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10화 (11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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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날다

이 세상에는 영물이라는 것이 있다.

사공희가 가진 자보검의 재료가 된 천사오공이 대표적인 예이며, 사천당문의 독귀 당사림이 기르는 온갖 뱀들 또한 영물의 일종이다.

내단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영물이 존재하는 건 당연지사. 중원 곳곳에는 알려지지 않은 영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의 내단은 좋은 영약이 된다.

'중원만 있는 게 아니지.'

북해빙궁에도 영물이 있다. 정확히는 괴물이 있다.

백습광아(白襲光蛾)라고 하는 거대 괴물이 있고, 북해빙궁이 있는 거대 호수 인근을 영구 동토로 만든 괴물이다.

무인의 경지로 따지면 최소 현경을 넘어 생사결 초입.

미래천마와 독고신녀를 흡수한 상태가 아니면 혈강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북해 최강의 환수(幻獸).

빙궁은 환수의 위에서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북해빙궁은 백습광아의 날개 위에 세워진 고성(古城)이다.'

북해빙궁의 시조는 음기 가득한 곳에 성을 세웠다.

음기를 축적하기 위해 음기 가득한 괴물의 위에 성을 지은 것도 대범하고, 괴물이 깨어나지 않기 위해 빙백신공으로 계속 얼려두는 것도 참으로 대단했다.

'다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한계를 맞이한 거지.'

오랜 세월이 흘러 백습광아는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빙궁주에게는 괴물을 얼려 억제할 힘이 필요하다.

백습광아의 음기를 흡수하며 세력을 넓히던 빙궁의 힘이 점점 약해진 것은 당연지사.

따라서 부족한 힘을 늘려야 멸망을 막을 수 있었다.

'때마침 중원에서 들려온 소식에 북해빙궁은 천마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천마신공을 익히고 싶은 자, 마교로 오라!

나날이 강력해지는 백습광아를 상대하기에는 북해빙궁의 빙백신공만으로는 부족했고, 북해빙궁은 천마의 힘을 빌려 백습광아를 처치하기를 바랐다.

- 북해의 일은 북해의 일! 하지만 북해빙궁이 마교의 일원이 된다면, 내 너희들에게 힘을 하사하도록 하마.

천마는 천마신공을 하사하는 것으로 북해빙궁을 수하로 들였다. 그게 몇 세대를 거쳐 현재의 빙마 유설라에게로 이어졌다.

빙궁주에게는 이제 마교의 빙마로서 살아가야만 빙궁의 모두를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미래에는 백습광아가 깨어나 결국 북해빙궁도 천산으로 내려와 지내다가 혈교와의 전쟁에 동참하게 되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

'백습광아의 내단이 정말 달달했지.'

동시에 백습광아를 죽이면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이다.

내가 백습광아를 죽여 녀석의 내단을 챙기면 압도적인 내공을 쌓을 수 있다.

만년빙정인 빙궁의 무인들을 만들어낸 근원이 바로 백습광아 아니겠는가.

흡수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막강하다고 한들, 몇 갑자를 땅속에 살았는지 모를 괴물의 내단이라면 9할이 흘러도 아깝지 않았다. 600년의 세월 중 9할의 손실이 있어도 1갑자는 거뜬히 손에 넣는다.

'솔직히 조금 아깝긴 해.'

혈강시라는 거대한 그릇조차 백습광아의 내공을 전부 담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양기라면 모를까, 남자가 음기를 담기는 더욱더 어려울 것이다.

'여자를 늘리는 게 결코 색을 탐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음기를 나눠줄 여인들이 많이 필요하다.

10갑자 짜리 내단을 가지고 사공희, 이시아, 독고연이 나눈다고 해도 인 당 20~30년 공력을 흡수할까 말까 한다.

아무리 내공을 뿌린다고 한들, 수용하는 여인이 적으면 적을수록 내공은 손실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내단이 보존되는 것도 아니고, 죽은 환수의 사체나 마찬가지인 내단은 썩어 문드러지게 되어있다.

'그럴 바에는 여러 여자랑 음양합일해서 음기 나눠주는 게 무림 전체의 이득이 아닐까?'

넘치는 내공을 여럿에게 베푸는 것이야말로 모두가 다 함께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리라.

"고로, 일단 두 명 모두 가부좌를 틀고 내가 주는 내공을 받고 난 다음 이야기를 합시다."

현재 백습광아의 내단 보다는 못하지만 걸어 다니는 만년빙정으로부터 채음한 내공을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빙마, 그대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시오."

초절정 고수인 빙마를 취해 막대한 음기를 축적하고 남은 기운을 어떻게 해소해야겠는가?

자연에 버릴 음기라면 차라리 내가 적절히 연공하여 내 여인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음!"

고오오.

나는 태극신공과 천마신공을 동시에 운용하며 잉여 내공을 둘에게 나눴다. 사공희와 이시아는 각자 정제된 내공을 천천히 제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내 내공...흑."

빙마는 졸지에 내공의 절반가량을 강탈당한 셈이 되었지만, 어차피 내공은 다시 쌓이기 마련이다.

'최소 둘 다 10년 공력은 얻을 것이다.'

둘에게 나눠 들어가는 양이 20년이요, 내가 내 몸에 저장한 양이 10년 공력이니, 빙마는 졸지에 30년 공력을 내게 갈취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30년간 쾌락을 준다면 등가교환이 아니겠는가!

빙마가 앞으로 이시아의 시녀가 되기로 했으니, 내가 그녀의 30년을 쾌락과 양기로 채워주면 된다.

"힝...."

빙마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자신의 내공이 둘에게 깃드는 것을 구경만 해야 했다.

저항하거나 도망칠 틈을 보이면 바로 제압해서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처녀가 빼앗기고도, 내공이 빼앗기고도 내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했다.

'애가 살짝 모자란 것 같은데.'

미래의 빙궁주는 똑 부러지고 얼음장 같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과거를 보니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딘가 정신을 놓고 사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빙마, 고개로 대답해라. 지금 천마신공을 운용하고 있나?]

도리도리. 빙마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그제야 나사 빠진 듯한 빙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마신공을 운용하고 있을 때는 진짜 빙마고, 천마신공이 없을 때는 그냥 빙구네.'

그러면 모든 게 이해가 된다.

빙백신공은 극강의 음기를 축적하는 내공심법이고, 음기란 자고로 하단전에 축적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에 비해 천마신공은 백회혈로 기를 모아 하늘과 닿는 것을 전제로 하는 신공이기에, 아래에 깊이 잠겨있는 음기마저도 강제로 머리까지 끌어올린다.

즉, 아무리 모자라고 바보 같은 존재라도 천마신공을 익히면 정상인이 되거나 제법 똑똑해진다.

부작용으로 자신이 천재인 줄 아는 존재는 천마신공에 심취하여 흑염룡이니 뭐니 지껄이기는 하지만, 빙마는 천마신공의 혜택을 받은 쪽에 가까웠다.

[천마신공을 운용하면서 대답해라. 내게 범해진 게 밉지 않나?]

"......."

직설적으로 물었고, 빙마는 마냥 불안하던 이전과 달리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만년설을 품은 듯한 차가운 눈빛과 무저갱과도 같은 기운이 느껴지고 나서야 나는 진정한 빙마를 마주할 수 있었다.

"...강자를 따르는 게 강호의 도리."

스륵. 붉어진 눈동자로 대답한 빙마는 눈을 감고 몸을 굽혔다. 나는 방만의 말에 그녀의 성향을 대략 알 수 있었다.

'대공자한테 왜 붙으려고 했는지 알겠군.'

상식적으로 빙마가 대공자의 편을 들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공자는 빙마를 협박했을 게 분명하다.

[혹시 대공자가 이렇게 얘기했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빙궁에 베푼 천마신공을 거두겠다고.]

끄덕.

'대공자 놈,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빙마를 설득한 것이 아니라 힘과 권력으로 협박하여 회유한 것이다. 참으로 마교다운 행동이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지지할 생각이 요만큼도 들지 않는 치졸하고 옹졸한 수법이었다.

[빙마여. 나를 따르라. 내가 따르는 소공녀를 따르라. 그러면 언젠가 소공녀가 천마가 되는 날, 한 번 북해에 비천색마가 직접 방문하겠다.]

고오오오.

나는 내공의 전달을 마쳤다. 한 시진 가량 지난 듯했고, 둘은 가부좌를 틀고 음기를 계속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내공을 쌓았다.

"그러면 빙마. 들어보도록 하지. 대공자는 그대에게 무슨 임무를 맡긴 것인가?"

"...이봉결정전에 참가하여 이봉의 자리에 오르는 것."

빙마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천마신공 덕분에 은발적안이 된 그녀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무언가를 숨기는 기색도 없이 모든 걸 밝혔다.

"그리고 육봉의 순위결정전에 참가하는 것."

"그래. 아직 그게 남았지."

서열정리!

이봉을 결정한다고 한들 사람들이 그걸로 만족하겠는가. 4봉과 2봉 중 어느 누가 더 강한지 따져보기 시작할 것이고, 흑백이화에 가장 가까운 천하제일봉이 누구인지 가리고자 할 것이다.

"대공자의 계획은 뭐지? 순위결정전에 참가한 다음, 빙마가 천하제일봉이 되었음을 밝히는 건가?"

"...유설라라는 존재는 아미파의 한상옥녀검을 사용하기로 했다. 무림맹, 그리고 아미파에 깊숙이 침투해 내부에서 망가뜨리려고 했지. 그리고...."

빙마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무림맹주의 딸, 독고연에게 빙백신장을 날려 구음절맥을 가속하는 것."

"뭐?"

"대공자는 말했다. 독고연의 절맥증이 심화되면...자기가 치료하러 나선 다음 취하겠다고."

빙마가 밝히는 대공자의 계략에 나는 너무나도 치가 떨렸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천환단으로 독고연의 절맥증을 치료한 다음, 독고연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했다."

* * *

"이 년, 왜 이렇게 안 나오지?"

대공자, 주지는 사천당문이 보이는 객잔의 창문을 열어 당문을 노려봤다. 벌써 며칠이 지났음에도 염마는 밖으로 나오기는커녕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년이 익힌 극양지기의 술법은 남자의 정기를 탐해야만 살 수 있는데.... 안 그러면 여인의 몸이라 말라 죽을 텐데...."

"태양화리 같은 거로 양기를 습득한 게 아니겠습니까?"

뢰마의 대답에 주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태양화리가 어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더냐? 다른 극양지기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천당문에서 막대한 양의 자금이 빠져나간 흔적은 없었다. 하오문도 염마가 빠져나간 것을 계기로 당문과 척을 지게 되었어. 분명 그년은 양기를 보충하고 있다. 무슨 방법으로든."

대공자와 소공녀, 둘 중 누구를 따를 것인가의 기준을 두고 염마는 '남자는 대공자'라는 이유로 지린삼마가 되었다.

즉, 염마는 사흘에 한 번은 꼭 남자를 안아야만 만족하는 색녀-아니 탕녀였다. 인간인 이상 의지로 욕구는 잠재울 수 없다. 특히 본능적이고 말초적인 욕구라면 더더욱.

"염마가 성교를 끊는다? 차라리 내가 연초를 끊고 말지."

"의지가 강한 게 아니겠습니까?"

"아냐, 아냐. ...흠, 혹시 당가의 사람들이 양기를 대주는 거 아닌가? 흐흐."

"대공자, 미치셨습니까?"

뢰마는 역겨운 표정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대공자는 진지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왜? 뭐가 어때서. 가족은 남녀가 아닌가?"

"으으.... 대공자, 당신을 따르기로 한 제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하하하! 농담일세, 농담. 내가 설마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주지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뢰마는 할 말이 많았지만 속으로 삼키며 술잔을 함께 들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기다리실 겁니까. 마냥 여기에 계속 있으면

"상태는 대충 봤으니, 한 달 뒤에는 무림맹으로 가도록 하지. 그 때 즈음이면 독고연은 앓아누워서 한창 의원을 찾고 있겠어. 빙마의 빙백신장이면 구음절맥을 더욱 악화시켜줄테니. 하하하."

주지는 품에서 작은 단약을 꺼냈다.

"참으로 신기하단 말이야. 이 알 하나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

뢰마의 눈은 한참 동안 천환단에 꽂혀있었다. 주지는 그걸 품 안에 넣으며 뢰마를 비웃었다.

"이건 내 걸세. 신의가 만들어내는 천환단은 천마께서 하사하시는 물건이 아닌가. 설마 내게서 빼앗으려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결코."

"후후, 믿겠네. 아무튼 빙마가 제대로 일을 처리해놓기를 기다려보자고. 독고연의 절맥증이 심각해지면 그때는...."

주지는 눈을 반짝였다.

"그 왜, 요즘 신의의 제자라는 자가 유명하다면서? 나도 신의한테 배운 지식으로 입 좀 털어보면 되지 않겠나?"

"배운 게 아니라 협박해서 비급을 토해내게 한 거 아닙니까?"

"그거나 그거나. 흥, 그래도 영 가만히 있으려니 흥이 떨어지는군. 아, 그래."

주지는 사천당문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온 김에 춘약이나 좀 사서 가야겠어. 크으, 생각해보니 더 아쉽군. 염마를 내 밑에 깔았던 그 날, 따먹어야 했는데."

"......."

제발 나오지 마라. 뢰마는 한 때는 동료였던 이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 * *

"천환단으로 절맥증을 치료해? 무슨 개소리야? 천환단으로 고치는 병이었으면 독고자영이 마교를 뒤집어엎었지. 이게 그런 병일 리가 없잖나."

"하지만 대공자는 그렇게 말했...."

"그 새끼, 지가 독을 걸어놓고도 무슨 독인지 몰랐던 건가? 진짜 몰랐어? 구음절맥 같은 건 줄 알았다고? 그럴 리가...."

가능성있다.

나는 순간, 대공자에게 그걸 줬을만한 단 한 명의 여인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마교의 편에 서서 혼란이 일어나는 걸 가장 좋아하는 그녀라면....

'일부러 얘기를 안 했다?'

아주 낮은 가능성이지만, 만약 대공자에게 독을 제공한 자가 어떤 독인지 정확히 얘기하지 않았다면...?

'대공자는 서왕모의 선도(仙桃)를 몰랐다고?'

독고연에게 십팔음뇌절맥이 일어나도록 만들어두고, 그냥 후천적으로 절맥증을 일으키는 독으로 생각하고 먹였다.

'인간을 선녀(仙女)로 만드는 천계의 과육을?'

만약 정말로 선도를 준 장본인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먹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악질적으로 왜곡'하여 말했다면....

"씁. 큰일 날 뻔했군."

독고연이 하마터면 등선하거나 대공자에게 넘겨줄 뻔했다. 동시에 미래의 독고연이 얼마나 지독한 여자인지 새삼 다시 느꼈다.

십팔음뇌절맥.

"선녀를 잃을 뻔 했어."

독고연이 앓고 있는 증상은 병이 아니라, 어느정도 경지에 이른 인간을 '선인(仙人)'으로 만드는 선녀화의 과정이다.

즉.

독고연의 '육신'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인간의 육신이라는 껍질을 깨뜨리고, 천상의 존재인 선녀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작품후기]

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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