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77화 (17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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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의 만남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뢰마가 뢰마로 불리는 이유는 그녀가 익힌 특유의 경신법 덕분이다.

그리고 다른 십마와 달리 대공자가 가장 먼저 '지린'으로 끌어들인 십마가 뢰마인 이유도, 공간을 접어 달리는 그녀의 번개같은 축지법 때문이다.

직선으로 달리는 건 십마 중, 아니 마교 중에서 그녀를 따라갈 존재가 없다.

뢰마가 지린뢰마가 되는 순간부터, 대공자는 뢰마를 본격적으로 중원 곳곳에 보내며 음모를 꾸몄다.

각지에서 발생하는 온갖 사건 사고들의 뒤에는 항상 대공자의 계획이 깔려있고, 뢰마는 그게 잘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감시하는 역할이었다.

대공자의 명령에 따라 요동으로 가던 그녀가 안휘로 방향을 꺾은 이유는, 안휘에서 들어온 한 가지 소식 때문이었다.

- '약령'과 접촉한 이가 나타났습니다. 남녀 둘입니다. 천환단의 소재를 파악했습니다.

뢰마는 번개처럼 안휘로 날아왔다. 자신의 귀에 들려온 정보가 정확한 지 확인하기 위해, 그녀는 안휘 골짜기에 있는 마교의 은거 분타에 방문했다.

"만나뵙게되어 반갑습니다, 뢰마 어르신."

"당신이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군요."

"마교 안휘성 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배후성주(背後城主), 남궁살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남궁세가의 일원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마교의 일원으로서,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남궁살(殺)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세요."

"예. 이야기는 대공자께서 추소표국에 천환단을 보내 팽가를 몰락시키려던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남궁살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정보를 꺼내들었다. 뢰마는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와 남궁살의 정보를 교차검증하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러던 도중, 살영대에 들어온 궁살부대의 유망주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홍등가에 드나드는 반로환동의 고수가 있는데, 이 자가 추소광을 죽인 거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더군요."

"추소광?"

"예. 자신이 추소광을 죽일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실제로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추소광은 시신이 되어 발견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불에 타 자살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몸에는 명백히 칼에 수 차례 찔린 흔적이 있었죠."

"그래. 그래서 살왕이 다시 나타난 게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있었잖아."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일주일 전, 실종된 비천삼마가 이곳 안휘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뢰마는 손을 들어 이야기를 끊었다.

"갑자기 비천삼마가 왜 나와?"

"그들은 큰 상처를 입고 있었고, 저희 살영대는 대공자 님의 지시에 따라 비천삼마의 꼬리를 잡자마자 추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 두 남녀에 의해 격퇴당했고, 비천삼마는 상처를 말끔히 회복하고 이곳을 떠났습니다."

"천환단이라도 먹지 않는 한 그렇게 빨리 회복할 수 없다?"

"예. 그리고 남녀가 비천삼마를 회복시킨 곳은 공교롭게도, 유망주가 추소광 살해 용의자로 지목했던 이와 그 보호자라는 자가 사라진 빈 집의 주인이었다고 하더군요."

"......너무 억지가 심한데."

뢰마는 혀로 입술을 할짝이며 빙긋 웃었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서로 다른 사건일 뿐이잖아? 이미 당사자들은 떠났고, 이곳에 있는 살영문의 부대는 걔네들이랑 싸워서 한 번 크게 졌다며?"

"...그리고 방금 전에 들어온 보고입니다만."

남궁살의 말에 뢰마는 표정이 굳었다.

"최소 절정 이상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빈 집을 찾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 빈 집, 산기슭에 있어 그곳에 집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면 존재 조차 모르는 곳입니다."

"비천삼마가 그곳을 다녀가자 병이 싹 나았고, 일주일이 흐른 지금 누군가가 다시 그곳을 방문했다?"

뢰마의 몸에 전격이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 왔다는 그 놈을 잡아 족치면 천환단이 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네?"

"대주."

그림자 속에 파묻힌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뢰마를 향해 한 번 예의를 갖춘 뒤, 바로 본론을 꺼냈다.

"당첨입니다. 놈들이 있던 곳에 새로운 두 남녀가 나타나 땅을 파고 상자를 챙겼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저희에게 '붉은 대붕(大鵬)이 하늘을 날아가다 어린 까마귀들의 습격을 당했으니, 대붕의 위엄을 살려 본보기를 보이고 까마귀 하나를 먹이로 삼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뭐?"

남자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보고에 안휘성 배후성주 남궁살은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는 그 자가 전하라는 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대주."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고. 난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들이 이 암어에 딱히 의미는 없다는 걸 알게된 건, 다시 그 장소를 갔을 때 발견한 한 여인의 몸에 새겨진 별을 보고 난 다음이었다.

* * *

나의 아내들을 만나기 전.

나는 안휘성 합비에 터를 두고 삼구와 함께 긴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혈교주가 만든 혈강시의 양물을 빚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그걸 시험하기 위해 바로 기루로 갔다.

나는 그곳에서 한 여자를 품었다.

사실 여러 여자를 품었다. 홍등가의 기녀들은 어린 소년 외형에 양물만은 확실한 어른인 나에게 관심이 많았고, 나는 여러 기녀들을 품으며 내 정욕을 불태웠다.

그 중 유일하게 나의 방중술을 받아낼 수 있는 여자와 단골이 되었고, 공교롭게도 그녀는 팽유월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홍련.

감히 나를 두고 기만한 무림인 출신 기녀.

기녀는 과연 믿을만한 존재인 걸까?

나는 그녀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진사월을 들이는 데 많은 심사숙고를 했고, 진사월은 이외의 남자를 더이상 들이지 않으며 내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홍련과의 일이 있던 뒤로 결심했다.

세상에 여자는 많다.

그리고 아무리 예쁜 꽃이라고 한들, 이곳 저곳을 향해 고개를 흔드는 꽃은 결국 반듯하게 자리지 않기 마련이다.

내가 하늘이고 내가 태양이라면, 응당 꽃은 태양만을 바라봐야 하는 법.

그러므로 나는 나 이외의 남자를 마음에 품은 여자를 과감히 쳐내기로 마음먹었다.

한 두 번 맛은 본다고 해도, 온전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가차없이 천가장에 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기적이라고?

중원의 남자, 그것도 천하제이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여자 여럿 품는 게 무엇이 문제가 되며, 또 평생을 나와 함께 살 여인이 나만 바라보고 살기를 바라는 게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소위 내가 '먹고 버린' 여인들이 어디서 뭘 하든 신경쓰지 않았다.

을가장의 대모가 새로 남자를 들인다거나 해도, 나의 색 벗인 아미파의 장문인이 새로운 색 벗을 들인다거나 해도,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줄 수 있다.

대신 괘씸한 마음에 색마로서 한 번 몰래 밤에 찾아가 겁간은 하겠지만!

나는 옹졸하고 이기적인 놈이다.

힘이 있으니 욕심을 부리고 싶고,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으니 더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나는 무골호인이 아니며, 내 욕망을 숨기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버린 여자와 혹시나 재회를 하게 된다면,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 지 파악하여 그에 맞게 대응하겠다고.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나는 평상 위에 반듯하게 눕혀놓은 홍련을 두고 고뇌에 빠졌다.

여자를 두고 안 서는 이유는, 내가 그녀에게 성적인 흥분보다 심리적 불쾌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로잡은 여자니까 홍련에게 박자고 생각하기에는 아기색마에게 미안했다.

푸욱.

나는 우선 중려신화정으로 깔끔하게 만든 손가락을 홍련의 속에 집어넣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속은 넣자마자 좌우로 넓게 벌어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남자를 받아들인 거지? 아주 비틀리다 못해 뒤집어졌군. 주먹도 들어가겠어."

"크윽...!"

홍련은 대답하지 못했다.

탁 트인 마당에 내게 음부가 찔리는 굴욕을 당하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미모의 독고연 앞에서 이런 짓을 당하는 것에 더 치욕스러워했다.

"큿...죽여라!"

"죽이는 건 내가 선택할 문제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나는 손가락을 빼낸 뒤, 그녀의 음핵을 지나 아랫배를 꾹 눌렀다. 손가락을 통해 그녀의 단전에서 뽑아낸 내공은 명백한 마기가 깃들어있었다.

"이름, 소속을 밝혀라."

"........"

꾸우욱.

나는 배를 더 깊게 눌렀다. 그제서야 자신의 내공이 내게 빼앗긴다는 걸 깨달은 홍련은 급히 입을 열었다.

"약홍윤...! 마교 살영문, 궁살대 1조대장...!"

"가가, 궁살이라고 하면...."

"생각보다 거물이었군. 1조대장이라니."

궁살대.

즉, 남궁을 죽이는 부대.

지금의 천마가 언제든지 중원 전체에서 혼란을 일으킬 수 있게 만들어낸 암살부대다. 정확히는 살영대의 대주가 어떤 천마가 나오든 그의 명령에 따라 살겁을 일으키기 위해 중원 곳곳에 퍼져있는 암살집단이다.

이시아가 천마에 오르면 그냥 숨어 사는 존재가 될 것이고, 주지가 천마에 오르면 이들은 본격적으로 살겁에 나설 것이다.

'일단 내공부터 땡기고.'

꾸우욱.

나는 그녀의 내공을 모두 빨아들였다. 나에게는 익숙한, 마교의 존재라면 조무래기부터 고수까지 두루 익히고 있는 폭혈심법이었다.

"폭혈심법으로 절정에 이르다니. 흐음, 망가진 단전을 폭혈심법으로 오히려 더 망가뜨려서 걸레짝으로 만들었구나.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상승의 경지로 이르는 원동력이 되었군. 원체 부족한 내공은 채양보음으로 채웠어."

"이, 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불쾌감이다. 나는 손가락을 더욱 깊숙히 찔러넣었다.

"불량식품도 불량식품 나름의 맛이 있는 법이지."

홍련은 눈을 크게 뜨며 나를 핏발 서린 눈으로 노려봤다.

"감히 나를 불량식품...이라고...!!"

"왜? 아무 남자한테나 지조없이 대주고 다니는 걸레라고 불러줄까?"

"강해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은 개미 좆물 만큼도 없는데, 호기심은 생겨서 말이야."

적나라한 내 말에 독고연도 놀랐다. 내가 이토록 여자를 싫어하는 경우는 아마 그녀도 처음 봤을 것이다.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홍련을 향해 물었다.

“몸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 깎아가면서 그렇게 강해진 이유가 있나?”

“반드시...죽이고 싶은 놈이 있기 때문이다!!”

“오호, 복수.”

무림에서 은원만큼 좋은 명분이 또 없다.

"복수를 위해 잠도 자지 않고 피땀 흘리며 힘을 길렀을 테지. 누구를 죽이고 싶어하는 거지?"

"내가 그것을 왜 얘기해야하는가!"

"흥미가 돌아서 말이야. 나와 은원이 있는 놈이라면 내가 대신 죽여주마."

나는 달콤한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무엇이 너를 이토록 복수에 미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여인으로서의 자신을 버리게 만들면서까지 힘을 기르려고 한 걸까. 너를 이런 복수귀로 만든 당사자가 누구일까. 진심으로 궁금해졌거든."

"닥쳐라...이 기만자...! 네 놈도 분명 그 새끼들이랑 관계 있는 놈이 아니더냐!"

씨익.

드디어 단서의 물꼬가 터져나왔다.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관계?"

"천환단! 추소표국의 소동에 엮인 삼구 새끼랑, 그 노예 새끼를 가르치던 반로환동한 늙은이 새끼!!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 새끼가 추소광을 죽였어!"

역시.

더이상은 묻지 않아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여자는 분명 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절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사라진 삼구가 언젠가 돌아오리라 믿으며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천환단을 언급하는 이유는 삼구가 여기서 천환단을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약 열흘 전! 삼구 그 새끼가 이곳에 나타났지! 그리고 놈은 이곳에서 천환단을 챙겨갔다! 비록 그 새끼한테 우리 부대가 전부 패퇴했지만, 나는 그 패배로 확신했다! 언젠가 삼구가 아닌, 그 놈이 올 것이라고!!"

사실상 마교는 추소광과 팽유월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왔구나!"

그리고 나는 홍련을 살려두려던 자비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네 놈이지! 나를 깔보는 그 눈빛, 나를 멸시하는 그 말투! 모습은 변했어도 내가 어디 모를 것 같으냐!!"

"이거 들켰는 걸. 잘 아는 구나. 그래, 내가 그 놈이다."

나는 홍련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런데 아까부터 이상하지 않느냐? 아까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술술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

"!!"

홍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내게 당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흐흐, 규격 외의 존재를 만났으면 무슨 일을 겪을 지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당하는 법이란다."

쿵!

나는 주먹을 들어 홍련의 단전을 때렸다. 그녀는 속에서 뒤틀리는 고통에 피를 토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단전을 부섰다. 이제 너는 채양으로 내공을 쌓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개...!"

"그리고 나에 관한 모든 것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목숨만은 살려두마."

"그냥 죽여, 이 위선자!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놓고, 무공도 쓰지 못하는 쓰레기로 만들 셈이냐!! 어서 죽여라, 이 개같은 새끼야!!"

푸---욱!

평상에 검이 박혔다. 홍련의 목 옆으로 날카로운 검이 박혔다.

"참을 수 없네요."

독고연은, 싸늘한 목소리로 평상을 찌른 검에 검기를 불어넣었다.

"본인이 잘못된 선택을 해놓고는."

홍련의 표정이 더할나위없이 일그러졌다.

"기녀로서 가가를 맞이한 것도, 중간에 양다리 걸친 것도, 재기할 생각도 없이 채양보음 하면서 강해진 것도, 마교에 들어간 것도 다 당신 선택 아닌가요?"

"이, 이...!!"

"가가께서 받아주시지 않은 이유를 알겠네요."

독고연은 담담한 목소리로 검을 회수했다.

"당신, 가가를 이용하려고 하셨잖아요. 가가께 사랑을 주지도 않으면서."

그렇다.

나는 연심도 없이 나를 이용하려는 이 여자에게, 진심으로 혐오감을 느꼈다.

[작품후기]

정답은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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