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25화 (12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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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공적

용봉지회의 진정한 막이 내렸다.

비어있던 마지막 두 자리가 채워진 것을 끝으로, 반년도 넘게 이어졌던 용봉지회가 끝을 알렸다.

폭룡 남궁패를 비롯한 구룡!

연희봉 모용란! 와백봉 제갈선!

산주봉 방철수! 중최미봉!

그리고 검희봉 독고연! 빙백봉 유설라!

이상 여섯 명의 봉황이 태어남에 따라, 많은 무인은 그들의 힘과 미를 칭송했다.

누군가에게는 명성을 드높일 좋은 기회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명예가 땅에 떨어진 악몽과도 같은 날이 되었다.

그러나 기회는 있다.

용봉지회는 4년마다 다시 돌아오며,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된다.

언제나 하늘 위를 노닐던 육봉들 또한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도전자가 되었다.

천상에 피어오른 꽃, 태극화.

아무리 육봉에서 빼어난 미를 자랑한다고 한들, 결국 태극화를 이기지 못하면 백도제일은 될 수 없다.

아무리 뒤에서 못난이들끼리 자신이 더 예쁘네, 무공이 더 뛰어나네 스스로 위로한다고 한들, 태극화가 백도제일화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태극화는 다음용봉지회에 참가할 수 있다.

- 만약 태극화가 다음용봉지회에 또다시 나온다면?

마교 소공녀의 등장에 따라 이번 용봉지회는 엄밀히 따지자면 팔봉(八鳳) 체제, 그중에서도 흑백제일화가 쌍두마차를 이끄는 형태가 되었다.

당연히 다음용봉지회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용봉지회가 일류 고수들의 비무대결이었다면, 앞으로의 용봉지회는 절정 이상 고수들의 피를 튀기는 혈전이 되리라.

바뀌는 건 봉들의 전쟁뿐만이 아니다. 폭룡 남궁패의 무공 수위 또한 어느덧 절정. 다른 구룡 중 넷 또한 이제 절정의 수위에 올라섰다.

물론 태극화와 소공녀에 비해 다소 끗발이 낮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무림의 호사가들은 자존심을 세우며 구룡육봉의 으뜸은 폭룡이라 칭했다.

- 3년 반 뒤에 있을 다음 용봉지회까지, 폭룡이라는 별호를 잘 지키겠소이다!

용과 봉황이 된 자.

숱한 미꾸라지와 뱁새들의 도전을 받을 지어니.

그러나 당장은 새로이 날개를 펼치고 봉황에 이른 자들을 축하하는 때.

허창에서 한 달여간 벌어진 축제에 많은 이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독고연과 유설라, 두 명의 여인이 주인공이 된 축제에 많은 이들이 축복을 내렸다.

"쾌유해서 정말 다행이군!"

"몸이 나아서 정말 다행이오!"

"유 소저도 빙백봉이 된 걸 축하하오!"

모두가 두 여인의 새로운 앞길을 축하했다. 한 명은 맹주의 딸로서, 다른 한 명은 아미파의 신진 여고수로서.

"강호의 장래가 참으로 밝구나!"

강호는, 또다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 * *

"그러나, 용봉 지회가 다시 열리는 일은 없었다. 용봉지회에 모든 전력을 쏟아낸 맹은 거짓말같이...."

"무슨 불길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과일을 깎던 사공희는 나를 구박했다. 모처럼 자신의 가슴 위에 얼굴을 묻고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건만, 어머니처럼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것 같아 괜히 심통이 났다.

"다음 용봉지회는 열릴 것 같나?"

"당연히 열리죠. 만약 열리지 않으면 무림에 큰 변고가 일어난다는 건데."

무림 최고의 재녀 둘과 함께 생활한 덕분일까? 사공희의 머리는 제법 트여 내 말의 속뜻을 금방 파악했다.

"정마대전이라도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거야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내 말은 과연 용봉지회가 이전과 똑같은 용봉지회냐는 거지."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구룡쟁패는 차치하고, 육봉을 겨루는 대결은 앞으로 판도가 달라질 거라는 거다."

사공희, 이시아, 독고연, 유설라.

당장 8봉 중 네 명이 절정 후반에서 초절정에 이르는 고수들이다. 아래에 있는 네 명의 다른 봉과 비교하면 이미 노는 물이 다르다.

"용봉지회가 끝나고 난 뒤, 대략 두세 달 정도는 비무를 청하지 않는 게 강호의 도리였지.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비무를 청하기 시작한다."

"구룡육봉에서 끌어내리는 거요?"

"그래."

비슷한 나이, 또는 자신보다 어린 무인과의 비무에서 패배하는 즉시 별호를 반납하기 마련이다. 굳이 그럴 이유는 없지만, 더럽혀진 명예와 상처 난 자존심에 대부분 구룡육봉의 별호를 떼어내기 마련.

"용봉지회에서 이기지는 못했어도, 최소한 '내가 누구누구는 이겼다!'하고 자위하는 거지."

"그거, 조금 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무림은 결국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승리하는 거다."

- 소협은 강하군! 비록 내 아들은 이기지 못했으나, 그대와 같은 청년을 그냥 두는 건 너무나도 아까워! 자, 자. 식사라도 하고 가세. 딸!!

그것이 곧 세가의 힘을 늘리는 방법이다.

- 소협은 강하오! 하지만 무공에 틈이 있소. 아아...우리 문파의 독문무공을 익힌다면 저 약점도 극복할 수 있을 텐데...크흠.

그것이 곧 문파의 힘을 늘리는 방법이다.

구룡육봉은 재능있어 보이는 이를 판별하는 척도가 되고, 또한 도전자들로부터 무패행진을 이어나가며 구룡육봉 또한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과연 사람들은 누구에게 도전하게 될까.

"원래 사람들은 해봄 직하다고 생각되는 상대부터 조지기 마련이지."

"모용란, 제갈선, 방철수, 중최미봉."

행방이 묘연한 중최미봉과 달리, 다른 셋은 거취가 확실하다. 특히 모용란과 제갈선의 경우, 문파도 아닌 세가의 여인인 이상 더 위치가 특정되기 쉽다.

"물론 너 또한 마찬가지다. 앞으로 모두가 너를 노릴 테니."

"걱정마세요, 상공. 저한테는 상공께서 주신 힘이 있으니까요."

사공희는 뒤에서 내 머리를 품었다. 나는 일부러 얼굴을 돌려, 사공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신 용봉지회(新 龍鳳之會). 이전과는 다른 절정 고수들의 비무 대결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대비해야 해."

"네, 당연하죠. 그러니까 지금 남들 모르게 흩어져서 다시 만나는 거 아니겠어요?"

사공희는 웃으며 나를 토닥였다.

"금방 돌아오시리라 믿습니다. 대신 너무 늦게 오지는 마셔요. 반년을 기다렸지만, 반년을 또 기다리라는 건 너무 가혹하신 거예요."

"걱정 마라. 내 최고의 경신법을 사용해서라도 한걸음에 그곳으로 달려가마."

약속은 어기지 않는다. 나는 사공희의 품에서 긴 시간을 가졌다.

"...그럼 저 먼저 출발할게요."

"그래. 호북에서 다시 만나자."

저벅, 저벅.

행장을 꾸린 사공희는 무당파의 도사들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나는 독고세가의 장원 안에서 그녀를 배웅했다.

"오셨어요, 현타 사숙?"

"그래. 이제 무당산으로 가자."

사공희.

그녀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무당파 장로들의 호위를 받으며 무림맹을 떠났다.

이제 다른 둘을 빼낼 차례.

몇 시진을 기다리고 나니 드디어 다음 탈출자가 무릉도원 안으로 돌아왔다.

"어서 오시오."

"후아, 누구 때문에 진짜 개고생했네."

얼굴에 진땀이 가득한 이시아는 손으로 부채를 부치며 장원으로 돌아왔다.

"무림맹 늙은이들, 밤늦게까지 달달 볶았어. 피부 상하려면 어쩌려고 그런 거야?"

"고생하셨소. 그리고 미안하오."

"그러길래 왜 빙마의 이름 앞에 비천을 붙여서. 칫, 계획대로 안 되기만 해봐."

이시아는 무림맹의 늙은이들에게 취조당했다.

- 비천빙마라고 하는 자와 무슨 관계인가?

무림맹의 늙은이들은 소공녀가 비천빙마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 비천삼마와 비천빙마.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

- 화전양면술인가? 왜? 경쟁자 제거는 의미가 없는데.

- 혹시 독고 소저를 납치하기 위해...?

묵비권을 행사하던 소공녀도 결국 밤늦게 이어진 취조에 대폭발했고, 내가 가르쳐준 최강의 설득을 꺼내 들었다.

- 의사백? 나는 그런 녀석 몰라!! 비천빙마는 빙마가 아니야! 지금 빙마는 비천여라고!

모르쇠. 그리고 폭발한 척 정보 흘리기.

- 과연! 빙마는 여자였던가! 미안하오, 소공녀.

- 혈기왕성하시군그래. 역시 젊어서 그런가? 껄껄껄!

이시아는 빙마가 여자임을 밝혔다. 원하던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어낸 무림맹의 늙은이들은 그제야 이시아를 풀어줬다.

"씨이, 그놈들. 나를 완전 어린애 취급했어!"

"우리 시아 어린이, 잘했다. 오구구."

"야!"

이시아는 성을 냈지만, 내가 엉덩이를 토닥이는 걸 막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움켜쥐기 편하게 나를 의자에 앉혀놓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옆에 섰다.

"무림맹 놈들 지금 엄청 혼란스러울 거다. 빙마가 여자라고? 그건 몇몇은 알고 있었을 테지. 하지만 그럼 비천빙마라고 하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걸 물어보려면 북해빙궁에 사람을 보내야 하지만...."

"언제 그걸 다녀와. 차라리 실종된 비천빙마를 잡아다가 고문하는 편이 더 빠르지."

"흐흐, 정답이오."

비천빙마는 존재하지 않는 자다. 왜냐면 빙마는 비천여니까.

"에휴. 그나저나 연이는?"

"지금 맹주에게 불려갔소. 나도 그랬고, 사공희도 그랬지. 뭔가 그대에게 이상한 게 없나 물어보는 것이 분명하오."

이시아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독고연을 취하기 위해무림맹에 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녀는 여러모로 타격이 심했다.

"으으, 여자랑 하는 여자로 오해받아버렸잖아...."

"덕분에 나야 좋았지."

그날. 선녀를 지상에 떨어뜨린 날.

사공희와 이시아는 서로 색공을 연마하느라 각자 알고 있던 색공의 자세를 상대방을 이용하여 연습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마침 독고자영이 야밤에 장원 정문을 열었다가 금방 닫았다고 하더라.

"둘이 색공을 연마하는 걸 착각한 게지. 내조가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군."

내가 색마라는 걸 밝혀도 독고연은 독고자영에게 비밀로 했을 테지만, 독고자영은 딸과 관계를 맺은 내게 올가미를 씌우려 했을 것이다. 가령 무림맹에 무붕 의원을 크게 만들어 나를 주저앉히려고 든다거나.

졸지에 흑백이화의 관계가 금단의 사랑으로 이어졌지만, 아무렴 어떠랴. 좋은 게 좋은 거지.

"흐흐. 그러면 하루만 기다려주시오. 내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다."

"먼저 가 있어. 아 참. 그...너 변장할 거지?"

"물론이오."

"그, 그러면 말이야. 내가 말하는 대로 역체변용술 해줄 수 있어?"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이시아의 요청에 나는 입꼬리가 절로 씩 올라갔다.

"그런 취향이었소?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군."

"시끄러워! 얼른 가기나 해!"

이시아는 나를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장원 밖으로 밀쳐내려고 했다. 이미 행장을 꾸린 뒤라, 나는 짐보따리 하나만 챙긴 채 장원을 빠져나왔다.

무릉도원은 그녀에게 잠깐의 감옥이 되겠지만, 소천마는 당당히 허창성을 제 발로 나올 것이다. 나는 미리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저벅, 저벅.

거의 두 달 넘게 지내온 무릉도원도 이제 안녕이다. 선녀의 품속에서 신선놀음하던 때도 안녕이고, 이제 다시 비천색마 무붕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맹주님."

나는 멀리까지 배웅을 나온 맹주를 맞이했다. 그는 정말로 섭섭한 얼굴로-하지만 어딘가에는 잘됐다는 느낌으로-내 손을 붙잡았다.

"이 은혜를 살려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신의."

"저는 아직 신의라고 칭할 수 없습니다."

"제 딸아이를 살려주신 의원이 어찌 신의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다른 누가 뭐라고 해도 당신은 제게 신의입니다."

너무나도 극진한 대접에 나는 황송할 지경이었다. 독고자영은 알고나 있을까? 자신의 뒤에 머뭇거리며 서 있는 독고연의 처녀를 두 개나 취한 남자가 바로 나라는 것을.

"제 딸을 치료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의원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지요. 덕분에 편안한 자리에서 편안히 의술을 펼치는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맹주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독고 소저."

나는 그녀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앞으로도 건강히 지내십시오."

"......."

독고연은 아무 말이 없었다. 붉어진 눈시울로 무언가를 참는 듯한 애틋함에, 독고자영은 독고연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를 토닥였다.

"연아."

"...여기 남아계시면 안 돼요?"

기어가는, 울음기 섞인,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독고연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움켜쥔 치맛자락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고, 그녀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미안합니다. 나는 환자를 찾아다니는 자. 어딘가 또 아픈 이들을 위해 의술을 펼쳐야 합니다. 다만."

나는 그녀를 향해 작은 단환을 선물했다. 약재향이 가득 풍기는 단환에 독고연은 눈물을 주룩 흘렸다.

"언젠가 그대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찾아오리다."

"약속이에요, 의원님."

독고연은 떨리는 손으로 내가 건넨 단환을 받았다. 우리를 바라보는 독고자영의 표정은 진심으로 복잡해 보였다.

"신의."

"신의가 아닙니다."

"...의원. 그대는 독고 세가의 은인이자, 맹의 은인입니다."

독고자영은 진심으로 내게 감사했다.

"훗날 그대에게 큰 위험이 닥쳤을 때,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이 독고자영, 딸의 구명지은을 잊을 배은망덕한 자가 아닙니다."

"마음만 달게 받겠습니다."

독고자영은 결코 모를 것이다.

딸의 처음을 가져간 자가 나라는 것을.

자신의 별장에서 딸과 사흘에 한 번은 무조건 했다는 것을.

언제 하루는 조식중식석식을 세 번 돌아가며 했다는 것을.

'딸을 너무 믿으시는구려.'

그리고 내일 밤.

'색마하면 납치지.'

딸을 납치할 자가 나라는 것을.

[작품후기]

색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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