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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혈마녀 팽신혜
익숙한 천장이다. 팽가의 낡은 듯한, 하지만 최근에 바꾼 천장은 손님용 객실 특유의 허세가 가득했다.
"어...."
팽신혜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밖은 아직 어둑어둑했고, 코를 찌르는 술 냄새는 머리를 더욱더 아프게 했다.
어떻게 된 걸까. 간밤에 분명 자신은 연붕, 희아연을 범하기 위해 창고에서 몰래 이과두주를 대량으로-
"일어나셨어요?"
너무나도 청명하고 맑은 목소리에 팽신혜는 소름이 돋았다. 창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 다리를 꼰 채, 연초를 태우는 여인의 모습에 팽신혜는 넋을 잃었다.
"후훗, 생각보다 술이 약하시네요."
"어...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기억 못 하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붕은 진심으로 실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팽신혜는 아픈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기억을 더듬었다.
- 이 암퇘지야.
"힉?!"
팽신혜는 이불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허리는 뼈가 중간에 빠진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아랫도리는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재미있었어요, 팽신혜 님."
연붕은 검지에 쇠사슬의 고리를 건 채 킬킬 웃었다. 쇠사슬 끝에는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될 개목걸이가 늘어져 있었다.
"덕분에 몸보신 달달하게 했네요. 고마워요."
"아, 아으...."
"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치지직. 연붕은 연초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뭘 그렇게 무서워해요. 응?"
"아, 아으...."
사락. 팽신혜는 어깨에 올라간 손에 몸서리를 쳤다. 약지부터 검지까지 천천히 움켜쥐는 손길은 소름 끼칠 정도로 상냥했다.
"괜찮아요. 저도 그쪽이니까."
"아, 아...."
안도의 한숨. 팽신혜는 괜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저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지, 악기가 아니랍니다."
"힉...!"
"어제 소리가 참 예쁘더라고요. 후후, 내일도 놀러 오세요."
쪽. 팽신혜는 볼에 닿은 입술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저, 저기! 다음번에는, 그...."
팽신혜는 '도구'가 실린 상자를 눈으로 흘겼다. 질척거리는 액체가 가득한 온갖 도구들이 서늘한 바람에 말리느라 잔뜩 늘어져 있었다.
팽신혜의 눈은 그중에서도 모형에서 도저히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다른 여인들을 상대로 쓰던 물건이 자신을 범하는 도구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근데 저게 그렇게 컸던가?'
팽신혜는 눈대중으로 크기와 자신의 안쪽 감각을 비교했다. 몇 번 홀로 위로할 때마다 신세를 졌지만, 어젯밤같이 굵고 커다란, 마치 살아있는 듯한 감각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진짜로 남근 같았다. 남근을 안에 넣어본 적은 아직 없지만, 남자와 하게 된다면 분명 그런 감각이리라.
"왜 말하다 말아요? 지금 나 놀려요?"
연붕은 눈썹을 찡그리며 미미한 짜증을 냈다. 팽신혜는 급히 몸을 반듯하게 자세를 잡으며 연붕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흥. 됐어요. 하고 싶은 말이나 말하세요."
"......다음 번에는 제가 찔러드리면-"
와락.
팽신혜는 갑작스럽게 변한 시야에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의 머리채가 붙잡혔다는 걸 안 순간은 얼굴이 이미 침대에 처박힌 뒤였다.
"으읍?!"
"하. 이 썩을 년. 주제도 모르고 감히."
"으읍...!!"
두근, 두근. 팽신혜는 간밤에 자신을 좀먹어 들어갔던 낮은 목소리에 전신이 긴장되었다.
"이 년이 교육이 덜 됐나.... 야, 뭐라고?"
"죄송, 죄송해요! 마, 말을 잘못했어요!"
팽신혜는 굴욕을 느꼈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거친 폭력 앞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잘못해? 지랄하네."
상대는 팽가 무사들 서넛은 때려잡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괜히 하북을 혼자 여행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전제가 틀렸어, 이 멍청한 년아."
그리고 그 힘을 자신을 상대로 휘두르는 것에 진정으로 공포를 느꼈다.
"언제부터 암퇘지 새끼가 사람의 말을 했지?"
"......."
압도적인 힘. 뇌를 범하는 듯한 목소리. 팽신혜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어두운 눈동자에 그만 굴복하고 말았다.
"...꾸, 꿀."
"틀렸어."
연붕은 아이처럼 활짝 미소지으며, 질척거리는 각좆을 움켜쥐었다.
"내가 손수 가르쳐줄게."
새벽.
팽신혜는 아기돼지가 '부히힉'하고 운다는 것을 배웠다.
* * *
아침.
팽유월은 팽신혜에게 팽가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차용증을 빼곡히 모아둔 장부를 들고 팽신혜의 방을 습격했다.
"야, 팽신혜!!"
"힉?!"
팽유월에 등장에 방 안에서 몸을 가누던 팽신혜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몸에는 술 냄새가 찌들어있었고, 살기등등한 팽유월을 보자마자 팽신혜는 손발을 오들오들 떨었다.
"너, 간밤에 뭐 했어?!"
"아, 아무것도 안 했어!!"
"거짓말 하지 마! 또 창고에서 술 들고 갔잖아!! 그것도 손님 방에!"
"부힛...!"
부힛? 팽유월은 순간 귀가 잘못되었는지 소름이 돋았다. 다른 사람에게 내게 했으면 냈지 팽신혜라면 절대로 내지 않을, 돼지 멱따는 소리에 팽유월은 기세가 누그러졌다.
"도대체 무슨-"
"어머, 좋은 아침이에요."
팽유월은 귀를 속삭이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누구...!"
"어머, 저예요. 연붕."
팽유월은 바로 뒤에서 나타난 여인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간밤에 뭘 그렇게 좋은 걸 먹었는지, 피부가 탱글탱글한 연붕은 팽유월이 떨어뜨린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어머, 이게 뭐예요?"
"아, 그, 그건."
팽신혜에게보여주려고 한 거지, 팽가의 손님에게 보여주고자 한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연붕은 이미 종이 뭉치를 잡고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음...팽신혜 아가씨, 곳곳에 제법 빚을 많이 지셨네요?"
"힉!"
연붕의 싸늘한 눈빛에 팽신혜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간밤 사이 연붕에게 꼼짝도 못 하는 팽신혜의 모습에 팽유월은 기가 막혔다.
"도대체 무슨...?"
"팽유월님, 어젯밤 실례가 많았어요. 하지만 너무 팽신혜 님을 나무라지 말아주세요."
연붕은 다 안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팽유월은 차마 식객에게는 뭐라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아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여기요, 이거 받으세요."
연붕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황색 종이봉투 안에는 얇은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이건 뭐예요?"
"어제 제가 마신 술값이요. 너무 좋은 술이라 저도 모르게 과음해서...후후."
"연붕 님,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손님께...."
팽유월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지만, 뭔가 똑 부러지게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봉투 안에 뭐가 들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후후. 괜찮아요. 저 돈 많답니다."
연붕은 봉투의 끝을 뜯었다. 안에는 막대한 액수가 적힌 전표가 들어있었다. 그건 명백히 전날 비어버린 술병을 몇 배나 더 채우고도 남을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 이 많은 전표를 어떻게...?"
"후후, 그건 비밀이랍니다."
연붕은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그리고 이걸 받지 않으시면 제가 무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받아주세요."
연붕은 팽유월의 손을 꼭 감싸며 전표가 든 봉투를 밀었다. 팽유월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양하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기이한 힘으로 손이 그만 품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후후, 별말씀을. 그런데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팽유월은 무겁게 고개를 질끈 감았다. 팽신혜의 차용증 절반을 해치워버릴 수 있는 막대한 돈을 받고도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까?
"무엇입니까?"
"따님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런데, 한 번 보고 가도 될까요?"
순간.
팽유월은 왠지 모르게 연붕의 말에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 * *
전생에 나는 자식이 없었다.
애초에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장래를 약속한 여자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이어지지 못하고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살아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여인들과 오손도손 아이를 키우며 평화로운 삶을,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싶었다.
미친 듯이 여인과 정사를 나누다가, 아이가 생기면 아이가 생기는 대로 키우고 또 사랑을 나누다가 생기면 새로 낳는 삶을!
'무림인은 최소 마흔이 넘어도 노산 걱정 없이 씀풍씀풍 잘 낳을 수 있다.'
평범한 아낙네들과 달리, 무공을 익힌 여인은 무공의 영향 덕분인지 폐경이 늦게 온다더라. 환갑을 넘어서도 30~40대의 젊음을 유지하는 이들이 바로 무림의 여인들이다.
설령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해도 반로환동을 거치면 다시 젊어진다.
한 남자의 여인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무공을 익히는 건 아니지만, 무공이 젊음의 비결이라 황궁에서도 암암리에 황비들에게 무공을 익히게 한다는 속설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무림인 여성을 내 아내들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래도 너무 많으면 곤란하니까 딱 삼처사첩만 하자.'
그냥 즐기는 것과 별개로, 내 아이의 어머니가 될 여인은 딱 일곱 명까지만 채우자. 나는 그런 생각으로 천하를 주유하며 많은 여인들을 살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의 '아이'를 가진 여인은 없었다.
용봉지회 당시, 사공희는 내 아이를 가져 나를 붙잡으려고 달거리 중에도 내 정기를 받으려고 했다. 당연히 나는 안에 사정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사공희가 문제라서? 아니다. 내가 막았다.
- 혈세----!!
정마대전. 혈교재림.
천하에 혈겁이 일어났을 때, 과연 장성한 내 자식이 난세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하면 될까. 나야 이 삶을 그대로 즐기면 되지만, 내가 낳은 자식이 훗날 겪을 파멸의 미래를 생각하면 쉬이 아이를 낳게 할 수 없었다.
만약 아이를 낳았다가 혈교의 난동으로 내 아내가, 내 아이가 피해를 본다면?
아이를 낳는다고 한다면, 아주 먼 미래에.
팽유월에게는 미안하지만, 팽유월과 낳은 아이는 솔직히 말해 내가 반드시 원했던 아이는 아니었다.
일부러 임신시켰다기보다는, 어차피 임신하면 팽유월도 무공이 더 늘어나고 나중에 혈세에도 더 잘 이겨내지 않을까 하는 동정심이었다.
- 이 여인을 진짜로 임신시키고 싶다.
하지만 팽유월을 계속 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저지르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냥 팽유월을 몇 번 안고 끝내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사정하고 말았다.
- 정말...소녀를 그렇게 부끄럽게 하고 싶으신가요?
이번 생, 처음으로 듣게된 사랑을 속삭이는 목소리에 그만 나는 홀려버렸다.
그래서 하북팽가는 아이를 잘 키워줄 환경이라 믿으며, 팽유월은 좋은 어머니가 될 거라고 믿으며 나는 그녀의 사랑에 응답해버렸다.
아바---
그리하여 만난 팽유월의 아이, 나의 아이를 직접 껴안은 첫 소감은 '무겁다'였다.
"어머나, 이런 적 없었는데."
나와 팽유월의 만남으로 태어난 생명은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나를 향해 활짝 미소지으며 안기려드는 아이의 온기에 나는 모든 생각이 굳어버렸다.
빠아-
"......."
"이렇게 기뻐하는 건 처음이네요. 흐음...."
팽유월이 뒤에서 자신의 딸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건 전혀 신경 쓸 수 없었다. 팽유월을 닮아 예쁜 얼굴이었다. 그리고 눈매는 나를 쏙 빼닮았다.
"아이가...정말 예쁘네요."
"그렇죠?"
아주 당연히, 몹시 당연하게도,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추소광의 흔적이라고는 없었다. 나의 기억 속 오호단문도의 사용자와는 확연히 다른 성장이 기대되는 아이였다.
새근, 새근.
아이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내공의 힘으로 이보다 더 무거운 것도 번쩍 들어 올리고는 했지만, 내 어깨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든 아이의 무게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그...."
내 질문에 팽유월은 볼을 긁적이며 대답을 피했다.
"...아직은 태명을 그대로 쓰고 있답니다."
"태명을요?"
"네. 월아(月兒)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요."
"......월아."
여러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팽유월의 아이라는 의미기도 했지만, 나와 팽유월 사이에 '월아'라는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었다.
사공희에게 붙여준 견희처럼, 내가 팽유월을 안으며 붙였던 그녀를 위한 애칭이었다. 불꽃처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나의 월아였다.
"팽유월님. 혹시 아이를 더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있다면, 팽가를 떠나실 건가요?"
"......."
내 질문에 팽유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뇨. 손님께서 보시기에는 팽가가 비록 낡고 어려워 보이시겠지만, 팽가는 일어날 겁니다. 그분의 정을 이어받은 월아가 팽가의 새로운 희망이 될 겁니다."
"만약 팽가가 몰락하게 된다면요?"
"...기다릴 겁니다."
팽유월은 가슴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품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언젠가, 그분이 말씀하신 '천객(天客)'이 찾아오실 때까지."
팽유월은 약속을 잊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렇군요...."
응애.
잠들어있던 월아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뭔가 내 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나는 진기를 불어넣어 월아를 진정시키려 했다.
"후훗, 이리 주셔요."
팽유월은 월아를 품에 안고 가슴을 열어젖혔다. 내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가슴을 열어 월아에게 젖을 물렸고, 월아는 팽유월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누굴 닮았는지, 그렇게 제 가슴을 좋아하더라고요.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찾더라고요. 응, 월아야. 옴뇸뇸. 잘해요, 그래. 배고팠니?"
"......."
팽유월은월아에게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젖을 물렸다. 그 신성한 모습에 나는 신기하게도 질투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이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 내가 지켜줘야 한다.
'내 여자와 내 아이를 내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는가?'
그러기 위해.
모든 준비가 끝날 이틀 뒤.
나는 학혈마녀 팽신혜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의 가족을 위해.'
겁탈할 것이다.
[작품후기]
問 : 팽유월이 주인공에게서 가져간 것은?
1.첫 아이
2.첫 고백
3.첫 사정(정자有)
답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