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31화 (13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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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가의 두 여인(彭二)

팽신혜를 노려보느라 인상을 굳히고 있어 차가워 보였지만, 아름다운 인상에 남아있는 상냥함은 팽신혜의 마수에 걸려든 나를 신경 써주고 있었다.

“팽유월, 너…!”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임신시키고 싶은 얼굴과 외모는 내가 안휘에서 만났던 그녀, 팽유월이었다.

‘역시 애 낳고 나니까 더 예뻐졌군.’

임신하고 나면 몸이 망가진다고 하지만, 팽유월은 아이를 낳고 난 뒤에 몸이 오히려 교정되는 여인이었다. 유두 윗부분을 지나가는 옷 선 덕분에, 나는 더욱더 풍만해진 그녀의 모성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진정해라, 아기 색마.’

1년하고도 족히 몇 개월이나 지난 시점.

여인으로 떠나보냈던 자가 한 아이의 어머니를 넘어 여신이 되어 돌아온 것에 내 아기 색마는 기뻐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아기 색마 왈, 또 임신시키고 싶다. 양기가 끓어 넘치는 게 역체변용술이 풀릴 것만 같았다.

'진정하자. 여기서 발기하면 다 망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연붕. 마음을 다잡고 허리를 숙였다. 팽신혜에게서 손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팽유월님이라고 하면 혹시….”

“네, 저는 팽유월이에요.”

나를 향해 굳은 얼굴로 바라보는 팽유월은 뭔가 말하고 싶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역시 상냥해.’

팽신혜가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내게 뭔가를 전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팽유월님, 혹시 저한테 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여기서 하기는 좀 그런데.”

“야, 너 지금 내가 모셔온 손님 빼앗으려고 하는 거야?”

팽유월이 내게 뭔가 언질을 주려고 하자, 팽신혜는 노골적으로 짜증을 부렸다.

“너는 가서 네 애나 봐. 네 새끼한테 가서 젖이나 먹이라고."

혈교에 들어갈 예정인 자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인간성이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그래도 지금은 학혈마녀인지 아니면 혈교에 들어가기 전의 참마도인는 확실치 않은-

"어서 네 더러운 핏줄한테-”

“이 씨발년이?”

내가 아니다. 나는 턱밑까지 말이 차올랐지만, 나보다 더 빨리 쌍욕을 내뱉은 사람이 있었다.

"야, 죽을래?"

팽신혜가 험한 말을 한순간, 팽유월은 팽신혜를 향해 단걸음에 거리를 좁혔다.

“다시 한번 말해봐. 뭐라고?”

“커, 커흑…!”

멱살도 아닌 목이 붙잡힌 팽신혜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팽유월은 나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잘한다.

“이...미친 년이…! 가주 직계인 나를 감히…!”

팽신혜는 아등바등하기 시작했지만, 일류의 힘으로 감히 팽유월을 도모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팽신혜를 제압한 걸음만으로 그녀의 무공 수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절정...하고도 중반!’

단순한 절정 고수가 아니다. 내가 직접 키운 사공희와 이시아보다 약간 아래 수준에 도달해있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하체의 혈맥이 뚫렸구나! 골반이 늘어나면서 꼬인 기맥도 같이 늘어났어.'

역시 팽유월은 아이를 낳아야 강해지는 존재였다. 벌모세수나 환골탈태보다, 그녀는 임신출산이 더 무공을 익히기에 좋은 몸으로 탈바꿈 할 수 있었다.

“너, 이...팽가를 부끄럽게 할….”

팽신혜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눈에 붉은 기가 맴돌기 시작하자마자 둘의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글쎄요. 아무리 그래도 저 역시 아이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뭐…!”

팽유월의 편을 드는 거로. 팽신혜가 배신당한 눈빛을 보내든 말든, 나는 팽유월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아이를 두고 더럽다고 할 수 있나요? 하북팽가는 출신으로 차별을 하는 분들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아, 아니. 연붕, 그게 아니라...!"

내 말에 팽신혜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졌다. 참으로 잘됐다 싶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팽유월님. 불쾌하신 건 알겠는데, 이러다 이분 죽겠어요.”

“.......”

팽신혜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가만히 놔두다가는 팽유월이 세가의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게 생겼다.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그녀를 진정시켰다.

“......후우.”

팽유월은 팽신혜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졌다.

역시 자기를 닮은 여자를 안으려던 추소광을 향해 도를 휘두르려던 여인답게, 속에 참고 있던 다혈질 기질은 좀처럼 숨기지 못했다.

“같은 핏줄만 아니었어도...."

팽유월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화가 끝까지 치밀어오른 그녀는 나를 향해 급히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께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아, 아니에요. 하하...."

팽유월의 갑작스러운 공격 덕분에 연붕으로서는 여러모로 난감해졌지만, 비천색마로서는 아쉬웠다.

'감히 내 애 보고 더러운 피라고?'

내 신경 쓰지 말고 아예 반 죽여버리지. 감히 더러운 핏줄이라고 운운하다니, 삼세번은 죽어 마땅했다. 내가 죽일까?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야! 미친년아,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

스으으.

구루루룩.

내가 이 사이로 바람 소리를 내자마자, 팽신혜의 뱃속에서 무언가 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꾸룩, 꾸루룩.

팽신혜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난처하게 웃으며 난간을 짚었다.

"소, 손님께 차마 못볼 꼴을 보였습니다.... 크흑, 패, 팽유월. 당신이 연붕 아가씨를 손님 방으로...으윽."

팽신혜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를 급히 떠났다. 팽유월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휘휴우.

나는 휘파람을 불어 음공을 마무리했다.

"...당신?"

"후훗."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팽유월님. 정말로."

처음 만났던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다. 팽유월은 무안한 눈으로 나를 훑다가, 내 눈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혹시 저희...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나요?"

"네? 그럴 리가요. 처음이에요."

팽유월은 나를 상당히 미심쩍은 눈으로 찬찬히 살폈다. 뭔가 의심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결코 들킬 일은 없다. 여장은 완벽하고, 목소리 또한 다르니까. 내 몸에서 추대광의 요소를 찾고자 한다면 단 하나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장을 하고 있는 몸. 걸릴 이유가 없다.

"...그런가요."

팽유월은 아쉬운 목소리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녀를 향해 몸을 숙여,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그런데 팽유월님. 실례가 안 된다면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금요? 음...."

팽유월은 뒤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따라오세요."

나는 팽유월의 안내에 따라, 팽가를 구경했다.

* * *

"썩을 년!"

팽신혜는 핏발 선 눈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감히 손님 앞에서 나를 모욕해?! 더러운 년 주제에!"

치욕스럽기 짝이 없다.

모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목이 붙잡히는 굴욕에 더불어 꼴사납게 도망치는 모습만 보여주게 되었다.

"이...젠장...!"

팽신혜는 벽에 이마를 짚고 이를 악물었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고통에 절로 비명이 나왔고, 짜증과 신경질이 동시에 치밀었다.

"흐흐.... 언젠가 복수하고 말 거야...!"

팽신혜는 팽유월에게 연신 저주를 퍼부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여인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비교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팽신혜는 직계고 팽유월은 방계다.

방계는 직계를 결코 이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재, 팽가의 모든 힘은 팽유월에게로 집중되어있다. 부친인 팽가 가주 팽이왕부터 시작하여, 팽가의 모든 장로가 팽유월 한 명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젠장...! 밖에서 몸 팔아서 돈 벌어온 년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팽신혜의 막말은 끝이 없었다. 매번 팽유월에게 무공 차이 때문에 굴욕을 당하면서도, 팽신혜의 머릿속에 박힌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돈 좀 챙겼다고 으스대기는...!"

팽가가 간신히 숨을 돌릴 수 있게 만들어 준 추소표국의 유산 또한, 그저 팽가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흐흐, 언제까지 그 위세가 이어지나 보자...! 아으, 으아아...!!"

팽신혜는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 * *

내가 팽가의 식객으로 들어온 이유는 팽가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내가 하북팽가 사람도 아니고 팽가 구조를 알 리가 없으니. 팽가에 와보는 건 생전 처음이군.'

현생과 전생을 통틀어 팽가에 직접 와본 적은 처음이다. 전생에 북경에 몇 번 들린 적은 있지만, 하북팽가에 직접 발을 들이는 건 처음이었다.

'듣던 거랑 완전히 다른데?'

호탕하고 호방하여 딱히 허식에는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도라거나 천장이라거나 전부 새것인 양 휘황찬란하다. 덕분에 나는 건물의 구조를 곁눈질로 살피느라 제법 애먹었다.

'나중을 위해서 구조는 알아야 해.'

하북팽가의 구조를 아는 건 추후 벌일 색마짓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가령 빙색마인의 모습으로 팽가가 아니라 다른 가문이나 중소문파의 여인을 범하고 난 뒤, 연붕으로 다시 변장하여 팽가에 숨어든다거나.

가령 빙색마인으로서 팽가의 여인을 범하고 나중에 탈출할 때 쉽게 탈출한다거나.

가령, 나중에 신세를 질지도 모르는 팽가 여인들의 방을 확인한다거나.

"...그래서 하북팽가는 이곳 북경에 자리 잡았답니다."

"음, 들었어요. 역시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곳이네요."

사실 전혀 듣지 않았다. 곁눈으로는 구조를 확인하고, 정면으로는 맞장구를 치며 팽유월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을 뿐이었다.

"이쪽이 손님께서 머무실 곳이에요."

팽유월은 내게 내가 머물 객실을 안내했다. 다른 방과 마찬가지로 다 쓰러져가는 낡은 방을 최근에 큰돈을 들여 개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무에 유악을 칠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객실을 새로 만든 건가요?"

"아뇨. 기존에 있던 건물들을 죄다 새롭게 고쳤어요. ...세가가 다시 위세를 되찾으면서, 수입도 예전만큼 회복했거든요."

팽유월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눈에 눈물이 스친 것처럼 보였다.

"객께서는 최근, 팽가의 몰락과 부흥에 관한 이야기는 혹시 들어보셨나요?"

"...대충은 알고 있어요. 팽가의 가주께서 큰 병이 나셨고, 그 시기에 팽가의 방계 여인이 어느 표국과 혼인을 맺었다고. 그리고 표국주 일가가 사망함에 따라, 표국의 모든 재산이 그 여인에게 상속되었다고."

모를 수가 없다. 내가 아예 귀를 닫고 산 것도 아니고, 팽가의 소식은 가끔 전해듣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알 정도로만 대답했고, 팽유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때 팽가 가주는 병을 고쳤고, 표국의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팽가는 하북팽가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죠. 덕분에 그 재산을 바탕으로 팽가는 장원을 다시 바르게 세우고, 문을 닫기 직전까지 몰렸던 도장의 문패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되었답니다."

"뜻깊은 곳에 쓰셨군요."

"네. ...손님께 예의는 아니지만, 꼭 이 말만은 해드리고 싶습니다."

팽유월은 일그러지려는 인상을 애써 굳혔다.

"다른 곳에서 색마의 소재가 파악된다면, 조속히 팽가를 떠나주세요."

"식객이 할 말은 아니지만 당신 같은 분이 그런 말씀을 하다니.... 뭔가 이유가 있는 거죠?"

팽유월은 표정이 굳었다. 아랫입술에 피가 맺히겠다 싶을 정도였고,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가문의 외인께 말씀드리기는 차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실례했습니다."

팽유월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떠났다. 모처럼 둘이서 단촐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팽유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허."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왜 갑자기 떠난 걸까?

응애-

"......."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나는 손발에 핏기가 가셨다. 멀리서 지켜보니, 팽유월은 팽가의 나이 든 시녀가 급히 안고 달려온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가, 엄마 찾았어?"

응애-

아이는 팽유월의 품에 안기자마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한두 번 아이를 보챈 팽유월은 밖이 다 트여있는 복도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열어젖혀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그래, 그래. 착하지. 배고팠구나, 우리 딸."

"......."

멀리서 처음 본 내 딸은, 팽유월과 나를 닮아서 그런지 몰라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응애.'

딸과 함께, 모친의 젖무덤에 파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후기]

眞색마아기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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