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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랑쟁패
사람마다 자신있어하는 전투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1:1 비무를 가장 선호하고, 누군가는 셋이서 합공을 할 때 가장 빛을 발한다.
그리고 나는 1:多, 그러니까 나 혼자서 여럿을 상대함에 있어 특화되어있는 인간이다.
아무리 혈녀들이 있다고 한들, 혈영대를 비롯한 온갖 부하들이 있다고 한들, 혈교의 기본은 ‘잘 키운 혈강시 하나 열 현경 안 부럽다’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혈강시는 수많은 이들을 동시에 상대하는데 도가 텄다. 난전,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는 전투에서 나를 따라올 이는 감히 없을 것이다.
“그 잘난 얼굴부터 뭉게주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는 내 얼굴을 정확히 노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피곤함에 받아칠 생각을 못했고, 그냥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 피했다.
“이 놈?”
그리고 반대쪽에서 나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던 놈의 턱을 붙잡아 주먹 앞에 놓았다.
빠---악!
수염인은 자신의 주먹이 내가 아닌 다른 자의 얼굴에 꽂힌 것에 표정을 굳혔다. 나는 안면이 망가진 자로부터 손을 당긴 뒤, 팔을 굽혀 수염남의 명치를 찔렀다.
“커헉!”
수염남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는 뒤로 한 걸음 크게 물러났다.
빠---악!
이번에는 내 허벅지를 노리던 휘돌려차기가 수염남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산동에서 제법 각법으로 유명한 도련님인 듯 보였다.
“감히 피하다니!”
“그럼 가만히 맞을까.”
“이 놈!”
“그럼 놈이지 년이겠냐.”
여기서 다른 신랑후보들과 귀찮은 신경전을 벌이느니, 그냥 누워서 푹 자고 싶었다. 하지만 7명이 남기 전까지는 쉽게 누울 수 없었다.
‘적당히 봐주는 것도 일이군.’
나는 맹호패왕권의 기세를 가다듬었다. 하룻강아지들이 산군을 눈앞에 두고도 무서운 줄 몰라서 까불어대고, 맹호패왕권은 그들에게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며 상하관계를 확실히 정립하고 싶어했다.
‘좀 참자.’
나는 나를 노리는 무인들보다 들끓는 맹호패왕권을 진정시키는 게 더 곤욕이었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을 상대로 힘을 빼서 처리하려니 그것도 영 힘이들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자.’
육체적 피로도 피로지만 정신적 피로가 장난이 아니다. 어제의 나는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남겼단 말인가.
나는 이미 팽유월의 침대에서 네 명을 동시에 상대하고 왔다.
하루의 시간이라도 넉넉하게 있었으면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겠지만, 내가 1차 시험을 통과하자마자 2차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 하루 남짓한 짧은 시간에 독고연의 시선에서 벗어났다고 하북까지 다녀온 건 역시 무리였을까?
‘아니지.’
나는 월아를 안아든 팽유월을 떠올리며 힘을 냈다. 월아를 생각하니 피곤함이 잠시 가라앉았고, 활력이 내 몸에 깃들기 시작했다.
하북에서 내려오며 하나 씹었던 천환단의 기운이 서서히 내 몸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정신적 피로는 해갈되지 않지만.’
피로를 완벽히 풀려면 숙면을 취해야 한다. 그러려면 빨리 이곳에서의 일을 끝내고 독고연과 호북으로 돌아가야한다.
‘빨리 자고 싶지만.'
독고연이든 황보혜지든 누구든 안고 눈부터 감은 다음, 정신적 피로감을 해소하고 난 뒤에 다시 일어나서 성교를 나누고 싶다.
'그러러면 우선 확실히 다져놓아야지.'
무엇을?
우위를.
내가 이곳에서 가장 강한 남자이며, 가장 뛰어난 수컷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흡!"
나는 앞으로 달려오는 권사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피하고 흘리기만 하던 내가 처음 공격을 하자 권사는 몹시 당황하며 발을 헛디뎠다.
"어딜."
나는 놈의 얼굴을 붙잡았다. 그리고 뒤로 크게 발을 뻗은 뒤, 몸을 반바퀴 뒤집으며 얼굴을 잡아당겼다.
"투척!"
"으아아악!!"
내 손에 잡혀 몸이 붕 뜬 권사는 비무장 밖으로 날아갔다. 중간에 여러 사람에게 부딪혀 굴러 떨어지기까지 했고, 나는 한 번에 여럿을 제거한 것에 만족했다.
'우승후보부터 제거할까?'
압도적인 1등은 내가 가져간다. 그러니 그 뒤에 우승할 법한 놈을 내가 제거해준다면, 나머지 2~7등은 자기들 알아서 아귀다툼을 벌일 것이다.
이미 나를 상대로 이기지 못하겠다고 두려움에 떨고있다. 나는 주변을 살펴, 내 다음으로 강한 존재를 찾았다.
'유감스럽군.'
그곳에는 백수광을 닮은 남자가 주변에 달려드는 무사들을 상대로 선전을 벌이고 있었다.
백보준.
전생에 나를 십 수년 동안 무공 훈련이랍시고 폭력을 일삼아 근골을 뒤틀어놓아 나를 추마귀로 만든 장본인.
'좀 강하긴 하네.'
나라는 약자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세가의 소가주로서 반듯하게 자란 덕분일까? 그는 그래도 주먹 좀 쓴다 싶은 정도로, 이중에서 제법 우수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절정 중반.
용봉지회의 구룡쟁패에 나섰다면, 필히 구룡의 중간은 차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 칠랑쟁패에서 내가 아니었다면 분명 우승을 차지했을 것이다.
'내가 그래도 너희 부친 얼굴을 봐서 용서해준다.'
회귀 전의 인연을 생각하면 찢어죽여도 시원찮지만, 미래에서 한 번 찢어죽여놓았기에 나는 딱히 그에 대한 복수심이 타오르지 않았다.
- 흐음, 너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그럼 어디 네 마음대로, 본능대로 해봐.
이미 혈교주 덕분에 복수는 끝마쳤다. 단지 지금의 은원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오는 날 아침에 그에게 한 대 강하게 맞았다는 것?
그에 대한 복수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황보혜지는 내가 가져가겠다.
저벅, 저벅.
내가 그를 향해 다가가자, 다른 무사들은 옆으로 물러나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백보준 또한 나를 눈치채고 침을 꿀꺽 삼켰다.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들어올리며 맞서 싸우려는 모습이 그래도 나름 인상적이었다.
나는 놈의 투기를 압도하는 맹호의 기세를 끌어올리며, 놈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들어와."
"흡!"
놈은 단걸음에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깔끔한 공격은 백도 무림의 권사 중에서도 수위에 달하는 공격이었다.
"대협,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뭘?"
나는 백보준의 공격을 적당히 흘려내며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설마 우승을 양보해달라는 걸까?
"우승자는 아마 가장 먼저 아내를 선택할 기회를 받을 거요. 그러면 그대는 황보혜지를 선택할테지."
"그렇지."
"서로, 아내를 한 번씩 바꿔먹읍시다. 내 아내가 될 여자도 하룻밤 빌려드리리다."
순간.
나는 내 귀가 잘못되었나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
"못 들었소? 흐흐, 생각보다 순진-"
퍼---억.
나는 놈의 면상에 정면으로 권을 꽂아넣었다. 그래도 나름 절정 고수라고 두 팔을 들어올려 권을 막았지만,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크어억...!"
공격을 막음으로서 손목이 박살났을 것이다. 나는 맹호패왕권의 전력을 끌어냈다.
"이 개새끼가 못하는 말이 없네."
사람을 추마귀로 만들었던 그 인성은 변하지 않는구나. 나는 폭주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산군의 목줄을 풀어버렸다.
"썩어빠진 정신을 박살내주마."
탈혼붕권.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렸다. 그리고 호랑이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놈의 목을 붙잡고 강제로 앞으로 당겼다.
"크헉?!"
놈은 공중에 수평으로 붕 뜨게 되었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은 뒤, 주먹에 전력을 실었다.
맹호패왕권, 비기.
"태산압정(泰山壓頂)."
태산을 눌러 찌그러뜨린다. 검법에서는 거창한 이름인데 반해 3류 무사들의 검법이나, 맹호패왕권은 다르다.
"태악붕괴권(泰岳崩壞拳)."
사냥감을 눌러 죽이듯, 나는 놈의 명치에 전력을 꽂아넣었다.
'이 새끼, 따지고보면 나랑 생판 남이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
손속에, 가감은 없다.
쿠-------웅!!
비무장에 거대한 흙먼지가 일었다.
* * *
콰----앙!!
비무장에 흙먼지가 일었다. 시야를 가리는 엄청난 기파에 비무장을 바라보고 있던 모두가 눈을 가렸다.
"큭, 이게 무슨...?!"
황보염은 순간적으로 느낀 기세에 등에 오한이 들었다.
착각인가? 아니다. 화경 고수가 착각을 느낄 리가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기감은 속일 수 없다.
'방금 그 공격은 분명 초절정, 아니 그 이상이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놓쳤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했다. 마치 호랑이가 전방으로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환각마저 느껴졌다.
산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알리는 듯한 맹호의 기세.
만약 저 무공이 황보세가에 들어온다면?
아니, 저 무공이 황보세가의 벽력신권과 하나가 되어 어우러져 새로운 무공으로 발전해나간다면?
꿀꺽.
황보염은 덜덜 떨리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끓어넘치는 이 호승심을 진정시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콜록, 콜록.
쿵!
황보염은 뒤에서 들려온 기침소리에 주먹을 앞으로 가볍게 휘둘렀다. 딸들을 덮친 흙먼지는 황보염을 중심으로 펼쳐진 권풍에 하늘로 흩날렸다.
파스스스.
비무장을 덮친 흙먼지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황보염은 홀린 듯이 앞으로 나아가 비무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전파.
태산을 무너뜨릴 듯이 강렸했던 권격은 비무장을 모두 무너뜨렸다. 손속에 가감을 두지 않았다면, 분명 세가 전체가 무너졌을 지도 모를 강력한 일격이었다.
그리고 비무장 한 가운데에는 자신이 눈독을 들인 청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있었다.
뚝, 뚝뚝.
그는 코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과도한 피로의 누적으로 인한 탈진이 틀림없었다.
비무장 전체를 박살낼 정도로 강한 일격을 날렸는데, 고작 탈진 정도로 끝이 나다니! 이 얼마나 강대한 체력이란 말인가.
'싸우고 싶다.'
황보염은 좀처럼 넘치는 호승심을 참을 수 없었다. 장인과 사위가 아닌, 같은 권의 길을 걸어가는 무인으로서 교류를 나누고 벗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이가 딸의 지아비가 되어 황보세가를 이끌어나간다면, 이 얼마나 세가의 흥복이란 말인가!
"...흥."
청년은 무복의 끝으로 코피를 닦으며 피를 털어냈다. 당장 쓰러질 것처럼 몸이 휘청거렸지만, 그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쓰러지지 않고 당당히 서있었다.
"끝...났습니까?"
"그렇소, 끝이오."
황보염은 두 팔을 펼쳐 사방을 가리켰다.
비무장만 무너진 게 아니다. 비무장이 부서진 충격의 여파로 모든 무사들이 비무장 밖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기절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린 사람은 청년 한 명 뿐이었다.
"모든 무사들을 쓰러뜨렸으니, 2차전의 생존자는 그대 뿐이오."
"......열심히 몸을 움직인 보람이 있군요."
청년은 만족한 얼굴로 웃었다. 경쟁자를 제거했다는 듯한 만족감과 시험을 통과하여 휴식을 즐기고 싶다는 개운함이 엿보였다.
"마지막 그 권, 무엇인가?"
황보염의 말에 청년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자신의 주먹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무아지경이 되어 싸웠을 뿐입니다."
"하하하! 무아지경으로 이런 힘을 낸다? 정말이지 대단하구려!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실력이라니. 정말...내가 다 부러울 정도요."
강인한 젊음에 질투마저 나올 정도였다.
"혜지야!"
"...예."
황보염의 부름에 황보혜지는 비무장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여러 가지 복잡한 얼굴로 청년을 바라봤다.
"네 지아비가 되실 분이다. 직접 부축해드려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황보혜지는 아무런 불평불만없이 청년을 부축했다. 청년 또한 그토록 원하던 황보혜지의 부축을 받는 것에 기쁜 것처럼 보였다.
황보혜지를 향한 그의 미소에, 딸은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할 정도였다.
부친으로서 여러모로 복잡한 마음이 들지만, 이 정도 남자라면 황보혜지 뿐만 아니라 가문을 맡겨도 되겠다 싶은 확신이 들었다.
"......!"
순간, 황보염의 머릿속에 기지가 스쳤다. 그는 주변을 눈으로 살폈다.
대부분의 일류 고수들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유력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청성파의 방도림, 그는 검이 부러진 채 입에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우승 후보, 현천 백가의 백보준은 탈혼붕권에 진정으로 혼이 나간 듯 대 자로 뻗어있었다.
어쩌면, 황보염 본인을 뛰어넘을 지도 모르는 사내.
너무나도 대단한 권사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일까!
이들 중 그 누구도 만족스러워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황보염은 자신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기지에 너무나도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사위. 앞으로 내 딸들을 잘 부탁하네."
"......네?"
청년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놀랐다. 이제야 나이에 맞는 듯한 순진한 표정에 황보염은 입꼬리가 절로 씰룩거렸다.
"영웅은 삼처사첩이 기본이라고 했지. 물론 내 딸들을 첩으로 들이는 건 용서할 수 없으니, 칠처로 하시게."
"......잘 못들었습니다?"
"하하하! 진력을 다 사용했으니 그럴 수밖에. 수지, 혜지, 은지, 영지, 윤지, 신지, 현지는 들으라! 너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분을 지아비로 모셔야 할 것이니라!!"
"자, 잠시만요. 가주님."
청년은 진정으로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보고...일곱 자매의 지아비가 되란 말씀이십니까?"
"안 될 게 뭐있소? 우리 아버지께서는 아내를 넷이나 들이셨지. 껄껄껄!"
"......."
청년은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었다. 기력이 다한 건지 그는 황보혜지의 옆으로 미끄러지듯 의식을 잃었고, 황보혜지는 급히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가슴에 지탱하며 그를 붙잡았다.
"이거로 색마에게 당할 걱정은 없겠군."
황보염은 청년을 향해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반짝였다.
"차기 천하제일권이 지아비인데, 누가 감히 내 딸들을 범하겠는가!!"
[작품후기]
??? : 잠깐만 서비스로 풀코스 준다는데?
??? : 밥만 먹고 튀기로 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