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74화 (17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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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으로 가는 길

장강은 넓다.

우리가 장강의 지류인 한수에서 장강으로 합류하는 길에는 호북성의 중심인 무한이 있다.

우리가 이동하는 길은 이 무한을 둘러 장강을 쭉 따라 동쪽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끝이다.

중원 전역의 절반을 가로지르듯, 우리는 강물의 흐름대로 배를 이용해 나아갔다.

다만, 마냥 평화롭게 밤바다를 구경하는 느긋한 이동은 아니었다.

"다리는 괜찮나?"

"네. 마냥 쪽배에 타고 언제 도착할 지도 모르는 거리를 가만히 누워있을 수는 없잖아요."

황보혜지의 결혼을 막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이 잠든 심야가 되면 전속력으로 달렸다.

배는 어떻게 했냐고?

돈을 주고 사거나 빌린 것도 아니니, 어딘가에 대충 주면 주인이 알아서 찾아갈 것이다.

우리가 하룻밤 정도는 경치를 즐기기 위해 화수를 내려오며 탔던 쪽배는 다음 포구에서 반납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중간중간 우리에게 배를 선물해주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아침이 되기 직전 새벽. 우리가 포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면, 어김없이 곡도를 든 놈들이 찾아와 우리를 포위했다.

- 하하!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박화채의 수왕, 주지룡이다!

- 배를 주러 왔다고? 고맙다.

풍덩, 풍덩.

물은 답을 알고 있더라. 다행히 수적들이라 헤엄을 칠 줄 알아서 그런지, 물에 풍덩풍덩 빠뜨려도 누구 하나 죽지 않고 알아서 잘 살아돌아왔다.

- 배는 우리가 가져간다.

- 이, 이 노오옴!!

우리는 그들을 점혈한 채 뭍에 놓고 배를 몰아 이동했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수적들은 우리가 걸어둔 박화채의 깃발을 보고 알아서 피해갔다.

- 으하하! 박화채 놈들, 감히 우리 구역을 넘보는 것이냐!

- 연아, 환승하자.

풍덩, 풍덩.

우리는 점차 배의 크기를 늘려나갔다. 처음에는 쪽배로 시작했던 항해가 어느덧 큰 배가 되었고, 나는 사로잡은 수적들을 이용했다.

- 많이 느리구나. 산을 타고 오르는 산적들보다 느려서야 어디 수적이라 할 수 있겠느냐?

- 뭐? 하기 싫어? 네가 좀 덜 맞았구나.

- 너는 지금부터 노젓기가 즐거워진다. 너는 지금부터 노젓기가 즐거워진다. 너는 지금부터....

때로는 말로 협박하고 때로는 주먹으로 다스리고 때로는 섭혼술로 조종하며 빠르게 강을 타고 내려갔다. 산적들의 배는 아무리 과속을 해도 관에서 쉽사리 건드리지 않았고, 우리는 저녁때 쯤 그들이 체력이 다해 퍼진다 싶으면 배를 버리고 다시 달렸다.

그렇게 요 며칠은 낮과 밤이 서로 다른 움직임의 반복이었다.

밤에 달리고, 낮에는 배에서 잠을 청한다.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림맹이 있는 하남을 통과할 수 없었다.

동시에 독고연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 빠른 시일 내에 제남에 도착해야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는 장강을 따라 동으로 이동하여, 해안선을 따라 올라간 뒤 황보세가가 있는 제남으로 북상한다.

어차피 돌아서 가야한다면, 바닷물에 발 살짝 담구는 정도만 보고 지나가도 되는 거 아니겠는가.

즉, 동쪽으로 쭉 이동한 다음 북쪽으로 쭉 이동한다.

사선으로 가면 훨씬 짧을 거리를 일부러 돌아가는 건 제법 고생할 법도 했지만, 나는 밤에 독고연을 안고 이동할 때 중간중간 영약을 챙기며 내공을 보충했다.

밤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나는 독고연을 안고 초상비에 허공답보에 온갖 난리를 치며 동쪽으로 달렸다.

우리의 변화한 생체 시계 때문에 가장 불편한 것은 먹는 것도 그렇지만 수면이었다.

나야 잠을 안 자도 되지만, 미녀에게는 숙면이 필요했다.

우리가 수적들의 배를 빌려탄 낮이 되면 독고연은 내 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 배에 여자를 태우면 부정타는데....

- 선녀니까 괜찮다. 불만있냐?

- 아무 문제 없습니다, 색마님!

독고연이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독고연의 품에서 쪽잠을 잤다. 나도 잠깐은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러다보니 서로 서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사흘 밤낮을 조금 피곤하게 달린 끝에, 1차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은...?"

"합비."

무엇을 숨기랴. 천가장이 내 집이라고 한다면, 이곳은 내 현생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내가 몇 년을 지냈단다."

"...아, 그러고보니 들은 적 있어요. 천환단 소동 당시에 이곳에 신의의 제자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는 걸. 그...추소표국 사건이었던가요? 그거 가가셨어요?"

"맞단다. 그런데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느냐?"

"무림맹의 중심에 있으면 여러 가지 알게되는 법이니까요. 아버지가 제게 공부하라고 하시면서 바깥 소식을 알려주시기도 하셨고요...."

나는 독고연이 가만히 집만 지키는 줄 알았는데, 독고연은 의외로 어려서부터 맹주 조기교육을 받았다. 괜히 이시아와 대륙의 정세를 논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 추소표국 사건 당시에 내가 이곳에 있었지."

나는 말을 최대한 아끼며 설명을 정제했다. 왠지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나는 괜히 거짓을 말하다 들키지 않도록 진실만을 꺼냈다.

"아는 약재상한테 천환단을 쪼개서 판 다음 한 몫 단단히 챙겨서 떠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천환단을 검증하게 되었지 뭐냐. 아차 싶어서 그냥 사기꾼이라고 뭇매를 맞고 그냥 도망쳤단다."

"사기 아니에요?"

"사기가 아니지만 나 편하려고 사기꾼이 되었지."

나는 독고연과 합비성의 개구멍을 찾아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수백 번도 더 드나든 개구멍은 아직도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천환단을 쪼개서 천분지일환단으로 만들어 팔려고 했는데 그만 실패했지 뭐니."

"흐음, 그럼 원래는 여기에 천환단이 두 개 있었던 셈이네요? 가가가 가지고 계시던 거랑 추소표국에서 팽가로 흘러들어간 두 개."

"그, 그렇지?"

사실은 한 개다. 추소광이 가지고 있던 걸 훔쳐서 쪼갰을 뿐이다.

"......."

독고연의 눈빛이 칼처럼 날카로워졌다. 나는 괜히 취조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더이상 거짓말을 하기 힘들었다.

'사공희가 확실히 편해.'

사공희는 내 말이면 '정말이에요?', '전혀 몰랐어요.'와 같은 말로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설령 내가 적당히 거짓말을 해도 '그러시구나'하면서 넘어가줬-

"......사공희 설마?"

"갑자기 희 언니가 왜요?"

"아, 아무것도 아니다."

어쩌면 진짜로 무서운 건 사공희가 아닐까? 나는 갑자기 사공희가 두려워졌다.

만약 사공희가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른척 해준 거라면? 내가 그녀를 지배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녀가 나를 은근한 말로 나를 교묘히 유도하고 있는 거라면?

사공희는 셋 중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다. 어쩌면 나는 사공희에게 속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겠지. 연아, 미안하다. 잠깐 잡념이 들었다.”

“괜찮아요. 그래서 천환단 얘기를 왜 하셨는지 알려주셔요.”

“크흠, 알았다. 우리가 지금 가져갈 게 천환단이거든.”

“네?”

나는 독고연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잽싸게 지나쳤다. 떠난 지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개방과 하오문의 감시망을 피해, 나는 목적지에 금방 도착했다.

간판 없는 약방.

내가 약초를 자주 팔았던 곳이며, 단골로서 그와 두터운 금전관계를 형성해 천환단을 맡겼던 곳이다.

“문이 닫혀있는데요?”

“괜찮아. 안에 사람 인기척은 느껴지니까.”

나는 당당히 나아가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저 가가가 누구한테 그렇게 예의차리는 거 처음봐요.”

“연아. 그래도 오랜 친구에게 정인을 소개하는데 예의는 차려야지.”

“친구는 무슨 지랄맞….”

문이 열리자마자 나타난 노인은 나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누구시오?”

“약조를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소.”

“.......”

노인은 나를 찬찬히 위아래로 뜯어봤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내 옆에 손을 잡고 있는 독고연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을 사러 온 손님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노부를 아시오?”

“못 알아볼 법도 한데, 예의를 차리니 더 못알아채는 것 같군. 혹시 기억하시오? 마지막에 만났을 때 내가 이만했는데.”

나는 독고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옛날 키를 알렸다. 노인은 인상이 험하게 찌그러지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떡 벌렸다.

“발랑까진 꼬맹이 새끼?”

“흐흐, 오랜만이오. 잘 지내셨소? 이쪽은 내 아내, 연이라고 하오.”

“만나서 반가워요, 가가의 오랜 지인이라고 하셨죠? 연이랍니다.”

“.......”

노인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우리 둘을 번갈아봤다.

“그렇게 예쁜 여자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에는 성공했구만.”

“천하제일의 아내는 당연히 천하제일미녀가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소?”

“못 본 사이에 재수도 없어졌고. 에잉, 그래서 네놈이 진짜로 나한테 네 정인을 소개하러 왔을 리는 없고. 그게 필요해서 온 거냐, 아니면 거기 뒤에 꿍쳐둔 약초 팔러 온 거냐?”

참으로 귀신같은 양반이다. 나는 그를 위한 선물로 장강을 따라 내려오며 찾은 온갖 영약을 그에게 건넸다.

“......이걸 나보고 다 사라고? 안 돼. 나 돈 없어. 너 떠나고 거래 튼 약초꾼들이 죄다 시원찮아서, 약재상 평판 다 떨어졌다 이 놈아.”

“그건 미안하군. 그 평판 이것들로 올리시오. 이걸로 그 물건을 사러 왔소이다.”

“주인이 가지러 온 게 아니고?”

“그냥 주면 안 받을 거 아니오? 정 찝찝하면 오랫동안 보관료로 지불하는 거라 생각하시오.”

나는 노인에게 약재를 들이민 뒤, 약재를 짓는 안쪽으로 독고연을 데리고 들어갔다.

약재 향이 가득한 방은 내가 이곳을 떠나기 전과 차이가 전혀 없었고, 나는 안에 있는 비밀 장치를 해제하여 나무 상자를 꺼내들었다.

“그 때 그대로구만. 하나 쯤은 빼돌려서 팔아도 되는데.”

“그런 거 팔면 탈만 난다. 오오, 이건 상당히 진귀한 물건이군.”

“...가가, 저 뭔가 흐름을 따라갈 수 없는데요.”

독고연은 상자를 열려는 내 손을 붙잡았다.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저 놈이 천환단을 여기다 맡겼고, 나는 그걸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었다네. 그걸 저 놈이 이제 챙기러 온 것이고.”

“짧고 간결한 설명 고맙소.”

나는 상자를 열어젖혔다. 안에는 아이들 먹는 당과만큼의 동그란 단환이 반듯하게 놓여있었다.

한 상자에 무려 5개씩.

“...이게 다 천환단이에요?”

“그렇지. 순정 천환단처럼 즉효성은 없지만, 효과가 나오는 시간만 다를 뿐 효과 자체는 똑같지.”

그리고 상자는 세는 게 귀찮을 정도로 많았다.

“이게 무림에 풀리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내가 그걸 여태까지 안 건드리고 있었던 건데.”

“이제는 필요한 때가 되었소, 노야.”

내 말에 노인은 흠칫 놀라며 눈을 짙게 감았다.

“도대체 강호에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이냐.”

“강호가 아니라 중원, 아니 이 땅 전체에 일어날 일이오. 대대적으로 혈겁이 일어날 수 있으니, 그 때까지 살아있다면 꼭 이 안휘를 벗어나지 마시오.”

“이 새끼는 악담을 하는 거야, 덕담을 하는 거야? 네 놈은 어찌된 게 지아비가 되고서도 달라진 게 없느냐.”

“그 때랑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나름 무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남자로서도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생각을 하건만, 노인이 보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챙겼으면 어서 가라. 아내한테 잘 하고.”

“고맙소.”

나는 천환단이 든 상자 두 개를 챙긴 다음 다시 장치를 걸어 잠궜다. 독고연은 내가 손을 잡아 끄는대로 나를 따라나왔지만, 왜 천환단을 모두 챙기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어...감사합니다, 어르신. 혹시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저 놈에게도 안 알려주기도 했고, 이름따위는 예전에 버렸는데…. 이리 예쁜 아가씨가 묻는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더욱이 노인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궁금해하는 눈치가 강했다.

“나는 무명이니라."

"......예?"

"무명. 본명은 아주 예전에 지웠다."

무명. 나는 그에게서 이름을 따와 무붕이라는 의원을 사칭했다.

"젊었을 때 이름이 부끄럽소?"

"시끄럽다, 이 놈아. 그러는 너야말로 여기서 벌인 일이 부끄럽지 않느냐?"

"끄응. 알겠소. 내 입 닥치리다."

노인은 나의 과거를 유이하게 알고 있는 자다. 나는 순순히 두 손을 들었다.

"잘 지내시오. 만나서 반가웠소."

"그래. 아 참, 그러고보니 그 아이, 얼마전에 다녀갔다."

"...그 아이?"

막 자리를 떠나려던 나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노인과 내가 아는 '그 아이'는 한 명 뿐이었다.

"그래. 서로 무슨무슨 마라고 부르는 이상한 남자 셋이랑 여자 하나를 데리고 다니더구나."

"...여자?"

"그래. 엄청 미인."

노인은 곰방대에 약초를 집어넣으며 불을 붙였다.

"뭐라더라. 이름이...그래. 이칠린."

"이칠린(二七麟)?"

린(麟).

"그래. 나머지 셋도 그렇지만 그 여인도 가명이더군. 세상에 사람 이름이 이칠린인 여인이 어디있나. 흐흐흐."

"......."

이칠.

이십칠.

삼 곱 구.

"...에이, 아니겠지. 설마."

삼구가 비천삼마랑 같이 천마지루를 찾았다?

차라리 황보혜지가 처녀가 아니라고 하리라. 나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왠지 모를 오한이 들었다.

"가가, 그 아이라는 사람은 누구에요?"

"......."

왠지 모를 기시감에 나는 손발이 굳었다.

[작품후기]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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