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76화 (17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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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으로 가는 길

흑의인들을 상대로 나는 검을 휘두르며, 그들이 나를 왜 습격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단서는 하나.

그들이 내가 천환단을 챙기러 이곳에 온 순간, 그리고 내가 천환단을 챙긴 순간 나를 습격했다는 것.

나는 내 급소를 노리는 흑의인의 단검을 검으로 쳐내며 계속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너희 그 놈 노리다가 털렸냐?"

습격자는 내 질문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나를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그녀는 나에 대한 배경은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들이 관심있어보이는 것은 오직 천환단.

과연 무슨 이유로 천환단을 찾는 건지 모르겠지만,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

'대충은 예상 가지만.'

삼구가 이곳의 천환단을 사용했고, 습격자들은 삼구의 동선을 찾아 천환단의 출처를 찾아 움직인 게 틀림없다.

약방 노인이 한 패는 아닐테니, 분명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누군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내가 왜 천환단을 가지고 있는 지 관심없나?"

"너는 그냥 천환단만 내놓으면 된다!"

내 연이은 질문에 짜증이 난 걸까. 흑의여인은 나를 향해 더욱 매섭게 단검을 휘두르며 내 몸을 노렸다. 한 곳이라도 스치면 분명 단검에 발린 독에 의해 몸이 마비가 되리라.

'대충 예상이 가는데.'

이토록 잘 훈련된 이들의 조직은 하나 뿐이다. 나는 단 한 마디로 이 무의미한 싸움을 멈출 수 있었지만, 일부러 말을 아꼈다.

"슬슬 포기하는 게 어떤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네 부하들 싹다 제압당하게 생겼는데."

카앙, 카앙!

뒤에서 단검이 수도 없이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검이 튕겨나갈 때마다 흑의인들도 함께 바닥에 피를 흘리며 고꾸라졌다.

"크윽...!"

"무슨 괴물같은 여자가!"

흑의인들은 독고연의 힘에 경악하며 하나 둘 쓰러졌다. 수십 명의 암살자들이 고작 여인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전부 검을 잃고 어깨에 칼을 맞아 제압당했다.

파살(破殺).

상대의 살기를 감지하여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 들기 전에 정면에서 무너뜨리는 독고구검의 검은 매끄럽고 유려했다. 그 어떤 자도 독고연의 옷깃에 칼을 스치지도 못했다.

"이 여자...일류다!"

"아니야! 절정이다!"

독고연은 흑의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에 입꼬리를 비틀며 더욱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검을 한 번 휘둘러 상대의 검을 튕겨내고,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러 살수의 몸에 검을 찔러넣었다.

독고자영도 마찬가지지만, 난세의 살검으로 변질되기 이전에도 독고구검은 지극히 실전형 무술이다.

즉, 독고연은 비무보다 이런 실전에 더욱 특화되어 있다. 일 대 일이든 다 대 일이든 그게 '실전'이라고 한다면, 독고구검은 더욱 강해진다.

"훗."

독고연은 자신의 힘을 마음껏 뽐내며 살수들을 제압했다. 죽일 자신도 있으나, 죽일 의지도 있으나 내 부탁에 따라 그녀는 검 한 자루로 벌써 서른에 이르는 살수를 제압했다. 나는 그녀를 눈으로 살피며,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연, 뒤에."

"네, 봤어요!"

독고연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달려드는 살수를 향해 검을 찔렀다. 검을 역수로 움켜쥔 뒤 허리 옆으로 찔러 단검을 튕겨내며, 몸을 앞으로 빙글 돌려 검을 다시 바르게 움켜쥐었다.

'끼 부리기는.'

보다 훨씬 더 간결하게 동작을 이어나갈 수 있으면서, 그녀는 내가 보고 있다는 것에 더 아름답고 화려한 검로를 그리며 적을 상대했다. 그게 때로는 자만심으로 이어져 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독고연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파천신검.

무림에서 무사들이 서로 무기를 주고 받는 행위-'합'의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른 여인. 초식과 초식을 마주하지 않고 상대 초식의 약점을 찾아 적을 쓰러뜨리는 검의 성향은 독고구검의 본질인 동시에, 독고연 본인의 성정과도 잘 맞았다.

"하앗-!"

독고연은 짧은 기합과 함께 몸을 빙글 돌렸다. 몸과 함께 검이 한 바퀴 회전했고, 자신을 향해 세 방향에서 달려들던 살수의 검을 동시에 쳐내며 튕겨냈다.

"쉽네요."

독고연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살수들을 조롱했다. 다소 그녀와 어울리지 않다 싶지만, 도발 덕분에 살수들의 평정이 흐트러졌다.

서걱.

독고연은 살수들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무참히 제압했다. 일부러 강하게 단검을 때려 손목을 부러뜨리고, 허벅지를 깊게 찔러 주저 앉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독고연의 파죽지세를 막을 수 없었다. 흑의인 중 한 명을 제외하고.

"이이...!!"

"역시 연이라니까."

나는 독고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내 간격에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계속 맹공을 퍼부었다. 일부러 옷깃을 스치듯 검을 휘두르며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오오, 백옥같은 피부. 맨날 어두운 곳에 있어서 피부가 하얘지셨나?"

"닥쳐라!"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동시에 세 곳을 찌르며, 그녀의 양 팔뚝과 허벅지에 자상을 입혔다.

"내가 입을 다물면 이렇게 네가 더 칼침을 많이 맞을텐데? 말 하면 집중력 떨어지잖나. 그치?"

"이...!"

흑의여인은 단검을 역수로 쥐고 크게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내가 발을 떼기도 전에 단검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닌, 수 십개의 단검을. 나는 그녀의 손에서 펼쳐지는 수법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초식 안쓰고 버티다가 결국 쓰는 구나, 민화투검(敏花投劍)!"

"!!"

단검을 던진 흑의인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검을 옆으로 놓으며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필요한 검은 쾌검. 마침 나는 흩뿌리듯 날아오는 산검을 쳐낼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

매화난세.

자하신공은 없지만, 매화검수라면 누구든 익히는 칠절매화검의 수법으로 나는 산검을 펼쳤다. 날아오는 단검을 모두 요격하며 튕겨냈고, 나는 마지막 검의 끝을 맞춘 뒤 곧장 검을 뒤로 던졌다.

푸----욱!!

"아악!!"

단검으로 시야를 가린 뒤, 독고연의 목을 노리며 뛰었던 흑의여인은 허벅지에 내가 던진 칼이 깊숙이 박혔다.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던 독고연은 흠칫 놀라며 거리를 벌렸고, 나는 한 걸음에 날아가 흑의여인을 발로 걷어찼다.

"죄, 죄송해요. 눈치채지 못했어요."

"죄송할 게 무엇 있느냐. 한순간이라도 놓친 내 잘못이지."

나는 독고연의 어깨를 당기며 검을 놓게 만들었다. 남은 살수는 이제 고작 열 명이 채 되지 않았고, 더이상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태극혜검.'

나는 독고연의 검을 빌려 어검술로 나머지 살수들을 제압했다. 죄다 일류 고수급 살수였으나, 현경의 경지에서 전력으로 펼치는 어검술은 막을 수 없었다.

일 각.

고작 일 각이 채 전부 지나기 전에, 우리는 쉰이 넘는 살수들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적을 죽이는 것보다 무력화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감안한다면, 만약 적을 죽이기로 작정했으면 반 각도 채 되기 전에 쉰에 이르는 살수들은 숨을 거뒀을 것이다.

"가가, 이들은 누구일까요?"

"지금부터 확인해봐야지."

나는 내 검에 찔린 절정 흑의인에게 다가가, 곧장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가 저항하기 전에 재빨리 주먹을 그녀의 배에 찔러넣었다.

"커흑!"

흑의여인은 기침을 하며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냈다. 시큼한 보라색 진액이 흘러나오는 구슬에 독고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독약?"

"잘 훈련된 살수는 임무에 실패하면 바로 꼬리를 자르려고 하지."

"......."

흑의여인은 체념한 눈으로 눈을 감았다. 자결이 실패한 살수에게 남은 선택지는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밖에 없었다.

"너희 중에 혹시 부대장이 있느냐? 이 년 다음의 책임자가."

"...나다."

가장 처음 나가 떨어진 흑의인이 복부에 손을 올린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독고연이 힘조절에 실패하여 가장 상처가 깊은 자였다.

"가서 너희 대주에게 전해라. 붉은 대붕(大鵬)이 하늘을 날아가다 어린 까마귀들의 습격을 당했으니, 대붕의 위엄을 살려 본보기를 보이고 까마귀 대장을 먹이로 삼았다고."

"!!"

부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수신호로 퇴각 명령을 내렸다. 수하들은 하나 둘 피를 흘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가가, 그건 뭐예요?"

"암어. ...설마 여기서 이쪽 놈들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살영문(殺影門).

천마 직속의 암살집단으로, 한 때는 추마귀였던 내가 잠깐 몸을 담았던 살수 집단.

나는 내가 붙잡고 있는 여인이 살왕의 초식을 쓰는 것을 보고 이들의 정체를 확신했다. 설마 혈교의 무리가 벌써 튀어나왔나 싶어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다행히 혈교는 커녕 마교의 존재들이었다.

"천마의 아래에 있는 살수들이란다. 십마와는 다른 마교의 무력 부대 중 하나지."

십마는 굳이 따지자면 정식 체계에서 벗어난 천마만의 개인 부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십만 마인 전체를 아우르는 본래의 체계가 존재하는 법이며, 살영대는 그 중 마교 살수 집단 중 최고봉의 실력을 자랑하는 암살귀들이다.

내가 금의위 감찰관을 죽이고, 그걸 계기로 더욱 많은 살행을 성공하여 인정을 받아 결국 들어가는데 성공했던 살수 집단.

나는 그 살수 집단이 이리도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에 안타까움마저 들었지만, 나와 독고연을 노렸다는 괘씸함에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연아. 저기 안쪽 방에 보면 빗자루가 하나 있다. 저기 평상 위를 대충 쓸어다오."

"채음하시려고요?"

"그래."

내 말에 흑의여인은 그제서야 혼란 가득한 눈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봤다. 자신이 들은 게 맞는 지 의아한 눈초리였으나, 독고연은 그녀의 혼란에 확인사살을 날렸다.

"금방 청소해둘게요."

"부탁한다, 연아."

나는 독고연에게 가벼운 청소를 맡긴 뒤, 흑의인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허벅지에 박힌 검을 빼낸 뒤, 내 품에 넣어둔 상자에서 천환단 하나를 꺼냈다.

푸욱.

나는 습격자의 입에 천환단을 강제로 쑤셔넣었다. 아깝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어차피 천환단은 많고, 여기서 이 여자가 과다출혈로 죽기라도 한다면 더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먹어라. 안 먹으면 내가 직접 먹여주마."

"......."

카득. 흑의인은 분노와 함께 천환단을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머저리 새끼...!"

천환단 덕분에 약간의 체력을 회복한 그녀는 나를 피해 도망치려고 했지만, 내가 내동댕이 치기 전에 혈을 눌러놓아 도망치지 못했다.

"커흑!"

"뭘 그렇게 도망가려고 하느냐."

나는 그녀의 허리를 손으로 휘감아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고 그녀를 독고연이 먼지를 쓸어둔 평상 위에 올렸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범하겠다."

부우욱!

나는 그녀의 하의를 손아귀 힘으로 찢어버렸다. 피에 젖은 부분부터 뜯어내어 굳이 벗길 필요가 없었다.

흑의와 맞춘 듯한 검은 속옷에는 혈향과 지린내가 났다. 나는 다소 역한 냄새에 짜증이 일었다.

"절정이나 되는 고수가 지려버리다니.... 그러고도 네가 살수냐?"

"......."

흑의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범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이 상태라면 범하기도 영 애매했다.

'하는 수 없지.'

화륵!

나는 검지 위에 불꽃을 일으켰다. 흑의인은 그게 삼매진화인 줄 알고 깜짝 놀라 몸을 비틀었으나, 당연히 점혈 때문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 하지마! 하지마라고! 이 미친 새끼야!!"

화륵.

나는 중려신화정의 불꽃을 그녀의 사타구니에 붙였다. 더러운 오물을 정화하는 불꽃은 인간의 신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이, 오직 이물만을 태우며 몸을 깔끔하게 만들었다.

"으으, 얼마나 해댄 거야."

나는 차마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형태에 의지가 팍 죽어버렸다.

아무리 넣기 힘들어보이는 여자라고 해도 서기 마련인데, 왠지 모르게 흑의여인-이제는 반라여인을 앞에 두고 있으니 아기색마는 좀처럼 흥이 없어보였다.

'왜 이러지?'

"꺅!"

나는 독고연의 손을 붙잡아 내 양물 앞에 문질렀다. 놀란 독고연은 처음에는 움찔거렸다가, 나중에는 내 손의 움직임에 맞춰 손가락을 요염히 비틀었다.

뿌우우우.

아기색마는 독고연의 손에 뛸듯이 기뻐했다. 여자만 봐도 서던 나의 물건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여자 맞는데?'

그런데 왜 이 흑의여인에게는 서지 않는단 말인가?

가슴은 다소 빈약해보여도 엄연히 아래에는 여인의 음부가 달려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에 손가락을 앞으로 뻗어, 그녀의 복면을 벗겼다.

"......허어."

이게 무슨 인연일까. 나는 예상치 못한 절정 고수의 정체에 허탈해졌다.

'아는 여자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여인의 얼굴은 표독스러운 인상의 팽유월을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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