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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원이 된 이유
십팔음뇌절맥.
팔음절맥과 구음절맥 이 상가는 절맥증으로, 혈맥에 음기가 쌓이는 바람에 기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요절하게 되는 병이다.
'병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걸리는 자는 하나같이 머리가 희게 변하고 눈동자 색이 바뀌며, 숨 쉬는 것만으로 각혈하다가 10년 또는 8년째 되는 해에 모두 요절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절맥증은 선천적인 병이다.
'독고연은 어렸을 때는 멀쩡했다.'
팔음절맥이든 구음절맥이든 태어날 때부터 혈맥이 막힌 상태로 자라 요절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무가의 자식이기도 한 독고연이 혈맥이 막히는 병을 지금까지 달고 살 리가 없다.
혈맥이 막히는 병이라면 무림맹주인 독고자영이 진작에 벌모세수로 뚫어놓았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딸에게,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벌모세수라면 자신의 무공을 폐하는 한이 있더라도 독고자영은 벌모세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냐? 절맥에 걸린 건 그녀가 10살이 되던 해, 그녀의 생일이었기 때문.
'독고연이 병을 앓게 된 것은 그녀가 무형독에 중독된 뒤. 그전까지는 활기찬 어린아이로서 멀쩡했다.'
독고연은 10살에 불치병을 얻었다.
무림맹의 행사에 참여하여 여러 장문인의 귀염을 받았던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과일을 먹고 병에 걸렸고, 머리가 희게 변하고 홍채의 색이 눈동자로 변하는 등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대공자의 짓이지.'
대공자는 무림맹의 내통자와 연계하여 독고연을 중독시켰다.
천하제일의 기재로 중원 최고의 무재를 가지고 있던 여인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각혈하는 병자가 되었고, 딸의 중독을 알게 된 독고자영은 무림맹 내부에 한 번 피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감히 자신보다 10살은 어린 아이가 자신보다 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에 질투한 것이다. 참으로 지질한 남자이나, 뒤에서 계략을 펼치는 솜씨만큼은 천하제일이다.
결국 독고자영은 맹에 피바람을 일으켰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 누구의 사주를 받고 한 짓이냐?!
- 저, 저도 모릅니다! 저는 진짜로 결백합니다! 제 무공과 제 아내와 제 딸을 걸고 맹세합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결국, 독고자영은 백방으로 병을 치료하고자 했으나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 이런 병은 처음이오.
- 구음절맥과 비슷하지만, 증상은 더욱 심하오.
- 이것은 새로운 병이오. 만약 맹주가 허락한다면 우리 이비사에서 진료를....
내로라하는 모든 의원을 총동원하여 확인해봤으나 '구음절맥'이라고 진단하지는 않았다. 절맥이란 대부분 선천적이지, 독고연처럼 독에 '중독'되어 절맥이 생겨버린 경우는 처음이었다.
-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 꼭 살려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소. 내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신의의 천환단도 아무 효과가 없으니, 신의가 아니고서는 고칠 수 없지 않겠소?
그 어떤 누구도 고칠 수 없다는 병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황궁의 명의조차도 병을 밝혀내지 못하고 포기해버렸다.
독고자영이 순순히 나를 안으로 들인 것도 어쩌면 자포자기하는 심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의의 제자라면 혹시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럼 왜 이 병은 현대의 누구도 모른단 말인가?
'고대에 실전된 병이니까 당연히 모르지.'
십팔음뇌절맥은 신의가 가진 청낭서에서도 상당히 오랜 옛날에 준하는, 저 멀리 상고시대에 발생했다고 하는 병이다.
사실 원래 이름은 따로 있지만, 그 시절에는 다소 '흔한' 병이라고 청낭서에 적혀있기도 하지만, 그게 수천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나타났다면 불치병이 맞다.
'지금의 신의가 와도 모를 거다. 거기에는 병이라고 안 적혀있거든.'
청낭서에도 조차 병으로 다루지 않는, 어떤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분야다. 그걸 현대에 부르기에는 다소 난감하여, 어디까지나 병이라는 이름으로 십팔음뇌절맥이라고 임의로 지칭한 것일 뿐이다.
'대공자 놈도 참 대단하긴 해.'
그걸 대공자가 어떻게 얻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대공자가 독고연에게 부린 수작은 가만히 놔둘 수 없다. 아리따운 여인을 죽어가도록 놔둔 대공자의 수작은 내가 반드시 물리칠 것이다.
나의 뜨거운 장침으로.
"듣지 못하셨소? 나와 성교를 하는 것이 그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의료행위'요."
그래서 나는 거두절미하고 내 앞에 선 그녀, 독고연에게 치료법을 당당히 읊었다.
앞뒤로 선 이시아와 사공희는 내가 설마 대놓고 성교하자고 할 줄 몰랐는지, 표정 관리를 못 하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
천천히 눈을 감은 독고연은 얼굴을 울그락붉으락하며 분을 삭였다. 나는 그녀가 혹시나 뺨을 때릴 때를 대비하여, 좌로 손바닥이 날아올지 우로 손바닥이 날아올지 미리 가늠했다.
'그쪽은 호신강기를 빼놓아야 하니까.'
뺨 한 번 얻어맞는 거로 독고연을 취할 수만 있다면 할 때마다 뺨을 맞을 자신이 있다. 나는 독고연이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
뺨을 맞을 줄 알았는데 의외다. 나는 담담히 고개를 돌리며 안쪽으로 몸을 돌린 백발자안의 여인, 독고연을 앞에 두고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뭐지, 분명 화를 내어야 정상인데.'
내가 아는 다음 대 무림맹주는 불의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정의를 추구하는 자로서, '자신의 유일한 치료법'이 남자와 성교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의원을 향해 검을 겨누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붕 의원님."
독고연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올려다봤다. 장원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붙잡고 몸을 돌린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체념과 슬픔, 그리고 절망만이 가득했다.
"정녕 그것이 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까?"
"그렇소. 천환단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오."
뒤틀린 기맥을 진정시키려면 나의 내공밖에 방법이 없다. 독고연의 흰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끼이익.
나는 독고연의 뒤를 따라 독고 세가의 별장, <무릉도원(武陵島院)>에 당당히 두 발로 입성했다.
* * *
"맹주, 이것은 권력 남용입니다."
"시끄럽소."
무림맹의 군사, 제갈길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독고자영의 태도에 속에 천불이 일었다.
"지금 사람들의 불만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맹주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무붕 의원을 전속 의원처럼 부린다고 아주 난리입니다."
"부리다니? 말조심하시오. 나는 그저 의원께서 조금 더 치료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줬을 뿐이오."
"그게...."
제갈길은 독고자영이 의자와 책상, 침대까지 끌고 와서 자리 잡은 위치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독고자영은 지금 자신의 별장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 다리의 입구에 모든 침구를 옮겨놓았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물론!"
다리 옆에 있는 작은 초소 같은 가건물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며칠을 지새우겠다는 기세는 이해가 갈 것 같으면서도 지독하다 싶었다.
"그렇게 의원을 찾아오는 이들을 쫓아내고 싶으신 겁니까?"
"군사, 쫓아내고 싶은 게 아니라 어중이떠중이 들이 흥미본위로 무붕 의원을 찾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오."
맹주는 다리의 근처에 나타난 이들을 하나둘 눈을 부라리며 내공을 뿌렸다. 맹주의 압도적인 기운에 3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물러나고, 4할은 입맛을 다시며 슬그머니 빠졌다.
"이건 월권이오!"
"어디 병자가 맹주의 딸만 있다던가!"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나머지 3할, 맹주처럼 가족이나 지인 중에 큰 병을 앓는 이들은 맹주의 거친 기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맹주! 동변상련이라는 말이 있소!"
"우리에게도 무붕 의원을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있단 말이오!"
"독고구검진을 열어주시오!!"
맹주가 무붕을 상대로 무릎까지 꿇으며 제발 별장 안으로 들어가달라 요청한 이유는 이들을 쫓아내기 위함이었다.
"갈! 의원께서 지금 연이를 치료하고 계시지 않은가! 조용히 하시게!"
독고연을 치료하는 데 열두 시진을 전부 쏟아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독고자영은 무붕의 시간을 빼앗을 이들을 향해 눈물을 머금고 호통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대들 중 진짜로 내 딸만큼 불치병이 있는 자가 있다면 내 얼마든지 길을 열어줄 수 있어! 하지만 그대들 모두 그런 병이 아니지 않은가! 내 진실을 모두 밝혀도 좋겠나!!"
"윽...!!"
"그, 그건 협박이오!!"
"껄껄, 안 서는 놈 하나랑 벗겨지는 놈이 참으로 시끄럽구나."
구질구질한 냄새가 목소리에 실려 사방으로 퍼졌다. 맹주를 향해 시위를 벌이던 이들은 매부리코 노인의 등장에 침음성을 흘렸다.
"방주...!"
"그래, 왕초 거지다. 어서 자네들 있을 곳으로 돌아가시오. 괜히 맹주 신경 쓰이게 하지 마시고. 아니면...더 얘기해주랴?"
"큭...! 하지만...!"
개방 방주의 압박에 무인들은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물러나지 않은 극소수의 무인들이 씩씩거리고 있었고, 방주는 바로 그들을 향해 곰방대를 겨누며 입을 열었다.
"거기 화산파의 젊은이는 남고. 그대의 노모에 대한 일은 익히 들었소. 하지만 그 병이라면 신의가 아니더라도 거금만 들이면 그 아래 단계의 의원을 고용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지. 맹주, 어떻소?"
"......내 약재를 사서 보내도록 하겠네."
"맹주!! 감사합니다!!"
한 차례 웃지 못할 촌극이 일어난 뒤, 다리 앞에 모인 무인들은 모두 흥미를 잃은 듯 빠져나갔다. 무붕 의원을 만나기 위해 모인 이들 중 진실로 절박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선포하겠소! 독고세가에서 그대들이 겪는 질병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을 약속하겠소! 단! 단 나흘만이라도, 우리 연이에게 시간을 주시오!"
이미 무림맹주는 무붕을 찾을 법한 절박한 이들에게 약재를 보내는 등 조치를 취해뒀다. 거기에 독고세가의 이름으로 지원을 약속했으니, 불만은 그래도 어느 정도 억누를 수 있었다.
"이보시게, 고자영이."
"독고, 자영이오."
"아무튼! 아무리 딸아이를 위해서라지만...하아. 맹주, 이번에는 조금 심했소."
"알고 있소. 끙."
맹주와 젊어서부터 함께 협행을 다녔던 개방 방주의 지적에 맹주는 그제야 살기를 거두었다. 하지만 다리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도 지나갈 수 없소. 연이의 병이 치료될 때까지...아니 하다못해 연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는지라도 알 때까지, 이곳은 그 누구도 지나갈 수 없을 것이오."
독고자영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무림맹주의 명이오. 모두 물러나시오. 그 누구도 무붕 의원의 진료를 방해하지 마시오. 꼬우면...니들이 맹주 하든지."
맹주의 엄포에 그 누구도 감히 독고자영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두가 마다한 맹주 자리를 독고자영 말고 또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맹주, 정녕 무붕 의원이 연이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소?"
"물론. 나는 그의 순수한 눈빛을 보았소. 그리고 느낄 수 있었지."
독고자영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내 딸아이를 치료하겠다는 순수하고 강렬한 의지를!"
* * *
"나를 치료하겠다는 명목으로 범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독고연은 홀로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기침은 다행히 가라앉았고 피는 튀어나오지 않았지만, 무붕 의원이 한 말에 진심으로 각혈할 뻔했다.
- 병에 걸리고 10년째가 되기 전에 치료하지 않으면 죽소.
- 다행히 8년째는 무사히 넘어갔으니, 이제 10년째로군. 솔직히 말해서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소.
- 치료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대의 몸 곳곳의 혈을 풀어줄 필요가 있소.
- 하지만 십팔음뇌절맥은 바깥에서만 혈을 누른다고 될 일이 아니오.
- 혈맥이 가장 많이 꼬여있는 곳, 여인의 가장 안쪽을 직접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
-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대에게 치료의 목적에 따라 성교를 제안하는 바이오.
"...남녀간의 일을 그리 쉽게 이야기하다니."
독고연은 주먹을 바들바들 떨었다. 용봉지회부터 소문을 들어 내심 기대하던 무붕 의원과의 만남은 최악이었다.
아무리 부친이 독고구검진의 안으로 들여보낸 남자라고 한들, 무례한 건 무례한 일이었다.
"하지만...."
독고연은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속에서 들끓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고통은 좀처럼 참을 수 없었다.
"......."
일단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부끄럽지만 부친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상담을 청할까 고민하던 찰나.
앙, 아앙, 하아아....
피로가 많이 쌓여있으시군.
조, 좋아요.... 의원님....
"......꿀꺽."
어디선가 들려오는 달뜬 숨소리에 독고연은 방문을 열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독고세가를 찾은 세 손님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붕의 방에서 여인의 소리가 들릴 이유는 하등 없었다.
아아앙...!!
"......."
살짝 열린 문틈 사이.
그곳에서는 독고연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살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작품후기]
그래서 연참을 했습니다
제 의지로