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68화 (16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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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제일화

화산파의 몰락은 자하신공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건 사공희와 선주희의 눌린 가슴을 눈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 가치 없는 일이니 결론부터 기억을 더듬었다.

'그것도 대공자 주지의 음모였지.'

대공자가 화산파의 장문인을 암살했다.

방법은 자세히 모르지만 화산파 장문인은 누군가에 의해 독살당했다. 하필 자하신공을 전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은 만큼, 자하신공을 다음 대에 알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검선 놈, 미래에는 왜 진작에 자하신공을 아무한테나 안 알려줬지?'

나는 이게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검선은 화산파의 장문인들이 자하신공을 분실했다는 걸 몰랐을까?

아니다.

그는 믿었다.

화산파의 후배들이 언젠가 스스로 대성하여, 자신이 매화서고에 남겨둔 자하신공의 안배를 터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던 찰나에 자신의 안배를 깨달은 놈-혈화검이 자하신공으로 화산을 부활시키기는커녕, 화산을 부수겠다고 혈교에 들어갔으니 각혈하며 속세를 등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었다.

미래의 검선은 분명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속세를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검선은 호탕하게 웃으며 떠났고, 나는 졸지에 은홍검 대신 자하신공의 구결을 선주희에게 남기게 되었다.

"우우웅...."

자신이 화산의 미래가 되었다는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 지, 선주희는 사공희와 딱 달라붙어 가슴을 비벼대고 있었다. 잠결에 저러는 것도 참 대단하다 싶었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도 반할 정도로 사공희는 예뻤다. 선주희가 내 양물을 받아들이고 사정을 받은 기념으로, 사공희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며 선주희를 안고 잠들었다.

태극매화.

배분과 나이, 무공과 관계없이 사공희를 추종하는 무리. 백도제일화를 추종하는 이들 중에서도 오직 '여자'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나는 바람직함을 느꼈다.

이렇게, 취향이 참으로 독특한 여인을 사공희를 통해 내가 품을 수 있지 않은가!

"......후우."

나는 둘의 품에서 빠져나와 침대에 걸터앉은 채, 선주희의 등에 손을 올렸다.

'내가 화산까지 돌볼 필요는 없는데.'

화산은 내 관심 밖의 문파였다.

애초에 구파일방 중 내가 크게 신경을 쓰는 문파는 넷밖에 없었고, 화산은 그냥 성별 불명의 매화검수가 사공희에게 상사병이 걸렸다면서 걸고넘어지길래 얼마나 잘난 놈인지 확인만 한번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 끝에, 나는 선주희를 품었다.

그녀를 매화검수에서 넘어, 진정한 화산제일화로 나아가는 기반을 마련해줬다.

과연 그녀는 나에 관한 진실을 알고도 나를 의동생으로 여길 수 있을까? 만약 그녀가 색마인 나를 받아들인다면....

'그럴 리가 없지.'

선주희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이 관계는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나는 그녀의 처녀를 취했고, 그녀는 사공희에게 취해 마음 앓이를 할 뿐이다.

'그래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과연 사공희와 아붕 동생에 관한 마음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전생의 한계를 뛰어넘어, 검선의 유지를 이어받아 자하신공을 부활시키고 화산파를 재건할 수 있을지.

오늘 밤의 일을 잊어버리고 다른 남자를 품에 안지는 않을지.

'사공희 입에서 그 소리 나오게 해줬으니, 내가 특별히 네게 신경을 써주마.'

나는 선주희의 등에 손을 올리고 나의 진기를 살짝 불어넣었다. 환골탈태나 벌모세수는 사실상 의미가 없었고, 내가 화산파 무공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미래의 화산대모가 닿았던 곳까지는 인도해 줄 수 있다.

'건원청심법(乾元淸心法).'

자하신공과는 결이 다소 다르지만, 나는 혈강시가 범했던 화산대모의 경지를 떠올리며 선주희의 기맥을 훑었다.

절정 후반은 쉽게 닿을 것이고, 조금만 수련해도 초절정은 금방 이룩할 것이다. 앞으로 3년만 더 무공을 갈고 닦으면 장문인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지도 모른다.

'그럼 용봉지회에 나오는 건가?'

다음에 있을 다음회차 용봉지회는 적어도 육봉쟁패만큼은 절정, 초절정 고수들의 접전이 불가피하다.

사공희, 이시아, 독고연, 당서희, 유설라, 그리고 출산으로 기혈이 풀린 팽유월.

당장 떠오르는 중반 이상의 고수만 벌써 여섯 명이 가득 찼는데, 그 뒤를 바싹 추격하는 절정 초입의 고수도 수두룩하다.

과연 선주희가 화산의 역사에 최초로 매화봉의 별호를 달 수 있을지. 만약 그녀가 육봉의 자리에 오른다면 자매봉(紫梅鳳)이라는 별호를 얻지 않을까. 아니면 자하지봉(紫霞之鳳)이 되거나.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 주희 누님."

만약 그녀가 다음 회차 용봉지회에 등판하여 당당히 매화봉에 등극한다면, 나는 화산파에 대한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아붕으로서 가진 인연을 그냥 버리기에는, 선주희가 조금-아니 매우 아까웠다.

"......동생."

깨어있었다. 나는 그녀가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는 것에 몹시 놀랐고, 선주희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봤다.

"......."

아무 말 없이, 그녀는 사공희를 바라보다가 내게 손을 뻗었다. 자하지공으로 손가락을 넓게 펼쳐 내 얼굴을 붙잡은 그녀는, 소리 없이 얼굴을 가까이했다.

쪽.

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떼며, 선주희는 내게서 멀어졌다.

"언니한테는 비밀이야."

그녀의 입술과 내 입 사이에 은빛의 실선이 길게 늘어졌다. 선주희는 그걸 입으로 삼키며, 자하지공으로 당긴 내 얼굴을 붙잡고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조금 전이 가벼운 입맞춤이었다면, 지금은 서로 혀를 섞는 농밀한 입맞춤이었다.

"...언니 주변에 다른 놈팡이 꼬이지 않게 잘해."

선주희는 그 말만 하고 다시 사공희의 품에 안기듯 누웠다. 그녀의 귀는 더할 나위 없이 붉어져 있었고, 나는 입술에 남은 온기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

나는 그녀의 앙큼한 입맞춤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설마 기의 흐름을 이끌어주는 거, 들키진 않았겠지?'

방금 깨어난 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선주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옆으로 누운 선주희를 뒤에서 달라붙으며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사공희만큼은 아니지만, 매화검수답게 그녀의 몸은 몹시 육감적이었다.

"...동생."

선주희는 한숨을 쉬며, 뒤로 뻗은 손으로 내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여인에게 엉덩이를 붙잡히는 감각이 몹시 기묘했지만, 나는 선주희가 내 양물이 닿는 위치를 손으로 막는 걸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언니 깨시지 않도록, 조용히 손장난만 쳐.... 알겠지?"

"......."

나는 선주희의 말대로, 나는 그녀의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새벽닭이 울 때까지 주물럭거렸다. 중간중간 선주희의 손바닥에 양물을 문질러댔고, 선주희는 결국 내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사공희가 깨지 않게, 정말로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선주희의 온 몸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이 감촉을 기억하며, 화산을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도록.

나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선주희를 만졌다.

* * *

"하아, 하아!"

모용란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막대한 진기를 사용하느라 그녀는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

옆에 있던 방영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역체변용술이 풀린 상태로 대자로 뻗어있었고, 방영희의 옆에는 흑의인 둘이 기절해있었다.

"역시 괜히 육봉이 아니네. 우리 애들 제법 강한데, 그걸 견뎌내고 이겨?"

"수련...했으니까요."

모용란은 흔들리는 손에 힘을 주고 도를 앞으로 겨눴다. 모용세가는 검법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그녀가 익힌 참풍도(斬風刀)는 그런 편견을 깨부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검각의 후기지수들을 이렇게 이기다니. 역시 용봉지회에 안 내보내길 잘했어. 육봉한테 이렇게 깨질 거."

"...제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모용란은 투기를 불태웠다.

"무림맹주의 딸, 독고연 다음으로 제가 강합니다."

"태극화랑 비교하면?"

"......."

모용란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직접 맞붙어보지는 않았지만, 모용란은 쉽사리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 또한 모용세가의 일원이며, 8대세가 중에서도 유서 깊은 세가의 일원이며 주축이다.

"제가 이깁니다."

자존심 하나 만큼은 하늘을 찔러야 하는 무인이기에, 모용란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아무리 태극혜검으로 검을 날린다고 한들, 그녀의 검은 기본적으로 무겁습니다. 제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을 겁니다."

청풍도법은 나비처럼 가볍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모용란에게 가장 어울리는 도법이다. 만약 진짜로 태극화와 비무를 펼친다면, 태극화의 이기어검을 뚫고 둔중한 몸으로 파고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흐흥, 그래? 그러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철컥. 마검비는 철검을 바닥에 꽂고 허리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다른 검들보다 조금 폭이 좁은, 하지만 묵직한 느낌이 드는 묵검(墨劍)에 모용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로 어검술을 쓰는 상대로 거리만 좁히면 될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스륵.

바닥에 꽂은 철검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용란은 좀처럼 허점이 보이지 않는 마검비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얘, 어디 들어와 보렴. 내가 예전에 너희 가문 검성한테 크게 빚을 진 게 있어서, 그 빚을 이걸로 대신 갚아야겠어."

"무슨...? 저희 가문에 검성은...없습니다...?"

"뭐, 그냥. 아무도 모르는 시시콜콜한 옛날얘기지. 너는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니까 모르겠지만, 은원이 있는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거든?"

마검비의 철검이 하늘을 날았다. 모용란은 급히 청풍도의 기수식을 갖추려고 했으나, 마검비가 띄운 이기어검은 화살처럼 모용란에게 날아들었다.

푸---욱!

철검이 사람을 꿰뚫었다. 모용란은 자신의 뒤에서 짙게 풍겨오는 피 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여자들끼리 이야기 나누는데 눈치 없이 끼어들기는."

"커, 커흑...."

마검비가 날린 철검은 웬 정체불명 흑의인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앞으로 검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그의 손에는 모용란의 등을 노리는 마비침이 들려있었다.

"서, 설마...!"

"중원 전체 색마의 이목을 끌었으니, 이런 일은 앞으로 비일비재할 거야."

마검비는 묵검을 수평으로 들고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원을 그리듯 휘두른 묵검에서 초승달 같은 검기가 번쩍였고, 눈 깜짝할 새 주변 일대가 검의 궤적에 따라 잘려 나갔다.

푸슈우우웃!

갈라진 나무 뒤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랫도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목이 달아났다.

"이, 이런...!"

"왜? 봐줄 필요 있어?"

마검비는 피가 튄 철검을 회수한 뒤, 검을 가볍게 아래로 휘두르는 것으로 피를 닦아냈다. 철검은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이들 모두 여자를 범하러 오는 자들이야. 죽이지 않으면 네가 따먹힌다고."

마검비의 엄하면서도 상냥한 질책에 모용란은 다시 기수식을 갖췄다. 마침 그녀의 뒤로 거구의 남자가 몽둥이를 든 채 나타났다.

"흐아앗!"

남자는 모용란의 가냘픈 몸을 몽둥이로 으깨려 했다. 다리를 박살 내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뒤 범하려는 의도가 틀림없었다.

탓!

모용란은 가볍게 뛰어올라, 몽둥이를 디디고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도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은은한 검기를 만들어냈다.

서걱-!!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모용란은 사뿐히 땅에 다시 착지했다. 거한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고, 곧 입에 게거품을 물며 고꾸라졌다.

툭.

모용란의 팔뚝만 한 굵기의 무언가가 피 분수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모용란은 그곳을 향해 도를 겨누며, 마검비에게 당당히 입을 열었다.

"저는...색마를 죽이되, 목숨까지는 앗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더 잔인한 것 같은데? 흐흥, 좋아. 괜히 어쭙잖게 제압만 하고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마검비는 두 팔을 벌리며 씩 웃었다.

"중원에 색마의 뿌리를 한 번 뽑아보자꾸나, 모용 아가야."

"...아가라니요, 저는 성인입니다."

모용란은 마검비를 향해 마저 도를 겨눴다. 주변에는 더는 색마의 기척이 없었고, 마검비의 철검은 하늘로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배, 모용란이 검각주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흐흥, 역시 백도 애들은 예의가 바르다니까. 마교 애들은 하나같이 싹수를 말아먹었는데."

마검비는 기수식을 취했다. 그녀를 검각주로 만들어준 태을검법은 그 어떤 무공보다도 '정파'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어서 들어와. 내가 너 색마에게 당하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줄 테니."

모용란은 검을 빼 들고 날았다.

야심한 시각.

색마에게 범해지지 않기 위해, 모용란은 마교 제일의 검사에게 당당히 자신의 전력을 쏟아부었다.

[작품후기]

이틀 연속 4연참 한 이유는 사실 주희편이 막상 쓰고 나니까 조진 것 같아서 빨리 스킵하고자....

크흠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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