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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뢰마는 평소처럼 대공자를 보좌하며 그의 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각 성마다 최소 두 개 이상의 계략을 동시에 펼치고 있었고, 특히 구파일방과 팔대세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계략은 그들을 내부에서부터 조금씩 좀먹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공자 주지의 음모는 지금까지 숱한 효과를 가져왔다.
고의로 천화를 퍼뜨려 무당파를 반년간 봉문시켰고, 용봉지회에 빙마를 끼워 넣어 그녀가 무림맹 깊숙한 곳에 침투하게 했다.
그리고 화산.
매화검수 선주희가 태극화에 대한 상사병에 걸렸다는 극비 정보를 입수한 대공자는 화산파 내부에 바로 있는 배신자에게 임무를 전달했다.
난화검, 설중매.
바로 선주희의 스승인 그에게, 선주희의 상사병을 이용해 태극화를 붙잡으라는 임무를 내렸다.
화산파의 장로인 그가 어째서 마교 대공자의 임무를 따르는가?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대공자의 사전 계략에 의해 협박을 받는 경우.
아내나 딸이 납치되어 가족이 인질로 붙잡혀있다거나, 목숨이나 명예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걸고 협박하여 강제로 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들 대부분은 본인이 자의로 하는 게 아니기에 임무 수행의 효과는 적지만, 협박에 따른다는 것을 통해 대상을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파멸시키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이용당하였는지도 모르는 채 마교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
마교의 자금줄인 표국의 표사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표국이 진짜 정상적인 상단이나 표국으로만 생각하며, 자신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이 마교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며 하루하루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난화검 설중매처럼, 스스로 마교에 투신하고자 하는 경우.
“장문인이 되지 못한 한으로 마교에 들어오는 이들은 많죠.”
뢰마는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회색 머리칼을 비비 꼬며 비아냥거렸다.
“그들 대부분 마교의 강대한 힘, 천마신공을 익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교에 손을 뻗었죠. 당신은 무슨 의도로 대공자 님께 충성을 바치고자 했습니까?”
“대공자 님의, 크으윽…! 그분을 천마로 만들어 천마신공을 받을, 크아아악!!”
파지지직.
뢰마는 자신의 별호답게 손에서 전격을 일으켰다. 진짜로 벼락에 맞은 듯 난화검은 전신의 짜릿한 고통에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말을 잘못 하셨어요. 당신이 천마를 만드는 게 아니라, 대공자께서 천마가 되는 데 당신이 뒤따르는 거예요. 이제는 그럴 자격도 없지만.”
사락.
뢰마는 손에 움켜쥔 채찍을 잡아당겼다. 난화검의 목에 휘감긴 채찍은 더욱더 단단하게 그를 옥죄이기 시작했다.
“대공자께서 시키신 임무를 아주 말끔하게 실패하셨더군요.”
“그, 그게…!”
“변명할 생각?”
“우, 운이 없었습니다!”
난화검의 외침에 뢰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운이 없었죠. 가만히 기다리면 태극화가 알아서 올 거라는 제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호북까지 갔다가 길이 엇갈려버렸죠. 거기에 당신이 호북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태극화는 매화검수와 인연을 맺었고, 당신은 돌아오면서 태극화를 놓쳤어요.”
퍼억.
난화검의 정강이를 걷어찬 뢰마의 발길질에 난화검은 주저앉고 말았다.
뢰마는 겉보기에는 소녀처럼 보여도, 그녀는 분명한 마교 십마 중 한 명이었다. 또다시 몸이 전격에 지져진 난화검은 좀처럼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이걸 제가 봐 드려야 할까요? 전혀요. 그럴 이유가 없는데 제가 왜 봐드려야 하죠? 임무를 실패한 마인은 전부 처형하는 게 원칙인데.”
철썩, 철썩.
뢰마는 채찍을 양손으로 잡아당기며 씩 웃었다. 가학적인 미소로 뇌전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난화검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크아아악!!”
“어머, 이제 와서 저항하기는.”
난화검은 그의 절기인 칠절매화검을 펼치며 뢰마에게서 도망치려고 했다.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다…!!”
“그래요? 압도적인 힘 앞에는….”
하지만 뢰마는 빠르고 화려한 난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전부 죽어버리던데.”
파지지지직!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손가락에서 발사되듯, 뢰마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뇌격에 난화검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넘어졌다.
코가 부서진 것으로 모자라,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붙잡히고 말았다. 뢰마는 그를 비웃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대공자께서 만들 새로운 하늘에 당신 같은 자가 있을 공간은 없어요."
파지지지짓.
난화검은 숯더미가 되었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뢰마는 난화검이 고통에 죽고 싶어 할 정도로, 하지만 죽지는 않을 정도로 난화검을 '튀겼다'.
"천마지뢰수(天魔支雷手). 천마신공의 힘, 보셨죠?"
"크, 커헉...!"
"하지만...당신이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죠."
"무, 무슨 노력을 하면 되겠습니까!"
"간단해요."
뢰마는 발끝으로 난화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장문인을 죽이세요. 15년 전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 그건...!"
"복수해야죠. 지금의 장문인, 당신보다 약하잖아요? 그런데 남들보다 조금 덕이 많으니, 원리 원칙을 지키니 뭐니 하면서 장문인이 된 사람이잖아요. 안 그래요?"
뢰마의 말에 난화검은 흙바닥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장문인은 누가 되어야 하죠?"
"문파에서...가장 강한 무인!"
"그래요. 그러면 이제 해야 하는 게 뭔지 아시겠어요?"
뢰마는 눈동자를 붉게 반짝이며 씩 웃었다.
"화산의 장문인을 죽이세요. 그리고 마교로 들어오면 되는 거랍니다. 참 쉽죠?"
* * *
그 시각, 하남성 허창 무림맹 아미파 분타.
"......."
빙마, 유설라는 자신의 방 한쪽에 설치해둔 미혼표식구궁진에서 빙백신공을 운용하며 기를 가다듬었다.
무림맹 한복판, 그것도 무림맹주가 있는 곳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면 빙백신공을 사용하지 말아야 했다. 아무리 빙백신공에 당한 것처럼 꾸민다고 한들, 그녀는 아미파의 무사였으니까.
하지만 대공자가 무림맹 잠입 임무를 준 여자답게, 그리고 십마 중 한 명답게 그녀는 아직 빙마라는 걸 들키지 않았다.
그녀 본인도 빙마라고 의심할 수조차 없게, 몸 하나 눕기도 불편한 좁은 창고에서 빙백신공을 운기조식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정체를 숨겼다.
"...언제오실까."
유설라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벽에 등을 기대며 한탄했다.
"언제쯤 강해지시는 걸까."
유설라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범하며, 북해빙궁의 재앙인 백습광아를 죽이겠다고 약속했다.
백습광아를 죽일 수 있는 자라면, 빙궁주가 몸을 허락해서라도 그를 포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빙궁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빙마이기 이전에 빙궁의 주인으로서, 북해빙궁을 살리기 위해 그녀는 비천색마의 강간을 받아들였다. 그가 백습광아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분명 소천마고 임무고 뭐고 허창 전체를 얼어붙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비천색마에게 모든 걸 맡기고, 대공자를 배신하여 그를 기다린 것도 벌써 어언 4개월 하고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비천색마는 색마로서 활동하기는커녕 활동이 몹시 잠잠했다.
내공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지만, 백습광아를 도모할 만큼의 내공은 아니었다. 유설라는 그럴 때마다 그가 걱정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감에 좀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중간중간, 열흘에 한 번꼴로 한 시진이나마 짧게 다녀가지 않았다면 아마 미쳐버렸을 것이다.
"흐, 흥흥."
유설라는 빙백신공을 이용해 손톱에 내기를 불어넣은 뒤, 벽을 가볍게 손톱으로 긁었다. 바를 정(正)자는 벌써 8개를 훌쩍 넘겼고, 그녀는 또 하나의 正에 한 획을 채우며 싱긋 웃었다.
"열 밤 자면 오실 테니...흐흣."
유설라는 무릎을 당기며 고개를 묻었다. 천마신공을 익힌 영향일까, 아니면 북해빙궁주로서 가진 사명 때문일까.
"이번에는...백습광아를 죽일 만큼 강해지셨을까."
유설라는 기대감에 부분 채 몸을 일으켰다. 미혼표식구궁진 덕분에 유설라가 방에 있는 것도 모른 채, 흑의인들은 주인 없는 방을 살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디로 갔지?"
"쉿. 조용히.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흑의인은 옷으로 정체를 숨기려고 했으나, 목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유설라는 상대가 여인인 것을 알아채자마자 바로 미혼표식구궁진 밖으로 나와 둘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파지직!
빙백신장.
상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장법에 두 흑의인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천천히 굳어갔다. 유설라는 은은한 한기를 뿌리며 미혼표식구궁진 밖으로 몸을 뻗은 다음, 두 흑의인을 진의 안으로 잡아당겼다.
"대공자가 보낸 사람이구나. 내가 비천인지 지린인지 궁금해서 보낸 거지?"
"!!"
흑의인은 부정하고자 했지만, 유설라는 둘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씩 웃었다.
"맞네. 하여튼 대공자도 사람 믿지 못한다니까. 별호는 대공자인데 속은 좀생이만도 못해."
"이...배신자...! 빙마, 네년이 감히!"
"어디서 졸개 주제에 십마에게 말을 함부로 하느냐."
번쩍! 빙마는 눈을 붉게 뜨며 둘을 벽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손을 그들의 흑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히익?!"
"이, 이 미친!!"
빙마의 양손이 자신들의 아랫배에 닿자, 두 흑의인은 얼굴을 붉히며 비명을 질렀다.
"그분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대공자는 주변에 여자들밖에 없다고 하더니. 너희들이 여자인 걸, 대공자의 수하인 걸 탓해."
고오오오!
빙마의 손에서 한기가 뿜여져나오기 시작했다. 두 흑의인은 단전에 닿은 빙마의 손으로 자신들의 내공이 빠져나가는 감각에 전신의 털이 쭈뼛 섰다.
"이, 이건 설마...?!"
"흡성대법?!"
"비슷해. 빙백신공과 채음술을 적절히 이용하면...이렇게."
쩌적, 쩌저적.
둘의 단전에서 빠져나온 음기가, 보석 같은 결정으로 맺혔다. 빙마는 옅게 웃으며 그걸 자신의 배에 올려 내공으로 흡수했다.
"...음기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지."
여인들의 음기를 갈취한 빙마는 눈을 찡긋이며, 거미가 먹이를 가두듯 얼음으로 된 고치를 만들어 둘을 미혼표식구궁진의 안에 감금시켰다.
"이틀만 참아. 그분이 오시면 너희들 한 번만 따먹고 어디 알몸으로 버려주실 테니까. 뭐...안오시면 내가 하면 되고."
쩌적, 쩌저적.
"그러니까 말 해. 너희를 이곳까지 들여보내준 자가 누구지?"
빙마는 한기를 굳혀 연성한 천수관음봉 두 개를 들고 활짝 웃었다.
"대답 안 해? 내가 이걸로 너희를 쑤신 다음, 빙백신장의 흔적을 다 지우고 알몸으로 어디 버려두면 어떻게 되겠어? 내가 아니라...색마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겠지?"
"......!!"
빙마는 천수관음봉으로 두 여인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그러니까 순순히 대답해. 누가 맹에서 너희를 여기까지 들여보내준 거니? 대답 안하면 너희의 내공은 빙정이 되고...."
스륵, 스륵.
빙마는 붓을 꺼내들어 여인의 배에 글귀를 남겼다.
"1점짜리 여자가 될 테니까."
1/5.
빙마는 그들이 입을 열 때까지, 단전에서 음기를 흡수했다.
* * *
호북성 양양에서 포구 근처 객잔을 운영하는 중년인, 채삼은 소면 담긴 그릇을 내어놓으며 슬쩍 입을 열었다.
"요즘 곳곳에 색마가 날뛰고 있다는군."
"허어, 그렇소?"
협객으로 보이는 청년은 눈썹을 찌푸렸다.
"호북은 안전하다고 들었건만."
"운남부터 요동까지 전역에 색마가 날뛰고 있는데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소? 다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채삼은 청년의 맞은편에 앉은 '흑발'의 소녀를 가리켰다.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믿소."
"이거 손님에게 몹시 실례가 되는 오지랖이 아닌가?"
"내가 오지랖을 안 부릴 수 없는 게, 그대들처럼 한수를 따라 강을 타고 내려가려는 이들이 수적들에게 변을 당했거든."
"...호오."
청년은 제법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턱을 괴었다.
"까딱 잘못해서 배를 잘못 타면 변사체가 될 수 있다. 그 말인가?"
"변사체로 끝나면 다행이지."
"그럼 괜찮아요. 저희는 강하니까."
흑발의 소녀는 싱긋 웃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가가와 제가 함께라면, 어떤 색마가 와도 이길 수 있어요."
"허어, 가가라니. 이거 내가 큰 실수를 했군."
"괜찮아요. 걱정해주신 거니까."
여인은 품에 손을 넣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호북에서 산동으로 이어지는 간략한 지도였다.
"한수를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장강이 나오잖아요? 장강수로십이채는 널리 퍼져있으니까, 색마뿐만 아니라 수적들도 주의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의외로 여협께서 무림의 정세를 잘 아시는구려?"
"후훗, 이런 걸 다 알아야 미래에 큰 자산이 되니까요."
"산동까지 가려면 제법 멀리 가야겠군."
"...응?"
채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남을 가로질러 가는 게 더 낫지 않겠소? 그래야 더 편히 갈 수 있을 텐데. 무림맹도 있고."
"......."
"......."
두 남녀는 침묵했다. 둘의 깊은 침묵에 기이함을 느낀 채삼이 더 캐물으려던 순간, 여인의 발그레한 미소에 넋이 나갔다.
"가가와...뱃놀이를 길게 다녀오고 싶어서요."
"색마는 걱정 마시오. 나도, 연이도 둘 다 일류는 뛰어넘는 고수이니. 이왕 뱃놀이로 나온 거...."
청년은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연이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더군. 그래서 동쪽 끝까지 가볼 생각이오."
"...아내 사랑이 참으로 지극정성이구먼."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채삼은 쓰게 웃으며 만두를 하나 더 얹었다.
달그락, 달그락.
둘은 아주 조용히 식사를 마무리 지었고, 깔끔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시국에 여행을 가는 것 이외에는 정말 군더더기 없는 예의였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시오. 다음에도 만나기를 바라지."
"후훗, 이곳의 이름을 기억해두겠어요. 다음에 올 때는 넷이서 같이 올게요."
"......넷?"
"후후훗."
'연'이라 불린 여인은 웃기만 하며 청년과 손을 잡고 떠났다. 채삼은 자신의 손에 올려진 음식값에 혀를 내둘렀다.
"벌써 아이를 둘이나 가질 생각을 하다니...."
검은 머리가 흰 머리가 될 때까지 가정에 화목하기를. 채삼은 포구를 향해 떠나는 두 남녀의 뒤로 손을 흔들었다.
"참 좋을 때다."
"이 화상아! 빨리 손님 드신 거 치워!"
"...알겠다, 이 썩을 여편네."
채삼은 눈물을 닦으며 빈 그릇을 정리했다. 괜히 그의 눈에는 땀이 흘렀다.
[작품후기]
4연참은 오늘로 끝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