의 여식, 황보혜지가 대협께 인사올립니다.”

“지, 진정하시오. 그대는 정말 이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오?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세가의 여식이 가주가 정한 이와 혼인을 하는게 무엇이 잘못되었겠습니까? 그리고….”

몸을 일으킨 황보혜지는 나를 향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저희 자매들끼리도 이야기가 다 끝났답니다. 아버님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르기에는 그 내용이 다소 과격한 감이 없잖아 있으나, 역발산기개세를 자랑하는 무인이라면 저희가 모시는 게 맞지요.”

백보준 때문에 너무 과한 힘을 써버린 게 좋게 작용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나쁘게 작용했다고 해야할까.

“저 뿐만 아니라, 저희 일곱 자매 모두 대협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대협께서 1차전에서 저를 언급하셨지만.”

황보혜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만약 다른 자매를 첫째 부인으로 원하신다면...그 또한 가능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소. 황보세가가 어디 지역의 작은 세가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혼인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진행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한 비무대회 아니겠습니까. 대협께서는 저희 세가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비무대회에 참가한 게 아니었습니까?”

좋은 관계는 커녕 앞으로 평생 척을 지게 될 지도 모르는 관계를 맺기 위해 왔다.

“황보 소저.”

나는 더이상 지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머지는 내가 아닌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면 더 이해하기 쉬우리라.

“나와 함께 둘이서 잠깐 어디 다녀옵시다. 몰래.”

“윽….”

황보혜지는 내 손을 살포시 잡으며 얼굴을 붉혔다.

“제 첫 경험은...밖이 되는 건가요?”

“일단 따라와보시오. 아니, 안기시오.”

나는 그녀를 내 앞에 안아들고 창문을 훌쩍 뛰어넘었다. 세가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뛰어오르자, 황보혜지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이건…!”

“피로 누적으로 인해 쓰러진 거지, 결코 내가 과도한 힘을 사용해서 그런 게 아니오.”

구름을 밟듯 수많은 전각 지붕을 밟으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황보세가에서 일각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객잔은 유독 창문이 넓었다.

“대협!”

황보혜지는 나를 붙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세가 안에서 하시는 게 부끄러우시다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협께서 저희 칠자매의 지아비가 된 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내 말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군.”

마침 객잔 창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나는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고, 들어가자마자 황보혜지의 혈을 눌렀다.

“!!”

“놀라서 비명을 지를 것 같아서 혈을 눌렀소.”

“오랜만이에요, 혜지.”

황보혜지는 객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인을 보고 경악했다. 혈을 누르지 않았다면 놀라서 제남이 떠나라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많이 놀라셨죠? 미안해요. 하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었어요. 가가, 혈을.”

“알았다.”

나는 점혈을 풀었다. 황보혜지는 눈을 좌우로 굴리며 나와 독고연을 수 차례 번갈아보더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빙색마인?”

“비천색마라고 하오. 그리고 이쪽은….”

“당신의 오랜 친구, 색마부인 ‘연’이에요.”

독고연은 울 것 같은 얼굴로 황보혜지를 끌어안았다.

* * *

나는 객잔안에 미혼표식구궁진을 설치한 뒤, 독고연이 황보혜지를 설득하는 동안 제남 일대를 훑으며 탈출로를 찾았다.

과연 황보혜지가 독고연의 제안을 어디까지 수용할 지 모르지만, 사건이 벌어지면 냅다 제남-아니 산동에서 도망쳐야 하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러니 미리 주변 지리를 살필 필요가 있다. 나는 이곳 저곳을 훑다가,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곳을 하나 발견했다.

‘뭐야?’

음습하고 끈적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상단에서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것 같은 창고에 모인 남자들을 살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황보 가주께서 큰 실수를 하신 겁니다.”

“그렇소. 남자 한 명이 여인 일곱을 가지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오!”

‘안 될 건 없지.’

황보염 본인이 말하기도 했거니와, 나 또한 천가장에 여인 일곱을-그것도 천하절색의 미녀들로만 채울 예정이다.

“한 명의 여인에게 한 명의 지아비가 서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는구나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던 순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소.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지고 말 것이오!”

“.......”

나는 과격한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론을 모읍시다. 그리고 남은 여섯 자리를 두고 다시 무투대회가 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오.”

“그리고 난 다음에는?”

“무투대회가 한창 열리는 와중에, 몰래 따로 움직여서 황보 칠공주를 겁탈하는 것이지.”

‘이 놈들이?’

왜 신경이 쓰이나 싶었더니 동업자들이었다. 나는 당당히 세가에 색마짓을 벌이려는 이들의 계획이 참으로 당돌하다 싶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겠소?”

“물론! 칠공주라고 해봐야 여자 아니오? 자지 맛 한 번 들려주면 꼼짝도 못하고 상공이라 부르며 따르게 될 것이외다. 흐흐흐.”

상스럽고 추잡한 음담패설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힘으로 박아서 저항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육체를 얻을 수 있어도 마음은 얻을 수 없더라.

만약 넣기만 한다고 그들을 노예로 만든다면, 혈강시는 수 만에 이르는 여고수를 데리고 다니며 중원을 평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겠소? 황보세가의 가주도 가주지만, 탈혼붕권이라는 자도 만만찮을 것이오.”

“흥, 그 놈은 사기꾼이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벽력탄 같은 걸 터뜨린 게 틀림없소.”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남자는 사람들을 자신의 색마행에 끌어들이기 위해 선동을 펼쳤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밤에 몰래 침입해서 납치합시다!"

'조잡하고 조악해.'

대공자나 이시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무식하고 졸렬한 계획이다. 하지만 동시에 황보세가의 무인이 되기 위해, 황보세가 여인과 혼인하기 위해 무투대회에 참가한 게 아니라, 황보세가의 여식을 취하기 위해 모인 남자들 다웠다.

‘나도 딱히 다를 바는 없지.’

나는 그들의 추악한 욕망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다 먹을 거다.'

강자독식.

우둑, 우두둑.

나는 기억 속 그를 떠올리며 최대한 몸을 많이 바꾼 뒤, 전각에서 뛰어내렸다. 그들은 내 등장에 식겁하며 주먹을 겨눴다.

"누, 누구냐!"

"그대들의 계획이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보세가의 여식들을 범한다? 재미있군. 그런데 고작 그런 계획으로 할 수 있겠나?"

"...우리를 돕겠다는 것이냐?"

다행히 놈들 중에는 제법 눈치가 빠른 자가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렇다. 나도 황보세가, 특히 황보혜지에게 볼 일이 있는 놈이거든.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한 짓으로 황보염을 혹하게 만든 자를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무슨 수를 쓰자는 거지? 그 자는 황보염과 황보혜지의 비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황보세가 무인들도 그를 도울 것이다."

"간단해."

나는 손가락을 입 앞에서 살짝 꺾는 시늉을 했다.

"황보염은 술을 좋아하지. 비록 패배한 자들이라고 한들, 황보세가의 밝은 장래를 기원한다며 술을 사들고 가면 좋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세가에 침입할 수 있지."

축제를 여는 것이다.

"하지만 패배한 우리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겠소?"

"어디 직계 딸들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못해도 황보세가의 방계 여인 중에도 미혼인 여인이 있을테지. 자리만 만들어진다면, 가주는 그들과 엮어보려고 들 것이다."

"...과연.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한데?"

"황보 가주는 술에 거하게 취하면 빨리 뻗는다."

이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그는 후에 주독으로 인해 크게 변을 당하게 되니까.

"그리고 변수 그 자체인 탈혼붕권이 황보혜지와 만리장성을 쌓는 사이, 다른 여섯 여식을 야밤에 몰래 덮친다. 그건 너희들에게 맡기지."

"뭐? 그럼 황보혜지는?"

"탈혼붕권은 내가 처리하겠다. 성동격서, 어떠냐? 우리와 함께 할테냐?"

나는 그들에게 두 팔 벌려 제안했다. 다른 이를 선동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달콤한 목소리로 예비 색마들을 끌어들였다.

"그대는...누구요?"

"나?"

나는 앞머리로 가린 내 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소주지."

나는 주지를 사칭하여 색마들을 이용해 황보세가를 습격할 것이며, 그 사이 황보혜지를 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색마도 황보칠공주의 손끝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 황보혜지의 처녀, 내가 가져가겠다.

황보혜지가 허락만 하면, 그녀에게는 빙색마인의 예고장이 도착할 것이니.

[작품후기]

색마 짓에 목숨 걸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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