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30화 (13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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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가의 두 여인(彭二)

색마는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을소미를 범하고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해, 섭혼술로 그녀의 기억을 일부 지웠다.

'환마의 섭혼술이 참 좋지.'

하지만 범한 여인의 기억을 지울 때마다 내공이 소모된다. 그래서 내공 소모 없이 범하려면, 채음보양에 손실이 없어지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가령, 몸을 바꾸고 여인을 범한 다음 다른 몸으로 갈아탄다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존재로 범한 뒤에 그 얼굴을 다시는 안 쓰면 그만.'

겉모습을 바꾸기.

나는 정체를 숨기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역체변용술을 선택했다.

내공만 있으면 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천축국의 기술 덕분에 나는 과거 추소광 때도 아주 쉽게 몸을 바꿀 수 있었다.

'추소광은 역체변용술의 시험이었지.'

과연 내가 성공적으로 내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했던 변신은 성공적이었고, 나는 추대광이 되었다.

추소광을 죽이고 팽유월을 취했다. 현실의 인물로 바꾼 터라 금방 약점이 생겨 추소광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은폐한 뒤로, 나는 가급적 '미래'의 존재나 몇 세대 전의 존재로 모습을 바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백발 거구 중년인'이라는 모습을 탈피하기 위해, 원래의 내 모습에서 얼굴의 골격을 여성스럽게 변신시켰다.

음공의 고수, 초절정 미녀 연봉(緣鳳).

미래, 20대 초반의 고수로서 명성을 크게 얻은 그녀는 내 친척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덕분에 나는 골격을 그다지 크게 뒤틀 필요도 없었다.

'내 지금 원판부터가 예쁘장하니까 크게 바꿀 필요도 없지.'

마교 최강 미녀 이시아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내 얼굴은 상당한 미형에 속한다. 어떤 방면의 미형이나 하면, 조금만 꾸며줘도 여성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의 미형이다.

안휘 제일 미녀였던 모친으로부터 내려받은 피의 영향이 첫 번째.

그리고 채음보양으로 여인들로부터 얻은 막대한 음기의 영향이 두 번째.

모든 몸의 양기를 골격과 양물에 집중시켰기에, 아래에서부터 쫓겨난 음기는 얼굴의 윤곽에 집중되었다. 덕분에 나는 여장이 어울리는 외형이 되었다.

'그래서 골격이 완전히 자리 잡고 양물이 충분히 자란 시점부터 음기를 쌓기로 했었지.'

골격의 틀이 잡히기 전에 역체변용술을 쓰면 먼 훗날 뼈가 쉽게 망가진다. 그래서 내공을 이용해 신체를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어린아이로서 육체가 자연스레 성장하도록 만들었다.

너무 이르게 채음보양을 하다가 양물이 추소광이 되지 않도록.

양물이 완전히 자라기 전에 채음보양을 하게 되면 양물이 자랄 게 완전히 자라지 않는다. 여성의 정기를 취하면 내공은 늘어나지만, 그만큼 여성적인 기운이 강해져 양물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게 내가 어른이 되시 전까지는 역체변용술을 사용하거나 채음보양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은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변성기.

몽정.

그리고 여인을 임신시킬 수 있는, 양기를 배출할 수 있는 파정.

소년이 남자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시기가 도래한 순간, 나는 역체변용술과 채음보양이 내 육체적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골격을 다소 비틀거나 여인네의 몸에서 채음하더라도, 그게 몸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기반을 단단히 다져놓았다.

외형을 여인처럼 바꿔도 원래 몸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변신은 완벽.'

나는 오면서 주웠던 동경을 하나 꺼냈다.

면사포 아래의 얼굴은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딱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 싶은 얼굴이었다.

체형이야 골반 쪽을 대충 비슷하게 맞춰놓으면 되고, 목소리는 내공의 힘을 실어 변조하면 된다. 행동거지를 여성스럽게 하는 건 조금 고역이지만, 그래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었다.

머리칼?

'미염신공!'

모발 강화에 탁월한 미염신공을 운용하면 어떤 여인네보다 더 아름다운 머리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머리칼을 자라게 하는데 내공이 또 들었지만, 그건 을소미 덕분에 금방 채울 수 있었다.

화장까지 하면 희, 아, 연과 함께 무림 4대 미녀로 꼽히지 않을까. 폐월수화와 침어낙언은 가히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참아라, 아기 색마.'

유일하게 내 몸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 존재, 치마 속에 감춰진 아기 색마는 자꾸만 고개를 세우려고 들었다.

"마차는 불편하지 않으시죠? 하북은 참 좋은 곳이랍니다."

"그러게요."

내가 아닌 다른 여인의 살 내음을 코로 맡는 순간, 아기 색마는 미친 듯이 날뛰며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다.

- 여장을 한 이유? 그건 여자를 속여서 취하기 위함이 아니더냐!!

아기 색마가 외치고 있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당장 덮쳐서 냅다 구멍에 쑤셔버리라는 건 아니다.

"하북은 치안이 안정된 곳이에요. 하지만 당신 같은 분이 혼자서 여행하는 건 위험하답니다."

참마도 팽신혜.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현재'의 참마도. 팽가의 여인 중 색마를 죽인 자는 대대로 참마도라는 별호를 받았고, 팽신혜는 내가 알고 있는 참마도-팽유월의 선대 참마도였다.

"배려에 감사드려요."

달그락, 달그락.

그런 그녀가 나를 자신의 마차에 태워, 팽가의 무사 둘에게 호위를 맡긴 채 나를 하북팽가로 초대했다. 나로서는 시작부터 꼬여버린 계획에 조금 난감했다.

좋은 의미로.

'원래 이 년 낚으려고 했는데 잘 됐군.'

나는 팽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기도 하고, 그간 여러 가지 정보를 모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전생에 알고 있던 정보까지 포함하여, 나는 팽신혜에 대하여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다.

여인의 몸으로 악즉참 팽이왕의 뒤를 이어받았어야 했을 팽이왕의 적녀.

무공의 수위는 기억상으로 일류. 지금도 일류.

나이는 올해로 25.

혼기가 꽉 차다 못해 이제 거의 지나가고 있음에도 그녀에게 아무도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본인에게 들어오는 혼담을 거부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희 소저. 혹시 꽃 좋아하세요?"

"네, 물론이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꽃 구경을 하는 게 제 취미랍니다."

"호호호, 그렇구나.... 저도 참 좋아한답니다."

팽신혜는 입맛을 다시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치마에 가려진 아기색마는 다행히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럼 팽가의 화단을 한 번 구경해보시겠어요?"

"팽가? 혹시 지금 정식으로 초대하시는 건가요?"

"물론이어요. 하북의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이것도 인연인데 팽가에서 머물다 가시는 건 어때요? 저, 한 번 연붕의 비파 소리가 듣고 싶어요. 아버님도 궁금해하실 거예요."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음공의 고수의 관심을 끄는 척하며, 부친 팽이왕에게 소개해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머, 정말요?"

하지만 나는 안다. 저 활짝 피어오른 미소 뒤에 숨어있는 식충식물의 정체를.

팽가의 적녀라는 신분으로 죄 없는 숱한 여인들을 잡아먹는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다.

'학혈마녀(虐血魔女).'

을가장의 을소미와 마찬가지로, 하북의 패주로서 군림하며 숱한 여인들을 제물로 바쳤던 여자.

"네, 물론이죠. 저도...연붕에 대해 관심이 많고요."

그리고 제물로 바치기 전, 마음에 드는 여인을 성적으로 괴롭히며 고문하며 자기 성욕을 채우는 광인.

혈교인 중에서도 혈교주를 따르는 십이색녀 중 한 명이다.

...아마도?

'일단 범하면 알겠지.'

을소미를 까발렸던 것처럼, 나는 팽신혜를 범할 것이다.

* * *

잠시 뒤.

나는 팽신혜의 뒤를 따라, 팽가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천에서 온 연붕, 희아연이라고 해요."

나를 의심하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사천에 진짜로 연붕이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 확인해봤자, 이미 그때면 연붕은 모든 임무를 마치고 떠날 테니까.

“어서 오시구려. 신혜의 손님은 곧 팽가의 손님. 하북팽가에 오신 걸 환영하오.”

“가주님을 뵙습니다.”

나는 반쯤 죽어가는 노인, 팽이왕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렇소. 내가 바로 하북팽가의 가주, 팽이왕이요...쿨럭."

한 때는 천하에 이름을 날리던 도객이 이제는 무공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노인이 되어있었다.

“하하, 그대도 내 이야기는 들었나 보군. 그렇소. 나는 주화입마에 빠져 무공을 전부 잃었지. 하지만 그게 어떠한가? 살아있는 거로 만족해야지. 껄껄.”

무인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무공과 내공을 잃는다? 과연 저렇게 웃는 게 진심일까, 아니면 의례상 하는 말일까.

'당연히 후자지.'

나도 무공을 잃게 되면 이렇게 되나 싶을 정도로, 그는 여러모로 안쓰러웠다.

“하북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천하를 주유하며 영감을 찾고 있습니다.”

나는 옆에 놓아둔 비파를 눈으로 가리켰다. 그에 팽이왕은 여자 혼자 돌아다닌다는 것에 몹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위험하지 않소?”

“산신의 영험함을 받들어 새로운 악상이 떠오른다면 위험도 감수해야지요.”

무인들만큼 기행을 일삼는 자들이 예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무공, 음공을 익힌 예인이 제일 특이하다.

“두 발과 비파, 그리고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답니다.”

“음…그렇군.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리고 기행은 때론 백 마디 논리보다 더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팽이왕은 그러려니 하는 눈으로 납득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구려. 색마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당분간 팽가에 머물러 주시겠소? 행여나 색마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면, 그때 다른 곳으로 떠나면 될 것이오.”

“색마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입니까?”

“말도 마시오. 육봉 중 한 명을 납치한 작자이니. 쯧쯧.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독고연, 그 아이도 병이 나았다고 하던데.”

불치병을 앓았다가 몸이 나은 사람들로서, 둘은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내가 훔친-아니 챙겼던 천환단이 좋은 곳에 쓰였음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쉽구나, 아쉬워. 팽가의 오호단문도와 독고세가의 독고구검이 합쳐지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거늘….”

전언철회. 빨리 안 죽나, 이 양반.

“크흠, 미안하오. 죽을 때가 다 되어서 그런지 요즘 혼자 이야기하는 일이 많아져서. 신혜야.”

“예, 아버님.”

옆에 가만히 있던 팽신혜가 몸을 일으켰다.

“네가 모셔온 객이니 네가 모시거라. 팽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극진히 대접해야 할 것이야.”

“네!”

시원시원한 대답이었다. 나는 팽이왕에게 인사를 한 뒤, 팽신혜가 건넨 손을 슬며시 잡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쪽으로 오세요, 연붕."

‘손은 예쁘네.’

도객답지 않은 양갓집 규수의 손이다. 칼 쓰는 솜씨는 아무리 좋게 봐도 일류 수준이었다.

‘도는 그냥 호신술 정도로만 익히는구나. 무공은 거의 안 익혔어.’

무가에서 태어난, 특히 그중에서도 팽가에서 태어난 여인답지 않게 무공에 대한 욕심이 딱히 커 보이지는 않았다.

“희 소저. 소저의 손 정말 예쁘시네요, 하아. 가지고 싶다....”

대신 다른 쪽으로 욕심이 많아 보였다. 나는 손에서 느껴지는 끈적한 기운에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웃으며 역으로 기를 퍼뜨렸다.

“악기를 다루는 손이니까요. 제가 손만 이렇게 움직여도 아름다운 소리가 나온답니다.”

“햐읏.”

검지와 중지를 가볍게 쓸었을 뿐인데 팽신혜는 신음을 흘렸다.

“으….”

자신이 신음을 흘렸음에도 팽신혜는 눈만 흘길 뿐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두고 봐라’는 눈빛을 보내길래, 나는 그저 속으로만 비웃었다.

“이 손, 확 가져버리고 싶네요.”

“안 돼요. 악사에게 손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제가 사버리면 안 될까요?”

“후후, 아무리 하북팽가라도 저를 고용하려면 제법 많은 돈이 필요할 거예요. 하루에 최소 금 닷 냥은 써야 할걸요?”

내 말에 팽신혜는 고개를 치켜세우며 우쭐거렸다.

“흥, 팽가에 얼마나 돈이 많은데요?”

“어머, 정말요?”

“네, 물론이죠. 하북 일대에서 최고의 명문세가가 팽가 아니겠어요? 도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만 하더라도 성을 사고도 남을 정도랍니다?”

“말은 바로 해."

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전신의 털이 쭈뼛 섰다.

"팽가에 그런 돈이 지금 있을 것 같아?"

익숙한 목소리지만 목소리에 깔린 느낌은 전혀 달랐다. 팽신혜를 향한 경멸 섞인 목소리에는 명백한 짜증이 담겨있었다.

“거짓말 하지 마. 과장도 정도가 있지.”

“호호,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니? 손님을 앞에 두고 나를 망신을 주려고?”

진짜 망신을 당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팽신혜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졌다.

“허, 네가 나를?”

싸아아.

하지만 팽신혜를 압박하는 여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팽신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벌벌 떨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

그곳에는 내가 알던, 하지만 완전히 달라진 여인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야, 팽신혜. 너 미쳤어?"

손님이 옆에 있든 말든 일단 욕부터 박고 시작하는 여걸.

'역시 하북팽가!'

팽유월이 눈앞에 있었다.

[작품후기]

100화 넘어서 다시 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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