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69화 (16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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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제일화

화산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우리는 본격적인 귀가 준비를 위해 장문인과 인사를 마쳤다.

“매화검수의 병을 고쳐주어 정말로 고맙소. 주희야, 배웅해드려라.”

“네, 장문인.”

선주희는 장문인의 안내에 따라 태극화와 나를 배웅했다. 문파를 정문을 넘어, 사실상 화산의 영역 끝까지 나왔다.

이대로 헤어지기에 역시 아쉬운 걸까?

“언니, 그리고 제자님.”

죽림의 사이. 향긋한 대나무 향이 울려 퍼져야 할 곳에 매화향이 물씬 풍겼다.

“다음에는 제가 무당파로 인사드리러 갈게요. 조만간, 곧.”

“네, 다음에 오시면 극진히 대접해드릴게요.”

선주희와 사공희는 두 손을 꼭 붙잡으며 한동안 놓지 않았다. 선주희는 조금만 감성을 건드려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았다.

“이제 뭐 할 거예요? 역시 자하지신공의 수련?”

“...그건 그냥 사용하면 사람이 이상해지니까, 우선 장문인께 여쭤보려고요. 스승님이 지금은 안 계시니….”

선주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정말로 자하신공인지, 아니면 누군가 장난을 쳐놓은 건지. ...어째서 제가 화산의 무공을 가지고 그런 불경한 짓을 저질렀는지. 조금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무당에 태극혜검이 찾아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것처럼 말이죠.”

“...동생? 그 말은….”

“화산의 안녕을 바랍니다.”

나는 선주희에게 말로서 축복을 내렸다. 사공희에게서 조금 떨어진 그녀는 내게 다가와 무릎을 살짝 굽히며, 나를 끌어안고 토닥였다.

“...동생, 누나 말 잊으면 안 돼. 알겠지?”

“물론입니다, 누님.”

사공희의 근처에는 그 어떤 누구도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선주희는 내 어깨에 잠시 고개를 묻었다가, 내 등을 토닥이며 몸을 일으켰다.

“후후, 그럼 배웅은 여기까지! 가시는 길에 천천히 둘러보고 가세요. 이맘때의 화산은 경치가 참으로 아름다워요.”

“만약에 어려운 일이 생겨서 호북에 올 일이 있거든, 꼭 호북에 있는 ‘진가장’을 찾아주세요.”

“진가장...이요?”

“네. 제가 아는, 어머님 같은 분이 가주로 계시는 곳이에요. 제 이름...그러니까 ‘견희’의 소개로 왔다고 하면 진심으로 반겨주실 거예요.”

사공희는 내가 자신에게 붙여준 애칭까지 공개했다. 선주희는 한참을 입속에서 견희를 중얼거리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네, 견희 언니. 아붕 소협도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나와 사공희는 선주희와 이별을 마쳤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고, 화산에서 만난 선주희와의 인연은 언젠가 또 이어질 것이다.

우둑, 우두둑.

나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자하신공의 기운이 모두 선주희에게로 넘어갔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내 몸은 한층 성장한 흔적이 가득 남아있었다.

“상공, 혹시 키 일부러 키우신 건 아니죠?”

“물론. ...더 크는 것 같은데?”

사공희의 근처로 다가오니, 이제는 손바닥 하나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다. 나는 바람에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칼을 정돈하며 머리를 쓸어내렸다.

“이래서야 누나 동생보다는 내가 오빠고 네가 여동생인 것 같지 않으냐?”

“...제가 어려 보인다는 거죠?”

“흐흐, 그런 셈이지.”

나는 사공희와 함께 준비된 장소로 몸을 돌렸다. 내가 간밤에 몰래 우리가 떠날 길에 숨겨둔 은홍검은 새벽이슬에 젖어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화산의 보검이지만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네 네 번째 검이니라.”

“......한 번 시험해봐도 될까요?”

사공희가 허리에 손을 올리자, 세 개의 검이 밖으로 쑥 튀어나왔다.

자보, 와룡, 봉추, 은홍.

이제 태극검후가 되려면 이 네 개의 보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뿐.

비록 채음보양은 특별하게 하지 못했지만, 사공희는 태극검후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나는 그녀의 성장에 축하하며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천가장.

우리의 집으로 돌아갈 때다.

“견희야. 주희 말이다, 첩으로 어떠냐?”

“싫어요.”

의외. 나는 사공희의 강한 거절에 조금 놀랐다.

“왜?”

“누구는 첩이고 누구는 처고, 그런 구분이 의미가 있을까요?”

“견희야, 삼처사첩이라고 하지 않았니.”

“황제는 비를 여럿 들이는데 상공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나는 사공희의 말에 입이 바싹 말랐다.

혈교주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대부분 나를 떠보는 말이기는 하지만, 사공희라면 다르지 않을까.

-등신아, 여자는 다 똑같아.

혈교주는 말했다. 스승의 말을 따르면 평균은 가고, 혈교주의 말에 따르면 실패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사공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단 하나.

“네가 싫다고 하면, 주희를 들이지 않으마.”

이미 결론은 나 있지만, 나는 일부러 사공희에게 허락을 구했다. 그녀 또한 내가 자신의 성정을 알고 일부러 물은 것에 볼을 부풀렸다.

“상공, 그거 정말 치사하신 거 알죠?”

“모르겠는 걸.”

“...저는 주희 좋아요. 대신 그건 약속해주셔야 해요.”

사공희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천가장으로 들이실 거라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둘에게도 의견을 물어봐야 하셔야 해요? 물론...둘도 주희를 만나면 받아들이겠지만.”

“한 명 늘릴 때마다 물어봐야 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겠군.”

삼처사첩에서 첩을 처로 올리게 된다면, 기존의 처들에게 반쯤 허락을 구해야 하는 걸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어디 예고도 없이 한 명을 데려와 정실로 삼겠다면 큰 반발이 있겠지만, 셋-사실은 넷 모두 인정할만한 여인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견희야, 항상 고맙다.”

“별말씀을요.”

화산을 빙 둘러 걸어온 끝에, 우리는 미혼표식구궁진을 설치해놓은 곳에 도착했다.

히히힝.

미혼표식구궁진안에 있던 말은 우리의 귀환을 반기며 머리를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말답지 않게 나와 사공희에게 애교를 부리는 게 정말 똑똑했다.

“가족이 하나 더 늘었군. 견희야, 얘 이름은 뭐로 정할까?”

“음...마희(馬姬)?”

사공희가 붙여준 이름에 놀란 건지, 말-마희는 움찔거리며 투레질을 했다. 나는 마희의 위에 올라타, 사공희에게 손을 뻗었다.

“앞에 탈래, 뒤에 탈래?”

“앞이요.”

사공희는 바닥을 가볍게 디디며 내 앞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나는 그녀의 허리 앞으로 고삐를 잡으려고 했지만, 사공희는 자신이 고삐를 쥐며 내 손을 다른 곳에 놓게 했다.

“상공의 손잡이는 따로 있잖아요.”

사공희는 당연하다는 듯 내 손을 자신의 가슴을 받치게 했다.

“말을 타고 가는데 위험하지 않겠어?”

“괜찮아요, 이 정도는. 그리고 오히려 이게 더 편해요. 마희가 달리면 출렁거려서.”

과연. 나는 사공희의 논리적인 말에 수긍하며 사공희를 뒤에서 품었다.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할 테지만, 어차피 스쳐 지나가며 우리를 제대로 보지도 못할테니 아무 상관 없었다.

“상공, 저 인피면구 벗고 가도 돼요? 상공도 본모습이니까, 오랜만에 서로 모두 드러내고 평원을 달려봐요.”

“그거 좋지.”

나는 역체변용술이라는 옷을, 그리고 사공희는 인피면구라는 가면을 벗었다. 우리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어, 화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만끽하며 비탈길을 내려갔다.

화산.

아주 좋은 곳이었다.

***

“쯧쯧쯧, 어린 것들이 하여튼.”

난화검은 민망한 자세로 말을 타고 달리는 두 남녀를 스치며 혀를 찼다.

아주 먼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며 본 거라 잘못 봤나 싶었지만, 여인의 가슴을 희롱하는 청년의 나쁜 손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발랑 까져서. 에휴, 고얀 것들.”

난화검은 구시렁거리며 화산으로의 귀향길에 올랐다.

“...스으으.”

하지만 그는 화산파의 영역에 들어가기 직전, 눈을 붉게 빛내며 죽림의 어딘가로 모습을 감췄다.

사락.

그는 마치 어떤 진의 생로를 밟아나가듯 죽림을 헤쳐나가기 시작했고, 그는 진법 안에 있는 흑의인들을 향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태극화가 이미 화산파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죄송합니다. 호북에서의 보고에 이상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 이상 때문에 내가 헛걸음을 했지.”

퍼억.

난화검은 입을 연 흑의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뭐? 태극화는 결정을 망설일 테니, 난화검께서 태극화를 직접 데리고 올라오면 될 거라고? 이 썩을 놈들. 그분께서 계획한 작전의 시작부터 망가지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흑의인들은 오체투지를 하며 용서를 구했다. 난화검은 신경질을 내며 정강이를 맞은 흑의인에게서 서찰을 빼앗아 들었다.

“그래도 다녀온 사이에 정리는 잘해놨군. 음…. 장문인이 두 매화검수에게 적성자의 시련을? 하, 그래 봐야 어차피 실패할 것. …끙, 마검비라는 여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게야?”

난화검은 호북으로 간 사이 벌어진 일들을 살피며 짜증을 부렸다.

“쳇, 그래서 태극화는 지금 어디에 있나?”

“오늘 아침에 화산파를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제자 아붕과 함께 걸어 나왔다고 하니, 아마 지금쯤 이 근처로 오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분께서 태극화를 원하신다. 계획에 차질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난화검은 혀로 입맛을 다시며 키득 웃었다.

“혹시 아느냐. 그분께서 태극화를 취하신 뒤,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실지.”

난화검은 비릿하게 웃으며 화산파의 무복을 전부 벗어 던졌다. 그리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흑의로 갈아입은 뒤, 복면까지 써서 정체를 숨기려 했다.

“후후후. 태극화가 화산파의 영역에서 색마에게 실종된다라…. 빙색마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겠어. 무슨 짓을 해도 전부 색마 짓으로 돌리면 되니까 말이야.”

난화검은 검을 만지작거리며 기감을 끌어올렸다.

“어서 오너라, 태극화. 너를 제물로 바쳐...몰락하는 화산을 탈출해 나는 광명을 찾으러 가겠다.”

마교로.

난화검은 태극화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왜 안 와?"

자신들이 매복한 길과는 전혀 반대의 길로 돌아갔다는 것도 모르고, 이미 훌쩍 지나쳤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 *

화산파로 돌아온 선주희는 즉시 장문인을 찾았다.

“무슨 일이냐, 주희야.”

장문인은 선주희를 홍수로 인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보처럼 바라보며 긴장했다.

선주희는 자신이 어지간히 장문인과 화산파 사람들의 속을 썩였구나 싶어, 고개부터 숙였다.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니다. 네가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한결 놓이는구나. 사람은 누구나 다 방황할 수 있다. 나도 젊었을 때는….”

장문인의 과거 행적에 선주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 각 뒤.

“...하여, 다시 화산에 돌아오게 되었지. 그런데 주희야,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네. 다름 아닌 이것.”

선주희는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장문인은 책을 눈으로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이 무엇이냐?”

“...무공의 한계에 체술 쪽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사아아.

선주희의 손에 자색의 기운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그에 장문인은 까무러치며 몸을 일으켰다.

“주희야?!?!”

“...저도 모르게 이 책을 손에 집었고, 이 책에는 자하신공과 연계된 무공이 적혀있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하, 하하하!!”

장문인은 배를 잡고 박장대소했다. 그의 광소에는 기쁨과 회한, 그리고 눈물이 담겨있었다.

“결국, 나의 편견이 일을 그르치려고 했던 것인가!”

“...네?”

“미안하다, 주희야!”

장문인은 선주희의 손을 붙잡으며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서안에 색마를 물리치기 위해 마검비가 나타났다는 것.

자우양과 자청하, 두 제자가 적성자의 시련을 넘어 자하신공을 깨우치기를 바랐다는 것.

그리고 전통에 따라 80일간의 폐관수련을 나오는 순간, 자하신공을 익히고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선주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모, 몰랐어요. 태극화 님을 만나느라….”

“괜찮다, 괜찮아! 태극화 님을 만나면서 자하신공을 깨우쳤으니,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어쩌다 알게 되었느냐?!”

“그, 그게.”

선주희는 적당히 각색하여 진실을 밝혔다.

태극화의 제자가 건방져서 그를 훈계하기 위해 태극화의 허락하에 체술로 비무를 하게 되었는데, 마침 눈에 이끌리는 대로 갔더니 자하지신공이라는 걸 찾았다는 것.

“...주희야, 내 숙원을 이루어주겠느냐?”

선주희는 장문인과 함께 급히 매화서고로 향했다.

“여기서 네가 끌리는 책을 일곱...아니, 원하는 대로 다 골라다오.”

선주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짙게 느껴지는 자하신공의 기를 찾아 책을 뽑아 들었다. 규칙 없이 찾아낸 평범한 책들은 상승의 무공도 있었고, 일반 검법에 누구나 익히는 내공 토납법도 있었다.

“...이 책들에서 자하신공의 흔적이 남은 문구를 모아서 하나로 엮으면...이렇게 되더라고요.”

“......허어.”

선주희는 수백 장에 이르는 하나의 서책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장문인은 아기자기한 서체로 쓰인 자하신공에 눈물이 주룩 흘렀다.

“네가 화산의 보배다, 주희야.”

“...아녜요. 저는 그냥….”

“주희야. 내 너에게 장문인으로서 지시...아니 부탁을 하마.”

장문인은 선주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포권을 취했다. 갑작스러운 장문인의 행동에 선주희도 두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휘저었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어서 일어나셔요! 장문인께서 화산의 제자에게 무릎을 꿇으면 어쩌자는 거예요?!”

“너도 폐관수련을 해다오. 실전된 자하신공을 완성하여, 네가 화산의 꽃이 다시 피게 해다오. 그리고…아무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내게 자하신공을 가르쳐다오.”

장문인의 눈에는 광기마저 엿보였다.

“네가, 화산의 새로운 미래를 이끌 스승이 되어다오. 태극화가 태극혜검의 전수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 자하지사자(紫霞之師姉)가 좋겠구나!!"

"......."

선주희는 그렇게 자하신공의 후계자 겸 스승이 되었다.

[작품후기]

자하(지)누나

지금부터 선주희 호칭은 자하(지)눈나 로 통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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