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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흐흐흐, 하하하하하!!”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바람의 방향과 거꾸로 달리는 덕분에 내 얼굴에 닿는 공기의 저항은 제법 무겁게 느껴졌지만, 몸에 들끓는 기운을 좀처럼 주체할 수 없었다.
‘역시 팽가. 호탕하다니까.’
팽유월은 내가 삼처사첩을 두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 세가의 힘이 강할 수록 가주의 부인들이 많은 거야 뭐….
오히려 대범하게 그걸 받아들였다. 팔대 세가 중에서도 전통이 깊은 하북팽가답게, 그리고 세가의 분위기가 남성 중심적인 성향이 짙은 팽가 답게 그녀는 호방하게 웃어넘겼다.
- 질투나거나 그러지 않나?
- 제가 질투 날 게 뭐 있어요? 절 질투해야죠.
‘승자의 여유라는 게 뭔지 알 것 같군.’
자신이 확실한 우위에 서있다는 걸 알게된 팽유월은 자신의 존재를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 그래도 이왕이면....
- 아뇨. 그러지 말아주세요.
나는 이왕이면 더 빨리 팽유월을 맞이하고자 했지만, 팽유월은 팽가를 완전히 정리하고 난 다음 자신의 존재를 공언해달라고 요청했다.
- 무당에 마교, 거기에 한 명은 맹주 딸이잖아요. 거기에 꿀리면 안 돼요. 하북팽가가 다른 곳에 지참금으로 밀리면 안 된다고요.
팽유월은 생각보다 가문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 팽가는 제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날 거예요. 가가께서 제게 길을 알려주신 이상,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거예요.
팽유월은 미래에도 팽가를 부흥시켰다. 무공은 상대적으로 약할 지언정, 세가를 관리하는 능력 만큼은 팽유월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 팽신혜는 제가 잘 관리하겠어요. 다시는 그런 참담한 짓을 저지르지 못하게, 제가 고삐를 단단히 움켜쥐겠어요.
팽유월은 학혈마녀의 악행을 알고 경악했다. 하지만 역시 세가의 사람이기에, 그녀는 팽신혜를 완전히 쳐내거나 제거하지 못했다.
- 제가 신혜를 두둔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신혜를 갱생시키고 싶어요. 두들겨 패서라도.
결국 세가에 얽메여있는 사람이기에, 팽신혜의 잘못된 행동을 알면서도 세가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팔을 안으로 굽혔다.
- 신혜는 자기가 범해진 충격 때문에 피폐해지거나 그럴 성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까요. 만약에 약물로 애가 바보가 되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요?
- 그건 걱정마라. 팽신혜가 범해진 이상, 혈교는 팽신혜를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이다.
팽신혜가 색마에게 범해진 것에 따라, 혈교는 과감히 팽신혜를 버릴 것이다.
- 혈교는 처녀 이외에는 관심 없어. 혈교에 있는 유부녀는 처녀 시절에 혈교에 들어갔다가 혈교의 명령으로 아이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 그래서 범하신 거예요? 색마가 다녀간 비처녀니까 혈교보고 건드리지 말라고?
- 그래. 그러니 네가 잘 보듬어다오.
팽신혜는 색마에게 겁탈당한 충격으로 당분간 침대 신세를 질 것이고, 팽유월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암퇘지를 잘 구슬려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 것이다.
- 알겠어요.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제대로 되돌려 놓겠어요.
팽신혜는 팽유월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날 것이다.
죽이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싶지만, 나는 팽유월을 믿기로 했다.
나로서는 염마나 빙마에게 그랬던 것처럼-특히 혈교의 마녀라면-확실하게 쳐내고 싶었지만, 다행히 팽신혜는 월녀강림의식까지는 진행하지 않았다.
‘을소미처럼 완전히 혈귀가 되지는 않았어.’
여인을 자신이 직접 범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써서 그런지, 팽신혜는 혈귀의 힘을 제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분명 미적으로 안 좋으니까 안 배웠을 지도 몰라.'
마교의 폭혈처럼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으나, 완전한 괴물이 되어버리는 탓에 그녀는 내게 범해지는 와중에도 혈귀가 되지 않았다.
분명 월녀를 제 몸에 강신시키는 것을 두려워했거나, 아니면 성적 취향 때문에 월녀 강림의식의 제물만 모으며 내공만 갈취했을 것이다.
월녀는 혈교주에 의해 박히는 운명이니까, 월녀가 되고자 하지 않고 혈교의 힘만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선녀강림.’
혈교는 월녀라는 선녀, 여신을 지상에 강림시키는 게 지상목표다.
'말은 월녀를 불러 지상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거지만, 겸사겸사 월녀를 범하려고 싶어 하지.'
혈교주라는 작자가 자신의 음습한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하늘에 있는 여신을 지상에 끌어내려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려고 하는데 목적이 있다.
'혈교를 따르는 자들은 혈교주의 말에 전부 속아넘어간 자들이고.'
대외적으로는 월녀가 된 여인은 불로불사를 얻고 평생의 젊음을 가진다고 하지만, 월녀가 강림한 육체의 주인은 월녀의 강대한 정신에 먹혀 소멸하게 된다.
진정한 월녀가 되기 위해 피의 제물을 바치는 12월녀들은 그것도 모른 채 제물을 모아대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한 번 날뛰어줬으니 당분간은 잠잠하겠지.’
하남의 을소미.
하북의 팽신혜.
빙색마인이 하필 두 명의 혈교 여인을 범한 것에 혈교는 몸을 바짝 엎드릴 것이다. 마치 일부러 혈교의 관계자만 범하고 떠난 것 처럼 보이지 않는가?
'머리 아플 거다.'
과연 빙색마인은 일부러 둘을 건드린 건지, 아니면 둘이 소문난 맛집이라 들린 건지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썩힐 것이다.
"후우."
잡념이 너무 길었다. 호흡을 크게 들이켜 숨을 고르고, 나는 내공을 다독이며 천천히 걸었다.
“마교 대공자도 막아야 하고, 혈교도 막아야하고. 나 참,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걸 원치는 않았는데.”
그냥 예쁜 여자들이랑 같이 오순도순 살면서 행복을 누리고 싶었지만, 내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고생한 만큼 행복하니까 좋다.”
그러니 행복을 붙잡으려면 내가 직접 움직여야했다. 젊었을 때 조금만, 아주 살짝만 고생해서, 미래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장원에서 꽃이나 가꾸고 사는 것이다.
'자식농사해야지.'
나는 몇 시진 동안 숲을 달린 결과, 내 눈앞에 나타난 작은 오두막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럼 그렇지.”
오두막은 부엌이 폭발해있었다. 다행히 집은 괜찮아보였고, 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렸다.
“야!”
“오셨어요?!”
둘의 얼굴은 핼쓱해져있었다. 며칠은 굶은 듯한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 2주는 커녕 열흘도 안 되서 돌아온 것 같은데, 왜 상황이 이 모양이오?”
“그, 그게.”
“흑. 의원님. 저 의원님 말은 전적으로 믿기로 했어요.”
독고연은 먼 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질끔 흘렸다. 뒤에 있던 이시아는 정수리까지 시뻘게졌지만 뭐라 반박을 하지 못했다.
“딱 보니 천마밥짓기 해보려다가 솥이 폭발한 거군. 밥은 먹었소? 내가 그럴까봐 안에 건량과 벽곡단 좀 챙겨뒀는데.”
“...엿새 가까이 그것만 먹다보니. 하하.”
독고연의 눈에는 영혼이 없었다. 안그래도 허약한 몸이 제대로 먹지 못해 금방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 안 되지. 아이를 낳으려면 잘 먹고 잘 커야 하지 않는가. 소공녀. 좀있다가 출발합시다. 내려가는 길에 객잔 좀 들려서 배 좀 채우고 내려오도록 하지.”
“그래, 그래. 그보다 하북으로 간 건 잘 해결 됐어?”
“흐흐, 물론이오.”
나는 손가락을 두 개 펼치고 흔들었다.
“여자 둘을 겁탈하고 왔으니, 이제 놈들은 빙색마인이 요동으로 간 줄 알 것이오.”
“네? 왜요?”
“예고장을 남겼거든.”
* * *
팽가에 색마가 들었다!
백발의 빙색마인은 팽가의 적녀 팽신혜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범했다. 그리고 모두를 농락하듯 팽가에 숨어있다가 새벽이 되며 떠났다.
“이...놈…!”
하남에서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온 독고자영은 이미 사라진 색마의 존재에 속으로 화를 삭혔다.
피해자는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을소미에 이어 팽신혜까지 겁탈당한 이상, 빙색마인은 쉬쉬하며 정체를 숨길 존재가 아니었다.
“팽가주, 심심한 위로를 표하오.”
“아닙니다. 맹주님. ...크흑.”
동병상련. 딸 가진 아버지로서 색마에게 딸이 범해졌는데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으랴.
팽이왕이 만약 예전처럼 몸이 정상이었다면, 독고자영과 마찬가지로 직접 칼을 들고 뛰어나갔을 것이다.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나?”
독고자영은 두 청년 협객에게 고개를 돌렸다. 선룡과 자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 팽가의 모든 곳을 훑었습니다. 하지만 놈이 어디에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
“가주, 혹시 팽가의 사람들만 아는 밀실이 있소?”
“...전혀요. 그런 건 없습니다.”
팽이왕은 한탄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그런 곳이 있었다면 그곳부터 살펴봤을 겁니다. 하지만 빙색마인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팽가는 모든 밀실까지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도 빙색마인의 흔적은 없었다.
“혹시 놓치고 있는 건 없소?”
“그럴 리가요. 하북팽가에 제가 모르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끙….”
결국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하북에서 자리를 잡아 선제적으로 색마를 제압하고 한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혹시 색마가 아직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았다면...젠장, 행적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맹주님!! 찾았습니다!!”
헐레벌떡 들어온 군사의 목소리에 맹주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무엇을 찾았나?”
“놈의 다음 표적을 찾았습니다!!”
군사 제갈길은 급히 사람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직까지 여인 한 명이 갇혀있는 거대한 얼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빙백신공!”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얼어있는 건 분명 빙백신공의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저 여인이 다음 표적이란 말이오? 그런 건 보고에 없었는데?”
“바닥, 바닥을 보십시오!”
맹주와 사람들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매끈한 두 개의 알 아래, 햇빛에 비쳐 밝혀진 땅에는 검으로 그은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었다.
-온 천하에 더러운 피를 뿌리리라.
“이, 개….”
“맹주님, 그 아래!”
독고자영은 아래에 박힌 글귀를 보고 진심으로 화가 치밀었다.
- 씻고 기다리고 있어라, 연희봉. 곧 취하러 갈테니.
“연희봉...모용!!”
산둥, 요동.
색마의 다음 행선지 예고에 맹의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다.
* * *
식사를 할 때는 객잔에서.
식사를 하고난 뒤에는 산책 겸 느긋하게.
그리고 배가 꺼졌다 싶으면 전속력으로 경공술을 발휘해 산길을 달렸다.
"비천, 언제쯤 나와?"
"곧. 조금만 더 가면 나오니 참으시오."
"의원님, 저 슬슬 아프기 시작하는데요~"
"여기서 치료 못하니까 불주사는 도착 하면 놓아주리다."
두 여인의 방해가 거세지자, 나는 아예 두 명의 허리를 붙잡고 달렸다. 우리의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으려면 같이 하는 게 훨씬 나았다.
"상공, 저희끼리 하면 안 될까요?"
"상공, 둘이 합치면 희 언니 정도는 될 것 같은데."
"그러다 견희 삐지니까 안 되오."
셋이 아니라, 넷이서 같이.
그리고 매일 같이 달리고 달린 끝에.
저벅, 저벅.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내가 어느 곳보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곳.
삼구의 집을 떠나, 내가 처음으로 ‘안식처’라고 생각했던 그곳.
멀리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한 명의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곳. 그녀는 손가락에 하얀 붕대를 감은 채, 남편의 오랜 출장을 반기는 아낙네처럼 나를 맞이했다.
“어서오십시오, 상공.”
“다녀왔다.”
사공희는 대문 밖까지 나와 나를 맞이했고, 나는 그녀와 손을 잡았다.
“시아도, 연도. 어서 와요. 아 참. 상공. 그걸 잊었네요.”
사공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이시아와 독고연의 손을 잡아당겼다.
“뭐부터 하시겠어요? 식사부터? 세신부터? 그것도 아니면….”
사공희는 침실을 곁눈질로 가리켰다.
“내공 수련부터...하실래요?”
“내공 수련이라. 이제는 말을 정정하도록 하지.”
나는 침실 안을 가리켰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발정난 내 아기색마는 그간 못 다한 회포를 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내공 수련은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씻는 건 땀 한 번 거하게 흘린 뒤에 해도 늦지 않아. 지금 우리가 당장 해야할 건 하나.”
나는 외투를 평상 위에 벗어던졌다.
“밥부터 먹지."
나는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작품후기]
긴급 공지는 터뜨렸습니다.
수정은 할 거예요.
언제든지 본 소설의 내용은 수정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지금 작가의 시간이 글 쓰는 것도 바쁜 관계로,
수정 작업에 차질 및 일부 지연이 있을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아무튼 조만간 수정합니다.
3연참은...미리 땡겨서 올린 거로 하겠습니다아아아
나이가 수정된 게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작가는 수학에 약한 빡대가리이므로 그러려니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