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40화 (14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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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사정

<천산, 마교 일월신궁.>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님."

청년, 대공자 주지는 천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거친 바지 한 벌에 웃옷을 벗어 던지고, 황제와도 같은 옥좌에 앉은 중년 사내는 심드렁한 얼굴로 주지를 맞이했다.

"그래. 무슨 일이냐."

마교의 지존, 천마는 주지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위에 걸터앉아 과일을 먹여주는 색기 넘치는 여인-마화에게 빠져있었다.

"산동의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걸로 북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무림맹을 칠 수 있습니다. 아버님, 지금이야말로-"

"기각."

대공자는 본격적인 계획을 설명하기도 전에 제안을 거절당했다. 천마는 마화가 먹여주는 붉은 과일을 입으로 받아먹으며 주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창 마화와 즐기던 와중에 꼭 말해야 할 것이 있어서 왔더니, 고작 계략으로 우회로를 찾았다는 것이냐? 썩 꺼져라."

"아버님."

"듣기 싫다. 마교의 정복행은 반드시 곤륜을 넘어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까드득. 주지는 이를 악물었다.

"곤륜, 곤륜. 고작 도사들의 무리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꼭 멸문시키고 중원 무림으로 향해야만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곤륜에는 괴물이 있으니까."

"압니다! 그 괴물! 하지만 그자는 곤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것아.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천마는 진심으로 짜증을 부렸다.

"우리가곤륜을 부수지 않고 중원으로 가는 순간, 곤륜파는 산맥을 뛰쳐나와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우면 됩니다! 곤륜파의 괴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년만 없으면 곤륜은 다른 구파일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그 년은 산맥을 무조건 나온다. 자기 목숨이 날아가더라도."

천마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파의 무인들을 그렇게 봐놓고 모르겠더냐? 정의와 대의, 의협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은 초개와도 같이 내던질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정파의 무인들이다."

"그들도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목숨보다 더한 가치를 인질로 잡으면 됩니다."

천마의 불편한 기색에도 주지는 물러서지 않았다.

"화산파 장문인이 아낀다고 하는 막내 제자를 인질로 잡으면 됩니다. 소림파는 주색에 빠뜨려 교리를 어기게 만들어 스스로 부끄러움에 봉문시키면 됩니다. 팔대세가는 가족과 명예를 인질로 잡으면 끝입니다. 그것이 통하지 않는 경우라면, 무당파를 보셨잖습니까? 천화를 퍼뜨려 놈들을 반년간 봉문시켰던 걸. 바로 저, 주지가 봉문시켰습니다!"

"그래. 검마를 부추겨 천화가 퍼지게 했지."

천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주지 또한 천마가 알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는 주지를 말리지 않았고, 주지도 행동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아들아, 너는 분명 똑똑한 아이다. 하지만 네 계획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주지 또한 천마의 자식이기에, 천마는 인자하고도 엄한 목소리로 주지를 꾸짖었다.

"무당은 봉문했지만 지금 무당은 구파일방의 수장급으로 강해졌지. 그래, 태극혜검 때문에."

"큭...!"

주지는 말문이 턱 막혔다.

"역경이 다가오면 그만큼 강해지고, 강해진 만큼 우리를 막고자 하는 적으로 다가오는 놈들이 백도 무림의 미친놈들이다. 왜 정녕 그것을 모르는 것이야? 그래, 어디 네놈 말대로 한다 치자. 아내고 딸이고 뭐고 죄다 납치하고 인질로 삼는다고 치자."

천마는 질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질도 한 둘이어야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법이다. 딸들의 목숨을 포기하고서라도 마교를 박살 내려고 들 테지."

"아버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다. 숱한 역사가 그걸 증명해왔고, 수많은 천마가 그걸 증명했다. 3대 전의 천마는 곤륜파를 젖히고 서안까지 갔지만, 곤륜이 뒤에서 급습하는 바람에 중원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고 전멸했다."

"그것도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의 마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한들, 제가 십만마인을 모두 이끌 수 있다면 능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주지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십마를, 십만마인을 모두 지휘할 권한을 제게 주시옵소서."

"허. 고작 그 정도로?"

천마는 살기를 내뿜었다. 전신의 체모가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천마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주지를 내려다봤다.

"네가?"

"...제가."

파직, 파지직.

주지의 몸에서 금빛의 전격이 튀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천마의 광오한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마화는 손으로 입술을 가리며 눈을 빛냈다.

"제가, 반드시 천하를 지배하겠습니다. 부디 믿어주십시오."

"......흐흥, 알았다. 하지만 네 청은 들어줄 수 없어."

기세가 누그러진 천마는 명백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십만마인에 대한 권한?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가지고 싶다면 나를 죽이고 천마가 되어라."

"......."

"그게 네가 바라는 건 아닐 테지.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네 계획을 망친 비천빙마라는 자가 진짜로 마교의 십마인가하는 것 아니더냐? 그가 내가 임명한 십마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알고자 함이 아니더냐?"

"...예."

비천빙마-빙색마인 의사백.

갑자기 자신이 빙마라며 나타난 존재 때문에 모든 것이 망가졌다. 빙마 유설라를 무림맹에 집어넣는 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독고연이라는 여자를 납치한 것에서 주지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정체를 알아내, 죽여야 했다.

"그건 내가 알려줄 수 없는 일이다. 너 스스로 알아보거라."

"아버님. 정녕 이러실 겁니까?"

하지만 천마는 전혀 그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고, 주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천삼마, 지린삼마, 그리고 야인삼마. 그들은 이미 제가 누군지 훤히 꿰고 있습니다. 나머지 한 명이야 아버님만 아시겠지만...적어도 빙마는 비천이 아닙니다. 지린입니다."

주지는 살기를 내비쳤다.

"당연히 마교의 십마를 사칭하는 자를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아버님께서 그가 '십마'를 지칭해도 된다고 인정한 자입니까? 그런 자를 시아에게 붙여주신 겁니까? 항상 공정한 후계자 경쟁을 말씀해오신 아버님께서, 이렇게 시아의 편을 들어주셔도 되는 겁니까?"

"그건 아니다. 그자는...."

천마는 뭔가 말을 하려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자가 정말 검마(劍魔)라는 새로운 신마(新魔)인지, 아니면 감히 대 마교를 욕보이고 소공녀를 능멸하는 자인지 제가 확실히 판단하게 해주십시오. 전자라면 그를 설득하여 제 수하로 들일 것이고, 후자라면 그를 죽여 마교의 위엄을 높이겠습니다."

"...생각해보마. 일단 돌아가라."

"존명."

천마의 명령에 주지는 자리를 떠났다. 주지가 완전히 자리를 떠나자, 가만히 천마에게 안겨있던 마화가 몸을 일으켜 옆으로 물러났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화의 말은 지극히 공손했다. 천마 또한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냐?"

스르륵.

천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저마다 최소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이었지만, 죄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이들이거나 아예 빡빡 밀어버린 자들이었다.

"빙마는 대대로 여자였던 자."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지. 끌끌."

"하지만 그 양반은 북해에 있지 않소? 사칭이 분명하오."

노마(老魔)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현역에서 물러나 원로가 된 이들은 전성기만큼의 실력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절정 수위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마교의 중역이었다.

"천마. 이 늙은이들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농을 나누는 것도 조금 지쳤습니다. 천마께서 명확히 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천마도 원로들에게 어느 정도 정보를 줘야 했다.

"...좋다. 수마, 나오너라."

까악, 까악.

검은 독수리 한 마리가 대전 안으로 날아와 안착했다. 거대한 독수리는 몸에서 안개가 퍼져 나왔고, '푱'하는 소리와 함께 흑발의 여인으로 변했다.

"수마가 명을 받듭니다."

"수마? 지린삼마가 아니오. 대공자의 사람이 아닌가?"

"어르신. 저는 대공자의 사람이기 이전에, 천마께서 감히 수마(獸魔)라는 별호를 붙여주신 자입니다."

"진정들하고, 들어보면 알 것이오. 수마, 네가 사천에서 본 것을 가감 없이 말하라."

"예. 제 보고는 제가 직접 본 것과 추후에 전해 들은 것, 그리고 중간과정을 제가 유추해낸 겁니다."

수마는 자신이 사천에서 본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했다.

"비천삼마를 쓰러뜨린 색마는 그들로부터 비천의 이름을 빼앗아 소공녀를 데리고 호북을 탈출했으며...."

"소공녀는 자신을 색마라고 칭한 자에게 반해 먼저 덮쳤고...."

"색마는 '검담'이라는 이름으로 사천 일대를 뒤집어 놓았고...."

수마의 이야기에 노마들은 천마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딸이 색마라는 자를 덮쳐 가장 소중한 것을 내던졌음에도, 천마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백도의 추살대 앞에서 진정한 힘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스스로 용제검이라고 칭한 쌍검술에 더불어, 천마신공을요."

"!!"

원로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특히 화장을 진하게 칠한 중년 여인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호오.... 저와 상의도 없이 새로운 검마를 들이셨습니까?"

"진정하라, 마검비(魔劍妃). 가장 중요한 말이 남았다. 수마, 계속 말하라."

"예. 놀라지 마십시오. 그는...천마신공을 극성으로 일으킨 검담은 전신의 체모가 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

원로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초마교인!!"

"수마, 똑똑히 말하라! 네가 본 것에 하등 거짓이 없느냐!?"

"가발을 쓴 것이냐?! 눈썹까지 확실히 금빛으로 물들었어?! 다른 곳은! 겨드랑이나 음모는 어찌 되었느냐?!"

"히이익!!"

원로들은 쥐를 잡듯이 수마를 둘러싸 수마에게 진실을 추궁했다. 절정부터 초절정 고수들에게 둘러싸인 수마는 울상이 되어 천마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그만."

천마가 손을 올리자, 흥분한 원로들은 곧장 진정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자는 천마신공을 익힌 게 확실하다. 구결까지 알고 있으며, 내게 약조를 했다."

"약조라니요?"

"탈마, 초마교인으로서, 내 딸을 자기 아내로 삼겠다고 하더군. 그리고...."

우둑, 우두둑.

천마는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결혼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하더구나! 하하하하!"

"저, 저런....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그놈."

"그런데 천마가 인정한 십마도 아닌데 어찌 천마신공을 익혔단 말이오?"

"나도 모른다."

천마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놈이 고대(故代) 천마의 진전을 이어받은 건지, 아니면 어떤 미친 십마가 허락도 없이 천마신공을 배포했는지는 모르지. 하지만 그놈은 진심으로 나와 겨뤄, 내 딸을 가져가려고 하고 있다."

원로들은 침묵에 빠졌다. 그들은 자신을 '색마'라고 칭한 자를 가만히 두는 천마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마. 아무리 그래도 정체도 모르는 자를 그렇게 두는 건 문제가 되지 않겠소?"

"정체 정도는 사실 아무래도 관계없어졌지. 내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겠소. 그자는 이미 내 사위일세. 감히 나를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면서, 선물을 하나 보내줬거든."

"선물?"

"미염신공."

"!!!"

원로들은 자칭 색마가 무슨 수로 천마를 구슬렸는지 깨달았다. 어쩐지, 왠지 모르게 천마의 눈썹이 오늘따라 더 짙어 보이는 것 같았다.

"마교에 미염신공을 선물해준 자다. 감히 천마를 상대로 사후보고를 한 게 건방지기는 하지만...초마교인이라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그건 그렇지."

"전설 속 초마교인.... 그것도 모발을 가진 채로 초마교인이 되는 자라니...!"

"그런 의미에서."

천마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허공섭물로 날아든 서책들이 원로들의 품에 쏙 들어갔다.

"그 자칭 색마가 보내준 미염신공의 구결이다. 유감스럽게도 운룡반월창의 구결은 쏙 빼놓고, 미염신공만 남겨뒀더군. 뭐...놈이 어떻게 온갖 무공을 가졌는지는 알 바 아니지. 힘의 출처가 어떻든,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이 곧 마교가 아니겠는가."

"""존명!!"""

원로들은 미염신공의 구결이 담긴 책을 품에 안고 사라졌다. 그들의 눈에는 천마신공에 이어 미염신공까지 베풀어 준 천마에 대한 감사가 묻어났다.

"마검비, 할 말이라도 있는가?"

"물론이죠. 천마, 제게 출교의 허락을."

마검비라고 불린 여인은 천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히 자신을 검마가 아닌 색마라고 칭한 그 자. 초마교인이 과연 검마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지 제가 직접 시험하고자 합니다."

"검마가 아니라 색마인데."

"아니오. 그는 검마여야 합니다. 전대 검마로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마검비는 허리에 찬 검을 가리키며 사납게 웃었다.

"어찌 십마에 만병지왕인 검이 빠지고 색(色)이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크흠."

천마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언짢은 기색을 풍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알겠다. 알아서 해라. 단, 소공녀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해라."

"존명. 걱정 마시어요. 소공녀는 제게 사손과도 같은 분입니다. 아 참, 그 색마라는 놈 말이에요. 만약 제가 이긴다면...."

마검비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샐쭉 웃었다.

"제가 범해도 되는 건가요?"

마검비는 반달처럼 웃기만 했다.

[작품후기]

나이 문제는

일단 완결부터 내놓고 수정 차근차근 하는 걸로.

플롯이 무너져서 아예 갈아엎어야 하는 수준이라....

글 쓰는 동안 차근차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나이는 원래대로 계속 갑니다.

일단 문제가 된 주인공 나이 부분만 조금 올렸습니다.

나머지는 당분간 그대로이니 보시던 분은 계속 보시면 됩니다.

예.

당분간.

는 일단 나중 문제고 시아 일러가 나왔습니다.

아직 완성은 아닙니다.

소천마! 소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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