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01화 (10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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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결정전

늦은 아침.

"...핫?!"

독고연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미 창호지 밖 세상은 환하게 밝아있었고, 태양은 호수 위에 살포시 떠 올라 있었다.

"늦잠 잤다...."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해오던 독고연은 살아생전 처음으로 새벽이 아닌 시간에 아침을 맞이했다. 매일 아침 각혈과 함께 깨어나던 목 아픈 아침은 사라지고, 따스한 햇볕이 그녀의 몽롱한 정신을 일깨웠다.

"어제...."

아아아아아아앙!!

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

뷰르르릇 푸슛 쯔어억.

찍.

"......."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은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분명 마지막 순간, 무붕 의원이 뿌린 백탁액을 전신에 끼얹은 상태로 닦을 생각도 못 하고 고뇌에 빠졌던-

"어...?"

분명 더럽혀진 상태로 정신을 잃었을 텐데, 전신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간밤에 자신이 얼굴을 씻고 잤을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옷도 정돈되어 있다.

'내가 잠들기 전에 씻고 잤었나?'

깜빡 잠들기 직전에 몸단장하고 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독고연은 침을 꿀꺽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미약하게 코를 찌르는 육향은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남자의 흔적이 옷에 스며들어있다. 앞머리가 기름이 묻었다가 굳은 것처럼 딱딱했다.

어쩌면 자신이 음몽을 꾼 게 아닐까 싶었지만, 옷자락 한쪽에 여전히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점액 덩어리가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으...."

스스로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착각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현실은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세상에."

의원 무붕이 무당파의 태극화와 마교 소공녀를 동시에 취했다!

세상 모두가 알면 분명 큰 혼란에 빠지리라. 독고연은 자신이 알게 된 무림의 비화에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병, 십팔음뇌절맥이란 병을 고칠 방법이 성교라는 것 또한 잠시 잊어버렸다. 워낙 충격적인 살색의 향연에 그녀는 정신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알몸으로 교류를 했다.

남자를 향해 교태를 부리는 여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은 있었어도,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독고연에 대한 부끄러움은 전혀 없었다.

"바깥은...그게 당연한 건가?"

공맹에게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옛 성현의 말씀과 현대 무림의 정조관념은 장강의 상류와 하류처럼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어쩌면 저분들이 하는 게 상식인 게 아닐까?'

또다시 독고연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한 번 고민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질 못하는 것이 그녀의 고질적인 문제였고, 평소에는 각혈의 고통 때문에 고민이 끊기기에 십상이었다.

꼬르륵.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랫배에서 배꼽시계가 울린 것에 독고연은 고통이 아닌 공복을 느꼈다.

"...배고파."

독고연은 스스로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을 직감하고 손으로 볼을 두드리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직 전신에 남아있는 남자의 흔적을 말끔히 닦아냈다.

"물, 물...!"

방 안에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떠 놓은 증류수가 나무 양동이에 담겨있었다. 독고연은 비단에 물을 적셔 급히 몸단장한 뒤, 제법 말끔한 모습으로 문고리를 잡고 방을 나섰다.

"소, 손님들께 식사를...!"

아무리 전날 밤의 일이 있었다고 한들, 독고 세가의 모든 가사는 독고연이 한다. 손님맞이는 항상 독고연의 몫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손님이 오든지 독고연이 음식을 만들고 대접해야 했다. 밖에서 오는 음식은 수십 장을 훌쩍 넘는 다리를 건너오는 동안 전부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성교는 분명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걸 거야.'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당당히 알몸을 보일 리가 없다. 셋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의료'니 '진찰'이니 운운하며 정을 나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바깥의 의술이 변한 걸까?"

저벅. 독고연은 걸음을 멈췄다. 그녀와 상담할 수 있는 존재, 독고자영은 이곳에 없었다.

'손님이 온 날에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으신 적은 이번이 처음이야.'

평소라면 독고자영도 손님이 있으면 같이 집에서 하룻밤 자거나 독고연의 곁을 지켰겠지만, 지금 그는 장원이 아닌 장원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지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믿었던 가솔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독이 든 과일을 줬었고, 근 10년간 고통에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독고연이 세가의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해야 할 정도로 세가를 찾는 이는 극히 제한되어있었다.

그런데도 태극화, 마교 소공녀, 무붕 의원을 독고자영이 들인 이유는 단 하나.

'오직 믿는 사람들만 안으로 들이셨지.'

독고자영은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세 명이 독고연을 절대 해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독고연은 둘, 아니 셋을 가뿐히 제압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개방방주, 군사, 그 외에 독고자영이 눈으로 보고 신뢰하는 수많은 이들이 독고세가를 방문했다. 그들 모두 독고연을 위하면 위했지, 결고 위해를 가할 자들은 아니었다.

즉, 독고자영은 신뢰할 수 있는 자들만 안으로 보냈다.

비슷한 나이대에 다소 낮은 경지를 가진 여인 둘과 병을 치료해 줄 의원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배경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데 설마 셋이서 질펀한 난교를 펼질 줄이야.

'아버지는 이걸 알고 보내신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태극화와 소공녀가 마음껏 정을 나눌 수 있게, 둘이 서로 함께 사모하는 무붕 의원을 들인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성교를 통해 자신을 치료하겠다고 한 것도-

펑.

"아우우...."

생각이 생각을 꼬리 물수록 독고연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어지러운 정신을 정리하기 위해, 독고연은 급히 부엌으로 향했다.

일단 진실이 어느 쪽이든, 독고연이 안주인으로서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는 건 바뀌지 않았다.

성교는 의료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독고연도 상황을 이해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고, 만약 이들이 독고자영에게 진실을 숨기고 독고연과 독고 세가를 능멸한 것이라고 한다면-

지글지글.

무언가가 끓는 소리에 독고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마침 부엌에는 누군가 사람이 있었고, 독고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둘 중 부엌에 있을 만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저기, 태극화 님...?"

"음? 일어나셨소?"

"힉?!"

부엌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독고연은 전신의 털이 쭈뼛 섰다. 평복으로 갈아입은 의원은 부엌을 차지한 채 국의 간을 보고 있었다.

"마침 잘 됐군. 둘은 이제 일어나서 씻으러 갔소. 여기 와서 간을 좀 봐주시겠소?"

"가, 간이요...?"

"조금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아침을 먹어야지."

무붕은 국자에 담긴 맑은 국물에 숟가락을 집어넣어 건넸다. 독고연은 숟가락을 받아들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숟가락 아래에 고인 국물이 떨어지기 전에 입안에 가볍게 털어 넣었다.

"와...."

맛있다. 그리고 동시에 등허리가 짜릿하게 울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숟가락을 놓칠 뻔했다.

"음? 왜 그러시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홀린 것처럼 간을 보기는 했지만, 아무리 한 번 검수 되어 들어온 음식이라고 한들 무붕이 수작을 부릴 가능성을 잊어버린 건 큰 문제였다.

'내가 왜 이러지?'

왜 주변에 대한 경계가 낮아진 걸까. 독고연은 혹시나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만 했다. 만약 저들이 음식에 독을 탔다면. 만약....

"연 소저, 상을 준비해주시오. 이제 그릇에만 옮기면 다 끝나니."

"아, 네. 네."

독고연은 생각했다. 왜 자연스레 의원이 시키는 대로 상을 옮기고 식탁을 닦고 밥을 공기에 담고 그릇을 옮기고 있을까.

지시대로 하고 나니 엄연한 4인 상이 완벽하게 차려져 있었고, 아침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들이 정갈하고 예쁘게 놓여있었다.

"이걸...전부 의원님께서 하신 건가요?"

"혼자 지내다 보면 잡기가 늘게 되지. 변변찮은 실력이오."

자신과 비슷한, 아니 훨씬 뛰어넘는 실력의 보유자는 너스레를 떨었다.

"연 소저. 그나저나 생각은 해보셨소?"

"뭐, 뭘 말씀이신가요?!"

절로 독고연은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녀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었고, 무붕이 할 수많은 말들을 떠올려봤다.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나와의 성교요."

"힉!"

"혹여 처음이라고 한다면 미안하오. 하지만 고통스럽지 않게 해드릴 수 있소."

"......."

독고연은 침묵했다. 처녀를 상대로 성행위를 운운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아프지 않게 해줄 수 있다?

'내가 진짜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이리도 당당하게 나서니 어디 물어볼 수나 있겠는가? 독고연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속내가 어떻든 배는 고프고 음식은 맛있어 보였다.

"오는대로 같이 먹도록 합시다. 뭐...꼭 성교를 아니 하더라도 내가 있는 동안은 당분간 아프진 않을 것이오. 이미 치료는 시작되었으니."

"예? 그게 무슨...?"

무붕은 자신의 명치를 가리켰다.

"각혈, 지금 안 하지 않소?"

"......!!"

독고연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 * *

"감사합니다, 의원님!!"

독고자영은 허리까지 숙일 기세로 내 두 손을 맞잡고 활짝 웃었다. 중년 남정네와 손을 잡는 건 딱히 바라는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장인어른이 될 사람과 악수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생각하는 약이 잘 맞아 들어서 다행입니다."

내 옆에 앉은 독고연은 나와 독고자영의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흥분한 독고자영의 말에만 대답할 뿐이었다.

"연아, 진짜로 피를 토하지 않았느냐?"

"네."

"갑자기 빈혈로 쓰러지는 일도 없었고?"

"네."

"호흡이 가빠지고 숨이 넘어갈 것 같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몸이 떨리는 증상도 없었느냐?"

"네. 전혀 없어요, 아버지."

"......크흑!"

독고자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소매로 눈을 닦았다. 황제의 앞에서도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 남자가 보이는 눈물에 나도 괜히 속이 시큰해졌다.

'빨리 독고연을 완치해야 하는데.'

약간의 차도에도 이렇게 기뻐하는데 완벽하게 치료해낸다면 맹주가 나를 어떻게 볼지 뻔하다.

- 내 딸의 불치병을 치료해준 생명의 은인! 내 딸아이를 가져도 좋네! 반갑네, 사위!

아마도 그런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까. 나는 장밋빛 미래를 만들기 위해, 헛기침으로 맹주의 시선을 끌었다.

"흠흠. 하지만 맹주, 아직 완치는 하지 못했습니다. 독고연 소저의 뒤틀린 혈맥을 다스리려면 최소 이 주가량은 제가 옆에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이 주...."

"맹주께 감히 간청드립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신의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의술을 펼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환자를 두고 완치하지 않고 몸을 떠날 수는 없는바. 맹주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저는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고자 합니다."

"그 말씀은...?!"

"본래 저는 이봉결정전에서 다치는 환자분들을 돌보기 위해 왔지만, 독고연 소저를 집중적으로 치료하고자 합니다."

"크흑...!!"

맹주는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맹주의 뒤에 함께 따라온 개방의 왕초 거지, 제갈건담의 부친이자 무림맹의 군사 제갈길, 그리고 숱한 맹의 요인들이 모두 눈시울을 붉히거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연이가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연아, 빠른 쾌유를 빈다!"

"축하하오, 맹주. 드디어 연이에게 걸린 불치병을 완치할 수 있게되었구려!"

"백도의 장래는 밝구나! 크윽, 역시 무붕 의원이야말로 신의요!"

장문인급 인사들이 모두 독고연의 회복을 축하했다.

"""쾌유를 빌겠소, 독고 소저!"""

"아, 그...."

독고연은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녀의 뒤에 함께 서 있는 흑백제일화의 눈총을 받고 어깨를 움츠렸다.

"딸아, 치료는 잘 되었느냐? 혹시 뭐 특별한 일은 없었고?"

어디 한 번 사실대로 말해보든가. 나와 둘은 동시에 독고연을 향해 미소지었다.

- 불과 하루 전에 두 여인이 음탕하게 엉덩이를 흔들고, 무붕이 그 안을 손가락으로 휘젓고, 소공녀가 오줌을 지리면서 기절하고, 무붕이 소공녀를 상대로 후배위로 박다가 그 아래에 태극화를 눕혀놓고 두 구멍을 번갈아 가며 박다가 저한테 정액을 뿌렸어요!!

"......무붕께서는 제게 좋은 영약을 주셨습니다."

차마 진실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독고연은 얼버무렸다. 독고자영은 독고연을 품에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그는 독고연을 안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맹주님. 이만 가시지요. 슬슬 이봉결정전의 대진표를 짜야 합니다."

"그렇지, 크흑. 연아, 계속 함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아버지."

독고연은 자신의 손을 맞잡은 독고자영을 향해 살포시 웃었다. 항상 창백하던 얼굴에 혈색이 돈 독고연의 모습은 늦게서야 망울을 터뜨리고 피어오른 한 떨기 꽃과도 같이 화사했다.

"제가 나은 모습에 아버지께서 이렇게 기뻐하실 거라고는 몰랐어요."

"그래, 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천만금을 바쳐서라도 내 너를 완치할 수 있다면, 내 그리 할 것이다!"

"맹주님."

나는 맹주에게 과감히 제안을 걸었다.

"이봉결정전에 독고연 소저가 참가합니까?"

"...아닙니다, 의원님. 최근 들어 각혈이 더 심해서 기권하려고 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잠깐이지만, 첫 경기가 있는 날까지 차도가 있으면 비무도 온전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무화(武花)께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독고연 소저는...."

나는 독고연을 향해, 무림맹 전체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 당당히 선포했다.

"이봉결정전의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 병을 완치할 것입니다."

결승전 전 날.

그녀는 여인으로서 만개할 것이다.

[작품후기]

원래 1떡1스토리로 2편 올리려 했는데

사공희랑 이시아가 너무 힘쓰는 바람에 떡만 두 편이 되어버렸습니다

참 작가를 힘들게 하는 히로인들이네요

아무튼 독고연 소저, 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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