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23화 (12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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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공적

무림맹 병동.

일신상의 사유로 무붕 의원의 치료는 받지 못했지만, 유설라는 크게 다친 곳 없이 무사히 의식을 되찾았다.

독고자영은 맹주로서 상황을 수습한 뒤, 무사들이 구조한 유설라를 보러왔다. 옷은 찢어졌고 결박되어 모두 험한 꼴을 당했구나 싶었지만, 의외로 그런 건 아니었다.

"점혈만 당했습니다. 뭔가 애먼 짓을 당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럴 리가 없소. 잘 살펴보시오. 그놈은 분명히 유설라 양의 내공을 사용했고, 유설라 양도 내공이 전부 사라지지 않았소? "

채음보양.

방법은 9할이 성행위다.

"어, 음. 제 식견으로는...."

의원들은 전부 공통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따로 범해진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내공이 갈취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게...가능하다는 거요?"

"그렇게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봐도 그런걸요."

"하지만 의원이 진단하지 않으셨소! 그...그것이 없었다고!"

의원은 맹주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맹주. 유설라 양은 20대 중반의 여인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끙...."

"아니면 뭔가 모종의 사술이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빙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손만 닿아도 여자의 음기를 갈취한다는 속설도 있지 않습니까."

"끄으으응...."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독고자영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안 그러면 유설라가 진짜로 빙마에게 범해져서 채음보양을 당한 거니까.

의사백이 유설라를 기절시킨 뒤, 뭔가 다른 방법으로 내공을 뽑아낸 게 틀림없다. '채혈을 통한 내공 갈취 사건'도 하나의 예시가 아니겠는가?

"그래요. 그런 건 딱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멸색사태."

유설라의 바로 옆 침대에 누워있던 멸색사태가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그자의 빙백신장에 당한 순간, 내공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흡성대법이 아닐지."

"흡성대법!"

맹주는 치를 떨며 놀랐다.

"어찌 강호에 그 저주받을 무공이 다시 나타난단 말인가!"

"확실한 건 아닙니다. 내공이 빨려 들어가면서 기력이 일부 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겠지만, 저도 요양이 필요하지요."

"그러면...."

모두의 시선이 가만히 눈을 감은 유설라를 향했다.

빙색마인에게 당한 영향인지, 그녀는 치료하는 과정에서 체모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빙백신공에 당한 흔적이었다.

"빙백신공에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내공까지...크윽."

"아...."

기절한 것 같았던 유설라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유 소저!"

"저는...."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유설라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동경 속 자신의 얼굴을 본 그녀는 바로 사색이 되었다.

"이, 이게 대체...?"

"빙마의 빙백신공에 당하셨소. 그대를 납치한 자는 북해빙궁의 무공을 익힌 고수였지."

"......."

유설라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하오. 독고세가의 가주로서 사과드리오. 그자는 나를 꾀어내기 위해 이봉결정전에 잠입하였고, 그대를 납치하는 거로 나를 끌어낸 것이오."

"아...."

"머리는.... 아마 빙백신장으로 이렇게 된 게 틀림없소."

"......."

그거야 당연하다. 유설라가 사용하는 무공이 빙백신공이니까.

유설라의 머리는 빙백신장에 당한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잠든 사이에 운용한 빙백신공으로 원래 머리색으로 돌아온 것뿐이다. 그래서 유설라는 얼굴을 보자마자 놀란 것이다.

점혈 된 상태로 오랫동안 가만히 누워있다가, 깜빡 잠들어버린 건 계획에 없었으니까. 빙마로서 엄연한 실수였다.

"의원, 유설라 양의 내공은 어떻소?"

"현재 천천히 회복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흘 뒤면 본래 힘의 7할가량은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 ...유 소저. 이봉결정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어찌하시겠소?"

"어, 음, 그러니까...."

"설라."

옆에 있던 멸색사태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유설라의 손을 잡았다.

"이건 좋은 기회에요. 멸보사태가 설라의 상황에 놓였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모른다. 유설라는 그저 한상옥녀검을 익혔을 뿐이니까. 그녀에게는 의심받지 않을 최소한의 정보밖에 없었다.

'몇 가지 임기응변을 위한 대처법을 알려주마.'

대신 색마가 알려준 '대 정파 전용 화술'이 있다.

"하지만...적어도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크게 혼을 내실 것 같습니다. 아직, 제게 기회가 있다면."

유설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는...스승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겁니다. 분명 멸보사태도 장하게 여길 거예요. 그도 그럴 게...."

멸색사태는 붉어진 눈시울을 소매로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맹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빙마에게 당한 것은 당분간 비밀이오. 가발은 맹에서 준비하도록 하겠소."

"......."

유설라.

그녀는 가만히 누워서 무림맹, 아미파 침투에 성공했다.

* * *

화원.

나는 독고연과 함께 화단에 누워 밤하늘을 맞이했다.

"의원님, 저 아파요."

"또 어디가?"

"앞뒤 둘 다요."

"...그건 미안하군."

간밤.

나는 독고연의 안을 천천히 음미하며 앞뒤로 오다녔다. 도중에 너무 느낀 나머지 실신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독고연은 강한 정신력으로 의식이 날아가는 걸 막았다.

"왜 이런 걸까요? 치료가 잘못된 걸까요? 분명 치료를 받았는데 왜 배 속이 아픈 걸까요?"

"아프면 또 주사를 놓아야겠군."

"그렇죠?"

독고연은 몸을 돌려 내 위에 몸을 포개었다. 우리의 옷에는 마른 흙이 한가득 묻어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질척거리는 흙이 묻었다.

하지만 둘 다 그걸 가지고 더럽다고 하지 않았다. 서로 열렬히 뒹군 사랑의 흔적이기에, 나는 이대로 가만히 있었다.

"연.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소."

"뭔데요?"

"나는 색마요. 동시에 의원이지."

"......."

독고연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독고연의 손을 붙잡고, 그녀가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곳에 계속 있을 수 없소. 소공녀를 지키고 그녀를 천마로 만들어야 하지."

"왜요?"

"무림의 평화를 위해."

대공자가 천마에 오르는 것을 막아야만 혈겁을 막을 수 있다.

가슴은 빈약하지만 마음에 인간의 도리와 천하를 품은 이시아가 천마에 올라야, 무림은 그나마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속여서 미안하오."

"아녜요, 의원님. 의원님께서 저를 속인 건 하나도 없어요."

"...응?"

정체를 밝힌 것에 놀라며 떠나버릴 것 같았던 독고연은 내 위에 오히려 몸을 포개었다. 오히려, 그녀가 나를 떠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 같았다.

"색마든, 연쇄살인마든, 아니면 원래는 상냥했던 무인이든. 저는 아무래도 괜찮답니다. 당신께서 저를 살려주신걸요. 죽어가던 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신걸요."

"......."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성교를 해야 한다? 그래서 성교해서 치료해주셨잖아요. 만약 성교만 하고 죽을병이 남아있었다면 모를까......"

쪽.

독고연은 입술을 살포시 붙였다 떼었다.

"치료. 해주셨잖아요? 저를 속였다는 게 뭐죠?"

"연, 그러니까."

쪽.

독고연은 다시 입으로 내 입을 막았다. 혀는 섞지 않았지만, 내가 품고자 한 여인 중 가장 가벼웠지만, 독고연의 입맞춤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러니 괜찮아요. 지금부터 서로 숨겨온 걸 알아가면 되니까. 지금은 제가 묻는 말에만 답해주세요."

"......그러니까."

쪼오옥. 이번에는 더 길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몸을 취하기 위해서 접근하신 거죠?"

"그렇소."

"그러면 제 몸을 취했으니, 이제 떠나실 건가요?"

"그렇소."

"저를 가만히 이렇게 두고?"

"......."

나는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내가 알던 파천신검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항상 나를 죽이기 위해 증오와 경멸, 그리고 살의를 품었던 연자색 눈동자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눈빛을 알고 있다. 사공희가 그랬고, 이시아가 그랬다.

"연, 나는 말이오. 너무 욕심이 많아서 한 명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오."

"알아요. 방금...뼈저리게 느꼈으니까."

독고연은 고개를 떨구며 얼굴을 붉혔다. 간밤. 달이 차올랐다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시간까지, 나는 그녀를 배려하느라 조금도 험하게 허리를 흔들지 못했다.

"제가 아직은 많이 부족해요. 의원님을 전부 받아들이기에는."

사공희나 이시아와 하듯이, 뿌리까지 넣기는커녕 절반도 채 들어가지 못했다.

오랫동안 나를 맞이하여 내 남근에 딱 맞게 몸이 변한 사공희나, 강한 기개로 고통을 감내하고 나를 자신의 품에 욱여넣는 이시아와는 전혀 다른 몸이었다.

아직, 독고연의 몸은 약했다.

나도 아직 한참 성장하고 있을 때건만, 독고연은 이제 갓 성인을 넘긴 나이.

육체적으로 겉보기에도 다른 여인들에 비해 한참 작은 그녀는 더 자라야만이 나를 충분히 맞이할 수 있다.

아무리 넣고 싸는 건 가능하다고 한들, 그걸로는 부족한 셈이었다.

"내가 이곳에 오랫동안 기거할 수는 없소. 나는 한곳에 머무를 수 없는 몸. 하지만 그대는 이곳에 묶여있는 몸이지."

"그러면...답은 간단하네요."

독고연은 얼굴을 들이밀며 나와 눈을 맞췄다.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한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의원님. 의원님은 색마라고 하셨죠? 색마인 동시에 의원."

"그렇소."

"그러면 말이에요."

속닥속닥.

독고연의 제안에 나는 그만 전신의 털이 쭈뼛 서고 말았다.

"...정녕 각오는 된 것이오?"

"의원님께서 저를 이렇게 만드셨으니 책임지셔야지요. 설마 저를 이대로 여기 두고 가실 건가요?"

"당연히 아니지."

나는 독고연과 몸을 뒤집었다. 독고연이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드러낸 이상, 나는 독고연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답을 내놓아야 했다.

"색마란 자고로 여인을 납치해야 하는 법. 하지만 괜찮겠소? 이곳을 떠나면 당분간은 험한 생활을 할 수 있소."

"지인이 말해줬답니다. 저는...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의원님을 떠나보내고 난 뒤에, 혼자서 또 이 섬에서 몇 날밤을 지새우는 건 도저히 자신이 없어요. 그러니까...."

독고연은 다시 내 목에 팔을 걸었다.

"오늘 만큼은 저랑 같이 여기서 하룻밤, 함께 달 구경해요."

나는 독고연의 청대로, 그녀와 손을 맞잡고 화단에 누워 하늘에 걸린 달을 올려다봤다.

...참으로 피곤한 하루였다.

* * *

저벅, 저벅.

독고자영은 홀로 다리를 걸었다.

"의사백...의사백...의사백."

실종된 색마의 이름을 몇 번이고 언급하며, 독고자영은 기억을 더듬었다.

호북에서 여인을 간살한 자? 아니다. 그는 자신이 사흘 밤낮을 쫓아가서 죽였다.

허남에서 유부녀를 납치한 자? 아니다. 그는 부인의 남편과 동귀어진했다. 독고자영이 직접 옆에서 그걸 지켜봤다.

그도 아니면 안휘에서 아내를 두고 아내의 여동생을 취한 자? 아니다. 그는 아직 살아있다. 그의 아내가 둘을 모두 용서했기에, 독고자영은 모든 진실을 품에 묻었다.

"의사백,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렇게 슬픔이 짙은 검을 복수를 위해 휘두를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 너무 깊었던 걸까. 독고자영은 어느새 세가의 장원, 무릉도원에 도착했다. 밤은 깊었고, 네 명의 남녀는 조용히 자는 것 같았다.

"연이는 괜찮을까."

끼이익.

독고자영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혹시나 누구 한 명 깰까 봐 괜히 도둑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아앙.

안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신음에 독고자영은 사색이 되었다. 혹시나 한 마음에 칼을 뽑아 들려고 했지만, 이어진 여인의 신음에 독고자영은 소름이 돋았다.

아아, 좀 더.... 좀 더 세게 해주세요....

'태극화!'

사공희가 교성을 흘리고 있다. 도대체 누가? 설마 무붕 의원이?

'가능성 있다.'

무붕 의원과 사공희의 접점은 분명 호북에서부터 이어졌다.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남의 집에서 그렇고 그런 걸 하는 건 괘씸하기는 하지만, 젊은 남녀의 혈기라면-

좀 조용히 해. 들키잖아.

"!!"

독고자영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에 황급히 기를 지웠다.

쓸데없이 가슴만 커서는. 그러니까 너랑 같이할 때마다 내가 힘들잖아.

아이,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그보다 좀 더, 더 세게....

조용히 해. 둘 다 자고 있잖아.

삐거덕, 삐거덕.

독고자영은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끼익.

침대의 소리에 맞게 문을 닫은 그는 무릉도원에서 물러났다. 갑자기 자신의 집이 자신의 집이 아닌 것만 같았다.

"......."

무붕 의원보다 사실은 두 여인이 더 위험한 게 아닐까?

"허허, 허."

흑백이화가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이유를 알아내고 말았다.

"이것이 새로운 무림의 시작인가. 아니면 선배로서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인가...."

다리 옆으로 작게 뻗은 화단에는 백합 세 송이가 피어올라 있었고, 두 송이가 서로 배배 꼬여있었다. 다른 한 송이 위에는 작은 풀벌레가 잠들어있었다.

"...괜찮겠지?"

설마 그런 짓을 하겠어. 설령 그런 일을 당한다고 한들 독고연은 둘을 무난히 제압하고 몸을 건사할 수 있으리라.

독고자영은 침을 꼴깍 삼키며 몸을 돌렸다.

"천마여. 우리의 악연은 후대까지 이어질 것 같지만...."

콰득. 독고자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무래도 자식농사는 내 승리인 것 같구려."

독고자영은 승리를 확신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천마천근추를 배울 수 있었어요."

"하 씨.... 나도 저기서 같이 자고 싶은데 왜 너랑 계속...."

"에이, 그러지 말고요. 이번에는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우선 태극을 그리듯 제 위에 거꾸로 엎드린 다음에...."

[작품후기]

별이eh // 처음부터 화경은 아니었고 아주 낮은 단계에서 차츰 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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