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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인증제
빙색마인이 하북으로 떠났다는 말을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하북으로 향했다는 말 이후로 색마의 소식은 하나도 갱신되지 않았다.
- 아니 이제 닷새 정도 지났는데 나타나는 게 정상이냐? 나 같으면 한 달 정도는 존재감을 죽이고 어디 동굴에서 버티겠다.
- 그건 독고연 소저가 그동안....
- 앗.
독고연을 납치한 색마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색마를 찾아 나선다고 한들, 빙색마인의 흔적은 귀신처럼 사라져버렸다.
- 정말 하북으로 온 건 맞나?
불안에 빠진 사람들은 색마의 움직임에 의구심을 풀었다. 단지 허창의 북쪽으로 도망쳤다고 하북으로 넘어왔다?
북쪽으로 가다가 동서남으로 꺾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하북에 펼쳐진 무림맹의 포위망에는 어떤 색마도 색출되지 않았다. 모든 남자를 전부 살펴봤지만 어떤 소득도 없었다.
슬슬 사람들이 불안에 빠진 찰나.
- 전략을 바꾸겠소.
무림맹은 색마를 추격하는 걸 포기했다. 정확히는 색마가 이미 여인을 겁탈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나섰다.
- 북경에 있는 모든 무가에 호위를 파견하겠소이다.
색마를 추적하기 위한 협객들이 하나둘 하북, 북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 * *
"하하하! 하북팽가는 걱정을 접어두시오! 이 자룡(刺龍), 조청홍! 구룡의 일원으로서 색마를 반드시 잡아들일 것입니다!”
인상이 훤칠한 청년, 조청홍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포권을 취했다.
“조가장의 장남이 어느덧 구룡의 일원이 되었던가. 축하드리네. ...그리고 선룡, 심심한 유감을 표하오.”
“괜찮습니다. 가주님.”
팽유월은 가주 팽이왕과 함께 무림맹에서 온 두 명의 청년, 선룡 을지상과 자룡 조청홍을 맞이했다.
“어머님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게, 저희가 반드시 색마를 찾아내겠습니다.”
죽이는 게 아니고? 팽유월은 선룡의 살기등등한 눈빛에 기가 질렸다. 언젠가 누군가를 상대로 저렇게 증오를 가진 적이 있었던 기억이 떠올라 속이 쓰렸다.
“하북팽가는 그대들을 환영하는 바이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실례하겠습니다.”
을지상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바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놀란 조청홍이 덩달아 일어났다.
“이보게, 지상! ...죄송합니다. 저 친구가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해하오.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소협도 멀리 맹에서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자, 안내하리다. 거기….”
아무도 없었다. 팽이왕은 책상 아래에서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고, 팽유월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마.”
“따라오시지요, 소협.”
팽유월의 안내에 조청홍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눈치를 봤다. 팽유월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몸을 돌렸다.
“궁금한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쭤봐도 되는지 묻기 전에 그냥 물어보십시오.”
“하하! 단호하시군요. 예, 알겠습니다. ...팽가가 많이 삭막한 듯합니다.”
조청홍은 주변을 눈으로 가리켰다. 넓은 팽가의 장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외인을 안내할 시녀도 없어, 팽유월이 직접 조청홍을 안내해야 할 정도로.
“일 년 전 즈음, 상산에 하북팽가의 분가가 들어섰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바로 상산 조가장의 적자 아니겠습니까?”
“네. 지금의 가주, 악참도 어르신의 동생이신 <위참도(僞斬刀)> 팽이선 어르신께서 상산 분가로 가세를 옮기셨습니다.”
“...예? 그냥 분가가 아닙니까?”
팽유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이 본가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팽가의 장로들은 상산으로 떠났습니다. 이곳에 남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죠.”
“허어….”
조청홍은 난간에 손을 올렸다. 칠이 벗겨져 낡은 나무가 보이는 것에 조청홍은 흠칫 놀랐다.
“이곳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종을 울려주십시오.”
“시녀가 아니고요?”
“.......”
팽유월이 침묵하자 조청홍은 급히 허리를 숙였다.
“하북팽가가 어찌….”
조청홍의 혼잣말에 팽유월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준 전표 덕분에 현금은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었지만, 가문에서 일할 사람을 뽑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저 스스로 해결하겠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됩니까?”
“...아뇨. 이쪽에는 다른 손님이 있습니다. 오늘 떠나실 분의 방입니다.”
“하하! 그럼 제가 쓰겠습니다. 굳이 청소하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제가 하지요!”
“여자분입니다.”
조청홍은 걷어붙이려던 팔이 굳었다. 밖의 소란에 안에서 문이 열리며, 아이를 안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머, 안녕하세요?”
“아, 네, 네!”
조청홍은 얼굴을 붉혔다. 제법 큰 키임에도 몸의 균형이 잘 잡힌 여인은 품에 곤히 잠든 아이를 안고 들썩였다.
“시, 실례했습니다!”
“실례라니요. 상냥하신 분이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연붕이라고 해요. 아 참, 유월. 월아가 자꾸 보채서 나왔어요.”
“네? 아….”
팽유월은 당황하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딱히 보채거나 한 흔적은 전혀 없었으나, 연붕은 눈을 찡긋이며 방안을 가리켰다.
“마침 이제 짐을 다 쌌는데 들어오세요. 제 방, 그래도 나름 깨끗이 썼답니다?”
“짐을 다 싸셨다고요?”
조청홍은 방안을 둘러봤다.
“부군은 안 계십니까?”
“저 미혼인데요.”
“예? 하지만 아이가….”
“제 아이입니다.”
좌우에서 들려온 소리에 조청홍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연붕이라는 여인도 마찬가지기는 했지만 팽유월은 아이를 가진 여인이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든 외모였다.
“...그런데 연붕 소저. 어디로 떠나시려고 하는 겁니까?"
"산 따라 강 따라 마음 따라 떠도는 거죠. 팽가에 오랫동안 신세를 졌으니, 이제 이곳을 떠나려 합니다."
연붕은 봇짐에서 살짝 꺼낸 비파를 가리켰다. 조청홍은 불안한 눈빛으로 연붕을 훑었다.
"하북은 지금 위험합니다. 색마가 돌아다니고 있어요. 혼자서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운명인 거지요. 걱정 마세요. 그자,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 않습니까?"
연붕의 말에 조청홍은 뭔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떠나려고 몸을 돌렸으니까.
"아 참, 팽유월 님. 여기요."
"이건 또 뭐예요?"
"전표랍니다. 잘 머물다 갑니다."
"패, 팽가는 객잔이 아니에요!"
연붕은 손가락을 입술에 붙였다 떼며 눈을 찡긋였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요. 옷 사입히는 데 보탬 하세요."
저벅, 저벅. 연붕은 제법 빠른 속도로 팽가를 떠났다. 조청홍은 바람처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홀릴 것만 같았다.
"선녀 같다."
"...이보세요."
"아, 크, 크흠. 죄송합니다. 그런데...."
조청홍은 방안을 가리켰다. 방안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어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도대체 누구입니까?"
"연붕이요. 그것 말고는...잘 몰라요."
팽유월의 애매한 대답에 조청홍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자는 비밀이 많으면 매력적이라더니. 참. 전장을 가시는 거라면 제가 호위해드리겠습니다. 아, 그, 혹시 실례인가요?"
"......실례기는 한데, 지금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팽유월은 묵묵히 월아를 안고 밖을 가리켰다.
"고마워요, 여러모로 신경 써주셔서."
"하하! 아닙니다. 같은 입장으로서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네?"
조청홍은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저도 아이가 둘 있는 입장이라. 세 살짜리 하나랑 이제 갓 돌 지난 녀석이 있지요. 하하하!"
"...올해 혹시 연배가?"
"연배라니요. 크흠. 저는 올해로 스물입니다."
"......."
* * *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거지?"
"요동."
"...여인 혼자 가는 건 위험할 텐데."
"무림인."
"쯧. 알았다. 지나가도 좋다."
마지막 관병까지 지나친 나는 북경 성을 완전히 빠져나와 인근 숲으로 달렸다. 급하게 나가서 괜한 오해를 살 일 없이, 적절한 시기에 팽가를 빠져나온 것에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설마 구룡이 추격대로 나설 줄이야.'
건방지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의협심을 이해할 수 있다. 육봉을 납치한 색마를 잡아들이는 것만큼 자신들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 없으니까.
'근데 하필 조자룡이 나올 줄이야.'
상산 조가장의 이름난 무인, 조청홍. 조자룡의 후손들이 세운 조가장의 후예로, 훗날 신창 다음가는 창 실력을 자랑하는 무인이다.
'독고연의 아래에서 크게 활약한 천하 삼대 창수중 둘째. 충성심과 의협심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자.'
한 마디로 착한 놈이다. 얼마나 착하냐 하면, 마교 졸개 시절 놈에게 한 번 구명지은을 입은 적도 있었다.
-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건 이게 다요. 만약 삶이 힘들고 지쳐 더는 버틸 수 없거든, 상산의 조가장으로 찾아오시오.
임무 중에 먹을 것을 먹지 못해 죽어가던 와중에 그는 내게 동정심으로 은자 한 냥을 베풀었고, 나는 그가 준 은자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은자 한 냥이었던 이유는 주변 거지들이 나를 노리고 있었기에, 딱 남들이 노리지 않고 내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금액이었다.
'근데 전생은 전생이고 지금은 지금이지.'
전생에 생명의 은인이라고 한들, 반드시 조청홍을 위해 내가 충성을 바쳐야 한다거나 할 일은 결코 없다. 소천마처럼 내 동정을 가져가 준 여자라면 모를까, 조청홍은 그냥 수많은 전생의 인연 중 한 명일 뿐이다.
'대신 이번 생에서 네 아내는 겁탈하지 않으마.'
조청홍의 아내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혈강시는 조청홍의 아내를 범했다. 구명지은을 입어놓고 최악의 방법으로 은혜를 갚는 배은망덕한 짓이었다.
"내가 진짜 큰맘 먹고 한 번 봐준다."
그러니 이번 생에는 조가장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그에게 받은 은자 한 냥의 값어치였다.
"물론 색마를 방해하면 국물도 없지."
우둑, 우두둑.
적당히 기절시키는 정도로 봐줄 수는 있지만, 너무 심하게 달려들면 쳐내야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숲속에서 육체를 완벽하게 바꿨다.
"빙색마인, 하북에 강림."
백발 거구의 중년인. 빙백신공과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화경급 고수. 채음보양으로 여인들을 습격하는 자.
쾅!
나는 보따리째로 비파를 부쉈다. 흔적조차 남지 않게 잘게 부순 다음, 중려신화정을 이용하여 재가 될 때까지 남김없이 태웠다.
"연붕, 안녕."
이제 연붕은 요동으로 떠났다. 언젠가 있을 안배를 위해 행적을 정리해 둔 나는 운기조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까악, 까악.
까마귀가 울고 태양이 지기 시작하는 저녁.
밤이 드리운 순간, 색마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시간이다.
* * *
"이보게, 지상. 소득은 있었는가."
"없었네. 하지만 색마라면 분명 하북팽가를 노릴 것이야."
"무슨 근거로?"
"하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 둘이 여기에 있으니까."
을지상의 말에 조청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은 소식이 없어 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다른 한 명의 아름다움은 하북 최고라고 자부해도 될 정도였다.
"팽가의 두 미녀가 하북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말은 사실이더군.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오겠나? 한 명은 미망인인데?"
"네 놈은 너무 순박해서 탈이야. 색마가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 과부, 미망인, 유부녀다."
조청홍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이유로 북경 정중앙에 있는 하북팽가에 들어온다고?"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온다고 해도-"
꺄아아아악---!!!
말이 씨가 된 걸까? 멀리서 들려온 비명에 둘은 급히 몸을 날렸다.
"이, 이건...!"
"세상에!"
둘이 도착한 곳은 하북의 이름난 기루. 붉은 연등 아래, 기녀 한 명은 몸 아래가 남근모양의 얼음기둥에 박혀있었다.
카앙, 카앙!
급히 망치 따위를 들고 온 장사들이 열심히 얼음기둥을 부숴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빙백신공!"
어지간한 공력으로는 깨지지 않는 얼음덩어리의 주인은 빙색마인이 분명했다. 기둥을 지탱하는 거대한 알 두 개에 곧게 뻗은 남근으로 기둥을 세운 건 색마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지상! 저기 글자가!"
"보세! ...이런 미친?!"
기둥에는 칼로 새겨놓은 듯 거친 문구가 세로로 길게 적혀있었다.
팽彭
신信
혜慧
미味
오五★
분分★
지之★
삼三☆
적的☆
성星
"이, 이건 도대체 뭐야...?"
"으아아악!!"
을지상은 문구를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각혈했다.
"자룡, 빨리 팽가로, 팽가로 돌아가야 해!"
"뭐?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놈은, 빙색마인은 여인에게 별점을 매겨!!"
"!!"
[작품후기]
별이 세 개!
포치포치포치 // 수유기인 쪽이 더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