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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색마-104화 (10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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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 * *

'언제 들어도 참으로 힘찬 시작이야.'

나는 역체변용술+변복+인피면구+복면으로 완전히 내 정체를 숨긴 채 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고작 두 자리를 두고 자신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여인들,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문파의 식구들, 그리고 수많은 꽃을 눈으로 살펴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로 비무장은 몸 가눌 곳이 없을 정도였다.

"우오오, 저거봐! 진짜 마교 소공녀다! 천산에 여신이 태어났다던데!!"

"흥, 척 봐도 마음씨가 불량해 보이잖나. 그에 비해 우리 태극화 소저는...!"

관중들의 시선은 무림맹주의 좌우로 앉은 흑백제일화에게 꽂혀있었다.

원래라면 비무장을 가득 채운 여인들에게 가야 할 시선이 사공희와 이시아에게 꽂혀있었다.

'맹주도 참으로 지독한 자로다.'

흑백제일화가 둘 다 자리를 빛내준 것을 계기로, 그는 둘이 이봉의 자리를 '하사'하는 것처럼 이봉의 자리를 마련했다.

"허...저기 남궁가의 여식 표정이 보이나? 완전 독기 가득 차 있군."

"사람들 시선이 자신에게 안 쏠리니 심통이 난 모양이야."

남궁유린 뿐만이 아니다. 개회식에 참가한 모든 여인이 흑백제일화, 그리고 그들의 양옆으로 자리 잡은 나머지 사봉-중최미봉은 없었다-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다들 저 자리가 자기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맹주의 좌우로 흑백제일화가, 그 아래 단에 육봉의 자리가, 그리고 사공희와 이시아의 앞에 빈자리가 놓여있었다. 관객들은 빈자리를 노려보는 여 무사들을 두고 수군거렸다.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군. 같은 육봉일 텐데...쯧쯧. 누구만 저렇게 높이 띄워주는 건 역차별아닌가?"

"쯧. 흑백제일화 둘 다 절정 고수인데, 어디 일류들끼리 싸우는데 끼어서 되겠는가? 급이 다르지, 급이."

"태극화는 무당파 장로급 실력이고, 소공녀야 두말하면 입이 아프지. 급이 나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이봉결정전임에도 관중들의 대화 주제는 여전히 흑백제일화에게 꽂혀있었다.

화제의 중심은 단연코 흑백제일화였기에, 개회식에 불참한 이들 중 백발의 미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었다.

'맹주 놈, 대가리 굴리는 게 정말 대단하기는 하단 말이야.'

사공희와 이시아, 그리고 각 지역에서 초청한 육봉을 통해 모든 시선을 집중시켰다.

'저 모든 계획이 자기 딸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거지.'

혜성처럼 나타난 초절정 여고수는 누구인가!

'별문제 없으면 독고연이 이봉 중 최강, 아니 후기지수 중 최강이다.'

맹주 또한 독고연의 경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독고구검을 직접 가르친 장본인이기에, 독고연이 얼마나 괴물인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이다.

'백도제일화를 탈환하거나, 아니면 맹주 자리 바로 앞에 의자를 새로 하나 마련하거나.'

남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이화와 육봉과 맹주가 앉은 특별 좌석의 배치는 맹주의 의자가 살짝 더 높게 배치되어있다.

즉, 독고연이 앉을 자리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독고자영이 자리를 선점하는 것으로.

'맹주 놈, 자기 딸에게 자리를 양보할 거다.'

독고연은 이봉이 되지 못할 것이다. 정확히는 이봉을 넘어, 흑백제일화와 같은-보다 살짝 높은-곳에 앉게 될 것이다.

절정 고수가 일류들 싸움에 끼어들 수 없듯이, 초절정 고수가 일류들 소꿉놀이에 동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독고연은 우승이 확정이다.

'몸만 정상적이라면.'

십팔음뇌절맥의 증상만 억눌러도 우승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비무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온갖 영약으로 고쳐놓았다.

"와...사람들 진짜 많아요."

바로 지금 내 옆에서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여인이 각혈 한 번 하지 않은 것처럼.

"연 소저, 어떻습니까?"

"대단...해요. 바깥이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어요."

내 옆에 명문가 규수처럼 차려입은 백발의 소녀, 독고연은 들뜬 얼굴로 사방을 주시했다. 눈에 띄는 백발은 흰 갓으로 눌러씌워 가려놓았다.

10년 만에 세가 밖을 나선 것도 마음이 설레는데, 비무장 안에만 족히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비무에 참가하는 사람 수는 400명 정도인데 관중은 2만이 넘는구려. 맹주도 참으로 대단하지, 입장권을 판매해서 구경할 수 있도록 하다니."

"맹의 주 수입원이니까요. 비무장을 증축한 비용을 충당해야 하지 않겠어요?"

순진한 성격과는 달리, 차기 맹주답게 독고연은 조직이 돌아가는 순리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공짜로 들어오게 했으면 분명 아무나 들어와서 질서가 망가졌을 거예요. 그중에는 나쁜 생각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그렇소. 그대도 역시 참으로 똑똑하군."

훗날.

모종의 이유로 무림맹의 군사가 실종되고 군사의 자식인 제갈건담이 검제라는 이름의 복수귀로 날뛰는 가운데, 홀로 무림맹을 이끌고 마교와 연계해 혈교를 상대한 여걸다웠다.

문무를 겸비한 '초특급' 천재.

하지만 천재들이 다들 그렇듯 요절하거나 병을 가지고 있기 마련.

'그런데 거기서 병이 사라지면 어떨까?'

봉황이 상처 입은 날개를 치료하고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것으로 모자라 옥황상제의 면전에 나서서 천상을 뒤집어 놓을 것이다. 독고연에게는 그럴 만큼의 재능이 있었다.

"연 소저, 내 장담컨대 그대는 내 치료가 없더라도 병을 이겨낼 수는 있을 것이오."

"...'수는'?"

독고연은 내 말의 모호한 부분을 바로 지적했다.

"그렇소. 힘으로 억누르는 거지. 각혈은 평생 그대를 괴롭히겠지만, 고강한 정신과 막대한 내공, 그리고 온갖 영약으로 수명을 이어나갈 것이오."

"......."

독고연의 눈에 공포감이 스쳤다. 내가 그녀를 만난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각혈하지 않았기에, 다시금 각혈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덥석.

"나를 믿으시오."

나는 독고연의 손을 붙잡았다. 고사리같이 작은 손은 처음에는 격하게 떨렸지만, 내가 온기를 불어넣어 주자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대는 반드시 이봉이 될 것이오."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무슨 근거로?"

"내가 그대에게 은자 백 냥을 걸었거든."

"......."

독고연은 반대쪽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벌벌 떨리는 것을 보아, 그녀는 분명 빵 터진 게 틀림없었다.

"네...알겠어요. 흐끅, 의원님께 받은 약값을 갚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부디 최선을 다해주시오."

최선을 다하면 할수록, 점점 자신에게 깃든 병이 발목을 잡게 되리라.

- 병자가 한 번 약의 힘으로 건강을 되찾게 되면 말이다, 아편 중독자처럼 약을 찾게 된다.

이것은 나의 스승도 혈교주의 가르침도 아니다. 내가 어렸을 적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뼈저리게 느낀 삶의 경험이다.

온갖 약에 의존하며 살아남고자 했던 나였기에, 나는 독고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혹시나 아프면 얘기해주시오. 내 손만 잡아도 나을 터이니."

"...풋, 농담도 참. ...그런데 그게 진짜라서 더 놀랍네요. 무슨 방법을 사용하신 거예요?"

"환자를 꼭 치료하겠다는 의원의 강한 의지."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독고연의 속내를 알 수 있다.

'대공자는 독고연에게 무조건 죽게 되는 독을 뿌렸지.'

분명 대공자에게는 십팔음뇌절맥을 치료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독고연에게 신의의 제자라고 접근한 것처럼, 그 또한 독고연에게 병을 고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방식으로 접근하려 했을 것이다.

희망.

나도 독고연이 '나을 수 있다'라는 희망이라는 독약을 뿌렸다.

"걱정마시오. 내가 그대를 꼭 치료해주리다."

"......그, 그건 정말 고마운데요."

독고연은 주변을 흘기며,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저, 정말 그 방법 말고는 없는 건가요?"

"없소!"

내 단언에 독고연은 부끄러워졌는지, 내 손에 잡힌 손을 슬그머니 빼냈다.

하지만.

"...쿨럭."

잔기침이 나오자마자, 그녀는 허겁지겁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떨군 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이만 갈게요."

"힘내시오, 소저. 이거 미리 입안에 넣어두시고."

나는 독고연에게 구슬 정도 크기의 푸른 당과를 하나 꺼냈다. 과일은 아니지만, 그녀의 입맛에 맞게 달콤쌉싸름하게 만들었다.

"입안에 있는 동안은 각혈하지 않을 것이오. 내 대용이라고 생각하시오."

"풉. 그런데 이거 색이 참 독특하네요. 무슨 과일인가요?"

"과일은 아니고, 인형설삼을 갈아서 당과로 만들었소."

"......."

독고연은 뜨악한 얼굴로 인형설삼당과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어린아이들 약 먹일 때 단 거 같이 주는 거랑 같은 이치지. 약, 써서 싫어하지 않소?"

"......저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흐흐, 아직은 소녀지, 여인은 아니지 않나?"

"...흥!"

독고연은 몸을 돌려 객석을 떠났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내가 곧 여인으로 만들어주리다...흐흐흐. ...응?"

등 뒤가 찌릿하게 울렸다. 나는 이상한 기운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호오."

군중의 틈 사이로 비단 같은 흑발의 여인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흘리는 특유의 향을 맡으며 뒤를 쫓았다.

"나도 간식 좀 먹어야겠는데."

낼름.

나는 인형설삼으로 만든 절편을 질겅질겅 씹으며, 여인의 뒤를 쫓았다.

* * *

"사람이 너무 많아."

유설라는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비품 창고의 상자 위에 걸터앉았다. 창고는 다 쓰러지는 오두막의 방 한 칸 정도로 작았고,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창고의 문밖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박혀있었지만, 지나가는 관계자들도 창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유설라가 창고로 대놓고 들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창고와 창고의 앞에 작게 펼쳐진 '미혼표식구궁진'은 세상 누구도 모르는 유설라만의 작은 궁전이 되었다. 설령 무림 맹주라고 한들, 미혼표식구궁진의 파훼법을 모르는 이상 들어올 방법은 없었다.

"후우...."

유설라는 빙백신공을 일으켰다. 그러자 머리칼의 일부가 백발, 아니 은발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은발의 위에 검은 가발을 덧쓴 것 거럼 보였다.

"중원은 너무 더워."

아직 여름도 아닌 꽃이 한창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봄이건만, 유설라는 중원의 더위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했다. 빙백신공을 운용하면 체온은 유지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기에 내공 운용을 포기해야만 했다.

"더워, 짜증나."

유설라는 가발을 벗었다. 벗기 전과 벗고난 후가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은발을 숨기기 위해 가발을 써야만 했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

유설라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꽃도감의 한 쪽에 펼쳐진 유설라의 쪽을 두고 빈 곳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미파, 아미파. 나는 아미파의 한상옥녀검의 진전을 이어받은 자."

마치 자신이 암기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듯, 유설라는 자신의 '가짜 신분'을 몇 번이고 되뇌여야만 했다.

빙마가 아닌 '유설라'로서, 그리고 10년 전 죽은 아미파 사태의 진전을 이어받은 후기지수로써 싸워야 했다.

만약 자신이 이봉의 자리에 오른다면, 빙궁주도 빙마도 아닌 빙백봉(氷白鳳)이라고 불리게 되지 않을까?

'다행히 위험한 적은 없어.'

유설라는 여러 장으로 구성된 대진표를 펼쳤다. 참가자들에게 모두 제공되는 대진표에서 유설라는 승리를 확신했다.

독고연과 조가 갈렸다. 만약 같은 조에 걸렸다면 분명 임무는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휴우."

대공자의 계획에 있어서 유일한 변수-독고연과 유설라가 같은 조에 편성되는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건 야인삼마 중 빙마로서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모든 것은 북해빙궁을 위해...."

덜컥.

창고의 문고리가 덜커덕거렸다. 유설라는 손으로 입을 막고, 빙백신공을 한껏 일으켰다.

누군가 창고의 문을 열 가능성? 없다! 미혼표식구궁진은 창고 문 앞까지 펼쳐져, 벽에 전신을 붙이고 벌레처럼 지나가는 변태가 아니고서야 문고리를 건드릴 일은 결코 없다.

끼익.

"......!!"

문이 열린 순간, 밖에서 날아온 우악스러운 손길이 유설라의 입을 막아버렸다.

[작품후기]

위기!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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