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72화 (17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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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으로 가는 길

현타 도사 사정후는 오늘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1장로, 도대체 아붕이라는 제자는 누구인가?"

"또 무슨 비밀병기...크흠, 대단한 제자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무당의 남아들은 모두 분발하라! 그 어린 태극화가 동생뻘인 소년을 제자로 들여 옆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너희들도 분발해야지!"

아붕(兒鵬).

마치 장난과도 같은 이명을 가진 이름 때문에, 무당파의 누구도 그 이름이 진짜 이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세상에 아붕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나?"

"필시 가명일 테지. 나중에 절정, 아니 초절정 고수로서 분명 구룡쟁패에 나올 것이야!"

그저 본명을 숨기고 정체도 숨긴, 차기 무당파를 이끌어나갈 귀재라고만 생각하며 모두가 기대를 더 했다.

"""무당의 장래가 참으로 밝구나!!"""

장로들이 모두 기대감을 내비치는 가운데, 1장로인 사정후만 오늘도 정신적 괴로움에 약을 씹어 삼켜야 했다.

"이 사태에 어떻게 생각하시고, 아붕?"

"씁, 왜 이렇게 됐지?"

문제의 원인, 아붕은 전혀 아이답지 않은 모습으로 구시렁거렸다.

화산파를 다녀온 2주 사이에 키가 부쩍 큰 아붕-비천색마는 어느덧 사정후와 시선이 비슷하게 보일 정도로 커졌다.

"왜긴 왜겠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그 업보가 돌아오는 거지."

"그러니까 그걸 알아서 해결해달라고 얘기하고 갔잖소. 1장로의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오?"

쾅! 사정후는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태극화가 다른 곳도 아니고 화산파에 핏덩이 같은 남자 제자를 데려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오? 심지어 방도 같은 방을 쓰셨다지? 허이고, 지금 중원 전체에 음습한 추문이 퍼지고 있소이다!!"

"뭐? 태극화 사공희가 사실은 어린아이를 제자 삼아 성적 욕구를 해갈하는 변태다?"

우두둑.

주먹이 운다. 현타 도사는 청년의 입에 손을 뻗어 좌우로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시도라도 했다간 상대가 자신을 상대로 그런 짓을 저지를 테니 참았다.

"왜? 때리려고? 한 대라도 때릴 수 있으면 해보시오."

"끄응...!"

결코 약해서 참는 게 아니다.

"나는 나보다 강한 이에게만 예의를 갖추는 자이니."

눈앞의 색마는 '마인'답게, 성격이 개차반이고 막돼먹어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자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여러 모로 고생은 많았지만 아붕의 문제는 잘 해결되었소. 다행히 아붕의 겉모습이 그다지 성숙하지 않아, 장로들을 속일 수 있었소이다."

"어떻게?"

"적반하장.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따끔히 일렀더니,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더군."

짝짝! 색마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당연하지. 누가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를 상대로 그렇고 그런 짓을 저지르겠어? 암, 그렇고말고."

"매화검수랑 그런 짓을 했으면서."

"증거 있소?"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있다. 사정후의 손가락이 색마를 가리켰다.

"당신이 증거요."

"내가 증거라?"

"참새가 방앗간을 두고 그냥 갈 리가 없지. 매화검수 선주희같은 미녀를 두고 그대가 그냥 눈요기만 하고 왔다? 만약에 그대가 선주희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내 1장로 직에서 물러나 그대 가문의 총관이라도 되리다."

"......."

색마는 차를 홀짝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정후는 자신의 의심이 맞아떨어졌음에 이마를 탁 쳤다.

"세상에. 견희 그 아이는 옆에서 가만히 있었소? 색마가 다른 여인을 또 취하려고 드는데?"

"오히려 견희랑 셋이서 같이 했는데?"

"...화산의 매화검수를 소리소문없이 취한 걸 떠나서, 우선 그 아이 윤리 교육에 관해서 내가 한 소리해도 되겠소?"

"그래 봐야 소귀에 경 읽는 셈이지. 앞으로는 견희도 자제할 것이오. 나도 자제하리다."

이것이 젊음인가. 사정후는 자신의 혈기왕성했던 시절과는 너무나도 다른 남녀의 만남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래서 이번에 내게 부탁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오? 장문인으로부터 또 한 소리 들으면서까지 아붕의 존재를 숨겼소이다."

"부탁할 건 없고, 그냥 이번에도 길게 외유를 나갈 거니까 알아두라고 찾아온 것이오."

"외유? 잠깐 영약 챙기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외유를 나간다? 그러면 아붕으로서 견희와 함께 둘이 나가는 것이오?"

"아니. 이번에는 색마로 나갈 계획이오."

사정후는 갑자기 현기 도사가 보고 싶어졌다.

결국 한동안 천가장에 묶어둬서 중원 무림에 불안정한 평화가 유지되나 싶더니, 색마가 새로운 여인을 찾으려고 아랫도리를 빳빳이 세운 것이다.

"그냥 말만 색마 짓이고 매화검수한테 한 것처럼 하려고 하는 것이오?"

"아니, 따먹을 것이오. 중원 어디선가 별점 메기는소리가 들려오거든, 내가 한 줄 아시오."

화간과 겁간은 다르다. 사정후는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넉 달 반 넘게 가만히 앉아있다가 색마 짓을 하겠다? 내가 몇 번이고 말했지만-"

"무당에는 일절 피해가 없을 것이다. 죄 없는 여인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당파의 무공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위험에 빠지더라도 무당파로 도망쳐 나를 숨겨달라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약속, 잊지 않았소."

"...그건 참으로 고맙구려."

사정후가 비천색마의 행적에 눈을 감는 이유는 그가 '무당파'에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정후 본인이 고생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고생에 따른 문파의 보상으로 이어지니 달게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디로 갈 예정이오?"

"산동.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

"...제갈? 그곳은 분가가 아닌가?"

"아니. 황보세가."

비천색마는 차를 모두 비우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또 결혼식 망치는 건 기깔나게 잘하거든."

사정후는 바람처럼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몸을 으스스 떨었다.

"......'또'?"

* * *

하북에는 팽가가 있다면, 산동에는 황보세가가 있다!

두 세가의 기질은 서로 너무나도 비슷하다.

호쾌(豪快)!

쾌도난마라는 말은 이 두 세가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만약 두 세가가 같은 지역 안에 있었다면, 서로 자기들이 한 지역의 맹주가 되기 위해 상대를 쓰러뜨릴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웠을 것이다.

중원 무림에서 가장 호쾌한 세가가 누구인가를 따졌을 때, 누구에게든 자신의 세가가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도록 힘으로 다른 세가를 찍어눌렀을 것이다.

- 패도(覇道)는 우리의 것!!

하지만 두 세가는 서로를 인정하고 같은 팔대세가로서 함께 백도 무림의 평화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성정이 비슷할 뿐, 사용하는 주류 무공은 전혀 달랐다.

- 도가 최고다!

- 아니지, 권이 최고지!

팽가는 도법에 능하고, 황보세가는 권법에 능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두 세가는 한 번 대대적으로 싸울 뻔했다. 세가의 후계자들끼리 시비가 붙었던 게 세가 전체의 싸움이 될 뻔했으나, 막상 두 세가의 대립은 시시하다면 시시하게 끝났다.

- 아무리 그래도 칼 든 놈이랑 주먹 든 놈이 서로 생사지결을 나눌 수 있냐?

- 하북은 우리의 것이다!

- 산동은 우리의 것이다!

- 그러면 거기 제일은 너희가 해라!

- 좋다!

두 세가의 전면전이 호쾌하면서도 허탈하게 마무리된 배경에는 무림맹 뿐만 아니라 관의 적극적인 중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겠소?

- 싸움이라면서 모였더니.

하북팽가는 무수히 많은 도객을 모았고, 황보세가는 무수히 많은 권사를 모았다. 도와 권 중 무엇이 더 강한지 가려보자고 모인 무인들은 한순간에 갈 곳을 잃게 되었다.

막상 본격적인 전투를 하려던 두 세가도 모여든 도객들과 권사들에게 허허 웃으며 해산을 얘기하자니, 그 수가 수천이라 쉬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기에 무림맹에서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 비무대회를 엽시다!

도객들은 하북 팽가를 중심으로 모여 천하제일도를 겨루게 되었고, 권사들은 황보세가가 있는 산동의 제남으로 모여 천하제일권을 겨루게 되었다.

- 도전자는 언제든지 받아주지!

하북팽가나 황보세가나 둘 다 도전자가 오는 걸 몹시 반겼다. 당장의 갈 곳 없는 투지를 불태우기에 비무대회는 안성맞춤이었고, 또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무인들은 하북팽가와 황보세가를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가감 없이 뽐내고 싶어 했다.

중원 무림의 주류가 검(劍)인 와중에, 상대적으로 비주류인 도(刀)와 권(拳)을 사용하는 이들이 서로의 실력을 뽐내며 기술을 갈고 닦았다.

당연히 자신의 도와 권이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부기지수였으며, 당당히 천하제일도와 천하제일권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설령, 두 세가가 결국 우승을 30년간 이어왔다고 하더라도.

천하제일의 도, 하북팽가.

천하제일의 권, 황보세가.

많은 이들이 이들 세가를 찾아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두 세가를 찾는 이들 중에는 중원 무림 팔대 세가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다.

- 하북팽가는 문을 열어라! 도왕 장미가 왔노라!

- 으하하! 너, 칼을 좀 쓰는구나! 일단 내 딸과 한 번 만나보겠느냐?!

- 황보세가에 도전하러 왔소! 나의 무적철권과 맞서 보시오!

- 호오, 주먹 좀 쓸 줄 아는 놈인가? 내 여식과 한 번 권을 겨뤄보시게!

두 세가는 강인한 도전자들을 사위로 받아들였다.

- 강하군! 내 딸과 결혼하겠나?!

-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당연히 후계자 자리나 가주는 각 세가의 순혈이 꿰차고 있었지만, 데릴사위로 들어간 남자들은 자신이 가주가 될 가능성을 아예 포기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대에서 모종의 이유로 직계 남자의 씨가 마른다거나.

세가의 소가주와 그 세가의 무공으로 정당한 비무를 펼쳐 승리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설령 본인은 불가능해도 아내를 통해 낳는 자식을 후계자의 후보에 올린다거나.

- 방계든 직계든 팔대세가 여식이랑 결혼해서 도장 하나만 받아도 성공한 인생 아니냐!

중원 무림을 지배하는 여덟 세가의 일원이 된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어깨를 펴고 코 세우고 다닐 충분한 자격이 있다.

당연히 세가에서도 데릴사위로 들여온 이들이라고 한들, 그들이 세가의 일원이 된 만큼 세가의 독문 무공을 가르쳐주거나 성안의 현에 세가의 도장을 하나 떡하니 내어주기도 한다.

세가 가주의 눈에 띄어 결혼만 성공하면, 인생이 성공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두 세가의 여식들이 미모가 떨어지냐? 그것도 아니다.

- 진정한 호걸이 미녀를 쟁취하는 법!

당장 하북팽가에 있는 여인 중 '본가'에 있는 두 명만 하더라도 미모가 출중하고 빼어나다. 비록 한 명은 아이 딸린 유부녀고 한 명은 3/5점이지만, 그 둘은 5년 전만 하더라도 하북에서 혼담 1,2순위를 다투었던 여인들이다.

지금은 비록 색마의 존재로 인해 꼭꼭 숨어있지만, 팔대세가의 여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출중한 미모를 감추지 않았다.

이미 용봉지회 등을 통해 얼굴이 다 팔렸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두 세가 여인들의 미모를 잘 알고 있다. 중원 전체 여인들의 미모, 혼인 여부, 결혼 여부를 따졌을 때, 유명할수록 색마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표적이라는 것을!

- 무림맹주 딸도 하남에서 납치를 당했는데, 우리 세가의 여인이라고 다르겠나!

이미 미모가 대외적으로 예쁘다고 소문났을수록 더 세가에 꽁꽁 몸을 숨겨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팔대세가의 사람들은 기가 막힌 대책을 내어놓았다.

결혼.

- 색마에게 범해지면 혼삿길이 막힌다!

일단 무림에서 가장 위험한 색마인 빙색마인은 어린 처녀만 노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색마는 자신보다 약한 여인, 또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인을 노린다.

가아아안혹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가진 유부녀를 노리는 경우가 있으나, 빙색마인이 을가장의 대모를 습격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내의 곁을 지키는 남편의 손에 의해 색마가 격살 당하기 일쑤였다.

물론 색마에게 본 피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팔대 세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혼약이 막히는 건 아니다.

하나. 결혼하기 전에 색마에게 당한 여자.

둘. 혼인을 하고 난 뒤에 색마에게 당한 여자.

- 막말로 누가 전자랑 결혼하겠냐.

- 자기 아내 못 지킨 놈이 병신 되는 거지.

- 이야...색마한테 여자 지킬 수만 있으면 황보세가 여식이랑 결혼 할 수 있다 이거네?

색마에게 범해지기 전에, 결혼하지 않은 여인들을 빨리 '혼인'을 시킨다.

이미 색마에게 당한 하북팽가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황보세가는 다소 급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 우리 세가의 여인들을 지키는 자들을 우리의 사위로 받아들이겠소!

황보세가는 현재, 세가의 여인들을 색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수백이 넘는 권사들을 불러모아 비무대회를 펼치고 있었다.

이름하여, 천하제일 사위 선발전.

단.

이번에는 한 명을 선발하는 대회가 아니다.

7명.

황보세가에는 일곱 명의 처녀가 있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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