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02화 (10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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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결정전

내가 독고 세가에 들어온 뒤로, 독고연의 각혈은 없어졌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독고연의 몸에 의도치 않게 영약을 뿌린 것밖에 없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가 각혈하지 않을 충분한 환경을 만들었다.

"상공, 어떻게 하신 거예요?"

"비밀이다."

"가르쳐주면 안 돼?"

"십팔음뇌절맥을 완전히 치료하고 나면."

나는 둘에게도 비법을 숨겼다. 둘은 치료 방법이 성교라는 것에 영 미심쩍어했지만, 그렇다고 내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희한하네요. 상공 말씀대로 독고 세가에서 음양합일을 했을 뿐인데 연 소저의 각혈이 멎다니."

"진짜 성교가 답인 건가? 음.... 처녀를 지켰으면 20살에 요절하는 셈이네."

"......."

나는 차를 홀짝이는 거로 대답을 회피했다.

"차향이 좋군. 역시 무림 맹주의 가문다워. 찻잎 하나하나가 고급품이야."

화제를 억지로 돌리고자 했고, 다행히 둘은 내 의도대로 정보를 캐묻는 걸 포기했다.

"이게 다 맹에서 몇 번 검수해서 들어온 물품들이니까요."

"좋네. 천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야."

사공희와 이시아는 내가 우려낸 차향을 마음껏 즐기며 담화를 나눴다. 무림맹의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뒤, 우리는 망가진 침대를 고치고 내 방에 다시 모였다.

이 방에 없는 유일한 여인, 독고연은 한참 늦은 점심을 만드느라 부엌에서 나오질 않았다.

- 가만히 계셔요! 식사는 제가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와 얼굴을 마주하기 껄끄러운 것도 있지만, 그녀는 독고 세가의 안주인으로서 우리를 대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공, 저도 가서 도울까요?"

"희야, 너 과일 깎을 때 말고는 부엌 들어갈 생각일랑 말아라."

"너무해요. 저도 나름 열심히 훈련했다고요."

사공희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제 수육 정도는 가능하답니다!"

"몇 시진 가량 펄펄 삶기만 하면 되는 거 말고, 한 시진 내로 가능한 요리를 얘기해 보아라."

사공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수육을 운운하길래 혹시나 하였지만, 역시 사공희는 불 조절에 아직 젬병이었다.

그나마 불을 켜놓기만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건지기만 하면 끝나는 삶기라도 성공했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무공으로 따지면 이제 화식의 1성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하군.'

그녀에게는 아직 화식 2성부터 10성-볶기, 굽기, 튀기기, 부치기, 지지기, 끓이기, 데치기, 우리기, 조리기라는 초식이 남아있지만, 언젠가 이 모든 초식을 익히고 10성에 이르는 그 날.

사공희는 부엌의 주인이 되리라.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만.

"풉, 칼은 잘 사용하면서 다른 건 못하나 봐?"

"부, 불 쓰는 것만 못해요! 그러는 당신은요?"

"나? 완벽 초인이지."

이시아는 한껏 주눅 든 사공희를 비웃었다. 서로가 내 양기를 탐하듯,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둘은 틈만 나면 서로를 헐뜯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7살에 천마신공의 구결을 이해한 초천재로서-"

"이시아 그대는 아예 부엌에 알짱거리지 마시오."

내 말에 이시아는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내가 이런 말을 할지 전혀 몰랐다는 듯, 배신감을 느꼈다는 마음이 여실히 표정에서 드러났다.

"흐, 흥! 그래, 나는 천마신교의 공주야. 그런 내가 부엌에 들어가는 게 말이 안 되지."

"요리든 뭐든 부엌에 들어가는 즉시 나는 비천의 별호를 반납할 것이오. 나와 생사지결을 벌이고 싶지 않으면 부엌은 들어가지 마시오."

"...그렇게까지 말한 건 없잖아."

이시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진심으로 삐졌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괴멸적인 가사 능력을 이미 알고 있기에 엄포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내가 그녀를 공주라서 모시고 살았다? 아니다.

"상공, 시아의 실력이 어떻길래...?"

"형편없지!"

'삼류만도 못한 수준.'

나는 미래천마와 함께 일주일 가량의 도주극을 펼쳐봐서 잘 알고 있다.

그녀가 태워 먹은 식량 때문에 우리는 쫄쫄 굶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고, 안 그래도 바닥을 향해 내려가던 충성심은 끼니때마다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솔직히 그 괴식을 먹어본 사람들은 배신할만하지.'

이시아는 그냥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사공희. 이건 내가 확실하게 지시하마. 혹시 이시아가 부엌에 들어오려 하거든 엉덩이를 걷어차거라. 그리고 나한테 말해."

"흐, 흥. 내가 그런 거에 굴할 줄 알고? 여자의 자존심을 이렇게 짓밟아놓고-"

"걸리면 양기 안 넣어줄 거요. 뭐 하려고 하지 마시오."

"........"

이시아는 진심으로 억울한 눈으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연기인 걸 알고 있지만, 진심이 반쯤 섞여 있어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안 돼.'

마음을 굳게 먹어라. 여자의 눈물에 속지 마라. 지금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너는 부엌이 몇 번이고 폭발하는 집에서 살 게 될 것이다.

- 천마천지반환!

전을 뒤집으라고 맡기면 석쇠와 함께 집 전체를 뒤집을 것이다.

- 천마기공파!

빨래의 물기를 털라고 하면 옷감을 튕겨 기파를 날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옷감을 전부 찢어놓을 것이다.

- 천마일섬!

빗자루로 바닥을 쓸라고 하면 바닥에 무수히 많은 칼자국을 만들어 내고 집을 갈라버릴 것이다.

이시아는 그냥 천마밥먹기만 하면 된다. 가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해선 안 될 존재다.

"시아, 괜찮아요."

사공희는 이시아를 가슴에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상공이 저렇게 말해도 다 시아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구박하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나물도 못 볶는다고 대파로 이마를 얻어맞았답니다."

"아냐, 아니라고."

"말은 저렇게 하셔도 다 따뜻한 배려가 있답니다."

"아니라니까?"

성장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사랑의 매와 재앙의 씨앗이 싹트기 전에 뿌리를 제거하기 위한 단장의 직언을 같은 걸로 놓아서는 곤란하다.

"희야, 네가 뭘 몰라서 그런데-"

"흥! 두고 봐! 나는 천마가 될 여자야! 천하제일숙수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서 천산에 있을 때 요리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소?"

내 말에 이시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뱀술 담글 때 천향독사 껍질을 까봤어!"

"우와- 대단하군. 그것참 대단하오. 껍질 하나는 참으로 잘 까시겠군."

"어머, 상공. 그거라면 저도 잘 까는데요? 시아도 잘 까고요."

사공희는 게슴츠레 웃으며 이시아에게 눈짓했다. 이시아도 사공희와 시선을 주고받더니, 둘은 두 손을 깍지끼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상공, 제가 과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깎는 거 아시죠?"

"나도 껍질 좀 깔 줄 아는데."

'불리한 화제를 이런 식으로 바꿔버린다?'

아기색마, 꿈틀. 하지만 나는 다리를 꼬는 거로 아기색마를 진정시켰다.

"이것들이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들었나."

"...상공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나 방금 진짜로 소름 돋았어."

내 말에 둘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봤다. 다행히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정리될 수 있었다.

"실례합니다."

큼지막한 상을 들고 온 독고연은 우리의 앞에 상을 내려놓았다. 마파두부부터 시작하여 소룡포, 청초육사에 이어 오향쟝육에 이르기까지 중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산해진미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아침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니오. 객으로서 주인의 부엌을 멋대로 사용한 내 쪽이 실례지."

나와 사공희, 이시아는 상에 둘러앉았다. 하지만 독고연은 좀처럼 같이 앉으려 하지 않았다.

"왜 그러시오?"

"저, 저는 따로...."

"이리 와서 앉으셔요."

사공희는 독고연의 손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독고연은 빛처럼 손을 빼내며 뒤로 물러났다.

"......."

이시아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독고연이 같이 먹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라거나 음식 냄새만 맡아도 벌써 주방일에 대한 실력은 패배를 직감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사공희의 손에서 빠져나온 속도만 보고 직감한 것이다.

"흐음...."

"의원님, 그."

둘은 내게 눈짓으로 확답을 요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독고연에게 손바닥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함께 듭시다. 주인께서는 이리 만찬을 차려놓으시고 부엌에서 따로 드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음식은 자고로 함께 먹어야 제맛인 법이오."

"하, 함께...!"

독고연은 사공희와 이시아의 눈치를 보며 살포시 자리에 앉았다. 이미 찬기의 구성부터 네 명이 함께 먹는 배치였다.

"연 소저. 식사 후에 한 가지 청을 해도 되겠습니까?"

"처, 청이요?!"

어젯밤 이후로 유독 나에 대한 반응이 격하다. 격하지 않은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대답 하나하나마다 깜짝 놀라면 내가 괜히 미안했다.

"그렇소. 탕약을 지어 한 첩 들이켜주시오. 그러면 몸을 쓰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오."

"몸을 쓰는데...."

자꾸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만 골라서 따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어린 소녀 시절의 무림맹주, 신녀는 아무래도 여러모로 잡념이 많아 보였다.

"탕약을 먹고 나면 몸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오. 무공을 발휘하는 데에도 큰 무리가 없을 터."

"아, 연 소저가 이봉결정전에 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군요!"

"흐응. 확실히 지금까지 각혈은 하지 않았지만, 탕약만으로 정말 비무를 할 정도로 격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까?"

'독고연 앞이라고 바로 공손한 척하기는.'

표정을 싹 바꾸며 이지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시아의 태도에 나는 기가 막혔지만, 그냥 눈감아주기로 했다. 어차피 나중에 독고연도 내 품에 들어오면, 셋이서 동고동락하게 될 테니.

"물론이오. 흑백제일화께서도 괜찮다면 내 한 가지 청을 하고자 하는데...."

자신감 넘치는 둘의 콧대를 한 번 눌러줄 필요가 있다.

"연 소저, 흑백제일화를 상대로 2:1로 비무를 펼쳐보시겠소?"

누가 이길지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 * *

"맹주, 화산파와 점창파간에 시비가 붙었소!"

"그렇소?! 하하, 내 당장 가서 해결하리다!"

"맹주! 선루필승도의 제자들이 일제히 들어왔소!"

"그렇소?! 하하, 내 당장 필승도의 문주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리다!"

"맹주! 녹림왕이 왔소! 독고연 소저를 보고 싶다고 지금 맹의 앞에서 난리입니다!!"

"그 새끼 어디 있다고?"

맹주는 쏟아지는 일들에 싱글벙글 웃으며 모든 일을 빠르게 해결해냈다. 무림맹의 그 누구도 맹주만큼 빠르고 신속하게, 그리고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만하게 처리했다.

독고자영이 있기에 현재의 무림맹은 유지되고 있다! 라고 평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맹주,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군사.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오."

얼굴과 주먹에 묻은 피를 닦아낸 독고자영은 의자에 앉아 내공을 가다듬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맹주, 그리도 좋습니까?"

"당연하지. 우리 연이가 저 섬에서 이제 나올 수 있게 되었는데 내가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 있겠소?"

맹주가 기쁜 이유는 극명했다.

- 신의의 제자, 무붕 의원이 독고연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더라!

- 그래서 맹주 딸 이봉결정전에 나오냐?

- 백발병약미녀라고 하던데...!

세간의 과도한 관심은 독고자영으로서 짜증이 일었으나, 자신의 딸이 남들의 앞에 서서 당당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이기를 그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잘만하면 검봉(劒鳳)이라고 불릴지도 모르고, 또한 잘만하면 백도제일화의 별호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고자영은 딸의 활약을 상상하며 헤벌쭉 웃었다.

"주책이오, 맹주."

"아무렴 군사 그대만 할까? 그대도 아들 상대로는 주책이지 않소?"

"크흠. 알겠습니다. 이 화제는 그만두도록 하죠."

펄럭. 군사는 흰 부채를 가볍게 펼쳤다.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마자 주변에 펼쳐진 기막은 군사와 맹주가 있는 공간을 장악했다.

"마교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무엇이오?"

맹주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다. 군사 또한 진지한 얼굴로 맹주의 앞에 첩보가 적힌 종이를 건넸다.

"비천삼마는 요동으로 향했습니다. 이를 보아 소공녀는 진실로 흑도제일화라는 자존심을 걸고 얼굴을 비추러 온 듯합니다."

"그건 그렇지. 천마의 핏줄이 어디 가겠는가. 백도에서 태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여걸이지. ...문제는 다른 쪽이야."

"대공자, 주지."

"...건방진 흑염룡, 그놈은 어디에 있지?"

자신의 문파를 속이고 구룡의 일원으로서 수년간 이름을 널리 떨쳤던 청년.

이제는 나이가 다 차서 용봉지회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가 중원 곳곳을 당당히 돌아다니며 뿌려놓은 암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지독했다.

"주지는 분명 뭔가 계책을 부렸을 것이야. 용봉지회야 소공녀가 이목을 끌어서 구룡육봉 중 누구도 집어넣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봉의 자리에 마인을 집어넣으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어느 쪽을 확인해볼까요?"

"...사파 계열의 여고수 중 출신이 불분명한 이들을 찾아보세."

"알겠습니다. 정파는 출신을 숨기기 어려우니까요."

"만약 그들 중 누군가가 이봉결정전에 나온다면, 내 딸이 독고구검으로 정체를 파헤칠 것이야. 설령...."

맹주는 사납게 눈을 번뜩였다.

"십마라 한들, 연이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작품후기]

사공희는 '삶기'를 획득했다! [ 1 / 10 ]

포치포치포치, 한결같ol // 이시아 흉부는 무공 경지와 비례합니다. 주인공이 열심히 성장시켜주고 있으니까 안심하세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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