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45화 (14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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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에서의 부름

4개월 동안 우리의 생활은 너무나도 평안했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식사를 하고, 종일 무공수련을 한다. 그리고 밤에는 사흘에 한 명씩 돌아가며 내공 수련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내공수련에 있어서 셋은 몹시 민감하게 반응하는 터라, 나는 열흘을 주기로 순번을 정했다.

1,4일에는 사공희.

2,5일에는 독고연.

3,6일는 이시아.

"잠깐만. 내가 왜 세번째 날하고 여섯번째 날이야?"

"하늘에 물어봤소. 그대의 순서는 3,6이오."

"그건 좀 억울한데? 일주일마다 새벽부터 나갔다가 그 다음날 새벽에 돌아오잖아! 그럼 나는 엿새째 밤에 밤새도록 내공수련 못하는 거 아니야?"

"거 어차피 할 때마다 기절해서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에 늦게 일어날 거면서. 일요일은 나도 사람인지라 쉬는 날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오?"

내 말에 이시아는 불만어린 눈빛으로 나를 흘겼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척했다.

"나도 엄연히 사람이오. 하루 치 정도는 내공을 모아둬야 하는 거 아니겠소?"

"흐음...그런 것 치고는 딱히 모아둔 양이 아닌 것 같던데...."

"의원님. 혹시 밖에서 색마행 다녀오시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천하 명산을 돌아다니며 온갖 영약을 긁어오기도 벅찬데 여자 취할 시간이 어디있겠소."

일주일에 하루는 내가 밖을 다녀올 때마다 무수히 많은 양의 약재를 가져왔다. 우리 천가장의 수입은 내가 발품을 팔아 얻는 약초가 대부분이었다.

'팽유월한테 다녀오는 거 들키면 좆된다.'

...라고, 나는 연막을 펼치고 있었다. 약초야 위치를 전부 대충 알고 있고 자연의 기운을 찾아 돌아다니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만, 나는 일부러 시간이 걸리는 척 진실을 숨겼다.

7일째.

나는 하늘을 날아 호북에서 하북까지 달렸다. 새벽부터 반나절을 쉬지도 않고 달려 하북에 도착해 팽유월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휴식을 취했다.

- 자주 오시는 건 기쁜데...오실 때마다 이렇게 헐떡이면서 젖달라고 하시면 곤란해요.

- 그래서 싫냐?

- 상공 오실 시간만 되면 자꾸 젖는단 말이에요.

팽유월과는 열흘에 두 세 시진 정도 짧게 운우지정을 나눴지만, 그 짧은 시간 덕분에 왠지 모르게 더 애틋했다. 하북으로 가면서 채집한 영약의 내공을 팽유월과 월아에게 준 뒤, 나는 적당히 내공을 회복하여 곧장 호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8,9,10일째는 다시 사공희-독고연-이시아의 순번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4개월을 지내고 나니, 나는 셋과 함께 지내면서 왜 팽유월이 자신의 존재를 숨겨달라고 얘기한 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언니, 저 생리가 와버렸어요. 왜 그럴까요?"

"...설마 씨없는 건 아니겠지?"

"그러게요. 생리 때 안에 안 받는 것도 아닌데."

나는 세 여인의 의혹 제기에 한 번 더 확실히 얘기해야만 했다.

"최소 화경이 되기 전까지는 아이 낳을 생각일랑 마시오!"

화경.

현경은 너무 멀고, 초절정은 너무 이르다. 독고연의 몸이 어느정도 여물 시기가 바로 화경이며, 그 때가 되면 아이를 낳아도 무공을 익히는 데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더니, 사공희 왈.

"상공. 한 달에 한 번씩 아픈 것보다, 열 달 동안 계속 안 아프다가 한 번에 아픈 게 차라리 좋지 않을까요?"

사공희의 논리적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나마 이시아는 천마의 길 때문에 아이를 갖는 걸 주저하고 있지만....

"상공. 사람은 과연 몇 명까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지, 독고연은 출산 자체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독고 세가의 핏줄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더 아이만들기에 적극적이었다.

"...그, 그러면 나도 질 수 없지."

두 여인에게 혹시나 밀릴 수 있다는 초조함이 그녀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걸까. 이시아는 사공희와 독고연이 둘 다 아이를 가지면 자신도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세 여인 모두 이르기는 하지만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육체적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걸리는 건 오직 내 마음의 준비 뿐. 셋은 여인으로서의 행복을 바라지만, 나는 셋을 상대로는 아버지로서의 행복과 충족감보다는 조금 더 남자로서의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 무턱대고 아이를 낳는 건 지아비 된 도리가 아니니라.

스승은 말씀하셨다. 여인을 행복하게 해준다면서 일단 낳고 보는 건 경계해야 하는 것이라고.

"아이라...좋지. 그런데 아이를 가지면 일단 교배천근추는 불가능하겠군."

"아."

"천마기승위도 안 될 테고."

"씁."

"앞으로도 강하게 못 하는데, 뒤로도 강하게 할 수 있겠소?"

"......."

나는 간신히 설득에 성공했다. 아이를 가지고도 아프지 않게 하거나 낳기 위해서는 먼저 화경에 이르러야 함을 강력히 주장했다.

"시간을 좀더 들여 천가장을 넓힌 뒤에 아이를 낳도록 합시다. 아이들의 방도 있어야 할 것 아니오? 한 두 채 정도로는 부족할 테지."

"그,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다행히 셋은 이른 때에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계획을 보류했다.

"대신 그대들이 빨리 화경에 닿을 수 있도록, 내가 온 힘을 다해 돕겠소."

...왠지 모르게 더 바빠지게 되었지만, 나는 셋을 열심히 도왔다.

"비천, 혹시 소림파 무공을 사용할 수 있어? 화경 고수 급으로."

"안 될 것도 없지. 백팔 나한 중 오대 강자 급으로 해주지."

훗날 백도 무림과 싸우게 될 지도 모르는 때를 대비해 백도의 무공으로 소천마를 상대한다거나.

"의원님, 혹시 황보세가의 무공은 가능하신가요? 저랑 비슷한...초절정 고수 급으로."

"초절정 중반은 아니고, 초입 정도는 가능하지. 대신 천마신공을 끌어올려도 되는가? 그러면 비슷할 것 같은데."

어쩌면 백도의 무사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러야 할 지도 모르는 파천신검에게 백도 무사로서 상대를 한다거나.

"상공, 이번에는 제 이옥천근추를 상대해주십, 꺅!"

"이 것이 하라는 무공 수련은 안 하고! 이 못된 가슴!"

짝. 짝.

무공 수련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경우 엄하게 혼을 낸다거나.

최대한 빨리 화경에 닿을 수 있도록, 나는 세 명의 무공 수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때로는 직접 대련을 하고, 때로는 그들의 무공을 좀 더 잘 아는 사람으로서 가르쳐줬다.

사공희에게는 태극검후로서.

이시아에게는 미래천마로서.

독고연에게는 파천신검으로서.

자신들의 미래와 직접 마주하게 된 셋은 명백한 '벽'을 경험했고, 그 벽을 뚫기 위해 전력으로 노력했다.

덕분에 셋의 무공은 날로 일취월장했다.

아쉽게도 4개월 정도로 절정 고수가 초절정이 바로 된다거나, 이미 초절정인 독고연이 화경이 되어 당장 아이를 낳겠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러 조력자의 도움이 있었다.

"여러분, 간식 드셔요."

"고맙다, 진사월."

셋이 무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진사월은 매일 천가장에 들러 식사를 마련했다. 덕분에 우리는 점심과 저녁을 거르지 않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무공 수련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천가가, 아침 만큼은 제가 해드리고 싶어요!"

아침은 독고연이 꼭 하고 싶다고 우기는 바람에, 아침은 그녀에게 모든 걸 맡겼다.

나도 그녀를 돕고자 했지만, 독고연은 천가장의 살림을 본인이 전부 다 도맡아 하기를 바랐다.

"상공, 저도 식사를 돕겠어요."

"솥에 물 올리고 그냥 가라."

"비천, 나는 뭐 할 거 없어?"

"천마간보기."

해가 떠오른 도중에는 식사와 무공수련을 병행했다.

그렇게 4개월 동안 무공 수련에 열을 올렸지만, 무공밖에 익힐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지만 서서히 예상 외의 변수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사공희의 경우.

"상공, 저 장문인이 찾아서 잠시 다녀올게요."

"잘 다녀와라. 무슨 일로 불렀는 지 돌아와서 꼭 얘기해주고."

사공희는 대외적으로 태극화로서 활동을 해야만 했다.

- 현타야, 견희 자꾸 부르게 할래?

- 태사부, 미안하지만 무당파의 일에도 조금은 협조해주시오. 중간에 끼인 내 입장도 조금 이해해 주시구려.

최대한 사정후를 닥달하여 사공희가 나설 일을 줄이려고 해도, 사공희가 꼭 해야 할 일이 몇 개 있었다.

"상공. 장로 님들과 친선 비무를 펼치고 와도 될까요?"

"이기고 오너라."

가령, 장로들을 상대로 태극혜검을 직접 가르쳐주는 스승의 역할 한다거나.

"상공. 신가장의 장녀가 대련을 요청했어요."

"대련?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예쁘던데요?"

"...일단 구경이나 한 번 해볼까?"

감히 육봉과 싸우기도 전에 태극화부터 도모해보려는 건방진 년들에게도 참된 교육을 할 필요가 있었다.

"밤에는 제가 바쁘고, 낮에는 자꾸 문파에서 부르고.... 하아, 은근히 시간을 빼앗기네요."

그래서 사공희는 온전히 천가장에서 무공 수련을 하기는 어려웠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열흘에 사흘 정도는 무당파에 '출근'하는 식으로 집과 문파를 오다녔다.

그렇다고 다른 둘이 모든 시간을 무공에 집중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이시아의 경우.

"이상하다...그 새끼가 분명 뭔가 저지른 게 있을텐데."

이시아는 휴식 시간-무공 수련 이외의 시간-을 모두 대공자 주지의 음모를 찾는데 사용했다.

"진사월 씨. 정말로 섬서에 이런 일 밖에 없었습니까?"

"예. 옛 인연을 통해 정보를 얻어보기도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으으...이상하네. 그 새끼가 왜 계속 조용하지?"

호북에서 정보를 얻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비천, 우리 십마 한 명만 더 우리편으로 데리고 오면 안 될까?"

"누구?"

"수마. 그 자라면 분명 다른 곳에서의 정보를 얻기도 쉬울 거야. 사천에 있는 염마와 하남에 있는 빙마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고."

수마(獸魔).

그녀는 별호대로, 짐승을 다루는 마인이다.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로 변신하는 요술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마교의 정보력 3할은 수마로부터 나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녀의 첩보 능력은 대단했다.

"수마만 있으면 염마랑 빙마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수마가 부리는 전서구들은 남들에게 걸릴 일도 없단 말이지."

이시아는 지린삼마 중 한 명인 수마를 비천수마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 새끼...뭐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

무공 수련을 하며 강해지는 건 좋지만, 차기 천마로서 대공자 주지에게 밀리는 건 바라지 않았다.

"수마는 신출귀몰한 존재라 함정을 파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거요. 함정을 파도 호북은 오지 않을테지."

나는 이시아를 진정시켰다. 이시아 또한 수마를 잡기 어렵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면 뢰마를 잡으러 가는 건 어때? 걔는 확실히 여자잖아. 어때, 걔도 시녀로 만들어버리는 건. 너도 솔직히 끌리지 않아?"

이시아는 수마가 어떤 존재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뢰마가 여자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건 맞는 말인데, 뢰마 또한 상당히 용의주도한 자요. 수마가 함정을 파야한다면, 뢰마를 잡으러 멀리 가야할 필요가 있지."

"끙...."

이시아는 지린삼마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염마와 빙마를 자신의 시녀로 만들고 난 뒤, 이시아는 부쩍 자신감을 가졌다.

"이미 반수가 넘는 마인이 그대의 편 아니오? 마음을 편히 먹으시오."

비천에 해당하는 십마는 도, 적, 환, 색, 염, 빙 총 6명. 이미 과반수가 넘는 십마를 손에 넣었지만-

"과반수로는 안 돼. 6명이 아니라, 나머지 4마도 모두 내 마인이어야 해."

"욕심이 크군."

"천마가 욕심 좀 부리면 어때. 십만마인을 넘어, 천하를 손에 넣을 여자인데."

이시아는 모든 십마를 자신의 무인으로 꾸미고 싶어했다. 마교에서 대공자 주지의 세력을 모두 축출하고 싶어했다.

"시아 언니. 언니는 중원을 점령하고 싶어하시는 거예요?"

이시아의 포부에 독고연은 아닌 척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무림맹주의 딸인 만큼, 중원이 혼란에 빠지는 쪽은 지양하려고 했다.

"그런 거 관심없어. 내가 관심있는 쪽은 다른 쪽이니까.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내가 마교를 점령해야 마인들이 중원으로 날뛰지 않을 거 아니야."

"지도자가 되어 중원 침략을 주장하는 이들을 모두 힘으로 찍어내려고 하는 거군요."

"맞아. 천마가 중원 침략을 거부하면 지들이 따라야지. 꼬우면 마교를 나가거나."

이시아는 정마대전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주지 새끼 음모를 확 다 뽑아버려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건 천가장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시아가 빠진 상념과 잡념은 그녀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독고연.

"가가, 혹시 세탁 더 할 거 있어요?"

"가가, 저 오향장육 하는 법 가르쳐주시겠어요?"

"가가, 오늘 술 상은 뭘로 할까요?"

"가가, 시아 언니가 빨래 말리려고 해요! 도와주세요!!"

독고연은 진사월과 함께 천가장의 살림을 도맡아 했다.

워낙 책임감이 강했기에, 독고연은 무공의 수련과 병행하여 가사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때로는 가사 일조차 집중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가가,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황보혜지라고 아시나요?"

"알지. 황보세가의 적녀가 아닌가."

"...제 친구인데요...그러니까 그게...."

황보혜지.

나 또한 알고 있는 여인이며, 현재 다름아닌 이시아와도 관계가 있는 여인이다.

"혜지, 원하지도 않는 남자와 가문에서 강제로 결혼하게 생겼대요. 근데 이 결혼...평범한 결혼은 아닌 것 같아요."

"뭐? 정략결혼? 그것도 무림의 가문도 아닌 지방유력 호족의 망나니랑?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데? 그 새끼의 냄새가 난다고."

대공자 주지의 그림자가 황보세가에 드리웠다.

"가가, 혹시 혜지도 좀 도와주시겠어요?"

"내가?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지않소?"

황보세가.

그곳에 드리운 대공자의 음모를 뽑아내려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부족하다.

"가가, 혜지도 납치해주세요."

"나보고 황보혜지를 겁탈하라는 말이냐?"

"제가 보장하는데, 혜지가 만약 가가에게 마음을 품으면 걔도 가문을 떠날 아이에요."

"...색마가 나설 때인가."

4개월.

슬슬 색마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가 되기는 했다.

그리고.

"상공. 오늘 장문인이 저한테 얘기하던데.... 이거 상담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뭘?"

"저, 초청받았어요."

"초청?"

"네."

무림제일화, 태극화 사공희는 정식으로 초청을 받았다.

"어디에?"

"화산이요."

구파일방 중 하나, 화산파의 초청을.

[작품후기]

강호에 부는 새로운 바람.

그것은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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