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29화 (12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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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공적

그 시각, 사천 성도.

"......."

대공자, 주지는 불편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사천의 모든 산해진미를 맛보고, 빙마도 성공적으로 무림맹에 들어갔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염마 이 년, 미친 건가?"

대공자는 자문자답하며 정답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있었지?"

"한 달은커녕, 거의 두 달이죠."

"그래. 우리가 출발하기 전까지 포함하면 거의 몇 달은 될 것이다."

쾅. 대공자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런데 어떻게 한 번을 세가에서 나오지 않아!"

"글쎄요.... 의지가 강한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이건 분명 뭔가 성욕을 잠재워줄 남근을 찾은 게 분명해!"

염마 당서희의 성욕은 차기 마화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천마가 사술은 뛰어나지만 무공 실력은 일천한 서희를 염마로 들인 이유가 두고두고 취하기 위함이라는 속설도 있지 않은가?

"절간에 들어가면 중놈을 유혹할 년이다!"

"그렇다고 저희가 들어가서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러니까! 역시 내 생각대로야! 저년, 분명 당가의 남정네들로 성욕을 풀고 있는 거지!"

"으음...."

대공자의 말에 처음에는 질색했던 뢰마도 두문불출하는 염마의 강력한 의지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아는 염마는 내공만 갈취할 수 있다면 시정잡배를 들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탕녀였으니까.

같은 피를 나눈 존재라 한들, 염마의 성욕이라면 상식과 윤리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쯧. 텄다. 사천에서 쉴 만큼 쉬었으니 잠깐 천산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뢰마, 너는 그동안 빙마의 움직임을 잘 살펴봐라."

"빙마요?"

"그래. 그년을 두고 언급된 '비천빙마'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내야 할 것이다."

대공자는 무림맹으로부터 입수한 무림 공적 빙색마인에 관한 정보에 치를 떨었다.

"이 년, 감히 지린빙마가 아니라 비천빙마라고 얘기를 해? 그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착각을 했다? 하! 어림도 없지."

"........"

빙백신공을 운용하고 있을 때라면 모를까, 평소의 빙마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아는 뢰마로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공자, 그...."

"빙마 년, 분명 소공녀랑 붙어먹은 게 틀림없어! 남궁유린에게 상처를 입고 독고세가의 장원에 들어간 그 날, 그 썩을 년과 일부러 접촉해서 접점을 만든 것이다!"

"그건 그렇군요."

빙백신공에 천마신공까지 쓰는 빙마라면 그럴 수 있다. 대공자의 지시를 따르는 척, 소공녀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과연 멍청해서 비천이라는 이름을 단 건지.

아니면 진짜로 야인삼마가 아닌 비천여빙마가 되기로 한 건지.

그리고 천마신공과 빙백신공을 사용하는 비천빙마, 독고자영에게 은원이 있다고 하는 독고연 납치범은 과연 누구인지.

"꼭 확인해야 해. 북해에 잠들어있어야 할 북해빙궁의 노마(老魔)가 후손을 돕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면, 반드시 그자를 포섭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허창성 근처에 마인들을 보내, 빙마가 밖으로 나오는 즉시 습격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그래. 모든 진실은 빙마가 알고 있다. 그년을 잡아다가,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충성맹세를 하게 만들 것이야...."

대공자는 비릿하게 웃었다.

"빙마, 그년의 처녀를 반드시 내 걸로 만든다."

* * *

"유 사매, 정말 무림맹에 머무르시려고요?"

이봉결정전이 끝난 이후, 정식으로 아미파의 제자가 된 유설라는 아미의 무인들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네. 빙색마인에게 당한 빙공을 치료하려면 여기서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아요."

유설라는 하얗게 새어버린 자신의 머리칼을 가리켰다. 누가 봐도 빙백신공에 당한 흔적에 정조 사태와 정자 사태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아...."

"괜찮아요, 운이 없었던 거니까."

대외적으로 유설라는 빙색마인에게 습격을 당해 '기절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빙색마인을 최초로 발견한 자가 유설라이며, 빙색마인을 상대로 검을 출수했으나 기절했던 것이 이봉결정전 연기의 배경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연히 아는 사람은 안다. 그녀가 빙색마인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색마에게 당했다.

"무림공적, 제 손으로 죽이겠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의연하게 마음을 다잡고 복수의 칼날을 다듬는 유설라의 행동에 아미의 두 제자는 눈시울을 붉혔다.

상처 입은 빙백봉은 날개가 꺾였어도 날갯짓을 멈추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날개를 더욱더 힘차게 펄럭이며 날아오르려 했다.

"그 의지다, 설라야."

"장문인."

"스승이라고 불러라. 멸보의 제자는 곧 나의 제자. 같은 변을 당한 처지로서, 너는 나의 제자나 마찬가지란다."

멸색사태는 유설라의 손을 붙잡고 손등을 토닥였다.

"맹주에게는 내가 단단히 일러뒀다. 너는 당분간 맹에서 몸을 추스르거라. 내가 아미의 노모(老母)들을 설득하여 너를 아미산으로 데려올 호위단을 꾸릴 것이다."

"아, 아닙니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유설라는 두 손을 흔들며 사양했다. 하지만 멸색사태는 인자한 미소로 유설라의 손을 붙잡았다.

"괜찮아. 아미의 노모들 또한 너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너는 이미 충분히 아미의 제자다. 네가 아미산에 아니 있다면 어디로 간단 말이더냐?"

"그, 그게...."

"네가 빙색마인에게 당한 것 때문에 불안한 건 안다. 하지만 걱정마라. 우리가 네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아미파는 앞으로 네 새로운 집이다."

내 집은 북해빙궁인데. 빙궁주는 떨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합리한 처사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거, 까딱 잘못하면 북해빙궁이 아미파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

"스승님, 이제 가셔야 할 때입니다."

"그래, 그래. 이제 가야지."

밖에서 들어온 또 다른 제자의 등장에 멸색사태와 두 제자는 몸을 일으켰다.

무림맹 한가운데 유설라를 두고 가는 건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채음보양으로 내공이 빼앗기고 역으로 빙백신공을 당해 장기 요양이 필요한 여인을 데리고 수 천리에 이르는 길을 떠날 수는 없었다.

"이른 시일 내에 다시 보자꾸나. 설라야."

"네, 네."

유설라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멸색사태의 배려에 괜히 코가 찡했다. 경계하기에는 아미파 사제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남자의 기가 강렬하여 경계가 자연히 내려갔다.

"그, 그런데 스승...님?"

"왜 그러느냐?"

"지난번이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서요."

"훗."

멸색사태, 류서시는 손가락으로 볼을 슬쩍 당겼다.

"세상에 아직 색마는 많지. 더군다나 색마들에게 아미의 제자들이 두 번이나 납치당했다. 나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

"어...설마...?"

"다음에 만났을 때는 스승이 아니라 나를 언니라고 부를지도 모르겠구나. 몸조리 잘하거라."

아미파의 무인들이 방을 떠난 뒤, 유설라는 류서시의 기에 입을 쩍 벌렸다.

"주인님, 설마 키워드시려고...?"

이봉결정전 초기보다 강해진 류서시의 몸속에는 비천색마의 정기가 뜨겁게 남아있었다.

뱃속에 자리 잡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중려신화정의 내기가.

* * *

"음...."

감찰관은 하남에서 일어난 사건을 살피며 고뇌에 빠졌다.

"선배, 이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나도 몰라."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씀하시지 말고요."

신창은 흔들림없이 초식을 연마했다. 감찰관은 주요 단어들을 나열하며 신창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빙색마인이라는 자, 어떻게 무림맹의 포위망을 뚫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독고연이 납치당하자마자 바로 포위망이 형성되었고, 빙색마인은 을가장의 대모를 범하는 대담한 짓을 벌였으니."

이미 구축된 포위망을 뚫는 건 신창도 어려운 일이다. 감찰관은 한참을 고민하며 중얼거렸다.

"하늘로 날아서 도망갔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목격자가 아예 없는 것도 이상하네요. 구름 위를 달린 것도 아닐 텐데."

"모르지. 신선처럼 하늘을 날아다녔을지도."

"근데 그랬으면 시간상 누구 한 명은 하늘을 날아가는 걸 보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뭐냐, 변장이라도 해서 도망쳤다는 거냐? 사람 하나 들어 있는 보따리를 들고?"

"그런 거죠. 남자면 인피면구도 쓰고 있는지 막 확인하고!"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가장 그럴듯한 정답은 뭐냐? 빙색마인은 뭐로 무림맹의 포위망을 뚫었어?"

"...변장으로 도망쳤다?"

감찰관은 스스로 대답해놓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허창에서 하북으로 이어진 길에는 천라지망에 준하는 포위망이 깔려있었으니까.

* * *

"아가씨, 하북에는 무슨 일인가요?"

"여행 중이에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흑발의 여인은 나지막한 미소로 마부의 말에 대답했다. 마부는 간드러진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마저 말을 몰았다.

"크흠. 여인 혼자 여행을 하기 쉽지 않은데."

"저는 무인이라서요."

"그렇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마부는 여인의 몸을 훑었다. 흑의로 자신의 몸을 가린 그녀는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젖을 먹일 때 조금 어렵겠다 싶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뭐,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 다만 조심하시오. 하남성에 색마가 들었다더군. 아주 무시무시한 색마가."

"흐흠, 색마가요?"

과연 색마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낀 걸까. 마부는 미인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것에 괜히 들떴다.

"그렇소. 무림맹주를 습격한 것으로도 모자라, 정파의 여러 여인을 습격했다더군! 그중에는 놀라지 마시라, 글쎄 무림 맹주의 여식도 납치를 당했다지 뭔가!"

"어머나. 세상에 그런 일이 있어요?"

"그렇소! 그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지. 전신의 체모가 하얀 거구의 남자, 빙색마인은 독고 세가의 금지옥염을 납치한 것으로도 모자라 을가장의 대모까지 범했다고 하더군."

"와...엄청난 색마네요."

여인은 질린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대로 듣기나 한 걸까? 마부가 여인에게 제대로 조언을 해주려던 순간.

"정지. 멈춰라."

대로 앞은 녹색의 머리띠를 두른 무사들이 검을 들고 사람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복에는 '팽'자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하북팽가! 무인들이 여기까지 어쩐 일로...?"

"놀라지 마시오. 무림맹의 요청으로 검문을 하는 중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하북팽가의 무인들은 험악한 얼굴로 마부를 압박했다. 건장한 체구에 험상궂은 무인들이 포위하자 마부는 겁을 먹었고, 무사들은 마부의 볼을 붙잡았다.

꾸우욱.

"아악?!"

"이상 없음. 인피면구도 아니오."

"이, 이게 검문입니까?!"

"이해해주시구려. 이제 안쪽을 봐도 되겠소?"

마부는 난감한 얼굴로 안쪽으로 눈을 돌렸다.

"저, 아가씨...?"

"저는 괜찮아요."

미성이 밖으로 퍼져나가자 하북팽가의 무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흉흉했던 기세를 풀어낸 무사 중 그나마 인상이 평범한 청년이 앞으로 나서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녜요. 음...혹시 색마를 수색하시는 건가요?"

"네. 현재, 색마는 하북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하북팽가도 팽가지만, 관아에서도 소란입니다."

"세상에.... 고생하시겠어요."

미인의 위로는 언제 들어도 좋다. 무사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켰다.

그리고 그 순간.

"정지. 누가 마음대로 보내래?"

날카로운 목소리에 무사들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대로의 반대편에는 팽가의 무복을 입은 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신혜 아가씨!"

다소 기가 강해 보이는 여인이 나타나자 무사들은 허겁지겁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등에는 남자들도 쉬이 들지 못할 것 같은 태도가 묶여있었다.

"<참마도(斬魔刀)>?!"

"멈춰. 그래, 내가 참마도 팽신혜다. 안에 여자 한 명이 타고 있다고? 흥, 빙색마인이 협박하고 있는지 누가 알아?"

"아, 아가씨."

팽신혜는 거친 손으로 마차에 드리운 반투명한 막을 걷어 올렸다. 마차 안에 있던 여인이 인자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흠...미안해요. ...그런데 거기 뒤에, 하얗고 기다란 보자기는 뭐죠? 꼭 사람 한 명 말아둔 것처럼 보이는 거."

무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마부는 당황하며 옴짝달싹을 못했고, 면사포의 여인은 웃으며 짐을 꺼내 들었다.

"비파랍니다.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유품이에요."

"아...."

팽신혜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굳었다. 보자기를 전부 풀어헤쳐 겉이 흑단과도 같은 비파를 꺼낸 여인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때가 좋지 않아서 그런 거죠. 저는 괜찮답니다."

"미, 미안해요. 여자 혼자 여행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저도 무인이라서요.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흑발의 여인은 연분홍빛 입술을 반짝이며, 살포시 미소지었다.

"음공(音功)을 연마하는 자, <연붕(戀鵬)> 희아연이라고 합니다."

[작품후기]

새로운 처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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