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70화 (17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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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

천가장을 떠나 천가장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2 주.

"둘이서 잘 다녀오셨어?"

"어디 다치신 건 아니죠?"

투덜거리며 반기는 이시아, 상처는 없는지 걱정하는 독고연. 참으로 다른 반응이지만, 둘 다 나에 대한 염려가 담겨있었다.

"물론이오. ...아 참, 오자마자 이런 얘기를 해서 미안한데."

나는 사공희가 느꼈던 소외감아닌 소외감에 대해 언급했다.

문제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상하기는 하지만, 나의 '경어'에 관한 문제였다.

"언제 그 말 하나 했네. 말 놓아. 천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편히 부르세요. 오히려 좋은데요? 저한테는 확실한 가가니까요."

"...이게 또 은근히 자기 어리다고 끼 부리는 거 봐라?"

이시아는 독고연의 볼을 붙잡고 마구 잡아당겼고, 독고연은 헤실거리며 웃기만 했다.

"둘, 엄청 친해진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

생각보다 둘은 얌전히 있었다. 2주라는 시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둘은 큰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천가장 안에서 조용히 지냈다.

"둘이 제법 친해진 것 같군."

"지난번에는 조금 극한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으니까."

"진사월 언니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언니...정말 많이 알고 계시던데요? 가가의 약한 곳."

...설마 친해진 계기가 그쪽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나는 못 본 사이 둘이 얼마나 대단해졌을지 괜히 기대감이 들었다.

"일단 안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둘 사이에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우리가 화산에 다녀온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사공희와 함께 다녀온 일을 가감 없이 전부 밝혔다.

"야우오협이요? 그런 사람들은 들은 적 없는데...."

"야우오협이 아니라 색마 놈들 아니야? 마교에 들어오고 싶어서 깔짝거리던 놈들인데."

의외, 그것은 우리에게 친절한 오지랖을 부렸던 야우오협이 사실은 협객이 아니라 색마집단이었다는 것.

"그중 한 명이 색마 짓을 하다가 죽었다고 들었는데."

"막내라.... 새로운 색마를 키우는 거나, 아니면 누구 하나가 남색이 있어서 막내라는 자를 속인 다음 범하려고 들겠네요. 안타까워라."

역시 미래의 천마와 무림맹주. 둘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일화들의 단서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정보를 추리하고 파악하기 시작했다. 사공희는 이런 쪽으로는 딱히 재능이 없어, 조용히 과일만 깎았다.

"희 언니, 그 검은 뭐예요?"

"화산에 다녀오면서 상공이 주신 선물이야. 은홍검이래."

은홍검으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은홍검으로 어검술을 사용해 과일을 깎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

"상공, 아앙."

나는 접시 위에 담긴 과일이 정말 예쁘게 잘린 것을 보고 그냥 말을 아꼈다. 한 때 어검술로 국에 들어갈 대파를 자르며 그녀의 이마를 훈계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앞을 녹림의 산적들이 막아 세웠는데, 방영희가 직접 나타났더구나. 그래서 범했다."

방영희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둘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었다.

"너 결국에는 여자면 아무나 박기로 한 거야?"

"방영희...무공이 강한 건 알지만...그...."

"오해다. 사람 말은 좀 끝까지 들어."

나는 둘이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깨달았다.

"그녀 또한 역체변용술의 사용자더군. 방영희의 언니인 방철수 또한 역체변용술의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방영희의 겉모습이 방철수의 것이고, 방철수의 겉모습이 방영희더군."

"상공, 아니죠. 산주봉보다 방영희 쪽이 더 예쁘기는 했어요."

남자가 여장한 것과 여자가 남장한 것 두 가지를 두고 '누가 더 예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 쪽이 더 예쁜 경우가 대다수다.

"안 되겠군. 기다려봐라."

나는 사공희로부터 은홍검을 빌려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깔끔한 검무와 함께 그려지는 방영희의 얼굴에 독고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에는 참 불가사의한 일이 많네요."

직접 방영희와 상대하여 육봉의 일원이 되었던 그녀답게, 방영희의 실체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긴 나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결코 믿을 수 없었다. 곰 같은 야수가 미녀로 변한 셈이니.

"그래서 화산에 도착하고 나니...."

화산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둘은 상당히 많은 관심을 쏟았다.

상사병에 걸렸다는 매화검수가 실은 여자였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선주희가 태극화를 상대로 연심을 품었다는 것에서 둘은 애매모호한 반응과 함께 폭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하하하! 그러면 뭐야, 너 까인 거야?"

"후후, 매화검수...강적이었네요. 혹시 가가가 눈독을 들였나 싶어 걱정했는데."

"같이 잤는데요?"

사공희는 벽력탄을 터뜨렸다.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둘은 표정을 굳히며 먹던 과일에 손을 대지 못했다.

"후후, 상공이 아붕이 되어서 말이죠...."

사공희는 자신의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그야말로 '모든 것'을 둘에게 말했다.

내가 그녀의 처녀를 두 번 취한 것, 사공희를 두고 연적이 된 것, 그러면서도 은근히 서로 살을 섞는 것에 어색해하지 않은 것, 야밤에 자기 몰래 입을 맞춘 것 전부.

"잠깐. 너도 깨어있었나?"

"입 맞추는 소리에 이어서 혀까지 섞는 소리가 들려서요."

"......."

"후후, 그러고 다시 잤답니다. 하룻밤 정도는 주희에게 양보할 수 있잖아요? 저 그렇게 눈치 없는 여자 아니에요."

사공희, 무서운 여자. 설마 옆에서 내가 선주희와 장난을 치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을 줄이야.

"희 언니, 안 그래도 많은데 거기서 매화검수까지 늘리면 어떡해?!"

"그래요. 매화검수라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화산은 갑자기 저력이 튀어나와서 언제 어떤 강한 자가 나올지 모른다고 하셨단 말이에요."

맞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은홍검을 챙기러 갔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검선과 만나 비무를 치렀다.

"그래. 이제 화산은 달라질 것이다."

"상공께서 화산에 자하신공을 이어주셨거든요."

둘은 심각한 얼굴로 우리의 대화를 경청했다.

"15년 전...분명 화산파 전전대 장문인이 독으로 급사한 일이 있었죠?"

"그래. 한창 마교의 짓이 아니냐고 얘기가 많았지. 근데 그거, 아무리 봐도 같은 문파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거든?"

"실전된 자하신공이 갑자기 튀어나오게 되었으니, 암살을 저지른 장본인은 분명 놀라겠네요. 자기가 맥을 끊어버린 자하신공이 설마 책으로 구결이 남아있을 거라고는."

"책으로 남은 걸 폐기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본인도 자하신공을 깨닫지 못했다는 거나 마찬가지지. 푸훗, 꼴 좋네. 설마 자하신공을 없앤 거로 화산파가 말라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시아는 우스갯소리로 넘어갔지만, 자하신공 없는 화산파는 너무나도 쉽게 혈교에게 밀렸다.

무림은 화산파 장문인이 자하신공을 극성으로 발휘하며 싸우기를 바랐으나, 그가 휘두르는 검은 태청강기 뿐이었으니까.

화산대모와 108매화검수가 열심히 그 공백을 메우려고 했지만, 역시 자하신공이 없는 화산파는 소 없는 만두나 마찬가지였다.

"흐음...뭔가 찝찝한데. 중간에 혹시 마교 애들 만나지 못했어? 난 분명 이번에 화산에서 부른 게 대공자의 음모라고 생각했는데."

"자우양이나 자청하, 두 놈 중 한 명이었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선주희가 그랬으니 그것도 아니었소."

남자가 사공희에게 반해서 상사병으로 누워있었다면, 나는 그에게서 마교와 엮인 음모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뿌리를 뽑아버렸을 것이다.

덤으로 그놈도 감히 사공희와 엮인 것으로 다시는 사공희를 걸고넘어지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우양도 자청하도 아니었다. 둘은 그냥 서로 사이가 더럽게 좋지 않은, 하나뿐인 장문인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경쟁자에 불과했다.

"둘은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마교와 접점은 없을 거예요. 뭐...차기 장문인 선정에서 억울하게 밀리지 않는 이상, 화산의 무인이 마교와 손을 잡을 경우는 없으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해? 항상 변수는 존재하는 법이잖아. 우리가 모든 걸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저희가 모든 걸 아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니까.... 단지 그냥 추측만 해 볼 뿐이에요. 가가는 그냥 참고만 해주세요."

"...내가 이렇게 얘기는 했지만, 연이가 말한 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화산의 무인이 마교에 들어왔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지만, 또 모르지. 천산에 오지 않은 상태로 마교를 위해 일하는 경우...없던 게 아니잖아?"

그 말이 맞다.

추소표국의 추소광, 사천당문 겸 하오문의 염마 당서희, 북해빙궁의 빙마 유설라가 그랬던 것처럼, 마교의 손길은 제법 깊게 무림 전역에 뻗쳐있다. 이시아는 모른다고 해도, 현재의 천마나 대공자 주지가 심어놓은 세력이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하긴 그렇지. 마인이 대놓고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어디 있겠어."

"어머? 너 섬서에서 와놓고 못 들었어?"

"...시아 언니, 이거 얘기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시아와 독고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더니 음흉하게 웃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쌤통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둘의 시선에서 기이함을 느꼈다.

내가 뭔가 중요한 걸 하나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 세상에서 제일 사람을 열 받게 하는 게 세 가지 있어. 하나는 내가 내 돈 주고 산 탕수육에 묻지도 않고 탕추 붓는 새끼. 그리고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새끼. 그리고 또 하나는.

'혈교주, 당신이 옳소.'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둘에게 답을 요구했다. 둘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안 됐네. 나는 네가 마검비 따먹고 올 줄 알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거든."

"...마검비? ...검마였던 사람이자, 검각주 왕소현? 그 노마(老魔)가 왜?"

"그분 그렇게까지 나이 많지는 않아요, 가가. 아미파 장문인과 동시대의 분이셨던 걸요? 다른 문파로 치면 장문인급으로 한창인 분이세요."

"그러니까 내가 그 여자를 어떻게 따먹고 온다는 거냐."

"몰랐어? 마검비, 지금 서안에서 비천색마 따먹겠다고 지금 벼르고 있는데."

"...뭐, 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달라붙으며 나를 다시 앉게 했다.

"상공, 말을 끝까지 들으셔요. 석 달 정도 서안에서 머무르면서 색마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래. 아직 시간 많아. 전대 검마가 뉘 집 개 이름이야? 그 아줌마, 지금쯤 아마 초절정을 넘어 화경일지도 모른다고."

"시아 언니랑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아마도 상공이 검제로 사천에서 검을 쓰신 걸 알고 중원으로 나온 것 같아요. 색마가 아니라...검마로 바꾸기 위해서?"

나는 간신히 진정하여 앉을 수 있었다.

마검비 왕소현.

아는 여자다. 아기색마는 기억 속에 가려진 그녀의 속살을 떠올리며 당장이라도 서안으로 날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처녀가 있는데 가릴쏘냐!'

여자 좋아하는 처녀도 취했다. 나이 좀 많은 처녀라고 취하지 못할쏘냐?!

'따지고 보면 미래에 딱 얘들 정도랑 크게 차이 없는 것 같은데.'

미래의 태극검후나 미래천마, 파천신검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몇 살 많은 정도가 멸색사태나 마검비 정도다.

이미 내가 이차성징이 오기도 전에 처녀를 잃은 류서시와는 색붕으로서 관계를 맺는 거로 아쉬움을 달랬지만, 아직 왕소현은 처녀를 잘 간직하고 있다!

왜냐, 내가 미래에서 그녀의 처녀를 먹었으니까.

환갑에 이르렀음에도 30~40대 중년 미부의 모습을 잃지 않은 그녀는 미래천마가 자신의 검각 후예들과 천마신궁을 탈출하기 위한 시간을 몸으로 벌었다.

'지금이라면 더 가능하지.'

이미 류서시도 취한 몸이다. 40대 여자 무인은 화경쯤 이르면 과장 좀 보태어 사실상 20대 후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에 말이다, 내가 마검비를 첩으로 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검각 전체가 다 일어나지 않을까요? 감히 어디서 검각주를 첩으로 들이느냐고. 거기 여자들 기 상당히 세다고 들었는데."

"검각 뿐만 아니야. 마교에도 마검비 추종자들 많은 거 알지? 안 그래도 지금 백도무림공적인데, 마검비까지 따먹으면 너 진짜로 무림공적 된다고."

"가가, 진짜로 가실 거예요?"

셋은 내게 달라붙어 가라앉혔다. 나는 나의 초심을 떠올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는 맛이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흐르기 전이라고 한...다면 더 맛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나는 눈앞의 세 아내, 젖소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이를 생각하며 아기색마를 달래야 했다.

"후우. 알았다. 설마 마검비가 검으로 지지는 않겠지. 당분간 여기서 휴식을 취하마."

"가가, 그것 때문에 말씀드리는 건데요...."

독고연이 내 앞에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이왕 새로운 여인을 품에 안고 싶어 하시는 거라면, 저랑 같이 색마행(色魔行)을 가지 않겠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독고연이, 나보고 여자를 겁탈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어디로?"

"산동."

독고연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황보세가에요."

[작품후기]

사공희 턴 종료

독고연 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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