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27화 (12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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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공적

"꺄아아아!!"

빙색마인 의사백에게 납치당하는 장본인, 독고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너무 좋아요!!"

환호성의 비명. 하늘을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며,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우리가 올려다보던 밤하늘을 피부로 느꼈다.

"진짜로 강하신 분이셨군요!!"

"그러면 내가 색마라는 걸 밝혔는데도 거짓말을 했을까? 나는 그대의 부친보다도 강하오."

진실이다. 단지 이번에는 '칼침을 맞았지만, 복수를 위해 딸을 납치'한 빙마를 연기하느라 한 번 져준 것뿐이다.

막강한 부작용을 각오하고 힘을 쓰면 무림맹주도 천마도 이길 수 있다. 단지 부작용이 죽어도 겪기 싫은 부작용이라서 그렇지.

"흐흥, 그러면 의원님께서 천하제일이시네요?"

"그, 내가 색마라는 걸 밝혔는데도 의원이라고 부르는 건...."

"저도 저만의 칭호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별빛에 비친 자색의 눈을 찡긋인 독고연은 손가락을 여럿 펼쳐 들었다.

"희 언니는 상공이라고 부르고, 시아 언니는 표현은 잘 안 하지만 비천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면 저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대만의 호칭을 만드는 건 좋소. 하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의원이라고 부를 것이오? 빙마가 그대를 납치했는데?"

"음...그러면 가가가 좋으세요?"

쿵.

심장이 크게 무너져내렸다. 순간적으로 허공답보를 위한 보법도 함께 무너질 뻔했고, 하마터면 허창성 아래로 크게 떨어질 뻔했다.

"붕가가?"

"그건 하지 마시오."

"왜요?"

"따지고 보면 가가는 아니니까."

어감도 어감이지만 내가 독고연의 가가는 아니다.

"그대는 나와 동년배라오."

"......네?"

독고연, 경악. 내 품에 안겨있는 선녀(舊)의 표정이 굳었다.

"농담은 아닌 것 같은데...."

"20살에 초절정에 오른 고수도 있는데, 20살에 무림맹주보다 강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중원 무림을 통틀어 그런 놈이 10명 된다면 모를까, 나 하나 정도는 그럴 수 있지 않소?"

"하지만 말투가 그렇잖아요."

"내 말투가 어때서?"

요즘 무림의 젊은 놈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데 어째서 나의 말투에서 늙은 티가 난다는 것인가?

"그럼 내가 시정잡배들 마냥 말하란 말이야?"

"어...지금 울림이 좋은 것 같은데요...."

"흥. 죽어도 안 한다."

신체 연령은 몰라도 정신연령이 내가 올해로 몇인가?

정체를 숨기기 위해 20대 청년의 연기를 하는 거라면 몰라도, 일부러 여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정신연령을 퇴화시키지 않는다.

"내가 아이처럼 굴 때는 단 한 순간뿐이오."

"희 언니 가슴이랑 시아 언니 엉덩이에 얼굴 박으실 때요?"

응애.

'솔직히 사공희 가슴이랑 이시아 엉덩이는 어쩔 수 없지.'

염라대왕이 나를 두고 정신연령 사칭죄를 판별해도, 사공희와 이시아를 보면 내게 무죄 판결을 내리리라.

"그건 불가항력이오."

"그런가요...저는 여러모로 불리하네요."

"무엇이?"

"무공만 강하고 두 언니에 비하면 많이 밀리잖아요. 아직 의원님을 모두 품지 못하고."

독고연은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저한테 독과를 준 사람한테 꼭 복수할 거예요. 제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해서."

꽃밭에서의 놀음 이후, 독고연은 병에 대해 상세히 전해 들었다. 선녀화로 인해 육체의 성장에 손실이 일어났다는 것에 그녀는 진심으로 분개했다.

- 그럼 저는 희 언니만큼 클 수 있는데, 병 때문에 못 큰 거예요?!

- 견희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견줄 가능성 정도는 있었을 거요.

이 소식에 소천마도 분개. 오늘도 대공자의 업보가 하나 늘어나고 말았다.

"저는 말이에요, 저한테 병을 준 사람을 만난다면 먼저 독고구검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밤하늘을 걸어간 끝에, 나는 미리 설치해놓은 미혼표식구궁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슬슬 보이는군. 착지하겠소."

"늦어----!!"

아래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나는 품에 안은 독고연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히 땅에 착지했다.

"금방 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둘이서 화단에서 또 뒹군 건 아니지?!"

"아니에요. 그냥 밤하늘이 예뻐서 별 보면서 오느라 늦었어요. 죄송해요."

독고연의 정중한 사과에 이시아는 차마 화를 내지 못했다.

"흐, 흥! 알았으면 됐어!"

싸우면 독고연이 이기니까. 소천마는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어디 한 번 내 비천의 자리를 대신할 음식 솜씨를 보자고! 흥, 네가 그렇게 부엌일을 잘해?!"

"그거야 뭐...."

독고연은 팔을 걷어붙이며 부엌을 가리켰다. 나는 독고연의 손을 잡고 고쳐놓은 부엌으로 안내했다.

화륵.

"이것은 중려신화정이요. 따로 장작을 넣지 않아도 불이 치솟지. 여기 있는 구체를 반시계방향으로 돌리면 화력 조절도 가능하오."

"와, 약불 쓸 때 편하겠네요?"

"...큭."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요리함에 있어서 약불의 개념을 아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둘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야, 비천! 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봐? 나, 나 부엌에 안 들어간다고 했잖아!!"

"아무 의미도 없었소."

그래도 불을 쓰라고 했더니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소천마보다 인내심은 강해서 장작을 계속 집어넣어 오랜 시간 동안 삶을 줄 아는 사공희가 더 낫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천하제일숙수는 아니더라도 지역 최고의 숙수 정도 실력을 낼 수 있는 독고연이 훨씬 낫다.

"빨래는 저기 개울 아래에서 하면 되오."

"개울 쪽으로 내려가는 곳에 있는 거에 걸면 되는 거죠? 저거 건조대 아닌가요?"

"그렇소. 방은 둘이서 같이 쓰시오. 허창성 인근 포목점에서 많이 가져왔으니, 입고 싶은 대로 입으면 된다오."

"많네요.... 안 입는 옷들은 개어놓고 싶은데, 옷장까지 바라는 건 사치겠죠?"

"내 금방 만들어주리다. 측간은-"

"어머, 의원님."

독고연은 내 말을 끊으며 웃었다.

"선녀는 그런 거 몰라도 된답니다."

"......."

싸한 미소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를 거들어줘야 할 이시아도 콧방귀를 뀌며 나를 한심한 눈으로 노려봤다.

"우리가 애도 아니고 그 정도는 알거든?"

"흠흠. 알겠소. 내 주의하리다."

오늘의 교훈. 선녀는 측간을 가지 않는다.

"의원님."

"응?"

"여긴 저한테 맡기고 잘 다녀오셔요."

"...알겠소. 금방 다녀오리다."

나는 흑의에 검은 삿갓을 꾹 눌러썼다. 누가 봐도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이고, 누가 봐도 '정체를 밝혀라!'라면서 시비를 걸 모습이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 돼. 그러면 찾으러 갈 거야."

"이거 안 보이시오? 나오면 대머리라니까?"

"여기서 독수공방하면서 늙어가는 것보다, 내 남자 혹시 잘못됐으면 대머리 되더라도 그 새끼 죽이러 가는 게 맞는 선택 아닐까?"

"......."

이시아의 강력한 의지에 나는 내가 준비한 팻말이 괜히 부끄러워졌다.

역시 소천마. 진취적인 성향으로는 중원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알겠소. 2주. 무조건 2주 안에 돌아오도록 하겠소."

만약은 없다. 하북으로 가는 게 정 힘들다면 방향을 꺾어서라도 나는 돌아올 것이다.

"시아 언니, 2주 동안 잘 부탁드려요."

"내가 할 소리. ...야, 내가 하나 부탁 좀 하자."

소곤소곤. 이시아는 독고연에게 무언가 귓속으로 속삭였다. 독고연은 빨개진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가, 내게 쫄래쫄래 걸어와 내 옷깃을 붙잡았다.

"저, 저기. 의원님."

"말씀하시오."

"...가기 전에 조금, 시간 되시죠?"

"허."

자기보다 어린 동생에게 이런 임무를 시키다니. 나는 밤하늘에 걸린 달의 위치를 올려다봤다.

'천마신보로 달리면 어떻게든 가능.'

아슬아슬하지만 시간에 얼추 맞출 수 있다. 나는 막 매듭을 묶으려던 갓을 울타리에 걸쳤다.

"오늘 이곳에서 정마가 하나로 화합되겠군."

훗날, 백도의 대표와 흑도의 대표가 될 여인들의 허리를 동시에 휘감으며, 나는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견희한테 조금 미안하군."

"뭐래. 걔는 자기 차례 없다고 사흘 내내 질펀하게 했잖아. 그러면 된 거 아니야?"

"...어제도 희 언니랑 하셨으면서."

"아니 그건 견희가 먼저 출발하니까-"

웁.

나는 두 여인에게 동시에 입막음을 당했다.

...삿갓을 다시 쓴 때는 그로부터 두 시진이 흐른 뒤였다.

* * *

아침.

무림맹의 사람들은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 빙색마인이 맹주의 딸을 납치했다더라!

독고 세가의 금지옥엽, 육봉 중 한 명이 된 독고연이 실종되었다. 사람들은 그 소식이 멀리 퍼져나가지 않도록 쉬쉬하기는 했으나, 무림맹이 대대적으로 들썩이는 것에 모두가 알게 되었다.

무림맹은 이봉결정전이 끝난 한 달간 빙색마인을 수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맹의 무사 9할이 수색에 나설 정도로 대대적인 수색은 처음이었다.

허창성은 관에서도 관리를 포기한 무림맹의 영역이었고, 맹의 무사들은 민가 곳곳을 수소문하며 빙색마인이 있는 곳을 찾으려 했다.

- 빙색마인? 백발의 남자? 그런 사람은 못 봤는데....

- 무슨 일이라도 터졌소?

- 한 달 전에 비무장이 습격당했다고 하던 놈이 그놈이었던가!?

사람들은 하나둘 진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빙색마인이라는 자가 색을 밝히는 자로서, 무림맹주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빙색마인과 직접 검을 겨뤘던 자들이 알고 있다. 빙색마인이라는 존재가 독고자영에게 가진 증오를.

그리고 그 증오를 바탕으로 한 달간 허창 어딘가에 잠복하여 때를 노리고 있었음을.

그리고 현재, 길길이 날뛰는 맹주를 진정시키느라 허창에 남아있던 여러 장문인이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진정하시오, 맹주!!"

"나는 지금 몹시 진정하고 있는 상태요."

맹주의 표정은 온화했다. 하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이나 행장은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았다.

"딸아이를 납치당했는데,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건 이해합니다만, 맹주는 무림맹의 중심입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맹의 누구도 연이를 찾지 못하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심정은 이해하네. 하지만 그대가 움직이면 사람들이 혼란에 빠질 것이야."

개방 방주는 독고자영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 어깨에 손을 올려 진정시켰다.

"개방이 전력을 다해 연이의 행방을 찾고 있네. 그자가 흔적을 남기지 않은 건 아니지 않은가? 아직 허창성 안을 빠져나가지는 못했을 것이야."

빙색마인은 담벼락을 뛰어넘어, 넓은 호수의 위에 빙백신공을 뿌리며 장원에 잠입했다. 그리고 화단 인근에서 독고연을 납치하여 다시 장원을 떠났다.

그의 피가 남아있었고, 독고연은 거칠게 저항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동백나무 사이에는 독고연의 찢어진 치맛자락이 걸려있었다.

"맹의 무사들을 믿으시게! 모두가 그대의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딸이 지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지 않소...! 아아, 연아.... 네가 죽으면 독고 세가가...!"

독고자영은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했다. 불치병에 걸렸던 딸이 모처럼 신의의 안배 덕분에 병을 치료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딸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내 욕심으로 인한 업보인가...?"

이봉결정전에 나가는 걸 막았다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면 딸이 납치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좋은 세가의 남자와 결혼시켜서, 아이를 여럿 낳게 해야하는데...그래야 독고 세가가...!"

독고자영이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찰나.

"맹주!! 찾았습니다!!"

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 군사의 말에 독고자영은 자리에서 퍼뜩 일어났다.

"어디인가?!"

"허창성 북쪽!! 정주에서 놈을 목격했다는 정보입니다! 사람 모양의 포대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

"어떻게 알아냈는가? 아직 개방에서도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거늘?"

"을가장에서 모임을 하던 구룡들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선룡(扇龍) 을지상의 모친, 을가장의 부인이 백발의 괴한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구룡들이 지금 그자를 쫓고 있습니다!! 아마도 빙색마인이 아닐지...!!"

쾅!

독고자영이 검을 뽑으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나, 독고자영의 이름으로 공표한다! 빙색마인 의사백은 무림맹의 공적이니라!"

"맹주, 그것은?!"

"어차피 공표하려고 했소! 더는 쉬쉬하다가는 맹이 우스갯거리가 될 뿐이오!"

이미 추가 피해자는 발생했다. 여기서 더 막지 못하면 무림맹의 수치를 넘어, 무림맹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다.

"구룡들에게 알려주시오! 빙색마인에게서 내 딸아이를 구해주는 자는......!"

독고자영은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내 딸아이를 내어주겠다고!!"

"내 저럴 줄 알았지."

무림맹 전각 위에 몰래 숨어있던 나는 독고자영의 말에 기가 찼다.

"쯧쯧. 딸내미 결혼시켜서 독고 세가 명맥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야."

독고자영은 좋은 아버지가 맞다.

하지만 좋은 아버지이기 이전에, 무림맹의 맹주이며 독고 세가의 가주다.

그러니 독고연을 납치해야만 했다. 엄한 놈팡이의 신부가 되지 않도록. 안 그랬으면 분명 일 년 뒤에는 남궁패 같은 놈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양 갔다가 정주 갔다가 다시 허창으로 오려니 기가 허하군. 쯧."

"읍, 읍읍읍!!"

나는 어깨에 둘러멘 보따리의 여인을 향해 입술을 검지로 눌렀다.

"쉿. 부인, 조용히 하시오."

"이...미친 놈! 나를 이용해 어떻게 할 셈이냐?!"

"도시락 겸 흔적."

"뭐...?!"

을가장의 부인, 을소미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어차피 나중에 가면 기억을 잃을 테니 잘 알아두시오. 그대는 나, 빙색마인의 내공이 될 것이니. 채음보양. 잘 알지?"

"미, 미친놈이...!!"

"조용."

나는 한때 아미봉과 함께 한 세대 '육봉' 중 한 명이었던 완숙한 여인을 안고 허창성 북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창고에 몰래 들어간 다음, 그녀의 옷을 벗겼다.

"범해진 채로 산길에 버려지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입 닥치시오."

"......!!"

내공도 보충할 겸. 빙색마인의 흔적을 남길 겸.

"채음보양하게 실례 좀 하지."

"......흐윽...!"

나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을가장의 안주인 을소미를 겁간했다.

훗날, 혈교의 앞잡이가 되어 하남성 대학살을 일으킬 마녀를.

"아, 아아악! 죽은 남편이 들어오지 않았던 곳까지 닿아버려어어! 미안해요, 여보오오오!

...결코 을소미가 미망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작품후기]

색마천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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