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83화 (18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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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랑쟁패

2차전에 앞서, 나는 황보세가의 식객으로 방을 하나 배정받았다.

2차전이 열리는 시각은 내일 오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좀처럼 좀이 쑤시기도 하고, 독고연과 떨어져 있다는 것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즉, 지금이 기회다.

나는 문밖에 '수련 중'이라는 문구를 붙여놓은 뒤, 잽싸게 허공답보로 황보세가를 빠져나왔다.

쿵, 쿵, 쿵!

가는 곳은 북쪽.

나는 북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천마대팔식까지 사용하며 빛처럼 달렸다.

목적지는 바로 '하북'.

산동과 하북은 아래위로 바로 붙어있으며, 특히 제남은 산동에서도 나름 북쪽에 위치해있다.

즉, 하북팽가를 방문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기회다!

바다에서 제남까지 달린 것에 이미 내공을 소모해서 힘들지 않냐고? 천만에.

내공이 바닥까지 떨어진다고 해도, 팽유월과 월아를 보면 그 내공이 다 차오르는 법이다. 황보세가에서 내가 밖으로 나온 걸 알아챘다고 한들 딱히 상관도 없었다.

독고연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

다른 건 몰라도 하북의 일에 관해서는 독고연을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된다.

그러면 1년 뒤에 바로 애 셋이 생길 것이다.

'그런 미래는 감당할 수 없어!'

최소한 아이를 돌봐줄 믿음직한 유모들이 천가장에 상주하지 않는 이상, 셋과 당장 아이를 만들기는 힘들다.

이미 유모의 후보는 여럿 있다. 사공희의 경우 진사월이 대표적이며, 잘 하면 선주희도 아이의 보모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이다.

이시아라면 당연히 염마와 빙마가 있다. 천마의 자식을 십마가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소천마를 돌보겠는가.

문제는 이제 독고연.

색마에게 납치당해 가출하여 빠져나온 이상, 그녀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독고연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아이에게 상당한 사랑과 관심을 줄 것이며, 무공 수련은 2순위가 될 것이다.

내 자식을 1순위로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최소한 화경은 되고 나서 그래주기를 바랄 뿐.

'빨리 화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북팽가의 일이 빠르게 정리된다면, 독고연도 외부 요인에 대한 걱정없이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으리라.

나 또한 이번 계획에 있어 마음에 깃든 암운을 드리우고자 하북에 왔다. 나는 남은 내공을 갈무리하며 하북팽가 위로 숨어들었다.

'이전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은데?'

못보던 얼굴들이 많이 늘었다. 무사들의 수도 많이 늘었고, 무엇보다 팽유월과 인상이 비슷한 사람들의 수가 제법 많이 보였다.

특히 여인의 수가. 나는 비교적 젊은 팽가의 여인들이 지나가며 하는 말을 귀동냥으로 엿들었다.

"...불안합니다. 혹시 색마가 다시 들면 어쩌죠?"

"바보같은 녀석.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잖느냐. 색마가 너를 노리겠냐, 아니면 아가씨를 노리겠냐?"

"하지만 아가씨는 유부녀시잖아요."

"그리고 과부지. 그것도 20대."

아무래도 팽가에 모여든 이유는 다소 속물적인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나는 팽유월을 화살받이로 내세운 것에 불쾌감이 들었지만, 팽유월이 색마에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륵, 스륵.

나는 그림자 속에 숨어 팽유월의 방으로 숨어들었다.

"......."

팽유월은 침대에 누워 깊게 자고 있었다. 답답한 지 이불은 옆으로 밀어놓은 채, 가슴 부분을 열어젖히고 반쯤 알몸으로 자고 있었다.

'더워서 열이 찰 법도 하지.'

물컹.

나는 팽유월의 젖무덤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그녀가 시원하게 빙백신공을 활용하여 몸을 차갑게 만들었다.

"......상공?"

"나왔다."

팽유월은 아무 의심없이 나를 받아들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조금 늦으셨네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내 생모의 무덤을 다녀왔다."

나는 순순히 팽유월에게 내가 다녀온 곳을 이야기했다. '회귀 이외의 것'을 모두 말했다는 건, 내가 독고연에게 말한 내 과거에 대한 것도 팽유월이 이미 알고 있다는 말.

"그러셨구나.... 여러모로 복잡하셨겠네요."

"그렇지는 않아. 애초에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그래도."

팽유월은 내 등을 토닥이며 옅게 웃었다.

"제가 오늘은 상공의 엄마가 되어드릴게요."

나는 한동안 팽유월의 품에 안겼다. 선홍빛의 꼭지를 입에 물고 아이처럼 빨고 싶었지만, 저건 월아의 것이라고 되뇌이며 참았다.

"월아는?"

"저기."

팽유월은 음흉한 얼굴로 방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학혈마녀...가 아닌 팽신혜가 월아를 안은 채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왜."

"......빙색마인?"

"당연하지. 월이는 내 물건 닿자마자 바로 알아채던데. 너는 아직도 느리구나."

나는 역체변용술로 팽신혜를 범했던 순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제서야 팽신혜는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다. 그런데 얘가 왜 여기있어?"

"잠깐 눈 좀 붙이고 자느라고 월아 봐달라고 했어요."

"음...."

아무리 팽신혜에게 금제가 걸려있다고 하지만 너무 믿는 게 아닐까. 마교도 그렇지만, 혈교의 존재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누가 왔던가?"

"이, 이게 창문으로 날아들었어요. 여기요...."

팽신혜는 손을 벌벌 떨며 내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흰 종이에 붉은 피로 쓴 혈서의 내용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 그대는 월녀가 될 수 없소.

"허허."

"저...쫓겨났어요."

혈교는 학혈마녀를 버렸다. 그 이유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 3점짜리 여인을 월녀로 둘 수 없다.

"세상에 이런 변태같은 해고 통보가 있다니."

"상공이 점수 주셨잖아요."

"틀렸다. 비처녀라서 2.5점이야. 그거 점수 잘못 측정했어."

"으, 너무해...!"

팽신혜는 눈물을 글썽이며 월아를 끌어안았다.

"월아야. 이모가 이렇게 구박받고 지낸단다?"

"어이가 없네요."

"이모라니, 역...흠흠."

문이 열리며 등장한 두 여인은 나를 보자마자 문을 닫으며 허리를 숙였다.

""은공을 뵙습니다.""

"은인까지야. 그런데 둘이 썩 표정이 좋지 않구나."

"그야...."

두 자매는 팽신혜를 영 탐탁찮은 눈으로 쳐다보며 불만을 내비쳤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딱히 내키지는 않아. 하지만 월아가 이리 조용히 안겨있잖니."

나는 팽신혜로부터 월아를 받아 안았다. 월아는 팽신혜의 품보다 내 품에서 더 편히 잠들었다.

"월아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다."

"마, 만약에 월아가 울거나 그랬으면요?"

"그럼 애초에 유월이가 너를 여기 안 들였을 걸?"

팽유월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팽유월의 옆에 앉아, 월아가 편히 잘 수 있도록 내 품에 편히 눕혔다.

"그런데 은공,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예전의 너를 떠올리게하는 구나, 유월아."

"...죄송합니다, 상공. 좀 더 교육시키도록 할게요."

팽유월의 눈초리에 두 자매는 무엇을 잘못했나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괜찮다. 다음에는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물어보거라. 그래서 뭐가 그렇게 궁금하니."

"이번에는 무슨 붕이신가요...?"

"아, 이 모습?"

나는 내 얼굴을 가리켰다.

"이게 내 본모습인데."

"......."

"지, 진짜요?!"

팽신혜가 놀라며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그 바람에 월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뒤척이기 시작했다.

딱.

팽유월이 손가락을 튕기자, 팽신혜는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기혈이 뒤틀리고 배가 부글부글 끓는 고통과 동시에, 저릿한 생리통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월아 기껏 재웠더니...."

"괜찮다. 내가 있으니."

나는 월아의 정수리에 입술을 맞췄다. 중려신화정의 온기를 건네자, 월아는 다시 조용히 잠들었다.

"내일 아침까지는 곤히 잘 것이다. 저기 침대에 눕혀주겠느냐?"

"예...."

자매는 두 손으로 공손히 월아를 받아 침대로 눕혔다. 나는 외투를 벗어 팽신혜에게 건넨 뒤, 몸을 가볍게 풀었다.

"해 뜨기 전까지 시간 충분해. 월아도 깊게 재웠겠다, 너도 깊게 재워주마."

"...어머?"

예상치 못한 내 발언에 팽유월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상공. 그러면 말이에요."

옷을 벗으려던 내 손을 붙잡은 그녀는 옆에선 세 여인을 눈으로 가리켰다.

"저 혼자서는 무리인데, 상대해드려도 될까요?"

"......너희도 할 거냐?"

나는 예의상 물었으나, 셋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한 말을 했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요 며칠 동안 주야가 바뀌며 강행군을 일삼았고, 지난 밤에는 밤새 독고연과 하룻밤을 지새웠으며, 제남을 거쳐 하북까지 올라왔으니 육체적 피로가 알게 모르게 쌓여있을 것이다.

새근, 새근.

나는 월아를 눈에 담았다. 월아는 나를 응원하듯, 도저히 깰 기미없이 곤히 자고 있었다.

'아름다운 미녀 넷이랑 하는데 뺄 수는 없지.'

온 김에 팽유월도 깊게 재우고, 두 자매에게도 색마인증 점수를 붙여주고, 개과천선하기 위해 애를 쓰는 팽신혜에게도 선기(善氣)를 불어넣어줘야 한다.

당연히 한 명당 한 번씩만 사정해도 네 번이나 사정하는 셈이 되지만....

- 지금은 색에 집중하라, 색마. 내일은 내게 맡기고.

- 뒷 일을 부탁한다, 비천.

나는 미래를 내일의 나에게 맡긴 뒤, 바지를 벗어던지며 팽유월의 품에 안겼다.

서로 다른 네 개의 젖무덤에 안겨 팽가의 전력을 만끽하며, 나는 또다시 밤을 지새웠다.

* * *

날이 밝았다.

1차전에서 한 번 걸러진 이후, 1차전에서 합격한 신랑 후보들은 2차전에 모두 참가하지 못했다.

- 황보세가에서 제공한 점심을 먹고 탈이 났소!

황보세가에서 음식을 먹은 이들 중 태반이 배에 탈이 났다. 아침까지는 괜찮았는데 점심은 왜 문제가 생긴 걸까.

-이거 식중독이오.

식도락에 조예가 깊은 모 일류 고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음식 중 육류가 제대로 조리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 갈! 색마로부터 아내를 지키겠다면서 나선 이들이 음식에 독이 들어간 줄도 모르다니! 그래서야 어디 내 딸들을 지킬 수 있겠는가!

황보염은 억지를 부리며 배탈이 난 이들을 모조리 쫓아냈다.

사단이 일어난 원인은 부엌의 사령관 역할을 하던 황보혜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여섯 딸들'이 부엌일을 거들었기 때문이었으나, 황보염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황보세가의 실수를 덮고자 했다.

다만 일류 고수 이상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음식에 독이 들어간 경우는 으레 있는 법이었으며, 애초에 그들은 맛이 이상한 경우 한 번 씹고 입에 더는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 모르고 먹은 놈들이 어리석은 것.

- 술이 있다고 같이 먹으니 눈치채지 못하지.

- 이 또한 시험이니라!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이 강자인 법이며, 일곱 명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두 경쟁자인 법.

2차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한 번 더 어중이떠중이들을 걸러낸 신랑 후보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탈락한 이들은 비무 대회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세가에서 쫓겨난 즉시 남들이 보이지 않은 곳으로 떠나야했으니까.

그리하여 2차전도 전에 두 번이나 걸러진 신랑 후보는 무려 100명!

100명!

심지어 그들 모두가 일류 고수이며, 절정 고수도 무려 8명이었다.

산동에 모인 일류 고수, 그것도 황보세가의 여인과 혼약을 맺고 싶다는 신랑이 무려 100명이나 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놀랐다.

역시 황보세가구나! 황보세가의 앞날이 참으로 밝구나!

100명의 무사들은 호승심에 불타올랐다.

이미 2차전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얼추 전해들은 바가 있어 짐작하고 있었고, 절정고수만 피해다니면 일곱 명 안에 들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했다.

- 솔직히 절정이라고 해봐야 세 명 빼고는 전부 갓 일류를 벗어난 놈들!

- 내가 일류 후반인데 나도 그 놈이랑 충분히 비벼볼 수 있지!

- 셋만 피해다니면 돼!

창천신룡 방도림.

현천백가의 백보준.

그리고 마지막 날 마지막 조, 홀로 합격을 하여 가주가 유일하게 비무장까지 내려와 누구와 혼약을 맺고 싶은지 물어보기까지 한 탈혼붕권, 무명.

누가봐도 한 명은 정체를 숨긴 기색이 역력했지만, 실력은 숨기지 않았다. 일류고수들은 탈혼붕권의 실력을 기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과 싸우기를 꺼렸다.

"......하암."

그리고 현재, 탈혼붕권은 피곤에 쩔어있는 얼굴로 금방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밤새 무엇을 하고 왔는지 모를 정도로 그는 피곤해보였고, 어쩌면 일류 고수들 모두 ‘혹시?’하는 생각이 들게끔 약점이 많아보였다.

황보혜지를 차지할 것으로 가장 유력한 경쟁자를 제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두가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며 침만 삼키던 때, 2차전의 시작 시간이 되었다.

"모두 모였군. 이번 2차전은 나의 차녀, 혜지가 말할 것이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 2차전의 대결 종목은...."

황보혜지가 손뼉을 치자, 전각 위에 달려있던 두루마기가 길게 아래로 떨어졌다.

난 亂

투 鬪

두루마기에 적힌 글자는 단 두 글자.

"지금부터 단 일곱 명이 비무장에 남을 때까지 싸우시면 됩니다. 단, 타인에게 치료 불가능한 중상을 입히거나 죽이는 자는 탈락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2차전을 시작하겠소!"

콰아아아앙----!!

벽력탄이 폭발하는 듯한 사자후와 함께, 100명 중 7명이 살아남는 난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난투의 중심은 단연 무명.

"""승부다!!"""

우승후보부터 제거하고자 하는 무인들의 합공에, 무명-비천색마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피곤해."

그는 진심으로 죽을 상을 짓고 있었다.

[작품후기]

한명을_상대로_여럿이서.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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