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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날다
내일은 비무가 없다.
하루 비무를 치르면 최소한 이틀 정도는 휴식을 취하게 되어있으며, 독고연은 독고자영의 주책 덕분에 다음 경기까지 남은 시간이 제법 많았다.
그 때문에 평소라면 달이 차오르기 전에 잠들었어야 할 그녀는 지금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 아직 세 남녀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독고연은 행여나 독고자영이 돌아왔을 때, 그들이 사라진 것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만 했다.
애초에 독고자영이 오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걸 위해 독고연은 혹시나 안에 불이 켜져 있으면 괜히 의심이 들까 봐, 그리고 밖에 나와 있으면 의심이 들까 봐 자신의 방 안에서 불을 모두 꺼둔 채 달빛에 의지하며 밤을 지새웠다.
"언제 오시지...."
벌써 세 시진이나 지났는데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밖에서 무슨 사고라도 당한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밖에서 셋이 너무 열심히 의료행위를 하다가 기절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의원님, 빨리 돌아와 주셨으면 좋겠는데."
독고연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도 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찾고 있었건만,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본심에 독고연은 그만 자각하고 만 것이다.
"...콜록."
독고연은 짧은 기침에 사색이 되었다. 밤공기가 쌀쌀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요 며칠간 잊고 있던 감각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전신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 몸 안의 독이 강제로 피와 함께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
10살 때부터 주기적으로 앓아온 질병이 다시금 재발하려고 하는 것에 독고연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참을 방문 앞에 서 있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집주인은 본인이 건만 독고연은 손님에게 내어준 방을 들어가면서도 사과했다. 방안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고, 독고연은 금방이라도 각혈할 것만 같은 기운을 잠재울 약재를 찾고자 했다.
"...어?"
방 안에는 향긋한 향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분명 창도 단단하게 닫혀있고 밀폐된 공간인데, 밖에서 있는 것보다 더 숨쉬기가 편했다.
"후우, 후우, 하아."
무엇보다도 기침이 나오지 않았다. 피가 한 움큼 왈칵 밖으로 터져 나오려던 느낌이 금방 아래로 꺼지며 가라앉았다. 독고연은 기이한 감각에 눈을 껌뻑거리다가, 향긋한 향이 나오는 곳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털레털레 걸었다.
"......."
향이 흐르는 곳은 다름 아닌 무붕 의원의 침대였다. 독고연이 비무 대회도 그렇고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차마 세탁하지 못했던, 세 남녀가 알몸으로 뒹굴며 운기조식했던 흔적이 침대에 짙게 남아있었다.
그날. 세 남녀의 정사를 처음 목격하고 얼굴부터 전신에 의원의 영약이 뿌려진 날.
독고연은 속눈썹에 떨어져 시야를 가리는 것만 닦아낸 뒤, 그걸 닦아낼 생각조차 못 했다. 마치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양 아무 감각 없이 침대에 누워 잠들고 말았다.
"...설마."
독고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지금까지 읽은 책중에 그 어떤 서적도 이런 걸 얘기해준 적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 성적 지식의 폭격에 독고연은 자신의 증상을 자각하고 말았다.
"스읍."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각혈하기 직전에 전신의 혈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은 잦아들기 시작하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은 아주 천천히 전신을 채우기 시작했다.
"......."
독고연은 침대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두 여인이 동시에 치부를 드러내며 의원의 진찰을 허락했던 자리의 바로 옆, 머리를 살짝 옆으로 놓으면 의원의 등에 고개를 기댈 수 있는 자리였다.
"......하아."
독고연은 머리가 멍해졌다.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늦게까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뜬눈으로 버텼던 반동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풀썩.
독고연은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침대와 이불 아래에서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꼭 끌어안았다.
"......."
방 안에는 아기가 잠을 자는 것만 같은 규칙적인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은 마치 선녀가 잃어버린 날개옷을 찾아 안고 잠에 빠진 것만 같았다.
* * *
운기조식이 끝났다.
빙마로부터 얻은 내공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공희는 빙마에게 미안하지만 말을 하지 못했고, 이시아는 그걸 당연하다는 듯 사공희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미안한데.... 사과 정도는 해야."
"그거 능욕이야. 사과하면 그게 더 상대를 화나게 하는 거라고. 이럴 때는 그냥 입 싹 닫고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야."
사공희는 이시아보다 나이가 많지만, 윗사람으로서 살아온 시간은 이시아보다 훨씬 적었다. 그래서 내 아내 될 여자로서 응당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아직 받아들이기에 조금 주저함이 있었다.
"저 인간이 취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든, 우린 그냥 저 인간한테서 좋다고 받으면 되는 거야. 알겠어? 일벌이 다른 꽃에서 꿀을 빨아오면 우린 그냥 그걸 좋다고 빨면 되는 거야."
"그, 그렇군요. 하,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밖에서 돈 벌어오면 그거 쓰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나, 남편이요?! 아, 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공희의 망설임을 이시아는 애써 패도로 눌러버렸다. 이시아 본인도 나름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공희가 큰 실수를 할 뻔했다.
"......?"
정작 내게 범해지고 내공도 빼앗긴 장본인은 자신이 의도치 않게 모욕을 당할 뻔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천마신공을 거두어 다시 빙구가 된 빙마는 눈만 깜빡이며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빙마. 지금 내공이 얼마나 남았지?"
"1갑자...?"
나는 그렇게 많은 양을 빼먹지 않았다. 사공희로부터 얻는 음기도 1갑자 이상일 때만 일부 챙겨왔듯, 빙마에게도 마중물로서 최소한의 양은 남겨둬야 했다.
깨달음의 수위가 화경에 이르렀다면 최소 2갑자는 남겨둬야 되겠지만, 절정과 초절정 단계에는 1갑자까지만 긁어도 무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즉, 현재의 빙마는 과할 정도로 약해지지 않았다. 그녀는 염마처럼 내공으로 찍어누르는 계열이 아니라 다양한 무공을 익힌 무도가에 가깝기 때문이다.
빙백신장, 빙백신검, 빙백신보 등 사공희와 이시아에 지지 않을 무술을 익힌 여인이었다.
"그럼 이봉결정전에서 독고연만 만나지 않으면 이봉에 오를 수 있겠군. 상대도 다 고만고만하니, 절정의 무위로도 충분히 오를 수 있겠어."
"뭐? 잠깐만, 이봉에 오르는 게 그 새끼 계획이잖아."
사공희를 상대로 세뇌 교육을 하던 이시아는 눈에 불을 켜고 고개를 돌렸다.
"그걸 역이용하자는 거야?"
"그렇소. 빙마도 우리 편이 되었지. 대공자는 작전이 어그러지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맹에 수작을 부릴 것이오."
"네? 상공,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마교의 대공자가 다른 곳도 아닌 무림맹 한복판에서?"
"그 새끼라면 분명 가능할 거야. 무슨 무슨 수로 분명 수작질을 할 게 분명해."
이시아는 대공자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빙마 또한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러니까 빙마, 이렇게 하지. 지금부터 잘 들으시오."
대공자가 빙마에게 알려준 계획에 즉석에서 편승하여, 우리에게 좋게 역공작을 펼친다.
"빙마, 대공자가 그대에게 알려준 신분이 뭐라고?"
"아, 아미파의 멸보사태로부터 진전을 이어받았다고...."
"아."
이시아가 입을 쩍 벌리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빙마, 그대의 비무는 언제지?"
"오후 늦은 시각입니다. 대진표가 뒤로 밀려서...."
"그럼 충분해."
사람 하나 신분을 제대로 위장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이시아, 그대가 빙마에게 금제를 걸어두시오. 그리고 장원으로 돌아갑시다."
밤이 늦었다. 슬슬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이시아가 환술로 건 금제 덕분에 그녀는 이제 우리를 배신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마음 놓고 돌아가도 된다.
"저, 저기...."
빙마는 우리의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특히 나를 흘겼다가, 이시아를 향해 배시시 웃으며 은발 머리를 긁적거렸다.
"호, 혹시 다음 채음은 언제쯤...? 아, 아녜요! 채음을 원한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저도 나름의 뭐라고 해야하나 준비가 필요하다고 해야하나, 갑자기 끌고와서 그러시면 곤란하다고 해야하나...."
횡설수설하던 빙마는 꼼지락거리는 손을 입 위에 놓으며, 수줍게 물었다.
"......다, 다음은 조금만 상냥하게...."
"젠장!"
쾅!
이시아는 애꿎은 나무상자를 걷어찼다.
* * *
째액-째액-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독고연은 몽롱한 정신으로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
낯선 천장, 아니 익숙하지는 않은 천장이다. 독고 세가에 있는 손님용 방 중에서도 귀빈을 맞이하기 위한 방의 천장이었다.
독고연은 그 침대 위에서 아주 반듯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고, 목까지 이불을 당겨 누웠다.
"......!"
화들짝. 독고연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은 분명 이곳에서 의식을 잃었다는 것과 너무나도 깊게 잠들었다는 것.
'설마 나 지금 의원님 체취에...?'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변태성을 자각했다는 것.
꾸우욱. 독고연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자신이 이렇게 반듯한 자세로 누웠을까? 본인의 방도 아닌 다른 사람이 며칠이나 썼던 방을?
아니다. 누군가 독고연이 이곳에서 자는 것을 보고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독고연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직감할 수 있었다.
"정신이 드나요?"
"사공희 언니...?"
"어서 일어나셔요. 의원님께서 아침을 거르면 몸에 좋지 않다고 했답니다."
"아, 네, 네...."
독고연은 몸을 일으키려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호, 혹시 어제 무슨 일 있었나요?!"
"어제요? ...참, 여러 일이 있었기는 한데...."
사공희는 뒷말을 흘리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독고연은 그게 셋이서 외진을 나간 것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현인지, 아니면 행여나 독고자영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한 게 아닐까 진심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떤 일이 궁금하신 거예요?"
"으, 으...."
"장난치지 마시오."
콩. 사공희의 뒤통수를 가볍게 쥐어박은 목소리의 장본인에 독고연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드시오?"
"의, 의원님. 이건 그러니까 그게...."
"간밤에 약을 찾으러 왔다가 기절한 것 같았소. 일부러 깨우기는 뭐하니 이부자리만 가지런히 정돈했소."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객식구인 내가 그대에게 괜한 부담을 지웠던 거지. 미안하오. 앞으로는 밤에 몰래 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오."
무붕 의원의 말에 독고연은 그의 말을 곰곰이 되새겼다.
"의원님, 제가 상을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부탁하오."
사공희는 쿡쿡 웃으며 방을 떠났고, 독고연은 무붕 의원과 둘만 남은 것에 아차 싶었다. 둘만 있자니 여러모로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재빨리 화제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의원님. 혹시 누구한테 들켰다거나 그러진 않으셨죠?"
"그런 일은 없소. 들키지 않게 잘하고 왔으니. 지금까지 무붕 의원과 소천마, 그리고 태극화 사이의 추문에 대해 들어본 적 있소?"
"...없죠."
애초에 독고연에게 세상의 풍문도 잘 들려오지 않기는 하지만, 만약 실제로 누군가가 알게 되었다면 워낙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독고연도 분명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셋 사이에는 아무런 추문이 없었다.
"후후. 걱정마시오. 앞으로는 집 안에서만 할 테니. 연 소저에게도 진찰하는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아쉽구려. 내 오늘은 꼭 보여주리다."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독고연은 자신만만한 무붕의 모습에 묘한 신뢰감이 들었다.
"그보다 연 소저, 아침부터 빈혈인 듯하군. 침을 놓아야 할 것 같은데."
"치, 침이요?!"
두근, 두근. 독고연은 입안에 고인 침을 자신도 모르게 꿀꺽 삼켰다. 부엌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내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소. 한빙침이오. 북해에서 나오는 만년설을 깎아 만든 침인데, 이게-"
"아...."
독고연은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자 무붕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하다가, 오묘하게 웃으며 독고연과 거리를 좁혔다.
"......!!"
얼굴이 가까워졌다.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미청년의 얼굴에 독고연은 소매 안으로 집어넣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연 소저. 앞으로의 비무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오. 연 소저가 워낙 강하기에 상대에 손속의 사정을 두느라 힘을 많이 소모할 것이오. 그러면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더 피로해질 것이며, 당과로도 부족할 테지."
"그,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스륵.
독고연은 자신의 손이 딱딱한 무언가에 닿는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감촉에 독고연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히익?!"
"계속 잡고 있도록 하시오. 그래야 쾌유할 수 있소."
독고연의 손은 딱딱하고 커다랗고 거대한, 살아생전 처음 보는 남근을 붙잡고 있었다.
얼음으로 된 남근을. 그녀가 인생 최초로 본 남근이자 눈앞의 남자에게 달린 것과 똑같은 모양의 남근을.
"한빙침이오. 이걸 잡고 있으면 그 어떤 화도 삭힌다고 하여, 천수관음봉이라고도 하지."
"이거 모양이 설마...?"
"...? 왜 그러시오? 태극화. 잠깐 이리 와보시오. 이 모양에 문제가 있소?"
"늠름하고 멋져요."
"......."
천수관음봉에서 건네져오는 서늘한 기운에 몸이 안정되고 나른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그녀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아, 미안하오. 아래에 꼬치를 끼우는 걸 잊었군."
"......."
굵고 커다란 나무 막대가 천수관음봉의 안에 쏙 들어갔다. 질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실 먹는 거요. 자, 빠시오."
"......이거 먹는 거 맞습니까?"
독고연은 아무리 봐도 그것처럼 생긴 모양에 떨떠름했다. 하지만 다른 둘은 대수롭지 않다는 양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극화 소저, 약의 복용법을 보여주시겠소?"
"네. 실례할게요."
사락. 사공희는 한쪽 귀를 쓸며, 무붕이 들고있는 천수관음봉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할짝 할짝 츄릅
츕 쮸릅
쮸와아아아아아압.
"......."
독고연은 영약을 손에 넣었다.
[작품후기]
??? : 만년빙좆의 제작자? 그것도 나다.
Dage //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주면 되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