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42화 (14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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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사정

호북성, 무당파 인근 약재상.

인근의 여러 성으로 약재를 공급하는 제법 규모가 큰 금수(金手)상단의 주인, 금오수는 직접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약재상까지 나와야만 했다.

"오오, 이것이...."

약재상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하수오였다. 평범한 하수오가 아닌, 분명한 '천년하수오'가 틀림없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약붕이라고 합니다."

천년하수오를 팔고자 온 청년은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얼굴로 기대감을 비추고 있었다. 다부진 어깨와 체격은 산을 제법 탄다 싶은 약초꾼의 전형이었다.

"반갑소. 금오수라고 하오. 그런데 이건 어디서 얻은 것이오?"

"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아내가 꿈에서 말하길, 호랑이가 갑자기 등에 태우고 계곡으로 자신을 이끌었다고 하더니...."

금오수는 청년, 약붕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법 유명한 약초를 발견한 자들 대부분 꿈에서 조상님이 인도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중요한 건 천년하수오가 진품인가, 아닌가.

그리고 약붕이라는 청년이 믿을만한 존재인가, 아닌가.

'천년하수오는 진품인데.'

금오수는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지난 십 수년간 약재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상단의 주인으로서, 그는 영약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천년하수오는 물론 만년하수오도 한 번 실물로 봤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약붕이 캐온 천년하수오가 진품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물건은 거짓을 말하지 않지만, 사람은 거짓을 말하지.'

금오수는 찬찬히 눈을 뜨고 약붕을 살폈다. 확실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이보게, 장삼. ...저 청년을 아는가?"

"예. 4개월 전부터 약재를 구해왔습니다. 성실하기도 하고, 채취하는 것들이 죄다 중상품이어서 좋은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음...."

4개월.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간의 거래 실적을 보면 어느정도 신뢰감이 생기기에는 충분한 시기였다.

"따로 어디서 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나?"

"없습니다. 다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신혼? 크흠."

금오수는 헛기침을 하며 천년하수오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람이 문제가 없다면, 물건은 거래해도 하자 없는 특등급 상품이었다.

우연이지만, 청년은 심 봤다.

"...미안하네. 요즘 호북에 장물이 많이 돌아다녀서 말이야."

"장물이요?"

청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금오수는 급히 청년을 진정시켰다.

"걱정마시게. 그대의 것이 장물이라는 게 아니야. 근 2년간 천년하수오가 호북에서 거래된 적이 없으니, 이토록 싱싱한 천년하수오가 장물일 리가 없지. 괜히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네."

"하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금오수는 청년에게 천년하수오의 값을 치렀다. 생각보다 값이 나가 금자에 은자까지 섞어 받았지만, 청년은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참, 산수유 말린 것 좀 있습니까? 아니면 열매도 괜찮은데. 석류도요."

"그건 왜? 여자들한테나 좋은...."

청년은 싱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척 보기에도 양기가 끓어 넘치는 것으로 보이는 청년은 약의 기운이 전혀 필요 없어 보였다.

"아내를 상당히 아끼나 보군. 좋은 사람과 거래를 계속해서 나쁜 건 없지. 얼마나 필요한가?"

"흠...."

청년은 손바닥을 전부 펼쳤다.

"있는 거 전부 다 주십시오."

"......아내가 혹시 많이 아픈가?"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청년, 약붕은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제가 아내만 여럿이라서. 하하하."

"......."

* * *

"정력제 따위 필요 없는데."

나는 금수상단으로부터 선물 받은 말린 칡을 질겅질겅 씹으며 전장을 다녀왔다.

- 아이고, 오늘 횡재하셨군! 축하하오, 약붕!

천년하수오를 팔아 얻은 금자를 맡기자, 전장에서는 뛸 듯이 기뻐했다. 나라는 우량고객을 대함에 있어서 그들은 내 정체에 대해 그다지 캐묻지 않았다.

'돈 되면 다 손님이지.'

내가 어디 물건을 훔쳐다가 판 것도 아니고, 무당산 인근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약초를 직접 채집했다.

출처에 대해 의심받을 이유는 없다.

약초는 장물이 아니니까.

'장물은 더는 팔면 위험할 것 같은데.'

삐이익!!

뒤에서 호각 소리가 울렸고, 나는 몸을 돌렸다. 뒤에는 무림맹의 무사 둘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소협, 잠시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예? 저, 저 말씀입니까?"

"예. 짐을 잠시 확인하고자 합니다. 검문에 응해주십시오."

맹의 무사들이 검문할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나는 선량한 양민으로서 순순히 봇짐을 열었다.

"이건...?"

"산수유, 석류, 그리고 혈기를 다스리는데 좋은 약초입니다. 제 아내가 요 며칠 달거리가 심해서...하하."

"크흠, 미안합니다. 오해했습니다."

맹의 무사들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자신들의 월권에 대해 순순히 사과할 줄 아는 반듯한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짐을 확인하시는 겁니까?"

"최근 호북 지역에 장물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호북성의 여러 전장에서 나온 물건들이 많이 빠져나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허어, 그렇군요. 도적이라도 나타났단 말입니까?"

"...크흠, 그게-"

"여기서 뭘 하는 것이냐."

뒤에서 진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림맹의 무사는 아니지만 무림에 관련된 자, 무당파의 도사였다.

"이곳은 맹의 구역이 아닐 텐데?"

"아, 현타 도사님!"

"죄송합니다. 그게 그만."

"누구를 검문한 것인가? 맹의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해도 좋...."

현타도사, 사정후는 나를 보자마자 흉신악귀와도 같은 얼굴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그를 향해 가볍게 눈인사했다.

"...을 것 같기는 한데, 때와 장소를 가려다오. 그대들이 갑자기 사람을 붙잡으면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겠나."

"아...역시 현타 도사십니다! 잘 배웠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무사들은 급히 허리를 숙이며 자리를 떠났다. 현타 도사 또한 바로 몸을 돌리며 떠나려고 했다.

[어딜 가느냐. 지금 태사부가 짐을 들고 가는데.]

"......젠장."

현타도사는 대놓고 나보고 들으라는 듯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많았다.

[네가 사공희에게 태극혜검을 배우고, 내가 사공희에게 태극혜검을 가르쳤으니 내가 네 태사부가 아니더냐. 태사부가 이렇게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데 그냥 네 갈 길을 간다고? 아아, 무림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도다!!]

"...소협, 어디까지 가시오?"

"아, 감사합니다!!"

내가 손뼉을 치며 웃자, 현타 도사는 진심으로 가증스럽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무당산 아래 저희 집이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초대를 해도 되겠습...되겠나?"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관심을 떼기 무섭게 나는 말을 놓았다. 남들이 듣지 않는다면 현타 도사, 사정후에게 굳이 말을 높여 줄 필요가 없었다.

"젠장.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이오, 사기꾼 무붕."

"어허, 사기꾼이라니? 내가 태극혜검을 극성으로 익혔고, 내가 지금까지 무당파에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이냐?"

"됐소. 그거나 주시오. 젠장, 반로환동한 사숙이라고 생각한 내가 등신이지."

사정후는 구시렁거리며 내 짐을 받았다. 어찌 됐든 무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분이며, 특히 정파 중의 정파인 무당파의 1장로라면 당연히 하늘 같은 태사부의 명을 따라야 한다.

"건방지기는."

"허, 나 참. 태극화만 아니었으면 내가 당신을 당장 무림맹에 일러바쳤을 것이오. 독고연을 납치한 색마가 여기에 있다고."

"아이고, 무당파가 뒤집어지겠군. 색마를 숨겨주었으니."

"그그그...."

사정후는 이를 갈며 검을 쥐락펴락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뒤 전방을 가리켰다.

"흐하하, 걱정마라. 무당산은 내가 세울 새로운 세가의 터가 될 것이니. 내가 설마 내 아내의 문파에게 피해를 끼치겠는가?"

"무붕 태사부, 당신은 양심이라는 단어를 아시오?"

"하늘에 떳떳하게 살아온 내가 무엇이 부끄럽기에 양심을 운운하는가? 거참. 괜히 자기 결혼 못 한 거 가지고 투덜대기는."

"허. 천하 사람들이 당신의 실체를 전부 알아야 할 텐데."

나는 지긋한 눈으로 사정후의 어깨를 두드렸다.

"현타야, 너만 조용히 입 꾹 다물고 있어 주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니라. 내 정체, 내 나이, 내 무공, 내 존재 모든 걸 그냥 조용히 해주면 되는 것이다. 알겠느냐?"

"......."

사정후는 나를 향해 정말 많은 것을 말하고 싶어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뿌리는 태극신공의 힘에 그는 굴복했다.

"응? 태극혜검, 슬슬 2성 넘어갈 때 되지 않았느냐? 지금 살아있는 무당파 도사 중에 태극혜검 3성 익힌 자가 사공희랑 나 말고 더 있더냐?"

"......정말, 당신은."

사정후는 진심으로 억울한 눈으로 날 노려봤다.

"그렇게 천하를 기만한 업보를 언젠가 받을 것이오."

"천하를 기만하다니? 나는 그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일세."

"맞아요."

저벅, 저벅.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걸까. 햇볕에 비친 흑갈색 머리칼을 흩날리는 여인은 인자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오늘은 어쩐 일로 같이 오셨어요?"

"오다가 만났다."

"후후, 현타 사숙. 식사라도 하고 가시겠어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 미인, 사공희는 제법 그럴듯하게 세워진 천가장은 본채와 별채가 따로 만들어져 있어, 별채에 손님을 맞이하기에 충분했다.

"괜찮다. ...괜히 들어갔다가 내가 무슨 봉변을 당한다고."

"후후후, 현타 도사께서는 역시 현명하신 분이십니다."

마당의 평상 위에 느긋하게 앉아있던 흑발적안의 여인, 이시아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마교 소천마가 무당산 한가운데에서 무당파 장로에게 인사하는 건 분명 평범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 천가장에서만큼은 일상이었다.

정, 사, 마.

흑, 백.

모든 것이 하늘 아래 평등한 공간이 바로 천가장이 되리라.

"어머, 안녕하세요. 도사님."

마침 부엌에서 음식상을 내어오던 독고연이 현타 도사를 보며 살갑게 웃었다.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나요?"

"......크흠, 식사 중이라면 몹시 미안한데."

사정후는 내 눈치를 보며 검을 들어 올렸다. 사공희에게 허락을 구하고, 내게 허락을 구하는 사정후의 눈빛에 독고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음식상을 평상 위에 올렸다.

"먼저 드세요. 면 요리라 금방 불을 거예요."

"다 먹고 비무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배 늘어나서 안 돼요, 언니."

철컹. 독고연은 검을 뽑았다. 호북 최고의 대장장이가 제련한 검은 사정후가 쥔 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갑니다, 선배님."

하지만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찮았다. 조금 전까지 부엌에서 식칼을 쥐고 요리를 하던 순둥순둥한 독고연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기감을 퍼뜨리는 파천신검이 사정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음...!!"

사정후는 검을 비스듬하게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독고구검과 태극검.

선발제인과 유능제강.

서로 다른 두 성질의 무공이 맞물린다면, 강한 쪽이 이기기 마련.

"우리는 밥이나 먹으면서 구경하지."

나는 펄펄 끓는 육수가 담긴 그릇을 들어 올렸다. 안에는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소면이 예쁘게 돌돌 말려있었다.

"음...."

"왜 그러세요?"

"아니, 모양이 꼭 머리를 만두처럼 만든 것 같아서 말이야."

점소이들이 으레 하는 머리가 떠올랐다.

"머리를 만두처럼 만들어? 그건 무후의 고사 아니야?"

"네, 맞아요. 남쪽을 정벌하고 오는 길에 바다를 진정시키면서 공물로 대신 바쳤다고 하더라고요."

"음...."

갑자기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쪽에도 안 챙기면 아까운 물건이 하나 있는데, 사천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므로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러면 월아 보러 가는데 시간 더 걸리는데.'

너무 멀다. 일부러 갈 이유가 없다면 나중으로 미뤄도 썩 나쁜 건 없다. 나는 면을 후룩 삼켰다.

"그러고 보니 무후 얘기 나오니까 하는 얘기인데, 비천. 제갈 세가 여식은 안 범할 거야?"

"와백봉? ...굳이 지금?"

"색마가 여자를 마다하다니,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예고한 모용란도 겁탈 안 했는데 예고도 안 한 제갈선한테 가기는 조금."

그렇다.

팽신혜를 범하고 벌써 거의 넉 달.

나는 모용란을 범하겠다고 말만 하고, 요동에 발조차 들이지 않았다.

[작품후기]

??? : 범하러 온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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