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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에서 검을 논하다
화산.
매화나무의 향이 사방에 가득해야 할 시기에, 화산은 혈향이 짙게 깔렸다.
"아아악!!"
"막아, 막으란 말이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붉은 머리의 무사들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검을 휘둘렀다. 그들이 펼친 검진은 한 송이 매화와도 같았다.
"크하하하!"
무사들보다 훨씬 더 짙은, 피처럼 붉은 무복의 사내는 자색으로 물든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막돼먹은 검이었지만, 홍색 무복의 무사들은 혈검귀(血劍鬼)의 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사숙! 정신을 차리, 크아악!!"
"나는 네놈들의 사숙이 아니다!!"
혈검귀는 무인의 몸을 세로로 길게 갈라버렸다. 어찌나 검기가 강한지, 무인은 세로로 자상이 생기는 게 아니라 뼈까지 통째로 잘려버렸다.
"으, 으아악!!"
청년 한 명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죽었다. 청년의 근처에 있던 무사들은 눈에서 피를 흘리는 심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사형의 복수!!"
"죽어라, 배신자!"
무사들의 검에서 매화향이 피어올랐다. 셋이서 동시에 펼치는 환검은동시에 수 십의 검이 찌르고 들어오는 것처럼 넓게 퍼졌다.
"흥!"
하지만 혈검귀는 그들을 가볍게 비웃으며 검을 한 번 크게 휘둘렀다.
화산파의 무인들에게서 매화향이 피어오른다면, 혈검귀의 검에는 혈향이 짙은 사인화(死人花)가 피어올랐다.
매화의 꽃잎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의 꽃잎이 한순간 피어올라, 화산파 무인들의 몸에 닿았다.
푸슈우웃---!!
그들의 전신에서 피분수가 튀어 올랐다. 복수를 외치며 검을 휘두른 세 무사는 아무 피해도 입히지 못한 채 한 명당 최소 열 곳 이상에서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스르르.
무사들의 피가 땅을 적셨다. 화산의 땅은 화산을, 섬서를, 그리고 중원을 지켜야 할 무사들의 피로 흠뻑 젖었다.
"하하하! 약하도다, 화산이여! 고작 이런 무사들을 기르려고 나를 내쫓은 것이냐!!"
원래는 흰 무복이었던 옷을 피로 붉게 물들인 혈검귀는 광소를 터뜨리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는 여전히 낄낄대며, 검진을 형성한 무사들을 죽였다.
"사형, 제발!!"
"나는 네 사형이 아니다!!"
한 때는 동고동락했던 사형과 사제를, 한때는 가르침을 주며 대성하라고 칭찬하던 사질들을, 그리고 한때는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아끼던 화산의 무인들을.
"나, 자..이 혈귀검이 되어, 복수를 하러 왔다!!"
치직, 지지직.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는 분명 '혈강시'의 시각으로 뒤에서 혈귀검을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어째선지 그의 이름이 들리지 않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단 말이지. 장문인이라는 자리에 저리도 얽매이는 무인들의 행태가."
내 바로 옆에서 그-혈교주가 중얼거렸다. 화산의 매화보다도 밝은, 하지만 피처럼 붉은 머리칼을 찰랑거리던 혈교주는 내게 몸을 돌렸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장문인을 벌써 열 명 가까이 먹어 치운 자로서."
혈교주는 내게 물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장문인.
나보다 강한 자가 장문인이 되었다면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나보다 강하지만 성정이 좋지 않은 자가 장문인이 되었다면, 옆에서 그를 보좌하며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
그러나 만약 나보다 약한 이가 장문인이 되었다면...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문인은 한 문파의 대표. 결국 누가 맡던 귀찮고 짜증 나는 일만 도맡아 하기 마련인데, 무림은 장문인에 목숨을 건단 말이야. 딱 한 명밖에 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혈교주는 혀를 찼다.
"그래서 이렇게 장문인이 되지 못한 자는 폭주하기 마련이지. 수십 년의 세월을 배반당했다면서."
우리가 나아가는 길의 양옆으로 수많은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졌고, 살겁을 일으킨 장본인은 당연히 우리의 눈앞에서 화산의 무사들을 학살하는 혈검귀다.
한 때 매화검수로서 장문인의 후보에 올랐던 자.
하지만 마지막 순간 다른 경쟁자에게 밀려 패배했던 자.
"심지어 거기에 여자까지 걸려있었으니, 찌질한 복수심만 잘 이용하면 우리의 수족으로 부릴 수 있다 이 말씀."
혈교주는 혈검귀를 비웃었다. 혈교주를 뒤따르는 혈녀들 또한 혈검귀를 향해 비난을 쏟아부었다.
"웃기네요. 애초에 자기 것이었던 적이 없는데."
"장문인 자리는 본인이 비무에서 져서 밀려난 거고, 여자 마음도 애초에 얻지 못했던 거잖아."
"후후, 덕분에 우리는 구경만 하면서 화산을 멸문시킬 수 있게 되었네?"
혈녀들은 꽃놀이를 나온 여인들처럼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시체를 발로 치웠다.
스스로 혈교에 자진하여 들어와 기꺼이 월녀의 제물로 되기를 바란 광녀(狂女)들 답게,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는 건 없었다.
"슬슬 화산파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교주시여, 보고드립니다."
전신에 흑의를 두른 남자가 나타나 혈교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나를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눈빛을 보냈다가, 곧 혈교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무림맹과 마교에서 구원대를 파견했습니다. 무림맹은 무당파의 잔존 도사들을 비롯하여 소림의 파계 대사, 그리고 마교에서는 비천삼마 중 도마가 이끄는 천도맹이 오고 있습니다."
"도착 예정은?"
"앞으로 반나절이면 도착할 겁니다."
"...그럼 장난은 여기까지."
짝.
혈교주는 손뼉을 쳤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혈녀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저는 무림맹을 막겠습니다."
"그래. 혈영대 전원을 이끌고 나가라. 파계 대사의 나찰천장은 조심하라. 혈영대를 아직 잃고 싶지는 않으니."
"존명. ...교주, 호위는?"
혈영대주의 말에 혈교주는 그를 비웃으며 손가락을 허공에 튕겼다.
그러자, 내 몸이 빛처럼 움직이며 혈영대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콰-----앙!!
혈영대주는 그대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비탈길을 따라 굴러떨어진 그를 향해, 혈교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최강의 호위가 여기 있거늘, 감히 제 주제에 이 자리를 넘보다니."
혈교주는 나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디 한 번 매화검수를 그렇게 많이 양성했다고 하는 화산의 대모-선주희 아가씨를 따먹으러 가볼까? 유부녀...으흐흣."
혈교주는, 아이처럼 신이 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화산의 힘을 보아라!!""""""""""""
"씨발, 저게 다 매화검수라고?"
그게, 108 매화검수의 등장으로부터 정확히 일각 전의 일이었다.
* * *
찌르르르.
밤새가 우는 시각.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심야.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분명 의식을 잃듯 쓰러지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품에 안겼을 텐데, 지금은 마치 파도가 옅게 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마냥 얼굴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하아, 하아, 하아.
따스한 숨결이 내 앞머리를 간질였다. 동시에 나는 내 양물의 끝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도 깨달았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구나."
"아니에요, 상공."
사공희는 눈물 젖은 눈으로 나를 맞이했다. 한껏 흐트러진 그녀는 전신이 땀에 절어있었다. 내 몸의 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녀 자신도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느냐?"
"한 시진 가량이에요."
"...많이도 기절했군."
한 시진. 만약 누군가가 들어왔다면 큰일 날 뻔했다. 나는 우선 사공희의 몸에서 떨어졌다.
"아...."
사공희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침음성을 흘렸다. 아마 나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느라 한참을 고생했을 텐데, 막상 내가 떨어지니 눈치를 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무시는 거 계속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봐라, 나중에."
용봉지회에서 사공희가 태극화에 등극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사공희는 내가 자는 모습을 본 경우가 거의 없었다.
자기 전에 항상 나와 내공수련을 하고, 절정에 기절하듯 잠들어 아침에 일어났다. 당연히 내가 그녀보다 먼저 일어났기에, 사공희는 내 자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자는 모습을 보인다는 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무방비한 상태로 놓인다는 말.
즉, 내가 사공희를 전적으로 믿기에 나는 그녀의 품에서 잠들 수 있었다.
검선과의 싸움에서 역체변용술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사공희의 품을 찾은 건, 섬서 일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품이 사공희의 곁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몇 번 보게 될 것 같구나. 내가 내공을 엄청나게 쓰고 왔거든."
"그러게요. 많이 기가 허해 보이시네요. 여인을 안고 왔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그래. 현경 고수랑 한 번 생사결을 펼치고 왔다."
".......예?"
내 말에 사공희는 표정이 차가워졌다. 몸의 열기가 순식간에 식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놀란 그녀가 진정할 수 있도록 손을 붙잡은 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제게 네 번째 검을 선물해주시려고 화산의 검을 챙기려고 했는데, 그 검을 지키는 은거 기인과 비무를 펼치셨다는 건가요?"
"정리하자면 그렇지."
나는 검선과의 전투를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전했다. 내가 목을 두 번이나 내어주고, 스스로 발목을 망가뜨릴 정도로 힘을 소모하고 나서야 그의 팔을 잘라냈다는 것에 사공희는 몹시 놀랐다.
"상공, 어디 아픈 곳은...! 의원을 부를까요?"
"지금은 괜찮다. 내가 괜히 의원 무붕이겠니. 불치병도 치료하는 사람이 자기 병이라고 치료하지 못할까 봐."
"명의는 자기 병은 고치지 못하다고 하던데요."
"나는 신의니까 괜찮다."
시간과 내공이 문제지, 부러진 발목을 고치는 것과 목의 상처를 치료하는 건 내 몸에 남아있던 내공으로도 충분했다.
더군다나 자하신공의 양기까지 끌어당겼으니, 두말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지금 내 몸에 자하신공의 양기가 있단다. 공력으로 치면...대략 20년 공력. 지금 터질 것처럼 넘쳐나서 곤란할 지경이구나. 흐흐."
전부 다 소모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단전에 잘 간직해뒀다가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사공희에게는 말하기 껄끄럽지만 또 다른 방법도 있다.
"그럼 검선을 이기셨으니, 화산파의 무공도 이제 현경급으로 사용하실 수 있으신가요? 자하신공의 내공도 얻으셨으니."
"...응? 그런 건 아닌데."
"......네?"
나와 사공희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상공, 상대의 내공을 흡수하면 그 무공도 흡수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비슷하지만 전혀 아닌데. 너 혹시 내 강함의 비결이 흡성대법 같은 거로 생각했냐?"
"......아."
사공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명백히 말실수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흐흐, 그게 너희들이 내린 '추측'이냐?"
"......둘에게는 비밀이에요."
"알았다, 알았어."
나는 사공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내 앞에서는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내 무공이 근간에 대해 그들은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나를 비무로 꺾으면 알려주마."
"현경이 아니면 알 생각도 말라는 거죠?"
"그래."
회귀에 관한 건 내 행동 목적의 모든 근간을 알고 있는 팽유월 조차도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 밝히게 되겠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그치만 궁금한 걸요."
"그러니까 나를 비무로 이기면 알려준다니까."
진실을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때로는 진실을 알아버리고 난 다음의 절망감보다 훨씬 더 좋을 때가 있는 법.
- 알고 나면 독이 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지. 순박한 줄 알았던 첫 여자친구가 첫날 밤에서 불알에 엉덩이 구멍까지 빨아주는 방중술의 보유자라면, 호기심은 생겨도 굳이 알 필요 없이 그냥 묻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응? 전남친이랑 무슨 짓을 벌였는지....
혈교주는 말했다. 아는 게 힘이지만, 때로는 아는 게 독이 된다고.
"너는 그냥 마음 편히 즐기기만 하여라, 알겠느냐?"
"네, 상공. 지금부터 마음껏 즐길게요."
사공희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뉘었다.
"...상공, 그런데 저 조금만 눈을 붙여도 될까요?"
"하, 이미 머리를 올려놓고 그런 얘기를 하다니."
나는 사공희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단정히 정돈하며, 그녀가 편히 잘 수 있게 자세를 조정했다.
"편히 자라."
"상공, 저 오늘 열심히 비무를 펼쳤답니다. ...이대로 재우실 건 아니죠?"
"허어?"
사공희는 내 허벅지에 옆으로 머리를 뉘며 눈을 반짝였다. 내가 검선과 싸우느라 지쳤듯이, 그녀도 매화검수를 상대로 어검술을 펼치느라 내공이 바닥에 이르러있었다.
"......잠깐 고개 들어봐라."
나는 사공희가 누운 다리를 살짝 접어 그녀가 편히 누울 수 있게 만든 뒤, 몸을 뒤틀었다.
"포상이다. 그런데 괜찮겠냐? 입으로 해도."
"다치셨잖아요. 아래로 하는 것만큼 입으로 해드릴게요."
사공희는 내 바지를 내려, 안에 단단히 솟아오른 양물을 움켜쥐며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사공희는 내 양물을 아래로 당겨, 한 입 크게 입에 물었다. 나는 사공희의 이불을 당겨 그녀의 어깨까지 걸치게 만든 다음,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할짝, 할짝.
사공희는 천천히 내 양물을 핥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희야."
"하움, 왜요?"
"밖에...누가 듣고 있다."
"......."
사공희는 남근을 문 채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