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53화 (15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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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서걱!

흑단나무 책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새로 구매한 지 고작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관리만 잘하면 십수 년은 두고 쓸 단단한 고급 목제 책상이 검에 반 토막이 나버렸다.

"애꿎은 가구에 화풀이하지 마시오, 사형. 다 무당의 재산이니."

"재산? 재애애애산?!"

책상을 반으로 가른 당사자, 장문인 현철 도사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소리쳤다.

"그래! 재산이지! 천화 사태 이후 돈이 없어서 몇 달 동안 산나물만 캐 먹었던 옛 무당파는 이렇게 베어버리는 걸 꿈도 꾸지 못할 재산!"

"본론부터 말씀하시오."

현타 도사의 담담한 말에 현철 도사는 더욱 성을 냈다.

"나는 장문인이다!"

"알고 있소."

"그게 장문인을 대하는 태도냐, 현타!!"

"등선하신 현기 사형이 내게 말하고 가셨소. 사형이 잘못된 길을 걷는다 싶으면 내가 바른길로 인도하도록 옆에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말라고."

서걱! 책상이 한 번 더 반으로 갈라졌다. 현철 도사는 자신의 화를 애꿎은 책상을 가르는 것으로 풀어냈다.

"안다! 알아! 내게도 신신당부했던 말이다! 나도 그걸 알고 너를 존중했다! 하지만 적어도 외인이 있을 때는 참았어야지!!"

"외인이 있을 때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오?"

"현타 이 노오옴!!"

현철 도사의 눈에 핏발이 섰다.

"왜 모르는 것이냐! 화산이 무당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절호의 기회다! 이 기세를 몰아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천하에 증명할 둘도 없을 좋은 기회였단 말이다!"

"거참. 부끄럽지도 않소? 그런 걸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게. 그것도 한때는 형으로 모셨던 사람을 상대로."

"윽...!"

현철 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소 무례한 건 사실이기는 하지만, 대의와 명분은 모두 현타 도사에게 있었다.

장문인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알량한 자존심을 세워보려고 했던 것도, 상사병에 걸린 화산파 매화검수의 부탁을 이용해 무당파에 이득을 가져오려고 했던 것도, 모든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이 난화검보다 더 뛰어난 존재라고 갑질을 하려고 했던 것도 모두 지탄을 받을 법한 일이었으니까.

"사형이 어디 장로였다면 내가 말도 하지 않소. 하지만 장문인 아니오? 나중에 난화검이 화산파의 장문인이 된다면 어찌할 것이오? 그는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이오."

"장문인이니까 그래도 돼!"

현철 도사는 오히려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무당의 장문인이 무당에 이득을 가져오기 위해 하는 일인데 뭐가 그리 불만이라는 말이더냐!!"

"적당히 선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잊으셨소?"

"그렇게 꼬우면 네가 장문인 하지 그러냐!!"

"사형."

현타 도사는 내기를 밖으로 흩뿌렸다. 현철 도사는 자신을 압도하는 현타의 기운에 손이 굳었다.

"내가 사형을 장문인으로서 인정한 건 어디까지나 현기 사형께서 장문인으로 사형을 지목하셨기 때문이오."

"나를...인정하지 않으시겠다?"

"만약 내게 장문인 자리가 왔다면, 나는 사양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지."

현타 도사는 본격적으로 기세를 끌어올렸다. 현철 도사 또한 자신의 기세를 끌어올리며 내공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잊지 마시오. 그날, 사형이 누군가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는 걸 내가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

현철 도사는 바닥에 엎어졌다. 예상치 못한 현타 도사의 말에 그는 입술이 파리하게 떨렸고, 현타 도사는 날카롭게 세웠던 기를 가다듬었다.

"사형이 무당을 위해 뭐든지 하려고 하듯, 나 또한 무당을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오."

"...썩 나가버려라!"

현철 도사는 손을 휘저었다. 그의 떨리는 손에 현타 도사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현철 도사가 장문인에 올라 달라지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장문인답지 않은 그의 옛 모습이 스멀스멀 나오는 것 같아 현타 도사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알겠소. 나도 너무 말이 과했소, 사형."

현타 도사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장문인의 집무실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으니, 애매한 위치에 죽엽청 한 병을 들고 있는 붉은 무복의 사내가 멎쩍게 웃었다.

"오랜만에 한잔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미안하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소."

"아닙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무얼. 자네가 고생이 많지. 나도 화산 안에서는 비슷한 입장이거든."

난화감은 쓰게 웃으며 죽엽청을 흔들었다.

"한잔하겠나?"

"술은 끊었습니다. 말벗이라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에잉, 사람이 영 재미없어졌군그래. 태극혜검을 익히더니 진짜 도사 나부랭이가 다 되어버렸어. 예전에 사파 놈들 때려잡던 개차반은 어디로 갔는지...."

"설 선배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현타 도사의 진지한 목소리에 난화검은 입에 대고 마시려던 술병을 내려놓았다.

"무엇이 그리 궁금하길래 그리도 분위기를 잡는 겐가?"

"상사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습니다. 그건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지요. 하물며 상대가 백도제일화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렇게 비밀리에 움직일만한 일도 아니지요."

"......."

"오히려 난화검선배님께서 이렇게 급히 무당파에 찾아오신 것이 저는 더 의심스럽습니다. 정말로 태극화를 찾고자 하는 의도는 순수합니까? 아니면 태극화와 매화검수를 엮어보려는 주책입니까?"

"...순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후자는 절대 아닐세. 아니, 순수하긴 한데 그게...."

현타 도사의 날 선 추궁에도 난화검은 진정으로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장문인께도 말씀드리지 않은 사항이야. 그대가 태극화와 관계가 깊다지? 그러면 잘 들어두시게. 그러니까 지금...."

소곤소곤.

난화검이 밝힌 진실에 현타 도사는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절대 오해하지 마시게. 알겠는가? 이는 화산의 명예와도 직결되는 일이니."

"......."

현타 도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화산파는 오악 중 서악, 화산 인근에 문파의 터를 잡았다.

무당, 소림, 아미, 곤륜과 함께 오랜 다른 문파들보다 몇 대는 앞선 전통을 자랑하는 문파로, 섬서 일대에는 화산파보다 더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없었다.

화산파는 섬서의 자존심이었다. 중원에서 낙양을 기점으로 동서로 갈린 천하에서 화산파는 서쪽의 맹주로서 오랜 기간 군림해왔다.

따라서 화산파는 속된 말로 돈 마를 일이 없었다. 속가제자들이나 문하생들만 수천 명에 이르고, 지방 호족들도 화산파의 무공을 익히며 후원을 아끼지 않아 화산파는 진정한 섬서의 맹주가 되었다.

"화산파는 정말 부자인 것 같아요. 이렇게 손님용 객실도 호화롭다니."

"온통 매화투성이라서 조금 질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들어온 방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매화무늬가 가득했다. 매화나무로 집을 지은 건 아니지만, 군데군데 들어 있는 매화무늬에 뼛속까지 매화향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막연히 화산의 무인들을 봤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지 않으냐? 이곳의 방만 보더라도 화산파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생각이 드느냐?"

"화려하고, 어지러워요. ...그런데 그게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기도?"

"그래. 그게 화산의 매력이지."

누군가는 겉멋 들었다고 깎아내리기는 하지만, 무림의 무인이 자신이 익힌 무공으로 바탕으로 멋 좀 부리고자 하는 게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화산의 무인들은 대부분이 외향적인 성향이 짙어, 그 뿌리가 도가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호협스러운 색이 더 짙다.

"상공께서는 의외로 화산을 좋게 보시네요."

"좋다마다. 이렇게 넓은 방, 아니 대저택을 너를 위해 내어주지 않았더냐. 서안의 특급 객잔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다."

화산파는 멀리서 찾아온 태극화를 홀대하지 않았다. 전갈을 받자마자 바로 며칠 만에 빠르게 올라온 태극화의 착한 마음씨에 응답하고자, 그들은 화산을 찾은 장문인에게나 내어주는 특급 객실의 문을 열었다.

"자고로 멋쟁이는 멋쟁이를 알아보는 법. 강호 최고의 미남미녀가 화산을 찾았는데, 그에 걸맞은 객실을 내어줘야지. 아아, 만족했다. 침대도 푹신하고 방음도 아주 철저하구나."

다른 무엇보다도 침대와 방음이 좋은 게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침대도 넓고, 부부가 함께 몸을 눕히기에 썩 안성맞춤이 아니냐? 따로 내 것이라고 작은 침대 하나를 더 들인 게 유감이지만."

나를 사공희와 같은 방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에서 나는 화산파에 좋은 점수를 주고자 했으나, 따로 내 전용의 침대를 둔 것이 옥에 티였다.

"사제지간이라고 해도 남녀유별을 따지는 건가. 쳇, 그럴 거면 아예 같은 방으로 넣지나 말지."

"그랬으면 저보고 같은 방을 쓰겠다고 말하게 시키셨을 거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저 침대는 안 쓰실 거 아니에요?"

"흐흐, 맞는 말이다."

어차피 내가 자야 할 곳은 사공희의 품이라고 정해져 있다. 그걸 위해 나는 일부러 사공희를 따르는 제자 겸 시종으로서 그녀와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그러니까 스승아, 화산파에 있는 동안은 잘 부탁한다. 이제부터 나는 너를 진짜 스승으로서 대할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제자님. 혹시 전할 말씀이 있으면 전음으로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스승님."

나의 장난스러운 존대에도 사공희는 짜릿함을 느끼며 나를 끌어안았다. 겉모습을 어리게 만드니 진짜로 내가 어린아이, 자신의 제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너무 기뻐하더라.

"후후후, 시아랑 연이 볼 때마다 은근히 부러웠는데...."

넷이서 함께 지내는 동안, 사공희만 다른 어투로 대했다.

내가 모셔야 할 사람인 이시아. 서로 존대하는 풋풋함 덕분에 이제는 말을 놓는 것이 다소 어색해진 독고연.

이 둘과 달리, 처음부터 나의 몸종으로 만남을 시작한 사공희는 처음부터 나를 섬기는 사람이었다.

즉,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연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둘이 있을 때 사공희에게 굳이 존대할 일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둘만 있음에도 존대를 하는 것에 기뻐하는 것이다.

"제가 스승님께 존대하는 게 그리도 좋으십니까?"

"좋다마다요. 잠깐이지만, 천하제일인께 접대를 받는 게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동감이다.

"현실은 정반대지만 잠깐이나마 꿈을 꾸듯 위아래가 역전되는 듯한 이 배덕감...왠지 모르게 두근두근해요."

나도 구천현녀가 '내일 당신을 죽일 테니, 오늘 하루만 모시게 해주십시오'라고 한다면 구천현녀에게 내 발가락도 핥게 할 수 있다.

사공희는 지금 그와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말을 놓으시지, 왜 자꾸 제게도 존대를 하는 겁니까? 혹시...연이가 부러운 겁니까?"

"......."

사공희는 그저 지그시 웃기만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같았지만, 사공희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쓰다듬을 받으면 누구나 그런 불쾌감이 훨훨 날아가게 되리라.

"스승님, 우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이번에 여기에 화산에 직접 들어온 이유는 전부 네 가지입니다."

"네? 두 가지가 아니었나요? 하나는 상사병에 걸렸다는 그 매화검수에게 얼굴 한 번 비추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선주희 양을 채음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 더 있습니다."

태극화의 힘을 널리 알리는 것.

"스승님, 온 김에 매화검수들에게 누가 더 강한지 보여주지 않겠습니까?"

비무행.

백도제일화가 아니라 백도제일이 누구인지, 화산에 똑똑히 보여주고 떠날 것이다.

"어...남은 한 가지는요?"

"화산의 가장 예쁜 검을 가져가는 것?"

"......상공? 그냥 먹고 가신다면서요?"

"잠깐. 오해다."

나는 사공희에게 오해를 풀기 위해, 제법 긴 시간을 사용해야만 했다.

* * *

늦은 밤.

나는 사공희가 깊게 잠들 수 있도록 재운 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정찰은 암살의 기본.'

사방에 짙은 매화향에 파묻히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 나는 살왕의 암영신보를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그림자 속을 드나들었다.

유감스럽게도 화산파에는 훗날의 천하 삼십 대 고수 안에 들어갈 만한 존재가 없었다. 지금으로 치면 천하 십 대 고수급의 인물이지만, 화산파는 없었다.

천하 백대 고수까지 눈을 돌리면 서넛 정도 있을까 말까 한 빈도.

그중 한 명인 난화검이 하필 무당파에 갔다는 소식은 이미 인근 객잔에서 파악했다. 난화검이 없으면 내가 정체를 들킬 이유도 없었다.

'몸을 줄이니까 잠입도 더 쉽네.'

근육과 근골을 압축하다 보니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조심스레 움직이면 들킬 일도 없다. 막대한 내공 소모도 채음만 하면 금방 해결할 수 있다.

'매화검수들이 지내는 방은 전부 붙어있다고 했지.'

남녀이기 전에 같은 매화검수라는 건지, 세 매화검수의 방은 전각 아래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나는 그들이 잠든 전각 지붕에 숨어들었다.

자우양, 선주희, 그리고 자청하.

과연 이 중에 감히 내 여자를 보고 싶다는 이유로 몸져 누운 놈이 누구일까. 나는 품에서 암살 도구를 꺼내 들었다.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주지.'

자고 일어나면 상사병이 아니라 화병에 평생 몸져눕게 되리라. 나는 아래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탁탁탁.

'이 새끼, 잘 걸렸다.'

마침 희미하게 들리는 손장난 소리가 내 귀를 간질였다. 이불 밑에 숨어 소리를 죽이려고 하는 듯하지만, 내 귀는 속이지 못한다.

'감히 내 여자로 수음을 해?'

하아, 하아, 태극화...!

'...으잉?'

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아, 아아앙.... 태극화...님....

"허."

나는 순간 사고가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급히 사공희에게 의견을 구하기 위해 우리 객실로 돌아왔다.

"우웅...상...흐흠. 제자님, 벌써 채음하고 오셨어요? 그러면 스승에게 그 성과를-"

"스승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뭐가요?"

나는 상상도 못 한 초유의 사태에, 내가 들은 대로 사공희에게 말했다.

"상사병 걸린 자...놈이 아니라 년이던데요."

"......."

[작품후기]

본 작품에서는 으레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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